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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사밧의 기도1 (대하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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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의 기도1 (대하 20:10-12)
  

들어가는 말

3월 18일부터 4월 7일까지 봄철 다니엘 세이레 기도회가 21일 동안 진행됩니다.
지혜롭고 부지런한 농부는 한해 농사에 쓸 물을 저수지에 담아놓습니다.
그러다가 논갈이, 모내기, 물대기 등을 할 때 저수지의 물을 사용합니다.
전도사 시절 어느 나이가 많은 전도사님이 저에게 이런 권면을 했습니다.
“전도사님, 앞으로 목회할 때 일이 있든 없든 월 초에 3일씩 금식하십시오. 그러면 목회가 잘 될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인 저축이라고 합니다.”
봄철 다니엘 세이레 기도회는 우리 교우들의 영적인 통장에 한 해 동안 쓸 영적인 힘을 모으는 기회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통장을 마이너스로 만들기 말고 넉넉하게 채워놓으십시오.
그러면 이런 저런 일을 당할 때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여호사밧의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호사밧이 맞은 상황은 심각하고도 위급합니다.
맞서 싸우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기도해야 되지요!
그러나 모든 사람이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를 안 해요!
봄철 다니엘 세이레 기도회를 앞두고 여호사밧의 기도를 공부함으로써 기도에 대한 권면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여호사밧은 어떻게 기도했는가?’라는 ‘기도의 자세’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여호사밧은 누구입니까?

여호사밧은 다윗의 혈통을 계승한 아사 왕의 아들로, 남 유다 왕국의 네 번째 왕이었습니다.
그는 기원전 873년부터 849년까지 거의 25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선한 왕이었던 그의 이름은 ‘주께서 심판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하나님의 법도를 신실하게 지키는 것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역대하 17:3-4절은 그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역대하17:6절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왕이었습니다.

2. 여호사밧이 맞은 상황은?

그러던 그가 큰 위기를 맞습니다.
역대하 18장에서 남유다 왕국의 왕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 왕국의 왕 아합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합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바알과 관계된 왕으로서 그 중심에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핵심내용은 이렇습니다.
북이스라엘 왕 아합은 남 유다의 왕 여호사밧과 동맹을 맺어 공동의 적인 아람에게 맞서기를 원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여호사밧은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에 앞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아합과 동맹을 맺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아합과 여호사밧의 동맹은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엄청난 규모의 군대가 여호사밧과 싸우기 위해 집결했습니다.
최소한 3개국의 군대가 연합하여 남 유다를 향해 진격해오고 있습니다.
역대하 20:1절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여호사밧의 군대는 적들의 가공할 군사력에 비해 문자 그대로 ‘새발의 피’ 정도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여호사밧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되지도 않을 싸움을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할까요?
도망쳐야할까요?
아니면 될 대로 되라고 운명에 맡겨야 할까요?
그 순간 그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왕의 기도가 이렇게 절절할 수가 없습니다.

3. 여호사밧은 어떤 자세로 기도를 드렸습니까?

역대하 20장에 나타난 몇 구절을 중심으로 여호사밧의 기도하는 자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즉각적으로 반사적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3절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여호사밧이 외면적으로는 원수들과 맞닥뜨리고 내면적으로는 두려움에 포위된 상황에서 여호와께로 낯을 향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생의 중대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무엇을 주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에 직면하면 대부분이 하나님을 바라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경험하는 일입니다. 
꼭 기도해야만 할 때 교회를 떠나고, 기도의 자리를 떠나고, 하나님을 떠나는 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가장 하나님께 매어달려야 할 때인데도 말입니다.
이유를 물어보면, 체면 때문에, 자존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의 시선은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그는 대대적인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직면한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금식기도를 하십시오.
이상하게 일이 안 풀린다고 생각되면 금식기도를 하십시오.
이번 다니엘 세이레 기도회 때 오전 금식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금식이란 우리가 영향력 있는 사람을 방문할 때 잘 봐 달라고 선물을 들고 가는 것 같이 하나님께 들고 가는 선물이 아닙니다.

금식은 자발적인 ‘박탈 행위’ 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금식은 우리의 자아를 죽이고,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실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의존의식을 심화시키는 기도자의 행위입니다.
금식은 영적인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더 깊이 몰입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또한 여호사밧은 소식을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반사적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적들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하는 것 사이에 잠시의 지체함도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아이들을 키울 때 경험했잖아요?
아이들은 문제가 생기면 즉각적으로, 반사적으로 엄마를 부릅니다.
“엄마!”
한 순간의 지체함도 없습니다.

아이들처럼, 우리도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반사적으로 하나님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평소에 기도를 훈련하여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을 때에 가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을 우리의 간절한 열망으로 삼아야 함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평상시에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훈련하여 위기 상황을 맞을 때 즉각적으로, 반사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길 축원합니다.

2) 기도할 수 있는 특권과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확실한 약속의 증거인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5절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뜰 앞에서........”
여호사밧은 기도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앞에 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 앞에 섰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기도하려면, 어떤 특별한 곳으로 가야합니까?
그런 게 아니지요.
‘여호와의 전 앞에 섰다.’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려면 솔로몬의 성전봉헌기도문을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역대하 6:18-21절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주의 종이 주 앞에서 부르짖는 것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요약하면,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성전이라는 공간에 하나님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성전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 가운데 거하신다는 표시일 뿐입니다.
또한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도할 수 있는 특권과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확실한 약속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그래서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전 앞에 서서 기도한 것입니다.
역대하 20:9절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서 서서 이 환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호사밧은 기도할 수 있는 특권과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약속의 확실한 증거인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있어서 기도할 수 있는 특권과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약속의 확실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참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지요.
요14:14절을 보십시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한1서 5:14절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기도할 수 있는 특권과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약속의 확실한 증거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가 능력 있는 것은, 기도가 우렁차다거나, 논리적이라거나, 유려하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입니다. 아멘.

3) 하나님의 성품을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여호사밧이 어려울 때 찾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역대하20:6절을 봅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스스로 있는 자, 전능자, 공급하는 분, 치료하는 여호와, 만군의 여호와 등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자신을 소개하실 때 그들이 처한 상황에 맞게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불가능한 것들을 행할 수 있는 존재로 알리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시다.’

그 이름은 아브람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식을 낳게 된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람과 아내 사라는 이미 늙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둘 사이에 아이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아브람과 사라는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엘 샤다이이다!(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그런데 지금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출애굽기 3장에 불이 붙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계시하셨던 이름입니다.떨기나무는 불이 붙은 상태였지만 타서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불은 떨기나무가 타서 존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은 스스로 존재했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존재한다.’라는 동사의 파생어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이름에는 그 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소개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여호와’라는 이름은 ‘약속’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지금 여호사밧은 약속을 기억하면서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역대하20:7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치료가 필요합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이름 중에서 어떤 이름을 부르며 호소하고 있습니까?
문제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성품을 붙잡고 늘어지십시오.
여러분은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붙잡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호사밧의 기도의 자세는,

1) 즉각적으로 반사적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2) 기도할 수 있는 특권과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확실한 약속의 증거인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3) 하나님의 성품을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그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번 봄철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에 여호사밧과 같은 기도의 자세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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