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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투자 (마 6: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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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투자 (마 6:19-24)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질문으로 설교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돈 좋아하십니까?’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혹시 여러분 가운데 나는 돈이 너무 싫다. 이런 분들 계시면 손 한번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요. 우리는 다 돈을 필요로 하고 있고, 또 돈의 가치를 인정하며 살아갑니다. 때로 세상을 보면 공평하지 못한 거 같아요. 어떤 집들은 너무 돈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돈이 좀 있으면 그 가정에 그런 어려움을 막을 수 있는데 돈 때문에 때로는 부부사이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심지어 이혼하는 부부까지도 있더라고요. 

그런가하면 어떤 집은 너무 돈이 많아서 걱정이에요. 그 많은 돈을 주체하지 못해서 결국 범죄 하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돈이 없을 때는 새벽기도도 나와서 열심히 기도했는데 돈이 많아지니까 여행이나 다니고 교회와는 점점 멀어져요. 그리고 남편이 때로는 바람이 피기도 하고 그게 다 돈 때문에 일어난 결과죠. 

돈은 좋아할 수 도 없고 그렇다고 싫어할 수만도 없는 그러니 돈의 성격은 중성이라고, 중립이라고 해요. 돈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아요. 우리가 선하게 쓰면 돈처럼 가치 있는 것도 없어요. 돈을 잘 쓰면 죽을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줘서 훌륭한 학자가 되게도 합니다.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돈을 잘못 사용하면 내 영혼과 육신을 파괴 시킬 수도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1977년 아주 오래전이죠. 교회성장연구소에서 출판한 책 중에 김동윤 장로라고 하는 회계사가 직업인 장로님이 쓰신 책이 있는데 ‘예수님 다음으로 돈이 좋아요.’ 그런데 그 앞에 붙는게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솔직히 말해서, 예수님 다음으로 돈이 좋아요.’ 아마, 여러분도 그러실 거예요. 그렇죠? 예수님을 가장 좋아하고 다음에 돈이 좋으시죠? 돈이 좀 많았으면 좋겠고, 좀 넉넉했으면 좋겠고, 아마 그런 바람들 여러분 다 가지고 계실 거예요. 

김동윤 장로님은 그의 책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돈이 보낸 편지라는 것을 소개하고 있는데‘당신은 언제나 나는 움켜쥐고는 나를 당신의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당신의 것이 아니지요. 나는 아주 쉽게 당신을 지배할 수 있어요. 우선 당신은 나를 얻기 위해서라면 죽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지 하려고 합니다. (중략) 부디 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나를 다루어주세요.’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칫하면 돈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은 유익하고 가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바르게 사용해야 된다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돈을 비롯한 모든 재물들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재물은 도대체 뭐라고 정의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재물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재물을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실 때, 조건이 있어요. 먼저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재물을 허락하십니다. 자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시편 112편 1절 이하에 보면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집에 부요와 재물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시편 128편 1, 2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내가 내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며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형통한다는 것은, 막힘이 없고 잘된다는 거죠. 거기도 물질의 축복이 따라 오는 것입니다. 또 욥과 같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에게도 재물의 복을 주셨죠. 

욥기 1장 1절에 보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욥은 사단의 시험으로 그 많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열 자녀를 빼앗겨 버리고 건강마저 잃어버리지만은 나중에 다시 욥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물질의 복을 주신다. 

또 한 가지는 재물은 근면한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잠언 10장 4절에 보면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그랬어요. 근면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바로 재물이라는 것입니다. 재물은 이렇게 좋은 것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재물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재물은 늘 나와 동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잠언 23장 5절에 보면 ‘내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재물은 대로 우리 곁을 날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재물에는 그래서 뭐가 있다고 해요? 날개가 있어요. 재물은 옆에 두고 있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흔히 하는 말에 부자가 3대가 가는 법이 없다. 재물이라는 것은 늘 날라 갈 수 있는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디모데전서 6장 17절에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재물은 내 옆에 영원히 붙들어 둘 수 없어요. 재물에 소망을 두면 반드시 실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누구에게 소망을 두느냐? ‘오직 우리에게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둬요. 여러분 재물이 여러분의 소망이 아닙니다. 재물은 그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재화요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재물에 소망을 둠으로써 오히려 재물 때문에 그들이 타락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디모데전서 6장 9절에 보니까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파멸과 멸망에 빠질 수 있는 것이 재물이라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물질에 집착하면, 지나치게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차면, 그는 재물에 노예가 될 뿐 아니라 재물로 인해서 파멸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 재물에 대해서 뭐라고 교훈하고 계실까요? 

