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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빚진 자의 땅끝을 향한 소원 (롬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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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자의 땅끝을 향한 소원 (롬 1:9-15)설교:

우리나라에 “한국 유리”라는 유명한 회사가 있습니다. 

그 회사의 설립자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최태섭 회장이라는 분입니다. 그는 평양의 오산학교를 나온 분인데 국제기아대책기구를 세운 분이고 수많은 대학을 세우는데 기여하시고 군 선교에 심혈을 기울이신 분입니다. 

이분이 해방 후 은행에서 사업자금을 대출 받아 사업을 하던 중 6.25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서 1.4후퇴 때 빚을 갚겠다고 은행을 찾아 갔습니다. 은행 직원이 “이런 전쟁 통에 무슨 빚을 갚겠다는 것이냐 피난이나 가라”고 해도 굳이 갚겠다고 해서 빚을 청산하고 피난을 갔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사업을 재개하려고 다시 은행을 찾아갔답니다. 아무런 담보도 없이 대출을 신청하니 거절당하고 나오는데 그 은행의 은행장이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그 은행장이 바로 1.4후퇴 때 대출 빚을 받았던 그 직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신용 하나로 어마어마한 대출을 받아 사업을 재개했고 크게 성공하여 ‘한국유리’라는 대기업을 이루었고 엄청난 자선 사업을 하셨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미국 개척시대, 대단한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나 가난하기 짝이 없는 ‘스트로사’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궁리 끝에 당대의 큰 부자였던 ‘바턴’이라는 분을 찾아가 자신의 포부를 설명하고는 “나는 아무것도 없으나 꿈과 용기와 젊음이 있습니다. 내게 2,000달러만 꾸어주세요. 그리하면 꼭 성공하여 갚겠습니다.”라며 요청을 했습니다. 

당시 2천 달러는 오늘에 2천만 원도 넘는 돈이라 할 것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스트로사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바턴’씨는 스트로사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들은 뒤에 선뜻 2천 달러를 꾸어주었습니다. 그 은혜로 얼마 후에 스트로사는 성공했고 바턴 씨의 돈도 갚았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어느 날, 자기를 도와주었던 바턴 사장의 회사가 파산하게 되었다는 뉴스를 듣습니다. 그러자 스트로사는 바턴 씨에게 찾아가 그가 안고 있었던 빚 75,000달러를 선뜻 갚아드렸습니다. 

“이보게 자네는 벌써 내 돈을 다 갚았는데 이것이 웬일인가?” 

그러자 그가 대답합니다. 

“내가 진 빚 2천불은 벌써 갚았으나 내가 진 은혜의 빚은 한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은혜를 잊지 않은 ‘스트로사’ 그는 후에도 자선사업을 많이 하고 넘치는 복을 누렸답니다. 그렇습니다. 재물로 진 빚은 이자를 붙여 갚을 수 있으나 사랑의 빚, 은혜의 빚, 은덕은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빚 진 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엄청난 빚을 지고 살아왔습니다. 부모에게 엄청난 빚을 졌고 스승들에게 엄청난 빚을 졌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잊지 마세요. 

그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하면 그것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감사가 없고 삶에 기쁨이 없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사람이 삶을 행복하게 살고 은혜를 은혜로 아는 사람이 인생을 낭비 없이 보람 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빚진 자 의식”이라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의식이 있나요? 


인생 3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유아독존(唯我獨尊) 형입니다. 
나 홀로 형입니다. 남에게 신세도 안지고 도움도 안주는 형,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없이 인생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받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은혜 없이 살아온 사람이 누굽니까? 부모의 은혜가 있었기에 태어났고 주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모르기에 나 홀로 살아가니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둘째는 채권자(債權者) 형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는 수고한 만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자기는 손해보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늘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일한 만큼 받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늘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 또한 불행한 사람입니다. 받은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채무자(債務者) 형입니다. 
이 사람은 늘 빚을 지고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랑의 빚을 한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늘 고맙게 여기며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부모님의 은혜, 친구들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어찌하면 갚을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늘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류에 속해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은혜는 빚입니다.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노예입니다. 빚진 자는 채권자에게 노예처럼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에 빚진 자는 늘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자유인입니다. 이 빚은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정도면 갚았다고 생각하면 그때 해방이 아니라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봉독한 말씀에서 빚진 자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빚은 진 사람입니다. 

