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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를 향한 주님의 소원 (계 2: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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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향한 주님의 소원 (계 2:18-29)  

예수님의 이름을 10,000가지로 적어 놓은 목사가 있다. 그 이름의 다양한 표현에 놀랍기도 하지만 또 주님의 모습 또한 다양하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만해도 일곱 교회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모두 똑같지 않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이는 주님이 변신의 귀재이기 때문이 아니고 교회의 형편과 처지가 그만큼 개성이 있고 다르다는 의미이다. 교회가 어디에 있느냐, 누가 어떤 사람이 섬기느냐에 따라 특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버가모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과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 불꽃 같은 눈은 모든 감추어진 것까지도 볼 수 있는 주님을 말하며 주님 앞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주님 앞에서 위장을 해도 소용없고 멋있는 척 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주석 같은 발인데 여기서 주석이란 보석의 의미대로 심판자의 발을 의미한다. 나와 교회를 정확하게 알고 계신 주님의 심판은 그 행위대로 갚아주시는 정확한 판결이다. 심판자 되신 예수의 발에 서면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알곡도, 쭉정이도, 성도도, 이단도, 천사도 마귀도 도망할 수 없다. 

우리는 사랑의 주님, 좋으신 주님, 포도나무 주님, 어린 양 주님, 구원자 주님을 불러볼 수 있지만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난 주님은 나를 다 알고 계시며 만민을 정확하게 심판하시는 주님이시다. 우리 인생은 부정확하고 오류가 있지만 주님은 오류가 없고 실수가 없는 분이시다. 그래서 주님 앞에 설 때 칭찬을 들어야 되고 상을 받으려면 주님이 어떤 분인지, 어떤 소원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1. 주님은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기 원한다. (계2:23)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신앙 생활을 아무렇게나 하는 이유는 아무도 나를 보는 자가 없다는 오해 때문이다. 내 뜻과 내 마음을 누가 알 것인가? 그래서 더럽고 냄새나고 역겨운 생각을 마음에 가둬둔 체 외형만 꾸민다. 회칠한 무덤 같이 겉만 흰색이고 깨끗하게 보일 뿐이지 속은 썩는 악취로 가득한 것이다. 그런데 계2:23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라고 하였다. 

주님은 보이지 않는 내면을 살피신다. 보는 사람이 없다는 무지를 버려야 한다. 보는 분이 주님이라는 것을 알고 벧전3: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해야 한다. 삼상16:7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주님은 나를 다 아신다. 나의 뜻과 나의 마음을 세밀하게 살펴본다. 주님의 소원은 주님이 교회와 성도를 살피는 자임을 알기를 기대한다. 교회가 경건을 회복하는 비결은 주님이 살피는 자임을 한 사람이라도 더 알고 마음의 단장을 하는데 있다. 이것을 알아야 위선의 생활을 청산한다. 

시139: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주님이 다 아시고 계신대 어찌 마음대로, 멋대로 자기 혈기대로 살 수 있겠는가?
  

2. 주님을 믿는 자들이 회개하기를 원한다. (계2:21)

계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주님이 자기 백성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다. 회개하므로써 사람들은 축복을 받고 회개하므로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기 때문이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신다. 욘3:6~8을 보면 니느웨 도성 사람들이 베옷을 입고 금식하면서 악한 길에서 떠날 때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셨다.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회개하면 다 용서하신다. 출32:1~10을 보면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 숭배를 한다. 그때 진노하신 하나님 앞에 모세가 중보기도를 드린다. 그때 하나님은 출32: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회개하면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신다. 그래서 망할 자가 살게 된다. 그러기에 주님의 소원은 회개다. 회개를 그렇게도 기다리신다. 죄 짓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사는 길이 없다. 믿는 자의 특징이란, 아니 사람의 가능성이란 회개할 수 있는데 있다. 여러 방면으로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회개하는 자가 되는 것이 지혜 중의 지혜다. 

