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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의 교회를 위한 기도(2) (엡 1: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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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교회를 위한 기도(2) (엡 1:15-19)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신앙의 단계를 칭의 단계, 성화 단계, 영화 단계로 나눕니다. 칭의 단계라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나의 구주가 되심을 고백하고 구원을 받은 단계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의 종의 신분에서 하나님이 자녀가 되는 신분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을 왜 칭의 단계라고 하느냐 하면 이런 신분의 변화가 내 의로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고 여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칭의’ 즉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성화의 단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나를 믿는 너희도 거룩하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가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나의 옛 습관과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습관과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한 순간에 완전하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성품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성화’ 즉 거룩해 지는 과정입니다. 

영화의 단계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분이 변하고 변화된 신분에 걸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배우고 훈련한 후에 이제는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신분의 성숙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단계는 우리들이 죽음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이른 후에 만들어집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온전한 하나님 나라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났을 것입니다. 바울이 여러 교회를 개척하면서 어느 교회에 정이 가지 않겠습니까마는 특히 에베소 교회는 더 정이 많이 가는 교회였습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간 사역을 했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열정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 중에 중심이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15절에 보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없는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멀리 감옥에 갇혀 있지만 에베소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들으며 바울은 감격했습니다. 복음의 아름다운 열매를 보며 사역의 기쁨은 느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더 거룩하고 성숙한 교회의 모습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더 닮아가는 성도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네 가지 제목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더 알게 해 주십시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하나님을 더 바르게 알아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두 번째는 마음의 눈을 밝히사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신 소망, 즉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 거하는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바르게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세 번째 기도와 네 번째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세 번째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18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여기에서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기업’이란 상속을 말합니다. 표준 새 번역에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라고 번역했습니다. 기업은 하나님께 받은 유산입니다. 분깃입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12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눠 주셨습니다. 

실지로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거친 땅이었습니다. 갈릴리 호수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땅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지해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을 세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지하수를 끌어 올려 스프링쿨러로 광야를 옥토로 만들었습니다. 

그 땅은 보기에는 거친 광야지만 물만 대면 옥토로 변하는 토질입니다. 옥토기 될 수 있는 토질과 그것을 옥토로 만들 수 있는 지하의 무궁한 물과 모든 채소와 꽃, 과일을 가장 맛이게 익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조량의 조건을 만드시고 그곳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조건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성화 과정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버려진 땅이라고 말했던 네게브 지역에서 나는 꽃과 과일, 채소는 세계에서 최고의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황무지가 가장 비옥한 곳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신 기업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나라가 그냥 우리가 원하는 대로 주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은 완성된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완성할 수 있는 모든 재료와 그것을 만들 수 있는 매뉴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직장과 기업이,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믿음 안에서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어진 삶의 여건 속에서 노력하지 않고 어느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변하여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모든 가정 문제, 자녀 문제, 부부 문제, 직장 문제, 이웃과의 문제, 교회 문제들을 어긋나고 무질서하게 만들어 놓고 하나님에 의해 어느 한 순간에 모든 것이 회복되고 더 축복된 모습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상황에서는 그렇게 만드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조건을 허락하시고 그 안에서 믿음으로 고치며 변하게 만들어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가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아는 사람만이 인내하며 그 나라를 일구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성을 하나님의 영성으로 변화시켜 가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 삶의 자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켜 나가는 이 과정이 바로 성화의 과정입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화의 과정을 잘 이기는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입니다. 즉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우리 모두가 삶의 자리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지만 믿음 안에서 잘 이겨 삶의 영역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켜 나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의 에베소 교회를 향한 마지막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큼을 알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1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40년간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이르는 과정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의 보고 내용은 달랐습니다. 10명은 모세와 백성들에게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보고합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거인의 후손인 아낙 자손인데 거기에 비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뚜기와 같은 미약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많이 경험했지만 그들의 보고 내용에는 그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의 보고와 달랐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아낙 자손이 맞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인간의 교만과 만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가나안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의 믿음은 노래했지만 현재의 문제 앞에서는 믿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은 결국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들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선교활동과 목회 활동을 통해서 익히 경험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바울은 자신이 선교활동을 하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들을 당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을 맞았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겼고 배가 세 번이나 파선되었으며 그 중에는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 빠져 파도에 밀리며 구조를 기다렸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이방인들에게 매를 맞았고 어느 곳에서는 유대인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습니다. 굶주리고 춥고 헐벗은 생활을 했습니다. 여러 차례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매순간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 어려운 과정들을 다 이기고 극복했습니다. 그것은 바울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이었습니다. 로마로 후송되는 가운데 유라굴로 풍랑을 만나 모두가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바울을 살리기 위해 풍랑을 잠재우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순간마다, 곳곳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매순간마다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로마의 기독교를 박해하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에베소 교회는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들의 교회만이 아니라 소아시아에 여러 교회들을 돌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큼을 알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물질이 많으면 교만해지고, 없으면 비굴해집니다. 권력을 가지면 휘두르고 권력 앞에서 비겁해 집니다. 누가 알아주면 쉽게 넘어가고, 알아주지 않으면 포기하거나 비난합니다. 문제는 내 안에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는 사람은 앞에 놓인 문제 앞에서 절망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그 문제를 이겨 나갑니다. 우리의 믿음이 지나간 사건들 속에서만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눈앞에 두고 있는 사건 앞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는 믿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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