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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음욕을 극복합시다 (마 5: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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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욕을 극복합시다 (마 5:27-30)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음란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음란이 우리 곁 가까이에 있고, 그리고 우리 삶 구석구석에 널리 퍼져있습니다. TV와 영화는 이미 이 음란에 깊이 물들어있고, 인터넷은 이 음란을 더욱 빠르게 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이 음란의 심각한 문제로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수치심을 잃어버리게 됐다는 점입니다. 근자에 들어와서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 가운데 ‘섹시하다’(sexy)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는 ‘요염한’ 또는 ‘도발적인’이라는 조금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던 말입니다. 그러나 세태가 변화되면서 ‘매력적인’ 또는 ‘멋있는’이라는 조금은 긍정적인 의미로 변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점차 수치심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TV 프로그램에 섹시한 장면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 강도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하의실종’이라 해서 패션자체가 지나치게 야합니다. 게다가 댄스의 동작들이 지나치게 민망해져 가고 있습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저들에게서 부끄러움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연예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반인들도 지나친 노출 의상을 거리낌 없이 입고 다닙니다. 자기의 벗은 모습을 버젓이 셀카로 찍어 인터넷에 올려 공개하기도 합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저들에게서 부끄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음란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정보화 시대가 열리면서 인터넷은 모든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런 정보화 환경이 음란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이제 어디서나 언제든지 클릭 한번으로 음란물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청소년은 물론이고 어린아이들까지도 무방비로 이 음란물에 노출되어있다는 점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음란물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중독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미국의 통계자료를 보면,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남자 성도들 가운데 약 50%가 그리고 여자 성도들 가운데 약 25%가 자주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를 방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통계자료는 나와 있는 것이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미국의 경우보다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환경이 더 잘 발달됐기 때문입니다.

이렇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과거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음란한 시대입니다. 빌리 그래엄 목사님의 지적대로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음란’입니다.

그러면 이 음란이 왜 문제가 될까요? 한 마디로 우리 마음  속에 음욕을 품게 하고, 더 나아가 음행을 저지르도록 충동질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성욕을 주셨습니다. 이 성욕은 건강한 부부가 사랑하며, 자식을 낳아 가정을 이루도록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이 성욕은 식욕처럼 우리 인간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생존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이 성욕이 변질되면 음욕이 됩니다. 건강한 부부의 사랑을 위해 사용되기보다는 단순한 쾌락을 위해 사용될 때, 성욕은 음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란한 시대에는 성욕이 음욕으로 변질되어 창궐하게 됩니다.

비유컨대 성욕은 불과 같습니다. 불은 잘 관리하여 사용하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맛있는 요리도 할 수 있고, 추위 가운데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나 잘못 관리하면 우리 삶을 파멸시킵니다. 불에 데어 몸이 엉망이 되기도 하고, 화재로 집을 송두리째 잿더미가 되게 합니다. 

성욕이 그렇습니다. 잘 관리하여 사용하면 부부가 깊이 사랑하게 되고, 자녀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 관리하면 음욕이 되어 가정도 파괴하고, 사회도 엉망으로 만들고 맙니다.
바로 여기에 음란의 문제가 있습니다. 성욕을 음욕으로 변질시켜서 인간을 타락의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음란의 문제와 맞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음욕에 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27-2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십계명에서 간음하지 말라고만 말씀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에 품은 음욕을 떨쳐버리라고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위로 간음한 것은 겉사람이 간음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음욕을 품은 것은 속사람이 간음한 것입니다. 그래서 겉사람이 간음했느냐 속사람이 간음했느냐의 차이이지 모두가 다 간음한 것이라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음욕을 떨쳐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왜 음욕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29-30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에 노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음욕이 눈을 병들게 하여, 이성을 음란한 눈으로 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란한 것을 보지 않고는 못견디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욕이 손을 병들게 하여, 음란한 짓을 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란한 짓에 중독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것은 이런 음란한 짓을 하는 자들은 결국 지옥에 던져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음란한 짓을 하는 자들은 구원받을 수 없고, 이미 구원 받은 자들도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음욕은 우리의 구원과도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점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엡 5:5를 보면,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음란한 짓을 하는 자는 우상숭배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음욕에 휘말려서 음란한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우상숭배자와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음욕은 우리로 하여금 음행을 저지르게 하여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무효화시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죄인들의 죄를 씻기고 의롭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훼손시킵니다. 그래서 음욕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음욕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일에 걸림돌 노릇을 합니다. 살전 4:3-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음욕이 거룩하게 살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에 걸림돌 노릇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음욕에 사로잡혀 산다면, 결코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또한 음욕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음욕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초대교회부터 영성가들은 이 음욕의 문제를 새로 비유하여 설명해 왔습니다.

