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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신경-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님을 믿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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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마 1:18)

회사에서 잘 되려면 사장이나 회장의 눈에 들어야 합니다. 자동차 업계의 거성 헨리 포드는 신입사원들을 뽑을 때 최종 면접은 직접 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그가 지원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산업이 이루어지는데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가?” 그러자 한 똑똑한 사람이 “예, 자본, 노동, 경영주가 있어야 됩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때 포드가 “그것뿐인가?”라고 묻자 모두 “예.”라고 하는데, 한 사람이 “아닙니다. 더 있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순간 포드의 눈이 빛났다고 합니다. “그게 무언가?”, “손님입니다. 

아무리 자본이 많고 아무리 좋은 경영주와 노동력이 있어도 손님이 없으면 산업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헨리 포드는 그를 기억해 두었다가 최고 연봉으로 입사시켰답니다. 사원은 기업주의 눈에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눈에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에 드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오늘 이 예배 시간에 하나님이 인정하실만한 예배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눈에 들어오도록 간절한 예배, 믿음의 예배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부흥회를 가서 말씀을 전하다 보면 제 눈에 쏙 들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배 태도도 좋고 아멘도 잘하고 은혜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안수할 때 그런 사람에게는 더 간절히 축복하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예배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은 사도신경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도 역시 예수님에 관한 고백입니다. 오늘은 사도신경 중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고백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 고백은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한 마디로 성령으로 사신 생애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어떻게 성령으로 사셨는지 자세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 되셨습니다. 본문에 보니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마 3:16). 그리고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마 4:1). 예수님은 시험을 이기신 후에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눅 10:21). 예수님은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받으셨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습니다(행 10:38). 예수님 안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었습니다(롬 8:1)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롬 8:11). 예수님은 생애는 철저히 성령으로 시작하셔서 성령으로 행하시고 성령으로 마치신 생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생애가 어느 한 부분도 성령과 별개일 수 없는 것처럼 주님을 믿는 우리들의 신앙생활 역시 어느 한 부분도 성령과 별개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성령과 연결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는데 이 거듭남이 성령으로 가능합니다(요 3:5).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성경 롬 8:14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없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고백 역시 성령의 역사로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 고전 12:3을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합니까? 아멘이라면 잘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백이 내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기도생활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생활도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올바른 기도, 영중심의 바른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롬 8:26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신앙생활에서 뺄 수 없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그런데 이 예배생활 역시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요 4:24).
   
신앙생활의 기준을 잡아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을 떠난 신앙생활은 기독교신앙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 역시 성령의 역사로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기 때문에 성경을 깨닫는 것 역시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딤후 3;16).
   
뿐만 아닙니다. 성경 엡 1:17에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엡 1:20에서는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성령님이 우리도 부활시키신다고 말씀합니다. 요 3:5에서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 갈 5:22,23을 보면 성령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또 고전 12:7-11을 보면 은사도 성령의 역사로 나타납니다.
   
이 외에도 성령과 우리의 신앙생활이 절대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성경구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가 성령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셨던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성령님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성령님 없이는 신앙생활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을 사모하고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하며 늘 성령님으로 충만한 신앙을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님으로 충만할 수 있을까요? 사도행전 1장과 2장을 보면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던 모습을 통해서 몇 가지 비결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행 1장에서 성령을 약속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행 2장에 보면 오순절 날에 마가에 다락방에 모여 있던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온 집에 가득했고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게 되었고 그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했습니다. 
 
   
첫째, 순종입니다. 
   
행 1:4,5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감람산에 모인 제자들의 수가 성경 고전 15:6을 보면 5백여 형제였습니다. 형제만 500명 정도 되었으니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족히 2천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성령을 기다린 사람들은 고작 120명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약 2천 명의 사람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성령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120명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강하게 나타납니다. 성경 공부 프로그램 가운데 [마더 와이즈]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어머니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그 프로그램을 개설했습니다. 내용 중에 “순종”이라는 주제가 있었습니다. 두 주 동안 남편에게 무조건 순종하도록 하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의 말이라도 그리고 말 같지 않은 것이라도 그리고 도저히 순종할 수 없을 것 같은 것이라도 순종하라고 숙제를 주었습니다. 사실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두 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해야 합니다. 엡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이 들지만 대부분 숙제를 잘했습니다.
   
