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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소망, 주께 있습니다 (시 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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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망, 주께 있습니다 (시 39:1-7)


지난 토요일 군대 생활 3년, 그리고 광산에서 3년, 그리고 요양원에서 7개월을 뺀 50년을 함께 모시고 살던 어머님을 하늘나라로 보내 드렸습니다. 이 땅에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품에 영원히 안긴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런면에서 어머님은 정말 행복한 인생을 사신 분입니다. 그러나 어머님이 걸어오신 그 삶의 길이는 야곱이 바로에게 고백한 것처럼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험악한 세월'이라는 말은 한 마디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일제의 강정기에 태어나서 온갖 고통을 당했고, 해방이란 엄청난 감격도 누려보셨지만, 6.25전쟁, 그리고 마디마디 세월 속에 정말 견디기 힘든 풍상의 세월을 겪으신 어머니였습니다. 그런 어머님을 효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불효자인 저였기에 막상 떠내 보내고 나니 어머니가 머물렀던 자리 자리가 생각이 나서 참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장례식에 보여주신 장로님들, 그리고 성도 여러분들과 모든 교역자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 시편 39편은 다윗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아마도 그의 나이가 50중반이나 60대 정도로 보입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절을 보면 그가 지금 병상에 누워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없어지기 전에, 내가 죽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켜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파란만장한 삶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의 삶은 기쁨과 슬픔, 승리와 실패가 교차된 적인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어린 시절 그는 목동으로서 하프를 옆에 기고 하나님과 교제했던 시인과도 같았고, 그러면서도 용맹은 또 얼마나 뛰어난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벌벌 떨게 했던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물맷돌 하나를 들고 거인 골리앗을 단숨에 넘어뜨리는 승리를 맛보았으니까요... 그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 왕을 가리켜 천천이요, 다윗을 가리켜 만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때부터 다윗은 사울 왕의 미움을 사서 원치 않는 파난 길에 올라야만 했고, 한때라고 생각을 했던 망명의 길이 십수년을 광야에서 보내지 않았습니까? 천신만고 끝에 왕이 된 후에는 약40여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그가 왕이 된 후 부귀영화도 있었지만, 모든 인생이 그렇듯이 여전히 고난과 시련도 있었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표현해서 인생의 밑바닥에서부터 최고 정상까지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다가 이제 늙고 병들어 임종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그는 눈앞에 닥쳐온 죽음 앞에 마음이 울컥 하며 인생의 진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인생의 모든 고초를 이기고 왕이 되어 나라를 강국으로 건설했지만, 자신의 질병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무능력과 초라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이게 바로 인생의 진실이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이 깨달은 인생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인생무상’입니다. 5절을 봅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여기서 한 뼘 길이란 최소의 길이 단위인데, 엄지를 뺀 네 손가락의 길이로 약7.5cm쯤 됩니다. 하도 짧아서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없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한 때는 자기 앞에 숨소리 한번 내지 못하는 자들이 이젠 ?없이 자기를 비웃고, 함부로 대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이는 들고 몸은 병들어 대응할 형편이 안 되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이러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동시에 '내가 왜 이렇게 되었지?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가 왜 이 모양이 되었지?' 하고 자기도 모르게 화가 목에까지 치밀었습니다. 이게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제 나이 정도만 되어도 인생이 손 넓이만큼 짧구나 하는 것을 실감합니다. 

한 생을 돌아보면 성경 말씀이 얼마나 진리인가를 소름이 끼칠 정도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울고 있던 어린 시절에는 시간이 마��기어가는 것처럼 천천히 가더라. 그런데 내가 꿈을 꾸며 이야기하던 소년 시절에는 시간이 빠른 걸음처럼 지나가더라. 내가 청년이 되어 젊음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때에는 시간이 마치 뛰어가는 것처럼 지나가더라. 내가 장년이 되어 힘과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뛸 때에 시간은 마치 구름처럼 날라가더라. 

이제 내 머리에 흰 서리가 앉고 노인이 되자 시간이 이미 나에게서 지나가버린 것을 알았다. 그래서 60이 넘자 1년이 새롭고, 70이 넘자 1달이 새롭고, 80이 넘자 하루하루가 새롭도다." 참 묘한 말 같이 여겨지지만 이것이 진리입니다. 아직 젊은이들은 실감이 안 나겠지만 결혼 생활을 10년, 20년 하신 분은 다 실감이 날 것입니다. 인생이 다 그런 것입니다.  