새가 날아와 머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이 때 바로 쫓아버려야 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이 새는 머리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나는 새 둥지의 받침대가 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에 음욕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때 바로 그 음욕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음욕이 둥지를 틉니다. 그리고 음란한 짓을 도모합니다. 더 나아가면 구체적으로 음란한 짓을 저지르게 됩니다. 나중에는 음란 중독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래서 음욕은 마음속에 일어날 때 바로바로 떨쳐버려야 합니다. 결코 우리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음욕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요?

우선, 영적전쟁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엡 6:12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가 음욕을 떨쳐버리려고 씨름하는 것은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겉으로는 음욕을 떨쳐버리기 위해 눈앞에 보이는 음란물과 씨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음란한 이성과 씨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거기에 악한 영 곧 사탄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사탄과 싸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엡 6:16을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악한 자 곧 사탄이 우리에게 불화살을 쏘아댄다는 것입니다. 그 불화살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음란의 불화살입니다.

벧후 2:14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사탄의 음란의 공격에 굳세지 못한 영혼들이 희생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사탄은 우리를 향하여 음란의 불화살을 쏘아댑니다. 연약한 영혼들이 그 불화살의 공격에 쓰러집니다. 음란의 불화살을 맞아 음욕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음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음욕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손자병법 [모공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즉 적과 아군의 실정을 잘 비교 검토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부지피이지기 일승일패’(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즉 적의 실정을 모른 채 아군의 전력만 알고 싸운다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다. 또한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패’(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 즉 적의 실정은 물론 아군의 전력까지 모르고 싸운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음욕과의 전쟁은 사실 영적 전쟁입니다. 사탄을 알고 또 나를 알 때 음욕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갈 5:16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 육체의 욕심과 성령은 서로 대적관계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대표적인 육체의 욕심인 음욕과 성령은 상극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음욕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 심령 속에 성령의 역사는 중단됩니다. 음욕에 사로잡히면 우선 기도가 막힙니다. 마치 격한 운동 뒤에 숨이 차고 더 심할 경우 숨이 막히듯이 기도가 막힙니다. 음욕에 사로잡히면 말씀의 귀가 닫힙니다. 어떤 말씀을 들어도 마음속에 그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음욕에 사로잡히면 예배가 제대로 드려지지 않습니다. 예배 자리에 와 있어도 겉사람만 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따르게 되면 상황은 역전이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우리의 심령은 전적으로 성령을 따르게 됩니다. 이 때 음욕은 사그라집니다. 먼지 털 듯 음욕을 다 떨쳐버릴 수 있게 됩니다. 음란한 상황 속에 던져져도 역겨움을 느끼게 됩니다. 음란과 연루되기라도 하면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음욕을 떨쳐버리려면 우리가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음욕을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셋째, 음란한 환경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엡 5:3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철저하게 음란한 환경을 차단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날, 유대 랍비 힐렐이 빨리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무슨 일로 그렇게 서두르고 계십니까?”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 서두르고 있네.” 학생은 힐렐이 하려는 선한 일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힐렐은 공중목욕탕에 들어가 자기 몸을 씻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학생은 놀라서 힐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것이 선생님이 말씀하신 선한 일입니까?”그러자 힐렐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청결케 하는 것은 대단히 선한 일이다. 로마인은 많은 동상들을 깨끗이 씻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동상을 씻기보다는 자신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이것이 선한 일의 시초니까.”

중세 유럽에 페스트가 유행하여 전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습니다. 그때 유럽에서는 유대인들이 페스트를 퍼뜨렸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만이 페스트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청결을 유지했다. 이러한 청결로 페스트에 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이런 음란한 시대에 우리의 마음을 늘 깨끗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보는 것을 삼가고, 먹는 것을 삼가고, 그리고 행할 것을 삼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씻어서 음란의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음욕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음란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음욕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살펴야 하겠습니다. 철저하게 음욕을 떨쳐버려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거룩의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이제 내 생각이 거룩해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이 거룩해야 하겠습니다. 내 말이 거룩해야 하겠습니다. 그 뿐 아니라 내 가정이 거룩해야 하겠습니다. 내 일터가 거룩해야 하겠습니다. 내 쉼터가 거룩해야 하겠습니다. 내 침실도 거룩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탄이 우리를 향해 음란의 불화살을 쏘고 있다는 점입니다. 철저하게 싸워 이겨서 음욕을 떨쳐버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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