오늘 마태복음 6장 19절부터 21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9절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절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절 ‘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아멘.

우리 주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고 게신가요?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어요? 땅에 쌓아두라고 하셨어요? 하늘에 쌓아두라. 너희 보물을, 보물이라는 것은 재물을 포함해서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을 이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을까요? 몇 가지 이유를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 땅에는 좀과 동록이 그 보화를 보물을 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19절에 보면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한다는 거예요. 이 좀이라는 것은 뭐에요? 여러분 의복 같은 것을 벽장에 오래 넣어두면 좀이 쓸어가지고 구멍이 뚫어져서 입을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 마치 그것처럼 좀이 쓸듯이 우리의 모든 보물을 다 쓸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또 동록이라는 것은 뭐에요? 금속표면에 나타난 금속을 못 쓰게 만드는 녹같은 것 그것을 동록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이것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거죠. 또 도둑이 와서 그 재물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재물이란 내가 바르게 사용할 때, 내 것이지 늘 그냥 보관하는 것으로 만족하면 언젠가는 누구의 손에 넘어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이민 간 한 한국인이 있었는데, 처음에 가서 할 일이 없어서 튀김집을 했다고 합니다. 튀김집을 하다보니까 기름을 손으로 많이 만져요. 그런데 미국이라는 곳은 은행에다가 저금을 많이 하게 되면 거기에 대한 세금을 많이 물게 되니까 자기 수입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그는 그것을 자루에 넣어서 땅속에 파묻어 버렸어요. 돈을 버는 대로, 그 후 몇 년 전에 돈이 필요해서 그 자루를 꺼내서 열어봤더니 좀이 다 쓸어가지고 왜냐하면 기름기가 있으니까 벌레들이 모여들어 가지고 돈을 다 못쓰게 만들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다 결국 버렸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 땅에는 우리의 물질을 영원히 보관할 만한, 보호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보화를 하늘에 쌓아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두 번째로 왜 하늘에 쌓으라고 했을까?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질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따라가기 때문이다. 물질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렇게 예배당에 나오셨는데 아마 교회 와서 여러분이 들어오실 때 헌금을 내려고 지갑을 찾았는데 지갑이 없다. 

그러면 여러분은 별의별 생각이 다 날 거예요. 당황하시겠죠. ‘내가 지갑을 어디에 빠뜨렸나. 어제 슈퍼마켓 가서? 아니면 집에 놓았나? 아니면, 어디 잃어 버렸나?’ 아마 갖은 생각이 날거예요. 그 지갑 안에는 카드도 있고 물질이라는 것이 돈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예배 한 시간 동안 예배가 집중되지 않을 거예요. 그 지갑을 찾는 것 때문에 지갑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을 거예요. 여러분 물질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죠. 

이 땅에다가 보물을 쌓는다는 것은 뭐에요. 이 땅에다가 재물을 쌓아두면 우리의 관심은 이 땅을 향하는 거예요. 우리의 관심은 늘 이 땅에 머물러요. 그러나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우리의 관심은 하늘을 향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우리 주식을 투자하는 분들 있잖아요. 주가가 좀 올라가면 굉장히 기분이 좋죠. 그럼 뭐 누가 주는 것 없어도 잘해주고 싶고 기분이 좋아요. 