두아디라 교회의 죄는 음행의 죄다.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한 죄다. 우리도 용납해서는 안되는 신앙의 혼돈을 가져오는 유혹을 그냥 내버려 둔 죄를 회개해야 한다. 주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마음을 준 음행의 죄, 세상 물질에 마음이 빼앗겨 주님의 것을 다 내팽개친 음행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① 회개하지 않으면 계2:22上에서 침상에 던진다고 한다. 환난은 무서운 것이다. 물의 환난, 불의 환난, 인생이 막히고 꼬이고 안되는 환난, 그 환난 가운데 던진다는 것은 헤어나올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이다.  

② 회개하지 않으면 계2:23에서 그의 자녀를 죽이리라고 한다.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회개할 수 있도록 사람을 보내고 사건이 터지게 한다. 그런데도 이세벨의 유혹을 따르고 미혹자의 가르침만 좇아간다면 사망으로 역사한다. 사망으로 자녀를 죽이니 무서운 경고다. 회개가 주님의 소원인데 회개하지 않으면 멈출 수 없는 비탄과 슬픔의 계곡에 떨어지는 것이다.
  

3. 주님은 성도들이 있는 것을 굳게 잡기를 소원한다. (계2;25)

사탄의 깊은 계략은 오리무중이다. 성도들은 그것을 잘 알지 못한다. 성도들은 사탄과 직접 싸워 이길 수 없다. 이기는 자가 되려면 있는 것을 꼭 붙잡아야 한다. 계2:25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두아디라 교회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계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① 있는 것은 사업이다. 사업을 놓으면 안된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업은 선교를 위한 사업이었다. 예를 들어 루디아란 여인은 두아디라 출신으로 선교팀을 도와 집을 제공한 사업가였다. 그녀는 옷감 장사로서 돈만 버는 사업이 아니라 선교에 헌신했다. 이런 사업을 장려하고 그런 사업을 굳게 잡아야 한다. 지금 있는 직장, 일터가 선교 사업이 되게 하라. 공장과 학원, 회사가 주님의 사업이 되게 하고 그 사업을 굳게 잡으라.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라. 

② 사랑을 굳게 잡으라. 사랑은 감상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이 악한 모든 것을 이긴다. 사람은 악하고 강하고 오염된 편견을 녹인다. 사업하느라 사랑을 놓치지 말라. 분주히 일하느라 사랑 없는 자가 되지 말라. 

③ 믿음을 굳게 잡으라. 믿음은 장애물을 뛰어넘고 마귀가 주는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힘이다.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 믿음이 어려운 사업의 현장에서도 여유를 갖게 한다.

④ 섬김을 굳게 잡으라. 섬기는 일은 힘들고 외롭다. 그러나 섬김으로 허리를 굽힐 때 모든 것은 형통할 수 있다. 섬김은 잘되는 열쇠다. 

⑤ 인내를 굳게 잡으라. 인내는 사람을 큰 그릇으로 만든다. 조급함과 경솔함으로 실패케 하는 마귀를 이기는 끈질김의 여유가 인내다. 인내가 승리의 비결이다. 성도들은 어리석게 없는 것을 불평하거나 없다고 실망해서는 안된다.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고 했으니 인내하면서 나아가라.   

우리도 있는 것을 찾으라. 지금 하고 있는 예배 생활, 헌금 생활까지 다 굳게 잡으라. 이기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고(계2:26) 이기면 그에게 새벽별을 준다. 그러므로 이기기 위해 있는 것을 귀히 여기고 있는 것을 굳게 잡는 것이 주님의 소원이다. 속장으로 섬기는 것을 내려놓으려 하지 말고, 밥퍼 봉사에 나아가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으려 하지 말고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 방만하게 떠내려가게 두지 말고 술 먹다가 타인들에게 빼앗기지 말고 교회, 말씀, 이웃, 찬양, 전도, 사랑, 믿음, 섬김, 인내만이 아니고 신앙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굳게 잡는 것이 주님의 소원이다. 

각 사람을 다 잘 알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시는 주님의 소원이다. 내 주님의 소원이라면 내 주님이 내게 바라는 것이라면 신명을 다하자.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굳게 잡아 칭찬 받고 새벽별이신 주님을 얻은 자가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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