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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 2: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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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 2:19-21)


멜 깁슨(Mel Gibson)이 제작한 “The Passion of the Christ(그리스도의 수난)” 라는 영화가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깁슨이 영화를 제작할 때에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유대인 학자들은 자신들을 피에 굶주리고 돈에 혈안이 된 사람들로 묘사하는 반유대주의 영화라고 비난했습니다. 어려움이 있자 영화제작 투자자들이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러자 깁슨은 사재 2,500만 달러를 투자하였습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세상에 바로 알리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멜 깁슨의 고백에 의하면 자신이 슈퍼스타로서 돈을 소유하고 모든 것을 누렸으나 내면에 항상 기쁨이 없었고 갈등과 허무함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시도하였는데 극적으로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된 그는 예수를 전하는 삶을 살고 싶어 영화를 제작하기로 계획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영화 촬영 중에 신기한 일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장님이었던 사람이 눈을 떴고, 귀머거리였던 사람이 듣게 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병이 나았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을 찍을 때 스탭 중 한 사람이 번개를 맞았는데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서 걸어가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제작할 때 놀라운 기적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영화에는 예수의 손과 발목에 못을 박을 때 튀는 살점들! 손톱 밑에 흐르는 검붉은 피가 클로즈업되기도 했습니다. 예수가 처형되기까지 12시간 동안의 일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촬영장에서 멜 깁슨은 예수 역을 맡은 짐 캐비즐, 마리아 역의 모니카 벨루치 등과 함께 매일 기도를 드리는 일부터 시작을 하였습니다. 

시사회에서 빌리 그래함 목사는 “예수께서 당한 고난을 성경으로 봐서는 그 아픔이 잘 느껴지지 않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라며 눈물로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순절에 우리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할 것입니다.

본문 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여기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라는 구절은 문법적으로 시제가 제1 완료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왔다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도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로 되어있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믿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주와 함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토저(A.W. Tozer) 박사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는 뜻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한 방향만 바라보며 후퇴하지 않으며 자신의 계획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나타난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의 의미는 과연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로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성 프란체스코(St. Francesco)는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은 뒤 어느 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면서, “오, 주님! 제가 죽기 전에 꼭 두 가지의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먼저 저로 하여금 저의 육체와 영혼이 십자가의 고통을 체험하게 하시고, 다음에는 예수께서 우리 죄인을 사랑하신 뜨거운 사랑을 저의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위에 십자가는 많이 있지만 진정 십자가의 사랑을 잊어버린 채 사는 우리가 아닙니까? 십자가 없는 교회는 없지만 진정 십자가 사랑이 살아있는 교회와 성도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교회 종탑이나 제단에 십자가는 선명하지만 나의 마음에 십자가의 사랑이 진정 숨 쉬고 있습니까?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본문 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처음부터 대단한 사랑을 주께 드리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필레오의 사랑을 고백 했던 베드로가 결국 주를 위해 순교당합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죽었습니다. 베드로의 사랑은 필레오가 아니라 아가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를 사랑한다면 예수의 기쁨이 되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진실된 사랑과 거짓된 사랑이 있습니다. 거짓된 사랑은 머리에만 머무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진실된 사랑은 가슴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실천하였습니다. 그러한 주의 사랑이 우리의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랑으로 살아갈 때 그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진젠도르프 (Nicolaus L. Zinzendorf) 백작은 십자가의 감동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뒤셀돌프 미술관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그림을 보는 순간 피가 떨어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림은 독일 화가 스텐버그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림에는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주었건만 너는 날 위해 무엇 주느냐” 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진젤도르프는 그 글을 읽는 순간 '나는 주님을 위하여 지금까지 한 것이 무엇이냐?' 라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회개하였습니다. 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칠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남겨진 십자가의 고통을 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소유하고 있던 영토를 개방하였습니다. 당시 피난민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마음대로 영지를 경작케 하였더니 오백여 가정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예배당을 짓고 함께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입의 십분의 일을 드려 선교사를 보내자고 제안하였더니 선교사 50명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진젤도르프는 경건 운동을 펼쳤으며 훗날 모라비안 교파의 모태가 되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음 안에서 사는 삶으로 증언한 것입니다.

본문 20절입니다.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전히 육체 가운데 살면서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믿음 안에서 살아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기 ‘믿음 안에서’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즉 모든 것을 믿음 안에서 생각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 안에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믿음 안에 산다는 것은 주인이 바뀌는 것이며, 주체가 달라진 것을 의미합니다. 자존심 상하는 말에 감정이 일어난다면 아직도 내가 죽지 않았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주장과 뜻이 좌절되었다고 기분이 나쁘다면 아직도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볼 때마다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루터는 매일 영적 세례를 통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고, 율법으로 죽고 그리스도로 살고. 날마다 새롭게 세례를 받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은혜 안에서 사는 것이라

기독교 작가 크로닌 (A. J. Cronin) 박사가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연민으로 광산촌에서 의사로 봉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신앙이 좋은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불평 없이 웃으며 정성껏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하루는 크로닌 박사가 보기에 안스러워 간호사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지닌 가치만큼 여기서 대우를 못 받고 있어요. 그걸 알고 있나요?” 그러자 간호사가 대답했습니다. “박사님, 제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하나님이 알고 계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합니까? 그분이 알고 계시고 그분이 함께하신다면 된 것이지요. 박사님, 저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 분의 은혜로 살아 있고 그분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본문 21절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믿는 은혜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주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주를 찬양하고 주께 경배드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며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있기에 주의 몸된 교회에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난 것, 의로운 것,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것만 해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적은 은혜라도 이미 주신 하나님 은혜를 알고 깨달으면 더 많은 은혜로 채워집니다. 그러므로 받을 은혜를 구할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를 알고 깨닫는 것이 우선입니다. 받을 은혜 때문에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를 깨달을 때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미국인 부부가 독일에서 수난극을 관람했습니다. 공연 후 예수역을 한 배우를 만나려 무대 뒤로 갔다가 배우가 극중에서 지고 갔던 십자가를 발견했습니다. 부인에게 카메라를 주며 남편이 말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내 모습을 찍어 줘요.” 그는 등을 구부리고 십자가를 지려고 했으나 할 수 없었습니다. 배우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속이 빈 십자가인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무겁죠?” 그러자 배우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무거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나는 예수 역을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자신의 힘으로 그리스도를 닮으려 하며,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려고 힘쓰면서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지 않게 하니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들어와 사시는 삶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삶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을 날마다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믿음 안에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사는 자가 되어 언제나 그리스도의 뒤를 좇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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