그러나 어느 날 주식이 절벽으로 떨어지면 너무 기분이 나빠요. 우울해지고 침체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식이 올라가고 내려감에 따라서 그날의 일기도, 기상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라고 이것이 성경의 원리에요. 주가가 올라가던 내려가던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해요.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돈의 지배를 받아요. 돈이 좀 잘 벌리면 기분이 좋고 돈을 좀 못 벌면 우울해지고. 우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돈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죠. 우리가 지나치게 돈에 집작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물질의 청지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청지기 삼으셨어요. 그래서 이 모든 재화와 사실 우리의 재능과 우리의 생명까지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잘 관리해서 하나님의 듯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잘 사용해야 해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주신 그 복 재물에 빠져가지고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그 재물에 집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좀 죄송한 이야기지만 몇일 전에 시내에 나갔다 온 적이 있었습니다. 돌아오다가 마침 핸드폰을 파는 가게가 있어서 집사람이랑 들렸습니다. 저희 집사람이 한 4-5년 됐는데 늘 좀 이렇게 투덜거리는 투가 있어요. 뚜껑이 좀 떨어져 나갔고, 기스가 났고, 베터리 뚜껑도 없어서 막 노출이 됐고, 베터리도 하나 잊어버리고, 그래서 늘 그것을 아쉬워해요. 아. 오늘이 기회가 바꿀 시기가 됐으니까. 그래서 요즘 새롭게 나온 스마트 폰으로 바꿨습니다. 저는 그렇게 바꿔주면서 굉장히 아내가 좋아하고 저에게도 굉장히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까 곧 실망으로 바꿔졌습니다. 우리 집사람은 새로운 시간한 물건을 보는 순간 조작법을 익히기 위해서 몇 시간 동안 그것을 가지고 만지작거리는 거예요. 저를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제 이야기는 들어주지도 않습니다. 제가 스마트 폰을 사줬지만 사준 저는 쳐다보지도 않고 스마트 폰에 빠져가지고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거기에 집중해 있어요.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물질과 모든 것을 주셨지만 우리는 그 물질에 빠져서 하나님을 쳐다보지 않아요. 거기에만 집착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조금 더 얻을 수 있다면 내게 아홉이 있다면 하나 더 지어서 열을 채우고 싶은 그런 욕망에 가득 차 있는 거예요.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거예요. 돈 자체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지만 돈을 사랑해서 내가 탐욕에 빠질 때 그것은 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입고 먹을 수 있으면 족한 줄로 여기라고 성경은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따라가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을 때, 우리의 관심을 하늘을 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왜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했을까.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한 남자가 두 여인을 똑같이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종이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는 것처럼 우린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어요. 

이 재물이란 말은 아람어로 맘몬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들은 이 맘몬이란 말을 그들의 물질의 신을 가리킬 때 맘몬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과 물질의 신을 같이 섬기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둘 다 못 섬겨요. 하나님도 제대로 못 섬기고, 물질도 제대로 못 섬기고 이래가지고 결국 가랑이가 찢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우린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젊은 부자가 나와요. 아누 똑똑하고 지혜로운 부자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왔어요. 예수님께 묻습니다. 랍비여, 제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묻습니다. ‘네가 율법을 다 지켰느냐?’ 그는 말합니다. 율법을 다 지켰다고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자기가 다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내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재물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이 부자는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어요. 돌아가 가지고 아직까지도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없어요. 그는 결국 주님께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뭐 때문에? 물질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재물이 그의 인생에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는 그 재물을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여러분 그렇다고 오해하시면 안돼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내 물질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빈털터리 걸인으로 따라오라는 말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우선순위 되신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물질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 물질이 사용되야 됨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위대한 투자라고 정했습니다. 지난주일 신문영 교수님이 오셔서 제직 수련회 때 귀한 말씀을 하셨는데 조금 어렵긴 했지만 그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좋은 기업을 넘어서 위대한 기업으로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물론 그전에 설교 제목을 정했습니다만, 정말 우리가 좋은 투자를 넘어서 위대한 투자로 가야되지 않느냐. 

정말 위대한 투자란 뭘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우리의 물질을 투자하는 것 그게 위대한 투자가 아닐까요? 영원한 투자, 영원히 남을 투자 사라지지 않는 투자, 낭비하지 않는 투자 그것은 바로 구제하는 일이고, 선교하는 일이라고 주님 말씀 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에도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고 주님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우리는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이 물질은 주님의 것이요. 내 것이 아님을 고백하면서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이 물질을 사용해야 해요. 

정리해보면 

첫째는, 하나님 앞에 헌금 드리는 거 이것이 물질을 바로 사용하는 거예요. 하나님 주신 재물 가운데 열에 하나를 성별해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 감사 예물을 드리는 거, 선교헌금을 드리는 거, 그것이 온전한 물질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고 이것이 위대한 투자의 하나인 것입니다. 잠언 3장 9절 이하에 보면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주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네 예물과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십일도를 드리라는 이야기죠. 