남편들이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안하던 짓을 하니까 놀랐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짓을 하니까 놀랐고, 그래서 남편들이 환호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남편들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늦게 들어오던 남편이 일찍 퇴근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가겠다고 말로만 약속하고 지키지 않던 남편이 아내와 함께 교회에 나오게 됐다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 기적이 있습니다. 순종할 때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둘째, 기도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여서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행 1:12-14). 그들은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성령님은 기도하는 그들에게 강하게 임하셨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통역으로 봉사하는 자매님이 영국에서 유학할 때의 일입니다. 이분이 향수병에 걸려서 고향이 얼마나 그리운지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엄마도 보고 싶고, 목사님도 보고 싶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달려오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서 몸부림을 쳤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주인인 영국인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미칠 것 같은 마음에 문을 닫아걸고 “하나님! 제가 향수병으로 죽겠습니다. 엄마도 보고 싶고 목사님도 보고 싶고 우리 교회에도 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가야 할까 봅니다.”하고 소리쳐 기도했답니다. 

그 순간 그 자매님에게 성령이 임했답니다. 얼마나 기쁜지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영국이나 한국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하고 찬송하며 그 자매님은 아주 얌전한 분인데 성령이 임하니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답니다. 그리고는 담임목사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목사님, 저는 여기에서 성령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기쁘고 평화롭고 좋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한국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그 자매님이 공부를 잘 마치고 돌아왔답니다. 성령임 임하시면 기쁩니다. 행복합니다. 그리고 성령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셋째, 거룩한 모임입니다. 
   
성경 행 2:1을 보면 성령께서 불처럼 바람처럼 임하시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말씀합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성령님께서 교회에 공식적으로 최초로 임하실 때 거룩한 백성들이 모인 곳에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모임과 성령의 역사는 함께 가는 것입니다. 성경 시 110:3에 보면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은 간단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성경 사 55:3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성경 요 7:37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와야 합니다. 성경 행 2:46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초대교회의 성령충만의 비결 중에 하나는 날마다 모이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교회가 모임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예배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 이 시대에는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아졌습니다. 예배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면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은혜로운 신앙생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넷째, 회개입니다. 
   
마가에 다락방에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시자 예루살렘이 요동하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가 11명의 사도와 함께 서서 그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그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아 적극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에 죄와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성령을 구하는 사람에게 죄가 가득하다면 성령은 그 사람에게 충만하게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원한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보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육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영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영안이 열려서 하나님을 보는지 아십니까? 마음이 청결한 사람입니다. 마 5:8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어떤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이 화랑에 전시가 되었습니다. 때를 맞춰서 친구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화가는 친구들을 먼저 그림들 앞으로 인도하지 않고, 지하실로 그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음료수를 간단히 대접하고 난 뒤에 갑자기 불을 꺼버렸습니다. 지하실에 불을 꺼버렸으니까 얼마나 캄캄했겠습니까? 놀란 친구들을 향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10분 동안만 명상하는 시간을 가지세.” 그는 10분 뒤에 다시 불을 켰습니다.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인가?” 

그 때 화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왜 그런 줄 아나? 자네들은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보느라고 눈이 너무 타락했어. 그냥 그대로는 그림들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네. 그러니 캄캄한 곳에서 우선 눈을 깨끗하게 씻고 난 뒤에야 내 그림들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걸세.” 마음과 눈이 깨끗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림들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려면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려면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가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동정녀라는 말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남자를 경험해 보지 못한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 되셨다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이유가 있습니다.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구약 말씀의 성취입니다. 
   
성경 사 7:14에서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기서 처녀는 히브리어로 ‘알마’라는 말인데 이 말은 처녀성이 보존된 젊은 여자를 말합니다. 주님은 그 말씀의 예언대로 남자를 경험하지 못한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만약 마리아가 처녀성을 지키지 못한 여자였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다른 여자의 몸을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했던 처녀였음이 분명합니다. 성경 눅 1:30-33을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천사의 말을 들은 마리아가 이렇게 반응합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예언된 말씀은 그대로 성취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주전 734년에 동정녀 탄생을 예언했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700년이 지났지만 그 말씀은 그대로 성취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수많은 예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벧후 1:20에서는 ‘성경의 모든 예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을 현재 우리의 위치에서 시제로 보면 세 가지 예언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미 이루어진 예언입니다. 둘째는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예언입니다. 이방인인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고 온 세상에 복음이 편만하게 된 것도 지금 그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세계 170개국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약속된 고토로 돌아가고 있는 알리야와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던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이런 일들도 지금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앞으로 이루어질 예언입니다. 주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 그리고 백보좌 심판과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앞으로 이루어질 예언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이미 이루어진 예언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둘째, 죄 없이 태어나시기 위한 방법입니다. 
   
