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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담대하라 (요 16: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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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하라 (요 16:25-33)


최형선의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라는 책에 보면 "낙타는 위기를 맞으면 술수를 쓰지 않고 도전한다. 정공법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다. 땡볕에 쉴 그늘도 없을 때 낙타는 오히려 얼굴을 햇볕 쪽으로 마주 향한다. 햇볕을 피하려 등을 돌리면 몸통의 넓은 부위가 뜨거워지지만 마주 보면 얼굴은 햇볕을 받더라도 몸통 부위에는 그늘이 만들어져서 어려움은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낙타가 정말 이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도 이따금 사막같은 세상을 헤맵때가 있습니다. 모래는 뜨겁고 땡볕은 더 뜨겁습니다. 몸을 돌려 땡볕을 피하느냐, 아니면 낙타처럼 정면으로 땡볕에 맞서느냐, 선택의 기로입니다. 그러나 정면으로 도전하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피하면 오히려 죽음이 닥치고 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제자들에게 닥쳐올 미래의 일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환란을 당하나 담대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격려하시면서 주신 말씀이 되겠습니다. 

주님은 담대한 그리스도인들을 원하십니다. 
옛날 주님이 사시던 시대와 지금의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많이 다릅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다를 것이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싸워야 하는 환경과 그런 환경을 대하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인생은 부득불, 원치 않지만 우리는 싸워가며 살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숙명적 존재입니다. 자연과도 싸워야 하고, 타인과도 싸워야 하고, 자기 자신과도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우리들은 영적 싸움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옛날 사람이나 지금의 사람이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싸움은 결국 마음의 문제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과 동시대의 사람들도 어떤 사람은 담대한 사람이 있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어떤 사람은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하므로서 세상을 이기고 죄악을 멀리하고 타협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도 있고 그렇지 않고 마음이 약하고 여러서 적당하게 타협하고 불의를 행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이지만 하나나님은 멀고 세상은 가까워 보이기 때문에 그냥 세상을 좇아가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지만 담대해야 합니다. 33절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환난을 당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예수님도 많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환난이 없어야 하는데 환난을 당하셨습니다. 바울도 많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환난을 모두가 당하면서 환난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세상을 이기시고 환난을 이기시면서 우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땅에서 환난을 당할 때 그 환난을 이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바로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담대한 사람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합니다. 

먼저 환난을 당할 때 환난을 이기는 시작은 담대해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삶은 담대함입니다. 전투에서의 승패는 전투 시작하기 전에 결정 납니다. 담대함을 갖는 쪽은 승리하고, 두려움을 갖는 쪽은 패배합니다. 승리하는 총사령관은 군인들의 사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공격합니다. 담대함이 없는 상태에서 전투를 감행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담대함은 승패와 직결됩니다.
  
인생에게 어떤 환난이 찾아오든 먼저 그 환난을 담대한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환난을 당할 때 먼저 그 환난을 바라보면 안됩니다.환난을 당할 때 환난으로 되어질 안좋은 결과들을 먼저 생각하고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환난 앞에서 환경을 바라보면 우리는 실패합니다. 나를 바라보면 약해집니다.

담대하라는 말은 '즐거워  하라' '용기를 가져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란을 만날 때 즐거워하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약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하셨습니다. 환란과 시험을 이기는 비결은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환란 중에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인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그리스도인은 기도의 문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26절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제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다는 말이요 하나님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으시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기도의 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연결되었다는 말입니다.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들이었기 때문에 기도의 줄이 끊어져서 아무리 기도를 해도 등답되지 않았는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져 주시므로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하나님꼐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다니엘은 기도의 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사자굴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열려진 사자굴보다는 예루살렘으로 열린 기도의 창문이 닫치는 것을 더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 옆에 실내화를 챙겨 놓고 그 안에 열쇠를 넣어 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신발을 신으려면 그 열쇠가 발밑에 걸린답니다. 그러면 그는 열쇠를 꺼내들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내 앞에 잠긴 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잠긴 문이 나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내게는 그 잠긴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한답니다. "하나님, 제가 오늘 하루를 살아 가다가 제 앞의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일 때, 저로 하여금 좌절감을 느끼지 말게 하시고 모든 난관을 헤치고 닫힌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

둘째로, 하나님이 친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27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간접적인 사랑도 아니고 몰래한 사랑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개입하셔서 날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요일4: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했습니다. 
두려움 자체가 형벌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불순종의 죄를 짓고 제일 먼저 느낀 것이 무엇이었습니다. 두려워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좇는 줄로 믿습니다. 

셋째,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성삼위일체로 함께계셨습니다. 위기의 순간, 죽음이 눈 앞에 닥쳐온 그 때에도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의 체포와 고난, 죽음 앞에서 자신을 버리고 뿔뿔히 흩어질 것을 미리 아셨으며, 혼자 남겨질 것을 아셨지만 제자들을 비난하거나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아니하셨으며 배신감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실패 이후 흩어질 제자들을 위로 하십니다. 죄책감에 시달려서 자신을 파괴하고 낙심치 않도록 격려해주십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제자들의 배반에도 이런 반을 보이실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절대 고독한 시간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확신으로 인해서 예수님께서는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완전한 평화는 없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혼자둠을 당하는 것, 배반을 당하는 것 쯤 한번 당해보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크던 작던,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든지 멀리 있는 사람에게든지 이런 일은 다 겪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다반사고 다 그런가다라고 하지만 괴롭고 힘든 경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을 하신 결정적인 이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께서 이렇게 담대하라고 말씀하시고 그렇게 담대할 수 있는 이유들까지 알려주신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담대하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평안은 담대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고 평안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담대하면 평안이 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불순종하면 두려움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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