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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사밧의 기도(3) (대하 20: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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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의 기도(3) (대하 20:14-19)


우리교회는 지난 3월 18일부터 4월 7일까지 봄철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를 진행합니다.
이번 봄철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를 독려하기 위하여 여호사밧의 기도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여호사밧의 기도의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잠간 복습하겠습니다.
역대하 20:12절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려나니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한 나라의 군주의 기도가 이렇게 절절할 수가 있습니까?

1)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12절)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라는 기도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를 들어주셔야 되지 않습니까?’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이 아닙니까?
여호사밧은 자신의 유익뿐만 아니라 자신과 하나로 엮여진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기도를 들어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저가 망하는 것은 좋아요. 죽기 밖에 더 하겠습니까? 죽으면 천국 가면 되지요. 그러나 저가 망하면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이 기도를 들어주세요.”

2)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12절)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여호사밧은 자기에게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여호사밧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무지하다고 아뢰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무엇이 최선인지 알지 못합니다.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식탁위에 팔을 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3)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12절)

여호사밧은 ‘오직 주만 바라본다.’고 기도를 드립니다.
병원에서 다시 정밀검사를 받아보자고 합니다.
검사결과 악성종양이라고 합니다.
수술날짜가 잡힙니다. 
그러나 수술 예후가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나의 하나님이여, 나는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여러분은 똑같은 죄를 하나님께 또 다시 자백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겨내리라, 등을 돌리리라, 다시는 빠져들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또 결심했지만 여지없이 무너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나의 하나님이여, 나는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마침내 올 것이 왔습니다.
그놈의 신용카드를 분질러버리겠다고 결심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씀씀이를 줄여보겠다고, 헤픈 생활습관을 바꿔보겠다고 마음을 다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빚더미에 처참하게 깔려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나의 하나님이여, 나는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오늘의 말씀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자신의 무능과 무지를 인정했고, 하나님의 개입을 요구하며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이제 기다림만 있을 뿐입니다.
기도한 후 여호사밧은 어떤 자세를 가졌나요?
여호사밧의 기도 후의 마음가짐을 묵상하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대하20:15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여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기도의 응답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한 다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 응답을 바란다면 필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해야 합니다.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선포된 말씀, 성경을 읽을 때 주어지는 기록된 말씀에 민감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3:16)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바로 그 자체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충만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된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전달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함이라.”(딤후3:16-17)

2. 하나님 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하20:15절 “........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사실 이 말씀은 말하기는 쉬울지 모르나 실제로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능력을 훨씬 넘는 엄청난 문제에 부딪혀서 어떻게 낙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에 보면 그들이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아야 할 근거가 있습니다.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대하20:15)”
숨도 쉴 수 없도록 무겁게 짓누르는 답답한 환경이 우리의 손에 따라 자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자지우지 된다는 사실입니다.

시46편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인간이 경험하는 상황 중에서 이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어디 있겠습니까?
수만 명의 인명 손실을 가져온 일본의 쓰나미를, 중국 쓰촨성의 지진을, 인도의 해일을 묘사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며 힘이시고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한 후에는 하나님 안에 우리의 마음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게 됩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행동했습니다.

역대하20;17절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하셨느니라 하매”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에게 그들을 맞서 나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여호사밧은 전쟁을 준비해야 했으며, 적들을 향해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가 행동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행동을 배제하는 것도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학생이 기도했다고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게 말이 됩니까?
기도는 행동을 대체하는 것도, 행동을 배제하는 것도 아닙니다.

구약성경 중에 느헤미야서가 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호사밧 때와 마찬가지로 원수들의 으르렁거리는 도전과 반대에 직면한 상태였습니다.
느헤미야서는 기도로 가득한 책입니다.

1장의 감동적인 뉘우침의 기도로 시작하여, 2장에서 느헤미야가 왕 앞에서 이야기하면서 즉석에서 드린 기도를 거쳐, 이스라엘 역사를 짚어가는 9장 전체의 언약의 기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기도로 가득한 책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서는 행동으로 가득한 책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행동을 유발합니다.
느4:9절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느헤미야는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기도합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그리고 행동합시다.