그는 핍박자였고 살인자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박살내는 일에 가담했던 자였고 스테반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던 사람입니다. 예수쟁이라면 이를 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독기를 품고 예수쟁이들을 잡으러 다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를 예수님은 다메섹 가는 길에서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그를 품어줍니다. 그 사건이후 그는 예수의 사랑에 포로가 됩니다. 그 사건 이후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뀝니다. 핍박자였던 그가 복음의 사도가 됩니다. 독기를 품었던 그가 사랑을 품게 됩니다. 무엇 때문인가요?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고백한 말을 보세요. 

롬5:8절을 보세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죄인으로 있을 때/ 전혀 자격이 없을 때/ 사랑 받을 만한 존재가 못되었을 때/ 그때 내 죄를 대신하여 죽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랑에 빚을 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이런 빚이 있음을 아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 주신 은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 은혜, 하나님이 나를 불러 몸된 교회에 일꾼 삼아주신 은혜,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합니까? 그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합니까?   

어느 교회에 자식이 너무도 속을 썩이는 문제로 새벽마다 나와서 울면서 “자식을 고쳐주옵서서” 기도하는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매일 울기에 목사님이 그를 불러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독자인 아들이 고 3인데 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아들이 얼마나 못된 짓을 하는지, 너무도 속이 상하여 죽겠다는 것입니다. 들어보니 이해할만하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권사님 남편이 그 교회 장로인데 그 장로님은 전혀 그런 표정이 없이 늘 싱글벙글하며 은혜가 넘치는 얼굴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어째서 그렇게 늘 싱글 벙글 이냐고 물으니 “목사님 내가 그래서 더 미치겠어요” 하다랍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그 남편 장로님을 만나서 물어보았답니다. 
“자식이 그토록 속을 썩이는데 어째서 그리 평안하십니까?” 

그러자 그 장로님 하는 말 “목사님, 사실은 나는 그 아들보다 더했거든요. 목사님께 차마 과거를 다 말 못하나 내가 얼마나 방탕하게 살았는지 한마디로 말하면 결혼을 했는데도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을 정도로 방탕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그런 내가 예수님 믿고 결혼 10년 만에 하나님이 고쳐주어 저 늦둥이를 낳았답니다. 그러니 저 아들놈이 얼마나 예쁩니까?”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말을 하더랍니다. 
“그런데 그런 저를 제 부친께서는 그런 나에게 /나는 너를 믿는다./ 너는 큰 사람이 될 거다/ 하셨습니다.”
그 아버지의 은혜로 자기가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장로님은 아버지에게 은혜의 빚을 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의 빚을 못난 아들에게 갚는 것입니다. 

“이 아들은 나보다 훨씬 낫다” 이게 은혜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속썩이던 아들이 나중에 철이 들어 아버지를 이어 그 교회 장로가 되었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빚진 자입니다. 
전혀 구원받을만한 가능성이 없었던 사람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구원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던 우리입니다. 오히려 교회를 욕하고 예수쟁이들을 핍박하던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엄청난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래서 나에게까지 복음이 전달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어쩌다 운이 좋아서 믿은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을 잘해서 믿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믿음의 선진들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 교회 믿음의 동지들의 은혜,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적 사랑의 결과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놀라운 은혜의 빚을 우리는 누구에게 갚을 것입니까? 

저는 선교는 빚 갚는 행위라고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중국의 HD학교를 세워 하나님의 사람들로 길러 내는 것은 일종의 빚 갚기 사랑입니다. 

저 인도에 양재일 선교사도 그렇고, 또 저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도금수 선교사를 보내 그 아프리카 어린 아이들 돕는 것도 빚 갚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주님의 은혜이고 그분의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달 되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수고했겠고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그들을 뒷바라지 했겠습니까? 

저는 일년 한차례 용인 순교자 기념관과 마포 합정동에 선교사 묘지에 가봅니다. 합정동에만 선교사 묘지가 111기가 모셔져 있습니다. 

