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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숨어계시는 하나님 (사 45:15-17, 요 1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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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계시는 하나님 (사 45:15-17, 요 14:8-10)

랍비 바룩의 손자 여히엘이 다른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히엘은 꼭꼭 숨어서 술래가 찾아와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20분이 지나도 술래는커녕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친구가 처음부터 자기를 찾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여히엘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은 배신감에 울면서 할아버지께 달려와 불평을 하였습니다. 손자의 말을 다 들은 랍비 바룩은 눈물을 주루룩 흘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계신다고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숨어 있는데 아무도 나를 찾으려 하지 않는구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찾지도 못하고 홀로 살아갑니다. 
  
오래 전 제가 다른 교회에 있을 때 그 교회의 목사님에게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밥을 먹을 때 밥에 버터를 넣어 비벼 주었습니다. 엄마가 버터를 넣어 이미 다 비벼 놓았지만 아들은 계속 엄마에게 졸라댑니다. “버터 넣어줘!”. 이미 버터는 밥 안에 녹아 있지만 자기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모르고 계속 달라고 소리만 칩니다. 하나님께서도 만물 속에 이미 계시는데 사람들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중세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deus absconditus’(숨어 계시는 하나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deus revelatus’(계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숨어 계신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하여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빛과 해와, 달과 별, 물과 나무와, 물고기와 짐승을 다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는 만드신 모든 것을 다 보이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만드신 빛 가운데 숨어 계십니다. 하나님은 숨어 계시지만 만드신 만물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20에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통하여 이미 당신을 보게 하셨고 알게 하셨습니다. 
  
어느 이방 군주가 랍비 여호수아 벤 하나니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시오”라고 했습니다. “그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오. 태양을 바라보시오” 군주는 태양을 바라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랍비는 “태양을 볼 수 없다면 태양을 만드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는 것 아닙니까”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신령한 지혜로 알 수 있습니다. 
  
주전 722년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의 사르곤 2세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주전 586년 남 유다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들은 절망하였고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탄식하고 있을 때에 홀연히 이사야는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합니다. 이 선포는 포로민에게 희망을 주었고, 모든 하나님의 사람에게 기쁨과 용기와 기쁨을 회복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절망하고, 흑암이 앞을 가로막고, 염려와 불안과 근심으로 안절부절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읍시다.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합시다. 이스라엘이 절망 가운데 발견한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가 말한 숨어계신 하나님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 우상을 만드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려고 숨어 계십니다. 

16절에는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되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라고 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스스로 숨기시는 분이라고 단정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경배의 대상으로 섬기기를 거부하는 불신앙자들입니다. 
  
이런 우상숭배자들과 불신앙자들에게 하나님은 숨어계십니다. 디모데후서 3:13에는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 어리석어져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버려두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악을 방치하고 악한 자를 포기하는 듯이 보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에 대하여 가만히 계십니까? 왜 숨어 계십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이런 때 같지 않습니까? 이렇게 세상은 혼탁하고 악이 많은데 하나님은 팔짱 끼고 가만히 두고 보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악한 자들을 당장 없애버리지 왜 가만히 두고 계십니까?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로 들어갔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이런 도시는 당장 불로 심판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게 ‘보아너게’,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만 주시지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하나님은 악한 자들에 대하여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돌아오게 기다리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것들의 비유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잃은 양과 잃은 동전과 잃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잃은 양과 잃은 동전은 주인이 찾아 나섭니다. 결국 찾아서 기뻐 돌아와 잔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탕자는 아버지가 가서 찾지 않습니다. 체포조를 만들어 보내지도 않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 발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기다림이 더 잡아 오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 집 나간 아들에게 대한 방법입니다. 
  
때로는 아주 못난 사람을 보면 “아이구, 저런 거 왜 안 잡아가나? 귀신은 뭘 하고 있나?”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귀신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안 잡아가는 것은 이미 벌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미 부끄러움을 받은 것입니다.  
  
오랜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유대인이 안식일에 몰래 골프를 치러 갔습니다. 그런데 안식일 골프에서 홀인원을 했습니다. 뒤에 그가 안식일에 골프를 치러 간 것이 알려졌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다른 유대인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안식일을 어겼는데 왜 벌을 안줍니까?” 그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미 벌을 받고 있느니라”. 홀인원하여 자랑하고 싶지만 자랑하지 못하는 것이 이미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홀인원이 얼마나 자랑하고 싶은 건지 아십니까? 저는 골프를 안 해서 모르지만 아주 오래 전에 어느 분은 홀인원하고 나서 얼마나 자랑하고 싶은지 우리교회 주보에 내 달라고 하던데요. 그렇게 자랑하고 싶은 홀인원이 하필 안식일에 될 게 뭐 있습니까? 하나님께 단단히 벌을 받은 것입니다.  
  
로마서 1:28에는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숨어서 상실한 마음으로 살다가 스스로 뉘우치기를 보고 계십니다. 그 때를 기다리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보시며 “너 까불면 맞는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데 마치 안 계시는 듯 잔 머리나 굴리고, 짧은 지식으로 까불어대면 하나님은 비웃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베푸신 다음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놀라운 기적을 많은 사람에게 소문을 내서 알게 하시지 왜 소문을 내지 말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의 위대한 능력을 절대로 값싸게 만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숨어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많은 말씀 가운데 비유로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3:13에는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영이 비뚤어진 사람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값싸게 보이지 않게 하시려고 숨은 말씀으로 하신 것입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숨어 계신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왜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보고도 하나님을 믿지 않을까요?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안 믿기로 선택하고 작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시편 42:3에는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라고 합니다. 시편의 기자는 왜 눈물이 났을까요? 억울해서 눈물이 났을까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눈물이 났을까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것이 비통해서 눈물이 났을까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찾지도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계속 숨어 계십니다. 
  
