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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기는 자가 되라 (막 10: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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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자가 되라 (막 10:42-45)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란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로버트 그린리프(Robert Greenleaf)였습니다. 그는 서번트 리더십을 설명하기 위해 ‘서번트 리더가 되는 것’ 이라는 책에서 헤르만 헷세(Hermann Hesse)의 소설 ‘동방순례’ (Journey to the East)를 인용하였습니다. 내용인즉 어떤 사람들을 진리를 찾아, 어떤 사람들은 뱀을 잡아 돈을 만들 목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찾아 동방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방으로 여행하는 순례단 중에 레오(Leo)라는 하인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자고 걷는 동안 그는 언제나 묵묵히 섬기는 일에 열중하였습니다. 

순례자들이 힘들어 할 때 노래를 불러주고 휘파람을 불면서 지친 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레오는 사람들을 마주치기만 하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레오가 일행 중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가 사라진 것입니다. 순례자들은 그가 해를 당한 것이 아닌가 걱정하며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 일어났습니다. 여행길은 기쁘지 않았고 서로 다투기 시작하여 마침내 순례를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비로소 레오가 순례단을 이끈 진정한 리더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먼 후일 그들이 레오를 만나 발견한 충격적 사실은 그가 하인이 아니라 그들을 파송한 교단의 지도자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레오의 리더십이 바로 섬김의 리더십이었습니다. 헷세는 신학교를 다녔던 경험을 통해 성경에서 배운 예수의 리더십을 그려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역사는 섬김의 기적을 연출할 리더를 찾습니다. 섬김이 리더를 만듭니다. 섬김만이 기적의 리더십을 세웁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동행하던 제자들에게 하신 교훈입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의 우편과 좌편의 자리를 달라고 청탁을 했을 때 다른 제자들이 분노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도리어 남을 섬기라고 하시며,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도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영광의 길이 아니라 섬김의 길 위에 계십니다. 제자들은 영광의 길을 걸으려 예루살렘으로 향하였으나 예수는 종의 길을 걸으려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 세 번씩이나 자신이 겪을 고난과 죽음에 대해 예고하셨지만 제자들의 생각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영적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지금은 사순절기입니다. 어느 시기보다 예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행적을 따라가야 합니다. 제자도를 묵상해야 합니다. 자리를 탐내지 말고 섬기려고 애써야 합니다. 더 낮은 자세로 섬겨야 합니다. 이 시간 ‘섬기는 자가 되라’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까? 

첫째로 큰 자가 되기에 

전혜성(全惠星) 박사의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사람으로 키운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이었던 저자는 이화여대 2학년 시절 미국 유학을 통해 사회학 박사와 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교수로 생활하면서 여섯 자녀를 길렀습니다. 그런데 여섯 자녀 모두 하버드대와 예일대를 졸업하였으며 가족들이 무려 11개의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미국 최고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미 국무부 차관보, 매사추세츠주 보건 후생부 장관, 하버드 대학 공공보건대학원 부학장, 예일대 법대 학장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예일대 역사상 남매가 석좌 교수에 임명된 경우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미국 교육부가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가정으로 전혜성 박사의 가족을 '동양계 미국인 가정교육 연구 대상'으로 선정할 정도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녀는 책에서 자녀 교육의 비법을 ‘섬기는 자로 기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타인을 섬기고 세상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큰 자로 키우기 원하십니까? 부모가 먼저 섬기고, 자녀를 섬기며 나아가 남을 섬기고 사회를 섬겨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합니다. 남을 돕고 베푸는 과정에서 자녀가 지혜를 얻게 되며 부모가 남을 배려하고 봉사할 때 자녀들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바르게 성장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섬김을 받는 부모의 자녀보다 섬기는 부모의 자녀가 더 큰사람으로 길러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43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세상은 섬김 받는 사람이 큰 자라고 유혹을 합니다. 은밀하게 일하는 사람을 오히려 바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지배당하는 것보다 지배하고 사는 삶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부추기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역설적으로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는 자보다 훨씬 더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의 가치를 지배와 군림이 아닌 섬김에 두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제자들의 지배의식을 섬김으로 바꾸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노라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섬김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섬기는 삶이야말로 세상에서 큰 자가 되는 삶입니다. 
 
