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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 (느 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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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 (느 8:8-12)


우리는 지난 주간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고’라는 주제로 부흥회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이 기간 동안 시간마다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 새로운 소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부흥회를 섬기면서 이런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 꿈을 상실하면 세상에 맛을 잃은 소금처럼 짓밟히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약속을 부여잡고 시대를 믿음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지난 주 말씀 집회하다 이 본문을 다시 붙잡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를 빼앗긴 아픔과 그 것이 회복이 될 때까지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한국교회가 3.1절을 기념하는 예배로 드려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오늘 우리는 93번째로 맞는 3.1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압하에 을사 늑약을 체결을 했습니다.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명목상으로는 일본의 보호국이나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 민족에게 일본은 희망의 싹을 짤라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백성들이 그냥 주저 앉은 것이 아닙니다.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패배를 숙명처럼 여기던 이 백성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던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누군들 일본의 그 잔인한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어린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삼천리 방방곡곡에 가슴에 숨겨놓았던 태극기를 꺼내서 만세를 불렀던 그 힘과 용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일어난 것입니까? 그것은 그만큼 나라 사랑의 마음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93년 전에 온 땅을 흔들었던 태극기를 휘날리며 자주 독립을 외쳤던 그 함성이 오늘 우리의 귓전에 들려지지만, 아직도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일본은 잊을 만하면 망언을 해서 우리의 상처를 건드리곤 합니다. 일본 정부는 징용, 징병, 위안부 등으로 끌고 간 100만여 명의 조선인 희생자들에게 개별적으로 피해 보상을 해주기는커녕 사과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제 작년에 미의회가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분명한 잘못임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법적 책임이 없다고 큰 소리를 치지 않습니까? 심지어 ‘역사를 왜곡해서 만든 교과서를 버젓이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니 정말 가슴이 미어지듯 통분하는 심정입니다. 거기에는 위안부 문제 같은 것은 아예 빼버렸고 대신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치르는 동안 우리나라에서 강제 동원한 ‘위안부’는 2만 여명으로 추산됩니다. 위안소에서 숨을 거뒀거나,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거나, 신분을 감추고 살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2011년 현재까지 신고된 위안부 피해자수는 234명입니다. 이중 생존한 할머니는 70명뿐. 모두 80·90대 고령인데다 병환으로 생의 마지막 순간만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지금도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사과와 피해보상을 요구하지만, 저들은 들은 채도 안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자신들을 짓밟은 일본에게 피해보상만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시위는 또 하나의 상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힘이 없을 때, 알마든지 나라가 어려워지고 심지어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질 수가 있다는 경고의 시위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위기라고 합니다. 또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관하기도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또 중국은 어떻습니까? 

아예 작심한 듯 동북공정이란 프로젝트를 만들어 현실화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우리나라의 통일 이후에 불거질 영토에 대한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엄연히 고구려가 우리나라인데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가 모두 중국 역사의 일부였다고 주장하고 나와 우리의 근본 뿌리까지 흔들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더욱 더 긴 장의 끈을 놓치 말고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시점에 있습니다. 지금 북한 역시 김정은 체제로 전환이 되어 어떤 엉뚱한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라를 빼앗긴다는 것은 엄청난 아픔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시겠지만, 이스라엘도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 아닙니까? 오늘 함께 대하는 본문은 온갖 압력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52일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유대인들은 학사 에스라를 초청하여 말씀사경회를 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벽공사를 다 끝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흥회를 하는 장면입니다. 지금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은 정말 새로운 감회에 젖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온 백성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100년이 넘는 세월이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짓고자 했던 그들에겐 얼마나 많은 핍박과 음모, 그리고 좌절이 있었겠습니까?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나라를 빼앗긴 그들이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왜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그래도 성전을 짓고 성벽을 쌓는 일들을 해보았지만, 끊임없이 달려드는 이방의 위협과 핍박 속에 그들은 서서히 희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항도 해보고 하나님 앞에 절박한 심정으로 얼마나 기도를 했겠습니까? 그러나 끝도끝도 없는 고난이 파도처럼 밀려 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고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쓰러지고 맙니다. 