그들이 왜 이 땅에서 죽어야 했나요? 왜 고국을 버려두고 미개한 조선 땅에 와서 목숨을 바쳤나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희생적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으니 우리도 그 빚을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당신이 하나님께 진 그 엄청난 빚을 로마 사람들에게 갚으려 합니다. 그는 이때까지 로마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조국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대 제국이었고 그 수도가 로마였습니다. 그러기에 로마는 그 당시 세계의 수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있어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의 가슴이 얼마나 설레고 기뻐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주신 말씀을 보면 그가 어떻게 그 빚을 갚으려 했는가를 보여줍니다.
  

1. 마음에 늘 거룩한 소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를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땅 끝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로마에 가야겠다는 소원을 품었습니다. 

본문 15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또 사도행전 19:21절에“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그의 마음속에는 늘 로마가 있었습니다. 왜냐면 그곳이 그의 땅 끝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땅 끝은 어딥니까? 그곳을 소원으로 품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빌2: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은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해 우리에게 소원을 심어주시고 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거룩한 소원이 생기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 보시기를 바랍니다.   

가족이 믿지 않습니까? 
그를 구원시키는 것을 소원으로 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됩니다. 그 소원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은 그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일하시는 분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그 소원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합니까? 그러면 품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2.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10절을 보세요.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늘 기도했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셔야만 갈 수 있기에 늘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가고 싶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거룩한 소원이 여러분 가슴속에 있거든 하나님 뜻 안에서 좋은 길이 생기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치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우리가 예상 했던 방법보다 더 좋은 것으로 길을 열어주십니다.   

내 형편과 내 방법으로는 어렵습니다.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기대를 뛰어넘어 응답해 주십니다. 

예레미야33:2~3절을 보세요.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믿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으면 일을 하시고 응답하십니다.   

제가 내일 아프리카를 갑니다. 

도금수선교사를 2009년 4월에 파송하면서 내가 1년 지나면 꼭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못 갔습니다. 2년이 지나도록 못 갔습니다. 갈 형편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돈을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늘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작년 말에 교단 총회선교회에서 제게 그곳에 가서 아프리카 선교지부를 결성하고 오라는 특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이라 믿고 떠납니다.   

케냐, 짐바브웨, 보츠와나, 그리고 태국까지 4개국에 들립니다. 

각 선교사마다 선교보고를 받고 짐바브웨서 남아프리카 지부를 결성하고 선교사 수련회를 인도합니다. 귀국 길에 태국 치앙마이에 들려 화동 2기생 “옌야방”이 선교 훈련을 받는 학교를 들려서 특강을 하고 오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빚을 갚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있으니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3. 가고자하는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11~12절을 보세요.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사도바울이 그토록 로마를 가고자 했던 것은 로마를 여행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놀러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로마 교회는 바울사도가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그는 한 번도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가르쳐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가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복음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살펴보면 복음의 핵심이 다 담겨 있는 것은 그들이 복음의 핵심을 알기를 원해서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이 거기를 가길 원한 이유가 뭡니까? 목적이 뭡니까? 

1)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신령한 은사를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고 
2)그것으로 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 3)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가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이 이루어주지 않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은 그를 로마로 가게하시고 그가 그곳에 가서 마음껏 복음을 전하도록 일하셨습니다.   

사도행전23:11절을 보세요.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무슨 말이냐면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다가 붙들려 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는 감옥에 갇혀 두려워하고 있는데 주께서 그날 밤에 나타나셔서 위로하고 약속합니다. 

“담대하라, 네가 로마에서도 나의 일을 증언해야 한다.” 할렐루야! 
결국 그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 군대의 백부장의 호위를 받으며 배를 타고 로마로 갑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놀랍고 우리가 예상했던 방법보다 더 뛰어난 방법으로 이루어 내십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땅 끝을 향한 소원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에게도 땅 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땅 끝을 향한 소원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놀라운 은혜의 빚을 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갚을 생각이 없이 사는 것입니다. 

정말 천국이 있습니까? 
정말 구원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예수 믿어도 됩니까? 
그렇다면 받은 은혜를 이렇게 혼자 누려도 됩니까?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라 하십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은혜의 빚을 갚아야 합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로마는 어디며 누구입니까?
(김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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