둘째로 으뜸이 되기에

윌리엄 부스 (William Booth)의 구세군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세계 도처의 남녀들이 구세군에 입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때 주교가 되려고 꿈꾸었던 한 남자가 구세군에 입대하기위해 대서양을 가로질러 미국에서 영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가 바로 사무엘 브렝글(Samuel L. Brengle)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스 사령관은 그의 입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부스는 그에게 “당신은 너무나 오랫동안 보스로 군림해 왔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에게 섬김을 가르치기 위해 다른 훈련병들의 군화를 닦는 일을 시켰습니다. 

이에 실망한 브렝글은 “내가 기껏 더러운 군화나 닦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왔단 말인가?” 라며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그는 환상 중에 거칠고 무식한 어부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려고 엎드려 있는 예수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그들의 발을 씻기셨군요. 그렇다면 나도 저들의 구두를 닦겠습니다” 라고 그는 속삭였습니다. 그때부터 브렝글은 기쁜 마음으로 군화를 닦았으며 충성스럽게 섬김의 도를 실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미국 구세군 최초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본문 44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세속의 문화는 우리가 사는 동안 무엇을 하였느냐에 초점을 두고 성공과 실패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무엇을 했느냐 보다는 무엇이 되었느냐로 판단하실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즉 행함(doing)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being)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섬김을 실천하지 않고 제자가 되는 법은 없습니다. 동시에 으뜸이 될 수 없다는 사실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의 마음은 군림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곳에 있습니다. 예수의 마음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으뜸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자신을 낮추어 섬기는 예수를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으뜸이 되는 유일한 길은 섬김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섬길수록 예수를 닮아가게 됩니다. 섬김을 받으려면 받을수록 예수의 형상과는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섬김이 없이는 누구도 으뜸이 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로 구원을 이루기에 

20세기 초 중국에 파견되었던 선교사 루스 펙트(Ruth Pact)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와 핀란드에서 같은 기차를 탔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여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오른쪽 손을 보니 금속 의수로 되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대화 도중에 여인은 인도에서 선교사로 일하다가 병에 걸려 본국으로 소환되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음을 았습니다. 고국에 돌아온 여인은 농장에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탈곡기에 손이 걸려 오른손이 절단되었습니다. 

오른손이 절단되었을 때 그녀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여, 오른손이 없는 나에게 무엇 하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기도했답니다. ‘어째서 나에게’ 라고 묻지 않고 ‘무엇을’ 이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나이든 크리스천을 위해 농장을 양로원으로 개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그녀는 양로원에서 노인들을 섬김으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있노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역시 예수를 다메섹에서 만나는 순간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물었더니 섬기는 삶을 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섬김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시기 원하십니다.

본문 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섬김의 극치는 대속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이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여 구원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인류에게 주고자 한 최고의 선물은 구원이었습니다.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시며 섬긴 것이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려면 섬김의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먼저 손해보고 먼저 희생하고 먼저 권리를 포기해야 합니다. 섬김을 시작할 때 비로소 구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좋은 글이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차를 모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태워 주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사는 집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당신이 어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남에게 무엇을 베푸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친구로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당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얼마나 좋은 동네에 사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이웃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것입니다.” 

은퇴하고 남한산성에 거하시던 한경직(韓景職)목사에게 후배 목사들이 새해 인사차 찾아갔습니다. 그에게 절을 올린 후배들이 말했습니다. “존경하는 한목사님, 저희들을 위해서 한 말씀해주시지요”. 그들의 요청에 한 목사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잠시 기도하시더니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예수 잘 믿고 계십니까? 예수처럼 섬기십니까?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는 교훈이 아닙니까? 부디 인생을 살아가면서 후회되지 않도록 섬김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모름지기 섬기는 자가 되어 가장 큰 자로, 으뜸인 자로 세워져 다른 이를 구원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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