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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는 대로 거둔다! (갈 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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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는 대로 거둔다! (갈 6:7-9)


심는 대로 거둔다! - 하나님의 속성(屬性)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긍정적 사고방식' 혹은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면 인간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아주 큰 도전을 줍니다. 

"사람이 무엇이든 심은 대로 거둔다."라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인간의 노력으로 된다는 것, 혹은 하나님의 은혜를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제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인들에게 구원의 문제가 아닌 크리스천의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구원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 그리고 구원받을 자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아니 살아야 하는 삶의 원리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명확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잘못 심은 죄의 대가를 하나님이 대신 치르셨다는 것. 이것이 은혜이지만, 우리가 행한 죄에 대한 책임을 지셨다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구원받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누리는 것들이 우리가 심은 것들에 대한 결과라는 것이지요. 지금 여러분이 살아가는 태도, 신앙, 인간관계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지요.

언젠가 한 목회자가 추천서를 의뢰했습니다.
그 목회자는 저에게 늘 솔직한 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떻게 넘어졌고, 어떻게 실수했는지.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저는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참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에게 추천서를 써 달라고 했을 때, 추천해 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솔직해도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그 사람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고, 그 사람과 만나는 인간관계에 대하여 긍정적인 면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쉽게 용서한다고 합니다. 
용서해야 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너무나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늘 용서받아야 할 일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사람을 쓰시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을 참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늘 패배자가 되어 용서받을 수도 있고, 우리가 늘 승리의 축제 속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쓰임 받느냐는 것은 바로 우리의 태도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가장 큰 영적인 축제에서 가장 세상적인 단어를 사용해 보려고 합니다. 
"성공입니다."
우리가 이루려는 세속적인 성공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우리 삶의 작은 태도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성공을 따라가는 삶은 비참할 수 있지만, 성공하지 않을 수 없는 삶의 태도를 보이고 사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고 성공하려고 하므로 편법을 찾고, 하나님의 법을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성공의 원리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지만, 편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정말 가슴 아프게 사랑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기를 원하시지만, 기꺼이 쓰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참 고민하며 다듬어가야 쓰실 수 있는 사람, 시도 때도 없이 가지를 치고 다듬어야 쓰실 수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좋은 것을 심는 것에 대한 기대감과 우리가 잘못 심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하심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심는 대로 거둔다는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죠.

오늘 이 말씀을 시작하면서 여러분에게는 어떤 기대감이 있으신가요?
태도를 바꾸는 것에 대한 비관적 삶의 경험이, 기대로 바뀔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태도를 바꾼다는 것은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하지만, 위대한 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말합니다. 
"나는 힘이 센 강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닙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나의 성공 비결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위대한 일을 이루어 놓았던 사람들의 결과보다는 그들이 살았던 삶의 태도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입니다.

짚고 넘어가야할 태도!
태도가 왜 중요한지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웨인 코데이로가 쓴 [태도를 바꾸면 성공이 보인다]라는 책에 나오는 에디슨의 일화입니다.
토머스 앨바 에디슨은 백열등, 영화 카메라, 차 시동을 거는 전지 등을 발명했다. 인생의 초로기(노년기에 접어드는 초기)에 그는 헛간 같은 허름한 건물에서 일했다. 발명품을 완성하기 위해 아들과 함께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전지의 충전 보유력을 늘리려 하던 중 그만 화학약품들이 잘못 섞이는 바람에 작업실이 불길에 휩싸였다. 불길은 재빨리 오래된 목조 건물 전체로 번졌다. 작은 실험 하나가 공중으로 치솟는 거대한 불길로 번지고 만 것이다. 
에디슨의 아들은 재빨리 그 건물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작업복으로 뜨거운 열기를 막아 내면서 아버지가 아직도 헛간에 남아 발명품을 건지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가 다른 출구로 나왔기만을 바라며 미친 듯이 헛간 주위를 돌았다. 코너를 막 돌았을 때 다행히도 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뛰어갔다. 에디슨은 백발이 재로 거뭇거뭇해진 채, 검댕으로 얼룩진 작업복에 손을 깊숙이 파묻고, 불길이 건물을 삼키는 것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 안에 계실까 봐 적정했어요."
에디슨은 불길에서 눈도 떼지 않고 황급히 말했다. 
"어서 가서 엄마를 불러와라!"
"예? 왜요 아버지?"
"네 어머니는 작은 마을에서 자라 이런 큰불을 본 적이 없어!"
거센 불길이 다 스러지고 재와 뒤틀어진 건물 뼈대만 남았을 때, 에디슨이 말했다.
"혹시 트랙터를 모는 사람을 알고 있니?"
"예, 있어요. 그런데 왜요?"
"불이 꺼졌으니 이제 다시 지어야지, 지금이 다시 지을 때란다."

