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광야의 기적(오병이어) (마 14:13-21)

첨부 1


광야의 기적(오병이어) (마 14:13-21)

한때 유대 백성들에게 메시야로까지 알려졌던 ‘민중의 목소리’ 세례 요한이 헤롯왕에 의해 목 베임을 당한 직후 예수님은 배를 타고 벳새다 쪽으로 건너가 빈들에 서셨습니다. 

빈들은 다른 말로 광야와 같습니다. 성경에는 빈들이라는 말이 10번, 광야는 무려 264회나 나옵니다. 그 옛날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40년이나 살아야 했던 곳이 사막 같은 광야였고, 예수님께서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렸을 때, 마귀에게 시험을 받고 이긴 곳도 광야였습니다.(마 4:1-2)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이 빈들에 모여든 것이 본문의 시작입니다. 세례 요한마저 죽어 버리자 그들은 목자 없는 양처럼 서글픈 무리가 되어 이곳에 찾아든 것입니다. 압제자들에게 시달리고 생활에 쪼들리고 가난에 찌들고 무거운 세금에 헐벗고, 오염된 환경 속에서 병들고 귀신들린 사람들... 그것은 바로 오늘날의 우리들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라는 이름에 그들의 서글픈 마지막 소망을 걸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아무 것도 없는 빈들에서 저녁식사 때를 맞이한 것입니다. 남자 장정들만 오천 명, 여자와 노인, 어린이까지 합한다면 족히 1만 명이 넘을 그 인원은 빈들에서 굶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른바 오병이어 사건이 발생합니다. 

떡 다섯 덩이(5병)와 물고기 두 마리(2어)를 가지고 그 많은 사람이 다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는 이 기적은 마가, 누가, 요한복음 등 4복음서에 다 등장합니다. 

초조해진 제자들이 그들을 돌려보내자고 제안했을 때 주님은 입을 열었습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그는 제자들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막 6:38). 안드레가 한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그 아이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요6:9). 예수님은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그 5병 2어를 가지사 하늘을 향하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습니다. 그것은 진정 감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떡 1인분의 무게를 2백 그램으로 치면 만명으로 계산하면 떡의 총 중량은 엄청납니다. 그렇다면 떡 5개가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그렇게 불어난 것일까요? 참으로 궁금한 대목입니다. 그것은 줄줄이 이어져 나왔습니까, 아니면 한꺼번에 뻥! 하고 팽창되었습니까? 4개의 복음서에 이 사실을 공통으로 기록해 놓은 네 기자들도 어떻게 그것이 불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습니다. 마가와 누가는 현장을 보지 못했으니 그렇다 치고, 어째서 현장에 있던 마태와 요한마저 그 신기한 장면을 기록해 놓지 않았던 것일까요? 

5병 2어의 기적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두고도 어떤 이는 아무도 가진 것을 내어놓지 않고 있다가 어떤 아이가 내어놓는 것을 보고 모두 내놓았다든가, 서로 양보하다보니 먹고도 남았다든가, 또 어떤 사람은 조금씩 먹었지만 은혜가 충만하여 배가 불렀다고 나름대로 해석을 하는데 아무리 그렇게 설명을 하더라도 먹고 남은 ‘열두 바구니’에 대해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혹 1백씩, 혹 50씩 앉게 하셨다(막 6:40)고 적혀있고, 누가복음에는 아예 50명씩 앉히셨다고 숫자를 단일화하고 있습니다(눅 9:14). 

무리를 이렇게 앉히려면 엄청 넓은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무리들을 앉히신 다음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었습니다. 

