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탄의 두 번째 시험 (마 4:1-11)

첨부 1


사탄의 두 번째 시험 (마 4:1-11) 


큰 아이가 초등학교 때 신문을 돌린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이를 따라 함께 나가서 신문을 돌렸습니다. 우리 아이가 맡은 구역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짜리 아파트 구역이었습니다.

저는 신문을 돌리면서 문에 교패가 달려있는 집이 몇 집이나 되는가를 세었습니다. 5층 짜리 아파트이기 때문에 한 층에 두 집씩 모두 열 집씩이었는데 그때 제가 헤아려 본 바에 의하면 평균 5-6개 정도의 교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서울 강남은 기독교 인구 비율이 50-60%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잘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보니 그 말이 얼추 맞았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게 23년 전쯤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천 만 성도를 이야기했었습니다.

지금은 650만 성도 쯤 될 것이라고 짐작들 하고 있습니다. 대략 20년 전쯤 보다 30% 정도 감소한 것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 인구 비율의 감소가 탄력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지금 비탈길에 선 교회와 같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된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데도, 괜찮을꺼야, 괜한 소리야, 그런 부정적인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 없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마 자기 몸무게가 갑자기 한 30%쯤 빠졌다면 그렇게 안일한 소리는 하지 않을겁니다. 당장 병원에 좇아가서 종합검진을 받을 겁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아내려고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우리 한국 교회가 본문에 나오는 사탄의 두 번 째 시험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천사가 와서 발을 붙들어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능력도 있으셨고, 성전에서 뛰어내리면 얼마든지 천사들이 와서 발을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수도 있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정말 천사들이 와서 예수님을 발을 붙들면 사탄 곤란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름 떼처럼 좇아 다니게 될 겁니다. 예수님은 높임을 받으시고, 영광을 얻게 되실 겁니다. 저는 그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기서 사탄이 노리고 있는 함정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십자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탄은 어떻게해서든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을 막고 싶었습니다. 사탄도 물론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배가 아팠지만 십자가만 막을 수 있다면 그깟 배 아픈 것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사탄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이 영광을 얻고 인기를 얻으셨다고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사탄은 정확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헛된 영광에 눈 어두워 그것에 욕심을 내는 사람은 절대로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사탄은 바로 그것을 노린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인기와 영광에 눈 어둡게 하여 예수님이 지셔야 할 십자가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탄의 전략이고 두 번 째 시험이 노리는 함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시험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헛된 영광에 속지 않으시고 묵묵히 자신의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승리하셨습니다. 결국 우리가 다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71년도에 신학교를 들어갔습니다. 20명이 정원이었는데 11명 밖에 지원하지 않아 미달이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는 그 해 저희 교회에서 장로 선거가 있었습니다. 어느 집사님 한 분이 장로에 피택되었습니다. 그 분은 자기 장로 못한다고 결국 다른 교회로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요즘 신학교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고시 준비하듯 준비하지 않으면 들어도 못갑니다. 평균 3년에서 4년 정도는 재수를 해야만 들어간다고 합니다. 요즘 교회마다 장로 집사 권사 선거는 세상 못지 않게 치열합니다.

왜 71년도에는 미달이었는데, 지금은 3수 4수를 해서라도 신학교엘 가려고 하는 것일까요? 왜 71년도에는 서로 장로 안 한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서로 하고 싶어 하게 된 것일까요? 당시 교회는 작고 가난하고 힘들었었습니다. 그런 교회의 목사와 장로가 된다는 것은 작지만 나름대로의 십자가를 각오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부흥하고 커지면서, 물론 아직도 작고 힘든 교회들이 많이 있지만 제법 큰 교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제법 큰 교회의 목사와 장로가 된다는 것은 제법 매력적인 일입니다. 물론 세상적으로 말입니다.

작은 미자립 교회도 어떻게 보면 세상보다는 리스크가 적습니다. 교회처럼 미자립 교회에 대한 최저생계보장이 잘 되어 있는 곳이 아마 없을 겁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엔 아직 그만한 보장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것을 다 따져 보아도 전보다는 교회의 목사 장로가 되는 것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요즘 신학교가 과열되고, 교회마다 선거가 과열되는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힘이 커지니 노회의 힘이 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노회의 힘이 커지니 총회의 힘이 커지고, 교단 총회의 힘이 커지니 교단들의 연합인 한기총 같은 조직이 큰 권력 집단이 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장로회, 여전도회 연합회, 남선교회 연합회와 같은 연합회 활동이 활발해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조직 본연의 목적인 선교도 나름 열심히 하겠지만 제 눈에 그렇게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성전에서 뛰어내려 천사들이 발을 붙드는 그런 영광과 호사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큰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은 교회 안에서 그 영광과 호사를 누리려 하고 작은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은 노회나 총회에서 그런 영광과 호사를 누리려고 합니다. 교회 거의 다 내 팽겨치고 노회와 총회만 좇아다니며 정치적인 야합과 술수를 마다하지 않고 노회나 총회 그리고 연합회의 권력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립니다. 그러는 사이 교회는 병들어가고 힘을 잃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은퇴한 후에도 그 권력을 내려놓기 싫어서, 원로, 공로, 명예, 은퇴라는 타이틀을 만들어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세습까지 합니다.

