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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감옥에서 승리하려면 (창 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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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감옥에서 승리하려면 (창 40:1-8)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하노이 힐턴’ 전쟁포로 수용소에는 미군 장교 중에서도 짐 스톡데일(Jim Stockdale)이라는 최고의 장교가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1965년부터 1974년까지 무려 8년 동안 포로로 갇혀서 20여 차례 이상 되는 극심한 고문을 견디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용소의 다른 포로들이 고문을 잘 견디고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석방되고 난 후 해군 역사상 최초로, 조종사 기장과 의회명예훈장을 동시에 다는 삼성 장군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어떻게 어려운 포로 생활을 견딜 수 있었는지 질문했습니다. 또 다른 포로들이 함께 끝까지 견딜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왔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장군은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어려움을 만날 때, 난관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불가피한 난관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눈앞에 닥친 어려움보다도 더 극한 상황이 다가올 수 있는 것이 현실임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아무리 어려워도 결국은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난관을 이겨낼 나름대로의 원칙을 개발해서 그대로 현실을 직시해 나갈 때 이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한마디 덧붙입니다.

같은 포로수용소에 있던 사람들 중에 죽어나간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낙관론자였다고 합니다. ‘이번 성탄절 날 석방될 거야.’ 성탄절이 지나면 ‘이번 부활절에는 석방 될 거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그러나 거듭 좌절을 경험하고 난 후 결국은 상심해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군은 자신의 부하들이 부활절날 석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는 그보다 더 혹독한 어려움을 만난다 할지라도 견딜 수 있도록 격려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고문을 잘 견디는 법’을 나누었고, 포로들을 철저하게 격리해 놓은 수용소에서 특별히 만든 신호체계로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하여 서로를 격려하며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독려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을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요셉의 어머니는 동생 베냐민을 낳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요셉은 계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이를 시기하는 형들은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았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그나마 좀 나은 위치에 적응하려고 보니, 또다시 불필요한 모함을 받아서 감옥에 갇히는 죄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요셉은 인정받았습니다. 감옥에서 생활하던 중 왕의 수중을 들던 높은 관리의 꿈을 해석해줌으로써 그들 석방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게 됩니다만, 복직된 관리들은 2년간이나 요셉이 도와주었던 일을 잊습니다. 그가 자신의 석방을 위해 도와주리라 기대했지만, 무려 2년이라는 기간동안 그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어두운 감옥 속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이라는 것이 결코 만만치가 않습니다. 우리는 ‘이번만 지나가면 괜찮을 거야.’, ‘이번 한번만 지나가면 뭔가 달라질 거야.’하며, 스스로에게 거짓 희망을 만들어 줍니다. 또 말씀을 들으면서 억지로 그 말씀에 의미부여를 하고는 ‘저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야.’라며 자기 자신을 달래기도 합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고 희망이 바닥나면 우리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 

오늘 그런 식으로 무의미하고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우리 가운데 계십니까? ‘내 인생에 엄밀하게 말해서 희망은 없어. 그저 못 죽고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야.’라고 생각하며 예배드리는 분이 계십니까? 이대로 인생이 끝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 어려움, 고난, 역경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계십니까? 지금보다 더 큰 어려움이 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견디시겠습니까?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었던 요셉의 비결이 무엇일까요? 감옥에서 고난을 이겨내는 삶의 원칙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삶의 원칙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요셉은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시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고통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놓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최우선으로 두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과 관련되어 나오는 사건의 처음과 나중에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구절과 ‘형통케 하셨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창세기 39장 2절, 3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주는 유혹을 물리치고 대신 누명을 뒤집어써서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39장 21절에서 23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합니다. 

요셉은 철저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 순위로 두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말합니다. “요셉 아무도 보지 않아요.” “당신은 고향으로 돌아 가야해요. 당신이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줄 테니 나와 함께 하루 밤을 같이 보내요.”하며 유혹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요셉이 대답합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즉, “보디발의 아내여! 당신은 지금 아무도 없다고 말하지만, 내 인생을 지금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지켜오셨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잠시 잠깐 육체의 낙을 누리기 위해, 편안함 위해 그리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깰 수는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 우선순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요셉은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신의 인생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습니다. 

요셉이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았을 때, 성경은 요셉의 삶에 대해 ‘형통했다’고 말합니다. 형통한 삶이라 하면 우리 편에서 모든 일이 술술 다 풀리고 원하는 대로 다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렸습니다. 또 오랫동안 감옥에 갇혔습니다. 자기편에서 볼 때, 점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고 희망이 없었고 소망이 없었지만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을 총리대신으로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형통하다고 말합니다. 

요셉은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해 올 때 잘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당시 20대 초반의 청년이었습니다. 여인의 성적 유혹을 이기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보디발의 아내가 제시하는 방법이 옳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유혹을 선택하지 않았고 요셉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생명 길로 갈 수 있었습니다. 

분별력과 능력이 어디서부터 나옵니까?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실족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은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 명쾌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곤고할 때,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이길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십니다. 


둘째로 요셉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날마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요셉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미래가 없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보십시오. 그는 팔려와 노예로 있었습니다. 그러다 조금 형편이 나아지려 하니 다시 감옥에 갇힙니다. 감옥에서도 기회는 있었으나 그마저 좌절로 돌아갑니다. 살아갈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겠는데 요셉의 삶은 점점 더 절망 가운데로 내려갑니다. 계속해서 미래는 불투명하고 어려움만 계속됩니다. 그럴 때 사람 마음은 자연히 초조해집니다. ‘내가 정말 이렇게 살아야 되겠는가…….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면 어쩌나.’ 