더욱이 오늘 말씀 가운데서 5절 중간을 보면 묘한 뉘앙스를 줍니다.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 누구에게나 든든하게 서 있는 것 같이 늙지도 않고, 실패하지도 않고, 잘못되지도 않을 것 같은 전성기가 있습니다. 그 때가 든든히 선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청춘을 자랑하는 때일 수도 있습니다. 건강을 과시할 때일 수도 있습니다. 성공하여 명성을 떨칠 때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이런 때가 한번은 있습니다. 

그런 때에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 영원한 유산을 남기고 싶어하는 욕망을 갖습니다. 죽은 후에 사람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라고, 두고두고 자기의 업적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전성기조차 별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생은 모두가 허사라는 겁니다. 여기서 ‘허사’라는 말은 원문을 보면 히브리어로 ‘헤벨’(lb,h)인데, ‘입김’ 혹은 ‘호흡’(breath)이란 뜻입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젊다고 건강하다고 뭐가 좀 있다고 큰소리칠 게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목회를 하다 보니까, 외람된 말씀이지만 나이에 비해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특히 병원을 자주 가고(제가 아파서 가는 것보다 성도들 심방하느라), 장례식장이나 묘지 혹은 화장터를 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 인생이 얼마나 무상한지 절감하게 됩니다. 한번은 성도 중 한 분이 병이 위중하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병원에 급시 달려가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직원들이 와서 흰 천을 엎더니 황급히 영안실로 인도합니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착잡한지 몰랐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있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슬펐습니다. 그런데 바로 아래층 응급실로 환자가 실려 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나가고 산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으로 들어오고 ... 또 화장장에 가 보면 영구차가 수시로 들어옵니다. 영정의 주인공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인생은 바로 이런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인생이 너무 가엽습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인생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그럴수록 인생을 지혜롭게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는 역설적인 사실입니다. 이렇게 짧고 이렇게 아까운 인생이 바로 나의 인생이기에 엄벙덤벙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①. 그러면 이렇게 덧없는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과연 지혜로운 인생의 자세일까요? 나그네 인생임을 의식하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가치를 추구해야 됩니다. 다윗은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회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남은 생애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4절.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자신의 인생이 언제 끝날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싶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게 해달라는 겁니다. 결국 무슨 말입니까? 인생을 마칠 때를 잊지 말고 기억하게 해 달라는 기원입니다. 그는 이어서 12절(중) 보니까 이렇게 고백합니다. “ ...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인생은 떠도는 나그네라는 겁니다. 조상들만 그런 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모든 인생도 그렇다는 겁니다. 다행히 하나님과 함께 하기에 천국의 소망이 있지만 어쨌든 이 세상에서의 삶은 흘러가는 나그네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이 엄연한 사실을 잊지 말게 해 달라는 겁니다. 세상에서 천년만년 사는 것처럼 착각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겁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인생을 다 이렇습니다. 남은 날을 계수 할 줄 압니다. 그래야 남은 날을 진지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마라톤 경주자와 같습니다. 풀코스 42.195 km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남은 코스를 헤아리며 작전을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모세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시90:10-12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남은 날을 계수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말로 하면 ‘카운트다운’하는 겁니다. 로켓을 발사할 때 수를 세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텐, 나인, 에잇, 세븐, ... 쓰리, 투, 원, 제로!” 이렇게 떠날 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세상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② 최선의 삶 : 나그네 의식이 없으면 일상에 파묻혀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그네 의식을 갖고 인생의 카운트다운을 하는 사람은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합니다. 다윗은 그렇지 못한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신랄하게 지적합니다. 6절 보세요.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 하나이다”‘그림자’는 원문에 보면, 히브리어로 ‘첼렘’인데, ‘허상’‘환상’이란 뜻입니다. 무언가 하면서 동분서주하지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재물을 쌓아놓고도 못 쓰고 간다는 겁니다. 돈은 내가 죽어라 벌어서 모아 놓았는데 정작 그 재물의 주인은 누가 될지 모른다는 말이 아닙니까?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 중 하나입니다. 돈을 버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돈을 모으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돈을 모으는 것은 좋으나 거기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음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돈은 모으면 모을수록 마음이 계속 거기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취약점은 일단 내 손에 들어오면 내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내 손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아 그렇게 열심히 벌어 놓은 돈을 보람되게 한번 쓰지 못하고 다 놔두고 가버립니다. 결국 자식들에게 그 돈을 다 줘서 자식도 별볼일 없게 만들거니와 3년, 5년도 채 안되어 그 돈이 누구에게 가버렸는지 모르는 허황된 인생을 살고 끝냅니다. 다윗이 살던 시대에도, 오늘 우리 시대에서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돈에 마음을 빼앗겨선 안되며, 돈이 영원히 내 것인 것처럼 착각해도 안 됩니다. 돈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후에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합니다. 