여러분 잘 아는 말라기 3장 10절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드려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이 쌓을 곳이 없도록 붙지 아니하는가. 보라.’ 성경은 말씀 합니다. 너희 재물이 왜 좀에 축나고 있느나? 너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했다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한 결코 하늘의 복은우리에게 임할 수 없다. 하나님 우리를 축복하실 수 없다. 한쪽으로 벌지만 한쪽으로 다 새어 나가고 만다. 결국 그것은 밑빠진 독처럼 물을 아무리 부어도 그 물이 독에 채워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멍이 빠져있습니다. 황충이 먹어서 수확한 모든 것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국에 있는 선교단체의 직원인 선교사님이 아주 돈 많은 유력한 상인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선교헌금을 하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이 상인은 못이기는 척 어쩔 수 없이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수표에다가 사인을 했습니다. 돌려주는데 250불이라는 돈을 사인을 해서 돌려줬습니다. 그 돈은 우리 돈으로 하면 25만원정도 하는 돈이죠. 

그것을 받아가지고 나오는데 갑자기 급한 전보를 가지고 누가 뛰어 들어왔습니다. 사장님 이것 좀 보세요. 하고 전보를 전하는데 사장이 그 전보를 보는 순간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습니다. 당황스러운 거죠. 선교사님은 직감적으로 저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냥 돌아갈 수가 없어서 아니,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네. 방금 전에 태평양을 항해하던 제 배한척이 좌초 돼서 암초에 부딪쳐서 침몰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습니다.’ 그러더니 그가 선교사님에게 그 수표를 제게 돌려주실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어요. 선교사님 갑자기 아! 이 사람이 어려운 일을 맞으니 이것마저도 내게 돌려달라고 하는 것이구나. 그래서 할 수 없이 수표를 다시 돌려달라고 하는구나. 그런데 수표를 찢어버렸어요.

그러더니 다시 새로운 수표책에 다가 다시 새롭게 써서 돌려주었습니다. 선교사님 받아보니까 그 수표에는 250불이 아니라 1000불이라는 큰 액수의 금액이 적혀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100만원 깜짝 놀랐어요. 아니, 이렇게 어려운 일을 당했는데, 왜 이렇게 많은 것을, 그는 말합니다. 방금 하나님이 제게 전보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 전보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어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쌓아두는 것은 언젠가는 이렇게 잃어버릴 수 있고 도둑이 해칠 수 있어요.하늘에 쌓아둘 때, 그것은 영원한 것임을 제가 방금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물질을 정말 가치 있게, 합당하게, 가장 바르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일조를 드리는 분들은 온전하게 드리도록 노력하십시오.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분들은 이제 십일조를 드릴 수 있도록 한번 결단해 보십시오.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우리가 복 받는 비결이고 물질적인 은혜를 입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구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제를 기억하십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에게 천사가 와서 말합니다. ‘너의 기도와 너의 구제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는 것이 있어요. 무엇이냐. 우리의 구제와 우리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거 하나님이 다 기억하세요. 우리가 남을 나눠주는 것, 남을 도와주는 것, 구제를 하나님 기쁘게 여기시고 기억하고 계세요. 그리고 그것을 반드시 갚아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9장 10절에 보니까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주시리라.’ 우리가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면 하나님께 돈을 꾸어드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그것을 반드시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구제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우리 옆에 분들에게 인사하시죠. ‘구제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남을 많이 구제하고, 베푸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받은 복이 감사해서 나누기도 하지만 성경은 또한 바꿔서 그것이 바로 복 받는 비결이라고 말씀합니다. 

잠언 11장 24절 이하에 보면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 그랬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눠서 구제해도 점점 더 재물이 많아져요. 어떤 사람은 그렇게 수전노 같이 아껴도 점점 가난하게 될 뿐이에요. 성경의 원리는 우리가 기쁘게 나눠줄 때 하나님은 그를 더 풍족하게 채워주신다는 거예요. 이게 성경적 원리에요. 

여러분 미국의 워렌 버핏이나, 빌게이츠 같은 분들은 자기 재산의 상당한 부분을 사회를 위해서 다 내놨어요. 그러나 그 분들은 계속해서 그 부를 쌓아가고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부를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 말씀이 틀림이 없죠? 

누가복음 6장 38절에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남에게 베풀면 하나님은 오히려 너희에게 많은 것으로 채워줄 것이라.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누군가에게 물질을 맡겼는데 물질을 잘 못 사용하면 있는 물질마저도 걷어가겠죠? 그러나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합당하게 사용하면 더 많은 물질로 하나님 맡겨주시는 거고 채워주시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리에요. 

