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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편지 (고후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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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편지 (고후 3:1-5)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을 비유하는 표현들이 많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대사, 그리스도의 군사,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는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내에는 사도 바울을 싫어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짓교사로 유대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의 잘못된 가르침은 비록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지만 완전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여전히 유대의 전통을 따라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율법은 폐해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강조한 사도 바울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믿음만을 강조한 사도 바울을 거짓 사도라고 비난했습니다. 

특별이 이 거짓교사들이 사도 바울의 사도성을 부인하는 이유는 자신들에게는 예루살렘 사도회에서 인정한 추천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추천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추천서가 없는 바울은 자신이 스스로 사도라고 말할 뿐이지, 어떤 공적으로 파송을 받은 사도가 아니라고 공격한 것입니다. 

이러한 유대주의 거짓교사들 때문에 교린도 교회 내에서는 사도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거짓 교사들의 주장에 동조하여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오늘 1절 말씀에서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물론 “아니오”라는 대답을 전제한 질문입니다. 유대주의 거짓 교사들의 비난하는 말들이나 악평하는 말들에 대해서는 대꾸조차 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 자신은 예루살렘 교회가 준 추천서 때문에 사도가 된 사람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고 사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위임해 주셨고, 보장해 주셨는데, 어찌 사람의 추천서가 없다고 사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2절 말씀에서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대적하는 대적자들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내준 추천서를 가지고 있다면 자신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추천서요, 너희가 편지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심비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나아가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그리스도가 보여지고, 그리스도가 전해져야 합니다. 

마 5: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빛이 어두움을 물리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부정과 부패, 거짓과 불의를 물리치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빛이 길을 보여 주고 인도하듯이 죄악의 어두움에서 갈 길을 못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사람이 마땅히 가야할 길을 보여 주며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편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편지인 우리를 세상 사람들은 주목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무디 목사님에게 한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을 받은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는 친구에게 찾아가 자세히 물어보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하나님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들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 그들을 살피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병들어 고생하는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능력의 편지로 가야 합니다. 실패한 이들에게는 승리의 약속을 주는 그리스도의 편지로 가야 합니다. 가정의 불화 때문에 괴로워하는 가정에는 화목하게 하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낙심한 자에게는 위로와 용기의 편지로, 절망한 자에게는 소망의 편지로, 가난한 자에게는 믿음의 부요한 그리스도의 편지로 가야 합니다. 우리의 편지를 받는 순간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지”라는 마음을 갖게 하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이런 면에서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편지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처음으로 불렀습니다. 즉 사람들의 눈에 안디옥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들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나타낸 확실한 편지가 된 것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하여 칭찬하며 본이 되었다고 칭찬하였습니다. 살전 1:6-7절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을 보이는 삶,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삶,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우리는 종종 “저 사람만 같으면 나도 예수 믿겠어!” 또는 “저런 사람 때문에 교회 갈 마음 이 없어!”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광고이고 이 세상 사람들에게 읽히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이 세상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편지란 그 내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편지는 내용에 따라서 붙여지는 이름도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는 ‘연애편지’라고 부릅니다. 추운 날씨 속에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고맙다는 내용을 실어 보내는 편지를 ‘위문편지’라고 합니다. 어버이날 학교에 자녀가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보낸 편지는 ‘효도편지’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종류의 편지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전달해 주어야 할 편지의 내용이 그리스도에 관한 것, 그리스도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은 것들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가장 중요한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건 한마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롬 5:8절 말씀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도 못할 때에, 죄에 빠져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있을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인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모든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달하는 자는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요, 생명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데, 그 놀라우신 사랑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어야 할 그리스도의 편지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가 받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삶에서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읽어내도록 그들 앞에 공개된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책을 보고 예수를 믿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보고 예수를 믿는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성경을 통해서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감사하고 믿음 생활을 해 나갑니다. 

그러나 성경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편지인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성품으로, 우리의 습관이나 언어생활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그리스도와 기독교를 위한 하나의 광고판입니다. 교회의 명예, 그리스도의 명예는 성도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나갈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한 공개장이며, 광고판이 된다는 엄숙한 책임을 지녀야만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그리고 우리의 작은 삶의 자취들을 통해서, 그리고 우리 얼굴에 묻어나는 잔잔한 미소를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편지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편지는 누가 보낸 것이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편지는 누구의 편지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의 편지냐에 따라서 받는 사람의 기쁨이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를 누구의 편지라고 말씀합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마음과 영에 글을 새겨주신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보내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에서 그 어떤 편지보다 귀한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자랑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부끄러움이 되면 안 됩니다. 

어떤 미국 사람이 프랑스에 관광을 갔다가 파리에 있는 어느 골동품 가게에 들렀습니다. 이것저것 구경하는 가운데 진열장 구석에 전시되어 있는 진주 목걸이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오래되고 낡은 것이라서 이미 색깔은 다 바랬지만, 진주 목걸이에 장식되어 있는 장식품이 그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주인에게 얼마냐고 물어보았더니 5백 달러를 내라고 했습니다. 그는 좀 비싼 듯 했지만 장식품이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샀습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자기의 보석 상자에 넣어서 그대로 방치해 두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급히 돈이 필요해서 프랑스에서 샀던 그 진주목걸이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집 근처에 있는 보석상에 가지고 갔습니다. 보석상 주인이 돋보기로 쳐다보며 한참동안 감정을 하더니, 상기된 표정으로 2만 달러를 줄테니 팔라고 했습니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5백 달러를 주고 샀는데 2만 달러를 주겠다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조금 더 생각을 해보기 위해서 일단 그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날 그는 그것을 가지고 꽤 알려진 골동품 가게를 찾아가 감정을 해 보았습니다. 그 골동품 가게의 주인도 한참동안 감정을 하더니 옆에 있던 몇 사람을 불러 자기들끼리 회의를 하고는 5만 달러에 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더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이 진주목걸이는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위대한 영웅 나폴레옹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조세핀에게 선물로 준 것이었습니다. 그 진주 목걸이에 자세히 보니 거기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사랑하는 조세핀에게. 황제 나폴레옹으로부터.” 라는 글귀와 함께 나폴레옹 황제의 친필사인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주 목걸이만으로는 값이 나가지 않지만 그러나 목걸이에 적혀 있는 글씨와 친필 사인 때문에 그렇게 값이 많이 나가는 것입니다. 목걸이 자체가 귀중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위대한 영웅 나폴레옹의 사인이 있기에 값나가는 목걸이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의 영혼이 왜 귀중합니까? 왜 우리 인생이 값나가는 인생이 되었습니까? 우리의 몸에 그리스도의 사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편지로 나아갈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몸에 당신의 친필 사인을 해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 6:17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은 가졌노라.”

여러분, 우리의 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겨진 그리스도의 흔적, 예수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 예수의 흔적이 우리를 귀한 존재로 만들어 줍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로 세상에 나가도 결코 망신당하지 않고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들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사도 바울을 친히 임명하셔서 사도로 삼으신 주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을 친히 보증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스럽게 드러내며 알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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