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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이 무엇이기에 (시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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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무엇이기에 (시 8:1-9)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만족하는가?? 콤플렉스는 없는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 많다. 형편만 되면 몇 군데는 손을 좀 보고 싶다고 한다. 
취직하려면 학력 콤플렉스를 느낀다. 원하는 직장에 취직이 안 되니 구직 포기한 사람이 2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백수 콤플렉스가 얼마나 심할까? 자녀를 키우다 보면 자녀성적 콤플렉스가 생긴다. 
유명한 하나님의 사람 다윗도 8형제의 막내아들로서 콤플렉스를 심히 느끼던 있었다. 시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오늘 말씀은 그랬던 다윗이 자기 자신에 감격하면서 지은 시이다. 다윗 같은 감격이 우리 모두에게도 있기를 축복한다. 

1. 첫 번째 감격-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다. 

처음 고백이 ‘여호와 우리 주여’이다. ‘하나님이 우리 주님 이신 게 저는 너무 좋습니다.’ 
다윗은 굉장한 인맥을 가졌던 사람이다. 왕의 사위이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인맥 때문에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의 인맥이라도 다 좋은 게 아니다. 
다윗은 최고의 인맥을 가지고 감격한다. 바로 하나님이다. 인맥이 아니라 ‘신맥’이다. 
너무 감격스럽다. 왜? 내 주이신 하나님이 보통 분이 아니다.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우주에 가득 차 있다. 그 분이 바로 나의 주님이시다. 

*우주의 크기가 얼마나 될까? 빛의 속도는 1초에 30만 km를 간다. 1초에 지구를 7.5바퀴 돈다. 빛이 태양에서 지구까지 도달하는데 8분 정도 걸린다. 엄청난 거리다. 빛이 1년간 가는 거리를 일 광년이라고 한다. 빛이 태양계를 벗어나는 데만 2광년이 걸린단다. 태양계가 엄청나게 큰 거다. 
우주에 은하계가 있다. 한 은하계 안에 태양계 같은 항성이 3천억 개 정도가 있단다. 각 항성에는 지구와 같은 행성이 10개 정도 있다. 

그러면 한 은하계 안에 지구 같은 행성이 3조개쯤 되는 거다. 그 중에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의 수 6천개 정도이다. 시화에서는 60개보기도 힘들 거다. ‘나는 보이는 것만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맞는 말인가? 
이런 은하계가 1천억 개쯤 된단다. 지구 같은 행성이 1조개쯤 된다는 거다. 이 우주를 빛의 속도로 간다고 해도 얼마가 걸리는 건가? 감도 안 잡힌다. 우주가 얼마나 크고 광대한가!!! 

다윗은 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느낀다.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낀다. 
시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그 대단하신 하나님이 나의 주님이시다. 나는 그 주님이 줄이 닿는 사람이다.’ 감격이다! 

그 대단하신 하나님이 어린 아이, 심지어 젖먹이라도 쓰시니 감사하다. 
*다윗의 간증이다. 어릴 적에 골리앗과 싸웠다. 골리앗은 키가 3m 가까이 블레셋의 거인 장수였다. 이스라엘의 왕과 장수와 모든 군인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피했던 장수이다. 
소년 다윗이 달랑 막대기 하나 들고 골리앗과 싸우러 나간다. 물론 혼자 나간 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 나갔다. 골리앗이 다윗을 비웃었다. 그럴만하다. 골리앗 입장에서 보면. 
다윗도 골리앗을 비웃었다. 그럴만하다. 충분히.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그날 그 싸움에서 하나님은 소년 다윗을 통하여 거인 장수 골리앗을 죽게 하셨다. 
그날 다윗은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아! 하나님은 나 같은 아이를 통해서도 일하시는구나!’ 
그래서 또 감격하여 시를 쓰고 노래한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손에 있으면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우리도 하나님의 손에서 이런 시인으로 만들어 지기를! 이런 노래를 부르게 하시기를 축복한다. 

2. 두 번째 감격- 나를 대단히 귀하게 만들어 주셨다. 

3절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주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저 광활한 우주 속에 나 한 사람은 얼마만할 존재일까? 먼지 보다 작은 존재이겠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또 감사하고 감격이 된다. 왜? 4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우주 속에 한 사람인 나를 얼마나 생각해 주실까? 70억 명 중 한 사람인 나를 얼마나 생각하실까? 마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그만큼 생각해 주시다니! 
생각만 해 주셔도 얼마나 황송한가? 그런데 생각만 해 주시는 게 아니다. 시17: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온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 제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십니까! 제가 뭐가 된다고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감사 또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져 주실까? 그 이유를 깨달았다. 5절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얼만큼 귀한 존재로 지으셨는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다. 온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 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하시다니! 
얼만큼 귀하게 여기시는가? 영화와 존귀의 면류관을 씌워주신다. 상상이 잘 안 된다. 
슥9:16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리라.” 