유대 역사학자인 요세푸스는 ‘그 당시 예루살렘 길에는 날마다 시체가 즐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곽이 없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공격해 오면 대책 없이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고국에 와서 계속된 이 고난 앞에 저들의 마음에 담겨 있는 꿈마져 송두리째 짓밟힌 것입니다. 이제 저들은 더 이상 버틸 힘도 성벽을 재건할 힘도 다 상실 한 채 하루 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예루살렘 성만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내면과 삶 속에 희망이라는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희망과 도전이 자라야 할 사람들 속에 상심과 비탄의 잡초만이 무성합니다. 사명의 성벽은 무너지고 자포자기와 체념으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로 점차 성벽은 무너지고, 그것이 성격의 일부가 되어 오히려 무너진 삶이 편안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꿈을 상실한 사람들, 이들에게 무너진 성벽뿐만 아니라 그들의 상실한 꿈을 다시 되찮게 해준 느헤미야는 마침내 52일 만에 성벽 공사를 완선할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얼마나 감격이고 기쁨이겠습니다. 이제 그들이 수문 앞 광장에서 부흥회를 갖게 됨니다. 수만명이 회집한 자리에서 에스라가 나무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때 새벽부터 정오까지 일어서서 말씀을 청종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느8: 8-9절에 보면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한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말씀을 듣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듣는 순간 하나님의 택한 인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말씀 앞에 불순종하고 살았습니까? 교만했고, 우상숭배에 쩔었던 자신들의 추한 모습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 자신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앞에 하염없는 눈물로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통곡이 수문 앞 광장을 흔들자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10절에 외치는 것입니다.“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울지말라!!‘오늘처럼 기쁜 날 왜 우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축제와 잔치를 베풀라고 말합니다. 먹을 것도 준비하여 실컷 먹고 즐기되, 너희만 먹지 말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먹으라는 말합니다. 말 그대로 잔치를 여는 것입니다. 온 나라가 기쁨의 잔치를 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0절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여러분, 그렇습니다. 기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기쁨과 웃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엄청난 힘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이 선포되고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는 반드시 기쁨이 충만히 임하게 됩니다. 눅 2:10절을 보시면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성경은 복음을 가리켜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표현을 하였습니다. 복음은 단순한 기쁨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다운 기쁨을 맛보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요15:11절에서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참다운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영혼속에 들어오게 되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행8: 8절을 보시면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증거하자 그곳에 큰 기쁨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에는 큰 기쁨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게 됩니다. 이 기쁨은 꼭 잘되서 소위 성공해서만이 주어지는 기쁨이 아닙니다. 살전1: 6절에 보면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고난과 환란 한복판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들어가니까 더 이상 세상의 핍박이 문제가 안됩니다. 오히려 고난의 한 복판에서도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얻게 되고 그들은 기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마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큰 기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비록 세상의 삶이 고달프고 힘이 든다고 할지라도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인하여서 날마다 큰 기쁨을 맛보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능력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이 은혜가 오늘 여기 모인 우리에게도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수문 앞 광장에서 부흥을 경험하며 기쁨을 갖는 그들은 엄청난 변화를 보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힘을 갖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심령속에 큰 기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그들에게 임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는 기꺼이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에 일곱 가지의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특별히 7월 1월에는 나팔절이라고 하는 큰 절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7월 15일부터 시작되는 한 주간동안에는 집 밖에다가 초막을 짓고서 생활하는 초막절이라고 하는 큰 절기가 있었습니다. 이 절기를 통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옛날 광야 40년의 세월동안 조상들이 겪었던 고난을 생각하면서 거기에 동참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를 제대로 지키지를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쁨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되자 그들에게 말씀에 순종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내려가 17절을 보시면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날까지 아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임하게 되자 여호수아 이래 최대의 초막절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게 되었습니다. 

둘째, 찬양할 힘이 생겨납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3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설교가 뜨겁고, 기도가 뜨겁고, 찬양이 뜨겁습니다. 기억나시나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의 골고다를 향하시면서 제자들과 함께 무엇을 했습니까? 이제 고난의 아픔이 밀려올텐데,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는 그 절망의 상황에서 그들은 찬양했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성령 받은 사람은 찬양합니다. 성령은 노래하는 영입니다.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찬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이 아침! 묻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구원하셨습니까? 에베소서 1장을 보면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세 전에 예정해 놓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이유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 치시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 서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긍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만 닿으면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천국의 거문고와 같습니다. 성도는 이미 노래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큰 기대를 걸고 인생을 투자하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눈에 보이는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데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과 고통이 다가와도 크게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노래합니다. 우리가 형통할 때 부르는 찬송은 은혜스럽지만 그런 찬송은 입에서만 나오는 찬송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밀려 올 때에 부르는 찬송, 고난을 당할 때, 사랑하는 자를 잃을 때, 실패를 당했을 때,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앞날이 막막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부르는 찬송은 영혼에서 나오는 찬송입니다. 

