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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가지 삶의 원리와 두 가지 약속 (합 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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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삶의 원리와 두 가지 약속 (합 2:12-20) 

하박국 선지자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품고 있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전능하시며 지금도 살아계시고 통치하신다면 어찌하여 세상에 악이 존재하느냐? 어찌하여 사탄이 멀쩡하게 지금도 존재하며 일하고 있느냐? 어찌하여 악이 때로는 선을 이기느냐? 

어떻게 사악한 바벨론 군대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유다 백성을 죽이고 포로 삼는 일이 있을 수 있느냐?’ 이런 것이 궁금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마음속을 살펴보면 비슷한 질문이 다 있습니다. 이런 질문과 관련된 내용을 종교철학자들은 ‘신정론’이라고 합니다. ‘신정론’은 아무리 악이 이기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옳다라는 것을 옹호하는 논리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역사의 문제’(Problem of history)라고 하는데 역사의 진행 과정에 대한 인간의 의문을 뜻합니다.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 중에 왜 악이 선을 이기느냐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질문하고 성루에 서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시는지 보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묵시로 응답해주셨습니다. 얼마나 확실하고 분명하게 응답하셨는지 하박국에게 그것을 판에 기록해서 고속으로 달리면서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보여주실 수가 있었느냐? 

하나님께서는 천 년, 만 년 후의 미래도 다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하고 인류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미래를 알고 싶어서 점쟁이한테 가서 돈 주고 점을 칩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다고 점을 쳐서는 안 됩니다. 미래를 모른다고 귀신한테 가서 물어보면 되겠습니까? 

미래에 관해서 하나님께서 다 말씀해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 개인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고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가장 정확하고 확실하게 예언하고 있는 책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생과 천국을 누리게 될 것이고 안 믿는 사람은 지옥의 형벌을 영원히 받게 될 것이라고 확실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미래를 아신다고 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다니엘서를 연구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미래를 보여주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후대에 다니엘이 꾸며내서 기록한 것 아니냐는 식의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억만년 전 과거도 아시고 억만년 후의 미래도 다 아시는 분입니다. 미래를 아시기 때문에 미래의 일을 묵시로 보여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박국 선지자가 받은 묵시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모든 인간의 두 가지 삶의 원리 

하박국 2장 4절을 보면 두 종류의 인간이 등장합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 
하나는 교만한 사람 즉, 바벨론 사람들의 사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의인 즉,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사는 방식입니다. 하박국 2장은 두 가지 삶의 원리의 대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교만한 자의 삶의 원리와 그 결과입니다. 바벨론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예표하는 단어입니다. 창세기에서도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님을 대적했고 요한계시록에서도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기중심적인 세력을 말합니다. 하박국 2장에서는 이들을 두 가지 그림으로 묘사를 하고 있는데 

첫째, 그들은 교만합니다. 그런데 영어로 ‘proud’를 쓰지 않고 ‘puffed up’을 사용했습니다. ‘puffed up’은 풍선에 바람이 가득 들어갔음에도 계속해서 바람을 집어넣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바람을 넣다 보면 풍선이 부풀다가 결국 터집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가스통을 들고 다니면서 풍선에 바람을 넣어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면 바람을 많이 넣어서 터질까 불안합니다. 바람이 가득 들어간 풍선은 언제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둘째, 술 취한 사람입니다. “그는 술을 즐기며 궤휼하며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합 2:5). 술 취하면 주사를 부리는데 그중에서 그냥 누워서 자는 사람은 민폐를 끼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술만 마시면 가만히 있지를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불안합니다. 돌아다니면서 부딪치는 사람마다 시비를 걸고 잘못해서 개천에도 빠지고 전봇대에 부딪치기도 합니다. 바람이 가득 들어간 풍선, 술 취해서 돌아다니는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은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벨론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의 삶의 특징은 불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박국 2장은 바벨론 원리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다섯 가지 화를 예언합니다. 다섯 가지 화의 예언은 이들의 삶의 원리를 말하고 이 원리를 따를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제국주의적 원리입니다. “그는 술을 즐기며 궤휼하며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그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만국을 모으며 만민을 모으나니 그 무리가 다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며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곧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모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여” (합 2:5~6). 