4.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제 그들에게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에 그들은 들로 나가고, 그때 여호사밧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습니다.
대하20:20절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그들은 이제 원수들과 대결하기 위해 행진할 것입니다.
믿음의 발을 내딛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고, 행동할 것이고, 결과를 기대할 것이고, 순종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믿음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원수와 대결하려 나갔다가 혹시라도 패배하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기도를 한 뒤에 우리를 향하여 달려오는 위기 상황과 맞서기 위해 나갔는데 오히려 흠씬 두드려 맞고 넘어지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본분은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 때의 일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자신의 광대한 제국의 신민은 누구든지 자신이 만든 우상에게 절해야 한다는 조서를 반포합니다.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단3:6)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우상에게 절할 수 없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격노했습니다.
왕이 심문했습니다.
그 때 세 청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단3:16-18절 “느브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요점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으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건져주시느냐 않느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달린 일이다. 우리는 그의 뜻을 따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항상 선하고,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이태형기자가 쓴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글을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996년 1월 어느 날, 남편은 들고 있던 테니스 채를 갑자기 떨어뜨렸다. 
커피 잔을 놓치기 시작했다. 
몸이 축 늘어졌다. 
이상했다. 
종교개혁 전문가인 남편이 박사논문을 마치기 8개월 전의 일이다. 
‘목 디스크 아닐까’ 생각하며 병원에 갔다. 
근위축증. 불치병이란다. 

청천벽력. 남편 정태두 박사가 본격적인 투병 활동을 시작하면서 정정숙 박사와 1남1녀는 ‘중증 환자 가족의 삶’을 살아야 했다. 
첫째 아들이 8세, 둘째 딸이 2세 때 부터 남편은 침대에서 누워 지냈다. 가족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매일 가정예배를 드렸다. 
가족 오락시간을 가졌다. 
각자가 매일 감사 일기를 썼다. 
이들 가족의 칠판과 벽에는 감사가 적힌 내용물로 그득했다. 
감사는 거창하지 않았다. 

남편은 “그제는 밤새 스무 번 깨었는데 어제 밤에는 열 번 밖에 일어나지 않아 감사합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환경은 열악했지만 웃음꽃이 피었다. 
중증 환자의 집에서 행복의 냄새가 났다. 
투병하면서 남편은 ‘천국 들어갈 때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다. 
남편은 늘 “죽을 때를 알려달라.” 기도했다. 
삶을 정리할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2003년 4월에 죽는 꿈을 꾼 남편은 영원한 이별을 준비했다. 

몸이 급격히 나빠졌다. 
그해 5월1일부터 남편은 유언 편지를 썼다. 
남편이 구술한 것을 부인이 대필했다. 
죽기 전 마지막 8일간 관계를 정리했다. 
자녀를 불러 용서를 빌고 축복했다. 

“얘들아, 멋지게 살다가 멋지게 천국서 만나자. 아빠는 천국의 삶이 정말 기대가 된단다. 천국에서 너희들을 지켜보고 기도할게.”아들에게 용서를 빌고 이후 딸에게 말했다.
“재인아, 혹시 아빠 때문에 속상하고 화난 일 있으면 말해줄래? 사과하고 싶어.” 
재인이 눈물 흘리며 말했다. 

“사실 나는 아빠 때문에 너무 화 난적이 많았어. 중요한 순간에 아빠는 언제나 없었지. 한 번도 소프트볼 경기에 응원 오지 않은 아빠를 원망하기도 했어.” 
“아빠는 너무나 그곳에 가고 싶었지만 아파서 못 갔단다. 대신 언제나 너를 위해 기도했어. 그러나 너무나 미안하다. 용서해주렴.” 온 가족이 펑펑 울었다. 
3일 후 정태두 박사는 영원한 하늘나라로 떠났다. 향년 46세. 재인이는 지난해 하버드 대학교 국제정치학과에 입학했다.

‘아빠의 사랑’이란 주제로 에세이를 썼다. 
하버드 입학 사정관이 재인에게 편지를 썼다. 
“너는 정말 좋은 아빠를 뒀더구나.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너는 어떻게 이 많은 성취를 할 수 있었니? 너를 꼭 우리 학교에 데려오고 싶구나. 너의 꿈이 이뤄지도록 우리가 도와주고 싶단다.” 
그것은 아빠의 선물이었다. 
하나님은 절대 선하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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