셋째, 봉헌할 힘을 줍니다. 느12:43절에서는 “이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의 역사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평소보다 훨씬 더 큰 예물을 가지고 와서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동참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든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기쁨이 그들의 영혼과 심령속에 찾아오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기쁘고 즐겁게 드렸는지 그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의 기쁨의 역사가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님들이 자원하는 심령으로 큰 제사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지난 한 주간 정말 모든 분들이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헌신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드림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눔을 생활화하는 일입니다. 세상에는 주는자와 받는자-두가지 유형의 인생이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가 어려서는 주로 받는 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숙해 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주는 것, 나누는 것의 중요성을 배워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숙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사도도 친히 그가 전도하고 양육한 에베소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는 마지막 말씀에서 행전20:35에서 ?--주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교경 협의회에서 광고 하신 장로님, ‘우리 교회는 나누는 교회다.’ 또한 그 기쁨의 예배가 광진구 일대에 퍼져서 허다한 무리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을 붙들지만, 생각해 보세요. 올 한해만하더라도 과거의 어느 시기에 못지않은 정치적 격변이 예상됩니다. 4월에는 총선, 그리고 12월에는 대선이 치러지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권력 지형의 두 축인 국회와 청화대의 주인공이 한꺼번에 바뀌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 변수도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후진타오 시대를 마감하고 시진핑 시대가 열립니다. 러시아에선 ‘마초 통치를 표방한 푸틴 총리가 4년만에 대통령 자리에 복귀해 제2의 장기 집권 시대를 시작을 할 것입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이런 기세를 업고 김정은은 3대 권력세습의 기반을 확고히 다질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볼 때 북한의 핵문제, 미사일 문제는 우리의 안보를 끊임없이 불안감으로 흔들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국가나 사회는 거대한 파도처럼 조각배 같은 개인의 삶을 얼마든지 바꿔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각배는 멈춰서려하지만, 파도는 끊임없이 흔들어 댑니다. 지금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그리스나 이탈리아 국민의 고통이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의 선망의 대상이던 필리핀이 끊없는 추락하고 있는 게 그 나라 국민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과거 필리핀이 우리나라 김포 공항이나 주요 시설을 다 짓고 관리 구축해 주었던 나라입니다. 그 어느 나라 국민보다 근면하고 부지런하며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인데 국가가 부패의 온상이 되고 나서부터 날개 없는 새처럼 저렇게 추락을 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인구 350만 명의 소국 싱가포르와 인구 13억 명의 대국 중국은 우리에게 엄청난 도전을 줍니다. 싱가포르는 1990�穗�중반 일찌감치 ‘2020 비전’ 프로젝트를 세워 강소형 국가를 완성해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13억의 인구의 중국 대륙도 미국과 핑퐁 외교 수교 이후에 등소평의 개혁, 개방 노선을 바탕으로 10년 앞, 20년 앞을 차근차근 설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1979년부터 시작을 한 경제 발전 구상이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시대까지 30년 넘게 일관 되게 실현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치 지도자와 국민 사이에 미래 비전에 대한 확고한 공감대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 사회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독수리 같은 미래의 눈으로 현재 세계를 내려다봐야 합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다간 우리는 너무도 큰 것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장애물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디딤돌로 삼고 나가는 이 도전 정신이 그 어떤 때 보다 여러분에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힘임을 알고 이 시대를 당당하게 맞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역시 이 수문 앞 광장의 부흥이 다시한번 이 땅에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부터 이민족이 나꼼수니 저격수니 하며 사회에 말장난으로 도배질을 하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 성도들이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이 시대에 기쁨을 펼쳐 나가야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여기 수문 앞 광장에서 종일토록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격했던 지난날의 백성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 앞에 구원 받은 자녀들입니다. 오늘 10절의 말씀처럼“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시대가 어려울수록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삶의 정황이 좋아진 다음에 하는 기쁨이 아니고 고통 한가운데 서서 고통을 바라보면서 다시 고통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어야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상황이 어디까지 갈 때까지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믿음의 수준일 수 있습니다. 얼마만큼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은혜의 수준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다 얻고도 불평하며 불행해 하는 사람이 있고 세상을 다 잃고도 하나님 한분으로 감사하며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정말 기뻐하십니까?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여러분! 위기가 닥쳐올 때 사람들은 다 큰일났다, 죽겠다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담대해야 합니다. 이 시간 기억하십시오. 모두가 답답한 현실이지만, 그 다음 우리가 내일을 바라 볼 수만 있다면, 그리고 이 폭풍우와 비바람 건너편에 있는 내일 새벽에 비쳐질 그 영롱한 아름다운 빛살을 볼 수 있는 안목만 있다면,/ 그리고 이 고통스러운 환경다음에 나를 만드시고 또 나를 붙들고, 나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그 분의 손길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벌떡 일어 설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뻐하며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자리에 있을지라도 기뻐하는 삶을 잃지 마십시오. 이제 우리 한 번 더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이 신앙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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