바벨론 사람들은 남의 것을 빼앗습니다. 얼마나 많이 빼앗는지 무거운 짐이 될 때까지 빼앗습니다. 부유하게 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부가 자신에게 부담이 되고 짐이 된다면 그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을 채우는 것을 제국주의적 원리라고 합니다. 이들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느냐? “너를 물 자들이 홀연히 일어나지 않겠느냐 네가 그들에게 노략을 당하지 않겠느냐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이는 네가 사람의 피를 흘렸음이요 또 땅에, 성읍에, 그 안의 모든 거민에게 강포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리라” (합 2:7~8). 남의 것을 빼앗으며 살았지만 나중에는 남들에게 자신의 것을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자기방어의 원리입니다.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불의의 이를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합 2:9). 재앙을 피하기 위해 높은 곳에 살려고 하고 출세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됐는데 왜 국회의원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자기가 검사를 할 때 깡패를 많이 잡았었는데 그들이 자신을 협박했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협박받지 않기 위해서 국회의원이 됐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하느냐? 그것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권세를 가져서 남들이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잣집의 특징은 담이 엄청나게 높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담 위에 유리병을 깨뜨려 놓고 철조망도 쳐놓습니다. 

그런데 시골에 가보면 담이 없습니다. 농사지으러 가도 문을 활짝 열어놓습니다. 도둑이 와도 가져갈 것이 없으니까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재앙을 피하고자 높은 권세를 얻고 높은 곳에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권세와 집을 유지하기 위해 뇌물을 받아 챙긴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방어의 원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방어할 때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하박국 2장 10~11절에 나와 있습니다. “네가 여러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너로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 (합 2:10~11). 집에 들보와 돌을 엄청나게 쌓아놓았는데 그만 지진이 나서 들보와 돌이 무너지고 가정이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잔인성의 원리입니다. “피로 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합 2:12). 바벨론 사람들의 특징은 마을을 건설해도 피로 건설하고 성을 건설해도 불의로 건설한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피라미드를 어떻게 지었을지 생각해보십시오. 옛날에는 기중기도 없었고 굴착기도 없었는데 그 어마어마한 돌은 어떻게 날랐겠습니까? 노예들을 시켜 돌을 운반한 것입니다. 그러니 돌을 운반하다가 몇 명이 깔려 죽었겠으며 얼마나 다쳤겠습니까? 이것이 ‘잔인성의 원리’입니다. 

바벨론의 원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많은 노예의 목숨을 희생시키면서 성읍을 건설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의 결과는 어떻게 되느냐?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열국이 헛된 일로 곤비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음이 아니냐” (합 2:13). 성읍을 건설한 것이 다 불타버려 결국 헛된 일이 되고 결국 그것이 자신을 곤비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집을 크게 지어서 마당도 엄청나게 크고 잔디도 깔아놓으면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걸 관리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25평 아파트에 살면 청소하기도 간단하고 얼마나 간편합니까? 성읍을 높게 건설한 것 때문에 결국 자신이 곤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넷째, 방탕과 타락의 원리입니다. “이웃에게 술을 마시우되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그로 취케 하고 그 하체를 드러내려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합 2:15). 술만 먹으면 되지 왜 술만 먹으면 그 하체를 드러나게 합니까? 이렇게 방탕하고 타락한 자들은 남을 수치스럽게 한만큼 자신도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네게 영광이 아니요 수치가 가득한즉 너도 마시고 너의 할례 아니한 것을 드러내라 여호와의 오른손의 잔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라 더러운 욕이 네 영광을 가리우리라” (합 2:16). 
 
다섯째, 우상숭배의 원리입니다. “나무더러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더러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 (합 2:19). 나무나 돌을 깎아서 우상을 만들어 거기다 아무리 말해도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합 2:18). 말도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적 원리, 자기방어의 원리, 잔인성의 원리, 방탕과 타락의 원리, 우상숭배의 원리 이 다섯 가지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결국 패망하여 영원히 존재조차 찾을 수 없게 됩니다. 바벨론이라는 엄청난 제국도 메디아와 페르시아 연합군에 의해 B.C. 539년 완전히 멸망해서 지금은 사라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중심의 원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결국 멸망하고 지옥의 영원형벌을 받습니다. 이것을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의인의 삶의 원리와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교만하고 바벨론의 원리를 따르는 사람들과 대비되는 말씀이 하박국 2장 4절 후반에 나옵니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 이 말씀은 신약성경에 3번(갈라디아 3장 11절, 히브리서 10장 38절, 로마서 1장 17절) 인용됩니다. 
 
