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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사밧의 기도2 (대하 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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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의 기도2  (대하 20:5-12)
  

들어가는 말

우리교회는 오늘 새벽부터 4월 7일까지 봄철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를 진행합니다.
이번 봄철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를 독려하기 위하여 여호사밧의 기도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여호사밧의 기도의 태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잠간 복습하겠습니다.

1) 여호사밧은 즉각적으로, 그리고 반사적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역대하 20장 3절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여호사밧은 외적으로 원수들과 맞닥뜨리고 내적으로 두려움에 포위된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그리고 반사적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아이들은 문제가 생기면 즉각적으로, 그리고 반사적으로 엄마를 부릅니다.
“엄마!”
아이들은 엄마를 부르는데 한 순간의 지체함도 없습니다.
우리도 아이들처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즉각적으로, 그리고 반사적으로 하나님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2) 여호사밧은 기도할 수 있는 특권과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확실한 약속의 증거인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5절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뜰 앞에서........”
여호사밧은 기도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앞에 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 앞에 섰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도할 수 있는 특권과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확실한 약속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그 증거의 자리인 성전 앞에서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기도할 수 있는 특권과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약속의 확실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참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지요!

우리의 기도가 능력 있는 것은, 기도가 우렁차다거나, 논리적이라거나, 유려하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입니다. 

3)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성품을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여호사밧이 어려울 때 찾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역대하 20:6절을 다시 한 번 봅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지금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약속’과 관련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지금 여호사밧은 약속을 기억하면서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성품의 하나님을 붙들고 호소하고 있습니까?
문제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성품을 붙잡고 늘어지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호사밧이 기도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역대하 20:12절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려나니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한 나라의 군주의 기도가 이렇게 절절할 수가 있습니까?

1.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12절)

여호사밧은 먼저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기도합니다.
얼핏 살펴보면, 이 간구는 우리가 드릴 기도의 내용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어떻게 남을 저주해달라고 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 사람의 사업이 망하게 해주세요.” “저 사람이 병들게 해주세요.”
어떻게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라는 기도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옳은 편을 지지해주셔야 되지 않습니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께서 그와 원수들 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성품에 맞게 옳은 편을 지지해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사악한 목적을 이루게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선한 하나님, 옳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큰 독려를 받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강력해지려면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에 기대어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옳습니다. 상대방은 그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러니까 저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합니다.” 

2)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를 들어주셔야 되지 않습니까?’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이 아닙니까?
여호사밧은 자신의 유익뿐만 아니라 자신과 하나로 엮여진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기도를 들어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저가 망하는 것은 좋아요. 죽기 밖에 더 하겠습니까? 죽으면 천국 가면 되지요. 그러나 저가 망하면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이 기도를 들어주세요.”

여러분, E Land의 박성수 회장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의 간증이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 소개해 드리지요. 
그는 ‘돌아가더라도 바른 길을 가는 것이 지름길이다.’라고 강조합니다.
이 말을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것이 지름길이다.’라는 말이지요.
그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신앙 양심상 매우 찔렸던 것은 바로 세금 문제였습니다. 
당시에는 세금을 제대로 내는 사람도 적었거니와 세율도 매우 높았습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정말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마침내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출발부터 어려웠습니다.
거래선 절반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처음부터 부가세 10퍼센트를 붙여서 출발하자니 원가도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첫 해 매출이 60억 원, 이듬해에는 1백억 원, 다시 4백억 원, 그리고 1천억 원, 2천 2백억 원, 5천억 원, 7천억 원, 9천억 원, 드디어 1조에 다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그릇, 귀한 그릇, 좋은 그릇을 쓰시기 보다는 깨끗한 그릇을 쓰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그 일로 절실히 깨달았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IMF 때의 일입니다.
은행이 자기들이 살기 위하여 돈을 마구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부도위기에 몰렸습니다.
그는 금식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곤 그것 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응답은 없었습니다. 
급기야 은행에서, ‘회사를 부도낼 예정이니 회장을 피신시키라.’는 전갈을 받게 되었습니다. 

부도를 내고 감옥에 갈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걱정스러운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회사라고 이름이 알려졌는데 이게 무슨 망신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그는 피신을 거절하고 끝까지 금식하고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 달라.’고
월요일, 부도나기 직전에 외국인 투자가가 5억 불을 들고 들어와서 E-Land에 10분의 1일 투자했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살렸습니다. 할렐루야!

2.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12절)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여호사밧은 자기에게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여호사밧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무지하다고 아뢰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무엇이 최선인지 알지 못합니다.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식탁위에 팔을 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마땅한 묘책이 떠오르지 않아 하염없이 거리를 배회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그동안 외면했던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사밧의 기도에서 중요한 교훈을 받습니다.