마 20:28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분명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은 섬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주님의 섬김 중에 가장 중요한 섬김은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속물이라는 말은 석방금을 말합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에 모두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인간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죄의 삯을 계산해야 하는데 이미 죄인 된 인간은 그 누구도 죄의 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모든 인류가 지옥에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해결해주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는 죄없는 인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죄 없는 인간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인류를 대신해서 죽는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성령의 능력으로 마리아의 몸에 잉태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 없으신 주님에게 인류의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셔서 인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대속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일을 위하여 남자와 여자의 생리적인 방법이 아닌 동정녀 탄생을 택하신 것입니다. 
 
셋째, 말씀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성경 눅 1:37,38을 보면 동정녀 탄생을 예언한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천사의 말에 마리아가 반응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처녀의 몸에서 아기가 태어난다고 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수년 전의 일입니다.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다리 위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을 경찰이 말렸습니다. 경찰은 그를 살리기 위하여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참으시오. 인생은 살 만한 가치 있는 거요. 자살하지 말고 내려갑시다.” 그 사람이 울면서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당신은 내가 왜 자살하려고 하는지를 모를 거요.”,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절망하게 만들고 자살까지 하게 만들었는지 말해 보시오.” 그들은 약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고 결국 두 사람은 함께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고 말았답니다. 자살하려는 사람을 말리던 경찰이 그 사람의 말에 감동을 받아서 결국 동반 자살을 하게 된 불행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말에 능력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능력이 있고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말씀을 받은 사람에게 말씀대로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히 4:12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장갑 속에 사람의 손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장갑은 손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입니다. 장갑은 손이 들기를 원하는 물건을 들게 됩니다. 장갑은 손이 악수하기를 원하는 사람과 악수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과의 관계도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됩니다. 내가 하기 원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일들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를 움직이기 때문에 그 말씀이 원하는 것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0:35).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신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하는 말씀을 이해하려면 모세를 보면 됩니다. 성경 출 7:1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바로가 처음에는 모세를 무시했는데 10가지 재앙을 받으면서 나중에는 모세를 하나님처럼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에게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그런 능력이 나타났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대로 선포하거나 순종하면 인간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신적인 능력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기적의 간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능력의 천사들이 역사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시 103:20). 그래서 말씀을 받은 사람에게 신적인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럼 말씀을 받는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말씀을 받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을 듣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들은 말씀을 믿을 때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 히 4:2입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살전 2;13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고 그 말씀이 여러분 속에서 역사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데 믿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이 믿고 행했던 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여리고 성은 아주 견고한 성입니다. 성벽이 이중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능력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는 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부르셨습니다. “여호수아야”, “네, 하나님”, “백성들을 데리고 여리고 성을 돌아라. 하루에 한 번씩 육일 간 돌고 칠일 째는 일곱 번 돌아라”, “예, 하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호수아의 믿음이 대단하지요. 인간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을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찌 보면 백성들의 믿음이 더 대단합니다. 

사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으니 순종할 수 있었겠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의 종인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직접 들은 것이 아닙니다.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이런 일을 해야 합니까? 이렇게 한다고 여리고가 무너집니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불평 없이 순종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셔서 여리고 성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만약 제가 여호수아의 입장이고 여러분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이라면 우리 중에 얼마나 되는 성도들이 순종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믿고 순종할 때 실제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영국의 황태자 알버트가 유명한 학자 라이언 플레이페어의 연구실에 들렀습니다. 학자는 가마솥에 납을 펄펄 끓이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황태자에게 학자가 말했습니다. “전하께서는 저를 신뢰하십니까?”, “신뢰하지요. 영국 최고의 과학자이기에 신뢰하지요.”, “그러면 이 특수 용액에 손을 씻으신 후 펄펄 끓는 납을 손으로 퍼 올려보십시오.” 펄펄 끓는 납에 손을 넣으면 손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황태자는 학자의 말대로 특수 용액에 손을 씻은 다음 펄펄 끓는 납을 퍼냈습니다. 그런데 손이 타지도 않았고 뜨겁지도 않았습니다. 라이언 플레이페어 박사가 만든 특수 용액에 손을 씻으면 끓는 납을 만져도 뜨겁지도 않고 타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황태자가 학자의 말대로 행한 것은 학자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학자를 믿어도 그렇게 하는데 하물며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순종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말씀에 순종할 때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침체 되는 분들이 있으면 성경을 소리 내서 읽으십시오. 저는 마음이 답답하고 침체가 찾아오면 성경을 소리 내서 읽습니다. 목사도 침체가 되었을 때는 성경 읽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력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억지로라도 소리 내서 읽으면 저도 모르게 심령이 살아납니다. 은혜가 회복됩니다. 기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저를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고백을 점검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성령으로 잉태 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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