‘불가지론’(Agnosticism)이란 학설이 있습니다. 1869년 헉슬리가 처음으로 주장한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무신론과는 다릅니다. 무신론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불가지론은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증명할 수 있는지 증명할 수 없는지 모르며 아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나아가서는 신의 존재뿐만 아니라 사후세계나 의지의 자유나 삶의 의지 등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지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얼마나 똑똑한 척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우상 숭배하는 자와 불신자는 이미 대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이스라엘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숨어 계십니다. 

17절에는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고 합니다.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라는 말에는 16절의 일순간적인 도움도 줄 수 없는 우상과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숨어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시편 139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스올에 자리를 펼지라도, 바다 끝에 거주할지라도 계시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가나 하나님은 거기에 숨어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지혜는 위대합니다. 이런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큰 손이 함께 하게 하여 주십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십니다(대하 16:9) 하나님은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신 것이 아닙니다(사 59:1).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어디나 보고 계시며 무엇이나 다 듣고 계십니다. 우리를 항상 보고 듣고 계셔서 우리의 편이 되시는 것입니다. 
  
숨어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떨어질 때에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독수리 날개로 업어 옮겨 놓아주십니다. 우리가 쓰러질 때에 오른 손이 권능으로 잡아 주십니다. 우리가 할 말을 잃고 당황할 때마다 입과 함께 있어 할 말을 가르치십니다. 우리의 평생에 어디 가든지 항상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숨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숨어서 앞장서 가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실 때에 하나님은 모리아 까지 사흘 길을 조바심을 가지고 숨어서 앞서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올려놓을 때에 숨어 계시다가 놀라서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채고 홀로 외삼촌의 집으로 가고 있을 때에 벧엘에서 숨어 계시다가 야곱에게 들키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야곱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숨어 계십니다. 그러나 절대로 사랑하는 자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35개국에 134곳이 넘는 지적 장애인 시설인 라르슈를 설립한 프랑스의 장 바니에는 “마치 떠나신 것처럼 보일 때도 그분은 항상 거기 계십니다. 가장 멀리 계신 것처럼 보일 때 오히려 가장 가까이 계시기 때문입니다”라고 그의 책에서 말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신앙적 체험에서 나온 말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곁에 숨어 계십니다.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가까이 숨어 계십니다.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웅장한 계획이나 요란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가 탈진하여 죽기를 자청하고 로뎀나무 아래 앉아 있을 때에 하나님은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 가운데 계시지 않고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숨어 계시다가 “나 여기 있다”라고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너 혼자 아니야”라고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은 다니엘 친구들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함께 불풀무에 숨어 들어가셨습니다. 다니엘과 함께 사자굴에 숨어 들어가셨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고통당하고 어려울 때 우리의 어려운 자리에 하나님은 숨어 들어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너 혼자 아니야”. 
  
폴란드의 나치 유대인 수용소에 어느 유대인 청년이 쓴 글귀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밝은 빛을 볼 수 없지만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지금 느끼지 못하지만 나는 사랑이 있음을 믿는다.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나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이미 찾은 하나님의 사람의 소리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지혜가 있습니다. 
  
숨은 그림 찾기가 있습니다. 눈이 밝고 센스가 있으면 숨은 그림은 다 찾습니다. 그런데 숨은 하나님 찾기는 신심(信心) 즉 신앙의 마음으로, 영혼으로 찾아야 찾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찾으면 반드시 찾을 수 있고, 하나님은 찾는 자에게 만나주십니다. 
  
신명기 4:29에는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고 하십니다.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응답하리다”고 합니다. 성경이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는 사실은 하나님은 숨어계시지만 결코 멀리 계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숨어 계시지만 결코 멀리 계시지 않고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헨리 나우웬은 ‘영성 수업’이란 책에서 시편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의문과 연관 지어 묵상하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네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인격적이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숨어 계십니다. 넷째, 하나님은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숨어 계시는 이유는 우리와 함께 계시며, 찾으시기 위함입니다. 
  
저는 경품행사에서 당첨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교회 제직수련회 때도 올해 어쩌다 한 번 당첨되었습니다. 어쩜 그렇게 내 번호가 안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소풍 가서 보물찾기하면 왜 다른 사람들이 다 다녀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에게는 경품행사에서 내 번호가 나오는 것보다, 보물찾기에서 내가 보물을 찾는 것보다 숨어 계시는 하나님 찾기가 더 쉽습니다. 왜냐하면 내 가까기 계시고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북미의 인디언은 남자아이가 13살이 되면 성인식을 치릅니다. 성인식이 있는 저녁이면 아버지는 아들의 눈을 가리고 먼 길을 떠납니다. 골짜기를 지나 강을 건너 구비구비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숲속에서 아버지는 모닥불과 아들만 남겨두고 사라집니다. 아들은 밤을 새우고 살아남아야 진정 인디언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룻밤을 지나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합니다. 아침이 되면 희미한 빛을 느끼며 성인이 되는 순간 아들은 저만치 나무 뒤에 숨어-자신에게 활을 겨누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합니다. 아버지는 자신을 두고 떠난 게 아니라 혹시 사나운 짐승이 나타날까 나무 뒤에 숨어 밤새 아들을 지키고 함께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잠시도 떠나지 않고 숨어서 지키고 계시는, 잠시도 떠날 수 없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복음성가의 가사에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은 숨어서 함께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투정하지 마세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숨어서 구원하시려고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이 아버지 때문에 힘을 얻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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