저는 요즘 학 1:6의 말씀이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옛날 시골에서 우물물을 긷는 두레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통은 값싼 양철로 두레박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물을 잘 길을 수 있지만 오래 쓰다보면 양철로 만든 두레박은 우물 벽 여기저기에 부딪혀서 찌그러집니다. 그리고 두레박 밑은 녹이 슬어서 구멍도 생깁니다. 이런 구멍 뚫린 두레박을 가지고 물을 길으면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는 물이 가득 담겼지만, 올라오면서 다 새 버리고 올려보면 물이 밑바닥에 조금만 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황무한 삶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구멍 뚫린 전대와 같습니다. 구멍 뚫어진 두레박과 같습니다. 만복의 근원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아니하시면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부자가 있습니다. 하늘나라를 위해서 하늘에 쌓아둔, 하늘에 많이 쌓아둔 그런 부자가 있는가 하면 땅에다가 쌓아두고 쌓아둘 수 있는 줄 알고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아주 망가져 버리는 인간이 있어요. 

이제 다윗은 고백합니다. 7절입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여기 ‘바란다’라는 말은 ‘소원한다’‘소망을 가진다’‘갈급한 마음으로 갈망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한때 그 역시 세상의 것에 눈을 돌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시선은 자신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주님께 모두워졌습니다. - 

그렇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덧없는 인생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다윗처럼 세상을 향하던 데서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보되, 내 입장에서 보지 않고 하나님 편에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인생의 초점을 인생에 맞추지 않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영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10:28절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1:25-26절에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아-멘 우리가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덧없는 한 생이 영원과 연결되면 그 영원 속에서 우리의 덧없는 인생은 산소망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헨리 C.모리슨이라는 아프리카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영적인 불모지와 같은 아프리카에서 선교 사역을 하는 동안 건강을 잃고 가족을 잃기도 하고 이젠 늙은 선교사가 되어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타고 돌아오던 배에는 아프리카의 한 국가를 방문 후 코끼리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데오도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뉴욕 항구로 입항하고 대통령이 내리자, 붉은 레드 카펫이 깔리고 군악대의 팡파레 소리로 대통령을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 일행이 항구를 빠져 나간후 모리슨 선교사가 항구의 출구로 나서자 레드 카펫도 없었고 군악대의 팡파레 소리도 멎은 후였고 그를 마중 나온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선교사는 저녁 노을 진 하늘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답니다. “주님, 이것이 40년간 아프리카에서 저의 청춘을, 저의 건강을, 그리고 저의 일생을 바친 결과란 말입니까?” 그때 그는 저녁노을 사이로 말씀하시는 조용한 한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헨리야,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에 오지 않았단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레드 카펫이 아닌 황금의 유리길로 군악대가 아닌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내가 너를 마중 나오마”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직 고향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고 나에게 맡겨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의 길을 가야하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끝까지 붙잡을 수 없는 일과 결코 놓칠 수 없는 일입니다. 대 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붙잡을 수 없는 일에 인생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명예도, 부도, 명성도, 성공도, 다 끝까지 붙잡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설령 내가 그것을 누렸다 할찌라도 바닷물을 들이키듯 갈증만 더 날 뿐입니다. 그러나 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내 인생을 붙잡고 계신 주님입니다. 젊음은 지나갑니다. 명예도 지나갑니다. 인간적인 야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주 앞에 마지막에 순결하게 서기 위해,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으로 주 앞에서는 놓칠 수 없는 마지막 영광을 위해 세상 적인 잣대를 포기하는 자, 그는 어리석은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 인생의 중간 결산인 게 다행입니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기에 감사합니다. 바울은 한번 뿐인 인생을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과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저와 여러분도 남은 인생 여정 가운데 가장 소중한 믿음 지키고, 주어진 사명 충성스럽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천국영생과 상급을 확신하면서 당당히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광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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