마가복음(6:41)과 누가복음은 이 대목에서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셨다’고 쓰고 있습니다. 제자는 12명이고 떡은 다섯 개이니 제자들은 반개도 못되는 작은 조각을 받아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무리들 앞에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무리 앞에 놓인 그 떡 조각 하나가 제대로 보였을 리도 없습니다. 어쨌든 제자들은 2백 개의 팀 중, 겨우 12팀 가운데 떡 조각을 놓아두고 다시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손에는 아직도 떼던 떡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또 떡을 떼고, 제자들은 다시 다른 팀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200팀에 떡과 물고기를 다 배달한 제자들은 숨이 차서 헐떡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떡과 물고기가 불어났는지 생각할 여유도, 볼 겨를도 없었습니다. 떡과 물고기를 다 날라주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리들을 둘러보는 제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합작품으로 이룩한 ‘은혜의 바다’, 바로 빈들의 큰 회식 모습에 감탄하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 

빈들에서 펼쳐진 이 기적을 통하여 오늘도 주님은 우리들이 처해 있는 이 세상의 빈들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흔히들 이 세상을 광야 같은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는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빈들에 서 있습니까?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오늘 이 복음을 듣고 지켜야 합니다. 

빈들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무리들이 먹을 것을 사도록 마을로 보내기를 아뢰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라고 했을 때, 주님은 두 번째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너라.”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은 주님의 축사에 의하여 일어났습니다. 

빈들에 나온 사람들에게 주님은 무어라고 하십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아니, 우리가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어떻게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입니까? 난감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물어보십니다.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 물음에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최소한 5병 2어는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5병 2어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너라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5병 2어를 아뢰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너라.” 

이 명령에 순종하면 우리 주님은 이것을 30배, 60배, 백 배, 아니 오늘 본문처럼 천 배, 만 배로 불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오병이어를 떠올려봅시다. 물론 오병이어보다 엄청나게 큰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 받은 은혜요, 은사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일반은혜가 있고 특별은혜가 있습니다. 일반은혜란 이렇게 햇빛과 물과 공기, 우리의 국가라는 큰 사회, 부부, 가정, 교육, 자녀, 취업 등 범사회적으로 누리는 은혜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를 씻고 구원과 영생의 반열에 드는 것이 특별은혜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어보시는 것은, ‘너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냐? 일반은총이냐, 특별은총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지닌 은사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고전 7:7)” 그리고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다(고전 12:4)”고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9절에서는,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셨으며, 12장 30절에서는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고 하십니다.

내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주님께로 가져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서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선한 청지기로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 

오래 전 개봉동의 한 집사는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기도하고 안찰하면 병원에서도 어렵던 환자들이 낫곤 하였습니다. 그의 집에는 차츰 몸이 아픈 신자들, 비신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만성병에서 고침 받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사례비와 예물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한 집사는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안찰하는 동안 자기에게만 특별한 치유 은사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차츰 담임목사님을 멀리 하게 되었고 예배도 소홀히 하였습니다. 그렇게 잘나가던 한 집사의 기도는 백날이 못 되어 효력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기도와 안찰을 열심히 받아도 병이 낫지 않으므로 한 집사네로 찾아가는 사람들이 없어졌습니다. 

모든 은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있습니다. 주님이 머리되신 교회를 위하여 가진 은사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네가 가진 떡과 물고기가 무엇이냐?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너라.” 우리가 가진 은사와 재물과 재능과 시간은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써야 합니다.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롬 15:6)” 고린도전서 6장 20절에서는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산 것이라고 명백히 말씀하십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한 집사가 만일 교회에 가서 담임목사님과 함께 기도하면서 치유의 은사를 발휘했다면 얼마나 더 큰 사역을 했겠으며, 얼마나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드렸겠는가 생각할 때 참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은사는 있습니다. 은사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속담이 다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 우리는 이것을 주님께로 가져갑시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합시다. 그러면 주님은 이것을 가져다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 같이 써 주실 것입니다. 


빈들에서 받은 복음을 다시 생각합시다. 

빈들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작은 떡 조각을 받아든 제자들의 느낌은 그 보잘것없는 시작에 실망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언제나 그렇게 보잘 것 없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부 출신 제자 몇으로 시작된 복음 사역이 차츰 엄청난 숫자의 믿는 자를 내었고 그 복음이 지금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엄청난 기적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옵니다. 쌀의 결실이나 나무의 자람을 볼 수 없듯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보이지 않는 동안에 더 크게 밀려오는 법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빈들에 서 있습니까? ‘네게 있는 것을 내게로 가져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은사와 재능과 시간과 재물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실하게 사용합시다. 요즘 '재능기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심 바랍니다.

우리 모두 21세기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큰 영광 주님께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