얼마 전 저는 국민일보 노조를 방문하였습니다. 요즘 국민일보 노조들이 파업 중입니다. 석 달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저는 국민일보 보지 않습니다. 저도 국민일보 창간할 때 헌금을 한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국민일보를 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기사 내용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었지만, 제가 그 신문을 보지 않는 이유는 신문의 사유화 때문이었습니다. 교인들이 열심히 헌금을 하여 신문사를 만들었더니 그것을 은퇴하신 목사님의 가족들과 목사님 편의 사람들이 꿰차고 앉았습니다. 큰 아들, 둘째 아들, 사돈이 돌아가며 사장을 합니다. 둘째 아들이 미국시민권자라 대표가 안 된다고 하니 다시 이사회를 열어 회장인가 이사장인가 하는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교회가 세운 대학교의 총장은 목사님 사모님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입니다. 비단 국민일보와 순복음교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우리 한국 교회의 이런 현상이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몰락을 가져오게 한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높은 뜻 교회는 장로, 권사의 임기가 6년입니다. 그리고 목사와 전도사 그리고 임직자의 정년도 65세입니다. 원로제도도 없습니다. 전임목사 이상은 6년 시무 후 교인들의 신임투표를 받아야만 합니다.

작년 말로 처음으로 시무 6년이 지나 시무를 중단한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나왔습니다. 임기가 끝난 장로님과 권사님들을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이 좀 있었습니다. 결론은 그냥 장로와 권사로 부르기만 하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직분 앞에서 쓸데 없는(?)것 붙이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시무하시는 장로님과 권사님은 시무장로와 시무권사로 그 밖의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은 그냥 장로와 권사로만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결정들을 도출해 내는 우리 교회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도 이제 은퇴가 4년 정도 남았습니다. 저도 은퇴하면 ‘그냥 목사’하렵니다. 목사라는 이름 앞에 아무 것도 붙이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름만 붙이지 않고 어떤 힘과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모든 권력과 영향력 행사를 후임에게 넘겨주겠습니다. 교회와 관계해서 어떤 자리나 이권도 챙기지 않겠습니다. 저 뿐 아니라 저의 가족과 자식들까지도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구태여 못하게 하지 않아도 제 자식들 아마 기웃 거리지 않을겁니다.

그런 마음 가지고 부족하지만 애쓰면 하나님께서 우리 자식들 구태여 아비 덕 보지 않아도 시시한 아비 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우리 하나님 덕 보며 사는 자식 되게 해 주실 줄로 저는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자식들을 저 보다 더 큰 복으로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저는 제 자식들이 그런 복을 받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청년 때 노자를 참 좋아했습니다. 노자의 사상을 흔히 무위 무불위 (無爲 無不爲)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하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님 (즉 못 하는 것이 없는)을 뜻하는 것입니다.

도를 닦는 사람은 아니지만 무불위적인 무위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입으로 말하는 사람.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
존재로 말하는 사람.

노자가 말하는 무위는 아마 세 번 째 사람의 삶과 행위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은퇴가 한 4년 정도 남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말과 행동으로 살았다면(정말 말도 많이 하고 일도 많이 벌렸습니다. 그때는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아무런 일과 행동을 하지 않아도 존재가 말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삶에서 풍기는 예수님의 냄새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노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삶이 그리스도 예수의 편지가 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위(無爲)라는 말이 저는 참 좋습니다. 쓸데없는 욕심과 야망을 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 無爲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은퇴 후에도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배 구조를 장악하고 은퇴 전 보다 더 열심히 활동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보다 더 크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삶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에도 힘은 발휘되지만, 그 보다 더 크고 무서운 힘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있을 때 발휘 된다는 것을 입증해 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구태여 천사가 발 붙들지 않아도, 높임을 받지 않아도, 영광을 받지 않아도, 이름이 더 높아지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을 때 얼마나 큰 일이 일어나는 가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가 벌써 일 년이 지났습니다. 벌써 세상적으로 보면 제법 좋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교회는 아직 직분을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조직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녀 선교회도 없습니다.

처음 높은 뜻 숭의교회가 시작되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냥 주일 낮 예배만 드리는 교회입니다. 저희 교회는 아직 주일 예배 시간에 교인들이 대표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 교인 여러분, 우리는 모두 가 다 죄인입니다. 욕심이 있는 죄인들입니다.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는 인간적으로 욕심을 부릴만한 교회가 점점 되어가고 있습니다. 영향력을 행사하고, 교회 안에서 이런 저런 권력을 작지만 행사하는 것에 대한 유혹이 앞으로 점점 더 커져갈 겁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할 겁니다. 성전에서 뛰어내리라고. 천사가 발을 붙들게 하라고. 네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라고. 이 교회 다 네꺼라고. 네 능력과 힘을 과시해 보라고. 교회를 장악하라고 유혹할 겁니다.

사랑하는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 교인 여러분, 우리 그런 유혹에 빠지지 마십시다. 우리 예수님처럼 헛된 영광에 눈 어둡지 말고, 자기를 부인하고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교회와 교인들과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교인들이 되십시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 깨끗하고 맑은 물 같은 교회를 만들어 가십시다. 건강한 교회를 함께 만들어 가십시다. 높은 뜻의 아름다운 정신과 전통을 함께 만들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