에디슨에 대한 수없이 많은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런데 결국 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 에디슨이 대처했던 태도라는 것.
우리의 삶에서 어떤 성공을 꿈꾸든, 중요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태도일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실력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태도는 앞으로 우리의 삶을 무한대로 바꿀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올바른 신앙을 가져야 할까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의 10%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로 구성되며, 나머지 90%는 그 일에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로 구성된다."

1989년 "영광의 깃발, Glory"라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남북전쟁에서 전시용으로 만들었던 매사추세츠 54연대는 흑인들로 구성된 미국 최초의 흑인 부대였습니다. 군대를 만들고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지만, 실제 나가서 싸울 수 있는 군대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 대대를 창설하면서 책임을 졌던 로버트 쇼 대령과 그 군대에 지원한 흑인들만이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북군은 남군에 밀려 어려움에 부닥쳐 있었습니다. 
1863년 7월 18일 이들 54연대는 자원하여 난공불락이라 일컬어지는 남군의 바그너 요새(Ft. Wagner) 공격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54연대는 바그너 요새 전투에서 절반 이상이 전사하며, 요새 탈환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용맹성은 널리 알려져 의회는 흑인 부대의 결성을 정식으로 인가했으며, 18만 명 이상이 지원을 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이들 흑인이 전세를 바꿔 놓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명확하게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태도로, 어떻게 치열하게 살아가느냐가 미래의 삶을 바꿔놓게 될 것입니다. 8절을 보세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육체를 위하여? 

지금 여러분의 삶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리스트를 한번 작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여러분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인지, 분명한 것은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은 썩어질 것으로 거두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건물에 투자하며 건물을 얻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명에 투자하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사회적인 status or position을 위해 살아간다면 노력 여하에 따라서,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것인데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영속하는 기업도, 영속하는 교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세상적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놀랍지 않습니까?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던 장소는 사라지고 말았을지 모르지만, 그 정신이 살아 수백 년이 흘러도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역사는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잊지 말아야할 태도

결론적으로 9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태도를 바꿔야 하는 당위성과 힘을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문제가 무엇인가요?
우리 중의 선을 행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문제는 선을 행하다 낙심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실망합니다. 실망은 우리의 인생을 포기로 인도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뭐라고 약속합니까?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여기에서 "때"가 무엇인가요?
신앙은 때를 아는 것이고, 그때를 알면 믿음과 확신이 찾아옵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맺을 것이고, 숨겨진 것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집회를 인도하며 만나 교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식사 중에 따뜻한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찻잎을 넣고 조금 기다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물속에서 활짝 핀 꽃을 본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종종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
그런데 어느 날 바뀌어 있는 우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한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변한 모습 말입니다. 
메마른 우리의 삶에 뜨거운 성령의 기운이 닿으면 변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숨겨져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삶을 아주 긍정적으로 봅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미래에 대하여 어떤 믿음과 태도를 심고 있습니까?
위대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83세에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의 작품 중 어느 것이 가장 훌륭한 걸작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까?"
그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바로 다음에 만들 작품입니다!"
미국 사람들에게 참 부러운 것이 있습니다. 종종 아주 멋진 말을 하는 것이죠.
그의 태도가 참 밝고 희망적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의의 삶이 멋지게 마무리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면서 한국인 중에서도 멋진 인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134cm의 거인 김해영 씨입니다. 그녀는 척추장애인입니다. 14살에는 식모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세상은 그녀에게 좌절을 권했습니다. 아빠는 죽고, 엄마는 정신질환, 불편한 몸에 돌봐야 할 동생이 4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절망의 순간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래, 오늘까지만 살고 죽자!" 

그녀의 삶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장애인기능 금메달, 14년 아프리카 봉사, 미 컬럼비아대 석사
그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나의 작은 키를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작은 키가 내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못나고 작아서 더 쉽게 마음 문을 열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제 키와 비슷한 나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자신을 내려다보거나 위협하지 않으니까요."

어느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을 움직이는 초인적인 힘은 무엇입니까?"
그녀의 대답입니다. "엄마에게 매 맞고 자란 기억, 아버지의 죽음이 내겐 다이아몬드입니다. 행복한 것은 그냥 지나가지만, 아픔과 상처는 지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반짝반짝 빛을 냅니다.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그 상처와 아픔의 힘으로 내가 계속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곧은 등, 긴 다리를 갖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놓치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견뎌낼 만한 고통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 즉 태도는 배의 돛과 같은 것입니다. 돛의 방향에 따라 여정의 방향이 정해집니다. 항해하는 중에 여전히 폭풍을 만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폭풍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묻는 것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살 것이냐는 것입니다.

종종 신기한 일들을 접합니다. 

바다낚시를 하고 배에서 회를 떠서 먹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회를 떴을 때 짠 고기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못 살았어도 회를 뜰 정도면 족히 몇 년을 됐을 텐데, 그렇게 짠 바닷속에서 어떻게 짠물이 들지 않았을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바닷속에서도 짠물이 들지 않도록 말입니다. 
종종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상을 탓합니닷.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 어떤 세상에서도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사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린 문제라고 말입니다. (김병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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