1) 자만심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살이는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만심에 들떠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큰소리친다고 하지요.
열왕기 하 5:11절에 보면 아람왕의 군대장관 나아만 장군의 얘기가 나옵니다.

문둥병이 든 나아만 장군이 선지자 엘리사의 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한 말입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하였노라.” 
여기에 보면 ‘내 생각에는’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내 생각 때문에’ 망할 수 있습니다.
큰소리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한번 휘두르면 인생에 남아날 것이 없습니다.

2) 열등감을 조심해야 합니다.

열등감은 겸손이 아닙니다.
열등감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입니다.
빌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열등감은 능력주시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겸손할 뿐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오직 겸손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나는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합니다.’

3.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12절)

여호사밧은 ‘오직 주만 바라본다.’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죄에 합당한 대가가 아니라 자비로 우리를 대하시기로 작정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은혜로 손을 활짝 펴시어 우리가 받기에 가당치도 않고, 요구할 수도 없는 것들을 공급하시려고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의 하나님이시며,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볼 때 문제이지 하나님이 볼 때에는 하나도 문제가 아닙니다.
기도하면 삽니다.

지난주 기도원에 강사로 오신분이 장로교 최낙중 목사였습니다.
이분이 이런 간증을 해요.
교회를 개척하여 교인들이 약 80명 정도 됐을 때였습니다.
교우 중에 조 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의 남편이 간암말기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병이 나아서 퇴원한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서 퇴원했습니다.
조 집사님은 그래도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게 해야지 생각하고 목사님의 심방을 요청했습니다.
가보니 배에 복수가 차서 숨을 못 쉬고 ‘해! 해!’거리고 방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온 방은 뱃속에 있는 냄새가 나와 숨을 못 쉴 정도로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최선생님, 이제 최 선생님은 죽게 됩니다. 그러나 서러워 마세요. 우리도 다 죽게 되니까요. 그런데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오른쪽에 있는 강도는 죽는 순간 예수님을 믿어 천국 갔습니다. 최선생님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가는 문제가 안 됩니다. 지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갑니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눈을 감고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찬송 부르고 ‘주기도문’하고 나왔습니다.
냄새가 너무 나서 더 이상 그 방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나와서 교회로 오는데 ‘그래도 안수는 해주고 올걸, 아니야 괜히 안수했다가 병이 낫지 않으면 목사가 능력이 있느니 없느니 말거리가 생기니 안하길 잘했어.’이런 생각이 오고갔습니다. 

그 순간 한 말씀이 머리를 쳤습니다.
약5:15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누가 일으키신다고 했습니까?
목사가? 주께서? 
그렇지요!
주께서 일으키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목사님이 되돌아가서 복수로 산더미처럼 된 배에 손을 얹고 찬송을 부르고, 안수기도를 했습니다.
‘성부여 의지 없어서’ 라는 찬송가 3절은 이렇습니다.
“나 예수 의지함으로 큰 권능 받아서 주님께 구한 모든 것 늘 얻겠습니다.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나 예수 의지함으로 큰 권능 받아서’
이 찬송을 부르는데 힘이 들어가요.
그렇게 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일주일 후에 교회에 온 부인 조집사님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요.
그러니 목사님이 얼마나 궁금하겠어요.
견디지 못하고 그 최선생 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은혜는 눈물로 시작됩니다.
앉자마자 환자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불룩한 배의 복수는 어디 갔는지 간데없고 배가 착 가라앉았습니다.
그다음 주부터 지팡이를 짚고 교회에 예배드리러 나왔습니다. 할렐루야.

복음성가-‘반드시 너를 들어 쓰리라.’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병원에서 다시 정밀검사를 받아보자고 합니다.
검사결과 악성종양이라고 합니다.
수술날짜가 잡힙니다. 
그러나 수술 예후가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나의 하나님이여, 나는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여러분은 똑같은 죄를 하나님께 또 다시 자백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겨내리라, 등을 돌리리라, 다시는 빠져들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또 결심했지만 여지없이 무너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나의 하나님이여, 나는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마침내 그것이 여러분을 덮쳤습니다.
여러분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놈의 신용카드를 분질러버리겠다고 결심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씀씀이를 줄여보겠다고, 헤픈 생활습관을 바꿔보겠다고 마음을 다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빚더미에 처참하게 깔려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나의 하나님이여, 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봄철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여호사밧처럼 기도하여, 여호사밧처럼 응답받게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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