첫째, 이신득의의 원리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갈 3:11). 사도 바울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죄인이 의롭게 되는 방법은 오직 믿음 한 가지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99.999% 의롭고 0.001% 죄지었다고 해도 천국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처럼 천국은 완전한 의인만 들어갈 수 있는데 완전한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우리 죄인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에게는 의의 옷을 입혀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루터와 칼빈이 발견한 이신득의라는 위대한 진리입니다. 
 
둘째, 약속을 믿고 인내하는 원리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0:38). 히브리서에서는 악인이 승리하는 현실에도 좌절하거나 물러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악인은 결국은 패망하고 의인은 승리한다는 것을 믿고 좌절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믿음으로 인내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번 부흥회 때 강사님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천국이 있으니 지금 어려워도 버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인생이 시궁창에 거꾸로 박혀있는 상태라도 조금만 버티면 좋은 세상 온다는 것입니다. 
 
셋째, 일관성의 원리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일관성 있게 살아야 합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고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으면 우리의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가서 천국의 삼층천에 거하다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생명의 부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죽지 않는 몸, 썩지 않는 몸, 쇠하지 않는 몸, 추하지 않은 몸으로 부활해서 영생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하면 어디서 사느냐?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받아 그곳에서 영원히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번 부흥회 때 들었던 예화 중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렸는데 이 이야기만큼은 생각납니다. 어떤 사람이 1억 원을 빌려주고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강사님은 100만 원이라고 했지만 저는 1억 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사람이 1억 원을 빌려준 사람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해서 힘들어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로또 복권을 샀습니다. 그리고 1000억 원이 당첨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 사람이 1억 원 받지 못한 것을 신경 쓰겠습니까?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1억 원 갚지 않는 사람을 찾아가서 2억 원 줄 테니까 똑바로 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은 1000억 원 로또 복권과는 비교도 안 되게 좋은 것입니다. 이것을 약속받았으니 현세를 살아가는 동안 조금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러려니 하십시오. 또 누가 여러분들을 속이고 악을 행했는데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때도 그러려니 하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악인은 이기지 못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영원한 승리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Ⅱ. 의인이 믿어야 할 두 가지 약속 

하박국 선지자는 의인들이 믿어야 될 하나님의 두 가지 위대한 약속을 하박국 2장에서 말씀했습니다. 
 
첫째, 미래적인 약속입니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합 2:14). 언젠가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가득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동서남북을 보아도 갈대아 군대가 휩쓸고 다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 히틀러의 군대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 땅의 어떤 세력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세력이 하나님의 교회를 다 집어삼킬 만큼 커져도 결국 그들은 망하고 온 세상을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 시대에 점진적으로 실현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입니다. 이 땅을 누가 차지합니까? 온유한 자가 차지합니다. 의인들이 차지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차지하고 만복을 누리며 살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현재적인 약속입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합 2:20). 이 세상에서 악이 이기는 것 같고 하나님께서는 무관심한 것처럼 보여도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성전에서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잠시 승리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도 하나님께서 다 통치하고 계신 것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반대하고 데모하다가 끌려가서 맞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수님께 물어봤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랬더니 교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데모하다가 죽을 각오가 되어있으면 반대하고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라.” 그래서 저는 술만 마셨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그것이 제가 짊어질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다 알아서 진행하시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어떤 사건도 하나님의 주권과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건도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없고 무관심하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현재의 고난으로 너무 고민하지 말고 미래에 대해서도 불안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보좌에 앉으셔서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결론 

이 두 가지 약속을 받은 하박국은 위대한 확신을 보입니다. “선지자가 가로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를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 (합 1:12). 

우리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갈대아 군대가 와서 우리를 치더라도 우리는 죽지 않고 멸망하지도 않고 도리어 영원한 승리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죽질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납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영원한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런 믿음이 하박국 1장의 의문을 하박국 3장의 기쁨과 확신으로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론의 원리를 따라 살다가 영원히 멸망하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최후 승리와 영원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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