‘자아상’이란 게 있다. 자기 스스로 ‘나는 이 정도의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거다. 
자아상은 눈과 같다. 자아상이 좋으면 시력이 좋은 눈처럼 잘 본다. 있는 그대로 본다. 
자아상이 건강하지 못하면 잘 못 본다. 시력 나쁜 사람처럼 희미하게 본다. 왜곡되게 본다. 

우리의 자아상은 무엇인가?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진리는 성경말씀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심히 좋으셨다. 
사람이 사람을 봐도 좋았다. 아담이 하와를 보면서 ‘당신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입니다.’ 완전 닭살 멘트이다. 하와도 그랬을 거다. ‘사람 볼 줄 아시는 군요’ ‘당신도 만만치 않습니다.’ 뭐 그런 말들을 했을 거다. 서로 제대로 본 거다. 
왜?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창조하셨다. 
다윗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습 그대로 자신을 보는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시139:13-14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자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그러나 아담의 후예들의 자아상이 변질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 
욕심으로 서로 비교한다. 비교하면서 대부분 열등감을 갖는다. 열등감 감추려고 더 나아보이는 것으로 꾸미고 포장한다. 포장한 나를 또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 만족할 수 있을까? 

예수님을 믿으면 변질된 자아상도 회복시켜 주신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롭게 지음 받은 나를 보게 해 주신다. 새로운 자아상을 갖게 해 주신다. 내가 대단히 귀한 사람이구나! 왜? 내 안에 대단하신 하나님의 형상이 있구나! 
그러고 보니 너도 대단히 귀한 분이구나! 네 속에도 존귀하신 하나님의 형상이 있구나!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나는 못 났다’ 겸손한 말인가? 무시하는 일이다. 누구를 무시하는 말인가?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말이다. 그런 생각하지 말자. 그런 말 하지 말자. 하나님 기분 나빠지신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하나님이 너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그래서 다윗처럼 감사하고 감격하며 살아가자. 

3. 세 번째 감격- 대단한 귀한 사명을 내게 주셨다. 

6-8절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셨던 사명을 생각하며 시를 쓰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사명을 주셨다. 사람은 사명을 위해 창조된 존재이다. 
짐승에게는 사명을 주지 않으셨다. 본능대로 살게 하셨다. 그런데 사람이 사명을 잃어버렸다. 사명을 잊어버리면 욕심에서 나오는 본능대로 살게 된다. 그렇게 살면, 짐승보다 낮은 수준으로 살 수 있다. 

*어릴 적에 선생님이 ‘물 떠와라’ 시키면 으쓱했다. 선생님이 나한테 심부름을 시키시다니! 군대 가서 대대장님 당번병쯤 되면 얼마나 어깨에 힘이 들어갈까! 병장도 걸어가는데 이등병이 당번병이 대대장님의 찝차 뒤에 다고 심부름을 간다. 기분 최고다. 
다윗은 하나님의 종이 된 감격을 노래한다. 온 우주를 지으신 대단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사명을 주시다니! 

다윗은 사명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다. 목동이었을 때는 양을 지키는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했다. 왕이 되어서는 백성을 지키는 왕의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했다. 
왜?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이니까? 대단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사명을 주시다니. 감사하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우리를 종으로 부르셨다. 왕의 사명을 주신다. 무슨 사명인가?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시리라.” 

온 우주보다 귀한 사람을 살리는 귀한 사명을 사람에게 맡겨주신 것이다. 영광이다!! 
천사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부족한 게 많은 나에게 맡겨 주셨다. 천사들은 부러워할 뿐이다. 
벧전1:12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맺는 말 

단기 선교팀 갈 때 공항에 배웅을 갔다. 기타를 메고 가는 한 녀석이 뜬금없이 말했다. 
‘이 기타가 80만원이래요. 제가 80만원 짜리는 되네요.’ 80만원 짜리 기타 메고 가니 그 만큼 된다는 소리다. 나도 한 마디 했다. ‘80만원이 뭐냐. 8억은 된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돌아서서 실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0을 두 세 개쯤은 더 붙여야 했는데... 
하나님이 그 애에게 0을 붙이시면 몇 개나 더 붙여 주실까? 
하나님이 나에게는 그 0를 몇 개나 붙여주실까? 너는 그렇게 귀한 사람이라고! 
귀한 사람이니 귀하게 살라고! 네게 맡긴 귀한 사명 붙잡고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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