잠언 28장 27절을 보면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 성경은 우리에게 구제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도 너희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히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장래 너희를 위해서 생명의 터를 쌓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물을 드리는 것과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구제는 축복의 통로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경주 최 부자집이라고 유명한 집안이 역사 속에 내려오고 있습니다. 전진문씨가 쓴 ‘경주 최부자집 300년 부의 비밀’이라는 책이 있는데, 뭐 여러분들도 많이 읽어보신 분들이 계실 거예요. 다 들어본 이야기죠. 이 집은 300년 동안 12대가 만석꾼의 자리를 잃지 않고 유지해왔다는 것입니다. 한집 가문의 재물이 300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은 정말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문에는 내려오는 가정에 전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높은 벼슬을 차지하면 당정에 시달릴 수 있고 재물마저 일어버릴 수 있다는 거예요.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두 번째,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늘 그래서 9000석 정도로 만족했다고 합니다. 너무 많으면 늘 사회에 나누어줬다는 거예요. 

세 번째는, 흉년기에는 절대 땅을 사들이지 말라. 사람들이 농사가 안되고 농사를 못 지면 결국 땅을 빨아버리고 왜? 양식을 얻기 위해서. 그때 땅을 사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의 땅을 빼앗지 말아라. 

네 번째는, 지나가는 객을 잘 대접하라.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 

다섯 번째는,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노블리스 오블리제죠. 사회적 책임,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 요즘 그래서 자본주의 4.0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따뜻한 자본주의라고 말하죠. 월가의 시위가 그렇지 않습니까? 너무 가진 사람들 몇 사람이 모든 부를 지배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따뜻한 자본주의가 와야 한다. 가진 자들이 많이 나누어 주는 그런 사회가 와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경주 최 부자집은 이미 오래전에 그것을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 옷을 입혀라. 비단 옷 입히지 말고 가난하게 사는 법을 검소하게 사는 법을 가리키라는 것입니다. 

12대 되는 최홍이라는 분은 결국 이 재물을 거기서 끝냅니다. 일제시대기 때문에 일본인에게 재물을 주지 않으면 그 부를 유지할 수가 없어요. 결국 그분은 모든 재산을 다 독립군들에게 환원시킵니다. 독립군 자금으로 다 대주고 결국 거기서 부를 다 끝냅니다. 참 굉장한 집안이죠. 300년 동안 12대가 만석꾼의 집안을 유지해 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죠. 

여러분 그렇습니다. 바로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전 여러분들이 좀 가난하지 않고 부유해졌으면 좋겠어요. 제 기도제목은 늘 하나님 우리 교회 성도들 기업이 잘되게 하시고 저들의 삶에 풍성함을 주세요. 라고 늘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늘 넉넉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가 가난해서 물론 청빈하게 사는 것 그것도 행복한 것이지만 그러나 여러분이 물질이 좀 넉넉하면 하나님을 위해 이웃들을 위해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어요. 

여러분들이 기도하시면 좋겠어요. 우리 가문에 가난의 영이 떠나가도록 기도하시면 좋겠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리 가문에 내려오는 가난의 영이 떠날지어다. 여러분, 가난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세요. 하나님은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늘 많이 가져도 가난해. 옛날에 하도 어렵게 살아서 많이 가졌음에도 가난하게 사는 거예요. 물론 가진 것이 없고 그저 빠듯하게 살아가는 분들도 늘 맘이 부요하게 살아가는 분들도 있어요. 왜? 여러분 우리 하늘 아버지가 부자 아니십니까? 그리고 하늘 아버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데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우리의 물질을 하나님 정말 기뻐하시는 곳에다 사용할 때, 하나님은 또한 채워주시는 분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잠언 30장에 보면 잠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할까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혹 내가 너무 가난해서 도둑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봐 두렵다는 것입니다. 너무 부하게 하지 마옵시고. 교만해질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너무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내가 범죄 할 수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주시는 이 복을 정말 받아서 누리시는 분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 보니까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여기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주어진 삶에 감사하시고 그리고 여러분이 필요를 하나님 앞에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청지기가 되어서 하나님 때때로 그 물질을 사용하시고 더 많은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속에 날마다 역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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