그러나 창세기 45장 5절에서 7절까지 말씀을 보면, 요셉이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 뜻을 생각했다고 기록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총리대신이 되어 형제들을 만났을 때 형제들이 자신을 두려워하자 말합니다. 

“형님들! 내가 내 인생을 돌아보건대 형님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닙니다. 나는 팔려온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집안과 민족을 구원코자 나를 앞서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날 지냈던 감옥과 노예 생활도 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어서임을 발견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올 때, 묵묵하게 참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사람,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오늘 삶 속에 있을 하나님의 뜻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 바로 요셉의 삶이었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를 강간하려고 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썼을 때, 고대 애굽의 법으로 하자면 즉시 사형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이 요셉을 사형시키지 않고 감옥에 그냥 가둬 둔 것으로 보아 보디발은 아내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 이야기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이 요셉을 죽이지 않고 감옥에 보내어 격리시키는 것으로 일을 덮고 조용하게 마무리하고자 했을 것이라 합니다. 만일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떠들고 다녔다면 보디발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 요셉을 죽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때를 기다릴 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막아주시며 하나님의 계획을 진행시켜 나간다는 사실입니다. 

또 한 가지 요셉에게 꿈 해석을 듣고 잊지 않겠다던 술 맡은 관원장은 2년간이나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요셉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긴 날이 바로 그 2년의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헛된 세월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보십시오. 애굽에서 관리로 등용되기 위해서는 서른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요셉이 석방될 때가 서른이 되던 때였습니다. 그 전에 석방되었더라면 관리로 등용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석방시켜 주어 그가 집에 돌아갔다고 합시다. 돌아가서 아버지 야곱에게 이야기합니다. “아버지, 제가 13년이라는 허망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형들이 나를 팔았습니다. 정말 고통스러운 삶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며 훌쩍훌쩍 울었더라면, 야곱은 성격상 그 아들들을 다 죽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야곱 가정을 통해 이뤄지려던 구원 계획은 비극으로 변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상당부분 수정하셔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셨습니다. 요셉이 헛된 세월을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무대에 세우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삼고 기다린 후에, 총리로 세웁니다. 

아니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의 마음을 다듬으셨던 것입니다. 요셉에게는 버림받은 자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요셉의 마음엔 세상을 올바르게 살고자 했으나 오해와 누명으로 감옥에 들어갔던 상처와 아픔이 있었습니다. 상처와 아픔, 원한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정작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 원한을 갖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마음을 감옥 안에서 치유하셨습니다. 

시편 105편 17절로 19절 말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단련’이란 훈련을 의미입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훈련시키시어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고난 가운데 형제를 용서할 수 있는 성숙한 인격으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고도 이루어지지 않는 그 기간에도 하나님은 그 때에도 당신의 계획을 쉼 없이 진행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내면으로는 나의 인격을 성숙시키십니다.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역사무대에 아름답게 세우시고자 환경과 조건을 만드십니다. 그러한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만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어려움과 이유 없는 고통이 올 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보다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반문하고 의심하고 회의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그르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이 계속되고 있습니까? 삶의 변화가 없습니까? 내게 무의미하다고 느껴집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중단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요셉이 고난과 고통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봉사하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일평생을 보면 그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봉사하며 섬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으로 왔을 때 요셉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내가 이래 뵈도 채색옷 입고 호위호식하며 자랐는데 이곳에 와서 허드렛일을 해? 노예가 하는 일을 해?’ 하며 신세한탄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가정 전체를 돌보는 총무로 삼았습니다. 성실히 보디발의 가정경제를 운영합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역시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을 섬겼습니다. 

시편 105편 17절 “그 발이 차꼬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요셉의 감옥 생활이 육체적으로도 어려웠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게다가 그는 선하게 살려다가 감옥에 왔기에 마음의 억울함 때문에 힘들었지만, 요셉은 자신의 상황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섬겼습니다. 

요셉은 늘 성실했습니다. 사람을 섬기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더욱이 높은 권좌에 있다가 갑자기 몰락해서 죄수 신세가 된 사람은 정말 더 어렵습니다. 마음에 상처와 분노가 가득한 사람을 섬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가능하면 늦게 출근해서 일찍 돌아오려고 하는데, 요셉은 부지런히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을 섬기기 위해서 갔고 그들 얼굴빛을 살필 정도로 성실하게 섬겼습니다. 

감옥에서 사람을 섬길 때 가장 잘 섬길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바로 그 사람의 속상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온 사람들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마음의 상처도 있고 분노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딘가에 쏟아 놓아야 하는데 쏟아놓는 곳이 요셉입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엉뚱한 데를 쳐다보며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으면 이야기할 맛이 나지 않습니다. 요셉이 ‘어려웠겠군요!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장관님.’맞장구를 쳐주니까 신이 나서 계속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치하던 사람이 감옥에 왔을 때 하는 불평이 무엇과 관련되었겠습니까? 정치, 경제, 군사와 관련된 일입니다. 그리고 사회와 문화와 관련된 일입니다. 왕실 인간관계에 관한 일입니다. 실패한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고 성공한 이야기도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와 주변국에 대한 이야기가 때로는 불평 때로는 자랑과 섞여 나옵니다. 요셉은 들어주면서 봉사하고 섬긴다 생각했는데, 좀 다르게 생각해 보면 결과적으로 그 관리들을 통해서 앞으로 총리대신이 되기 위한 특별과외수업을 받는 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감옥에서 석방되었을 때는 이미 나라정세를 다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나라 정책 중에 무엇이 문제였는가도 알고 있었습니다. 경제 사회 문화를 파악하고, 어떤 인물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준비된 총리였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요셉은 한 가정의 재정을 움직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나라 경제도 잘 운영합니다. 원리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세우실 때를 위해 레슨을 받은 것입니다. 봉사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마태복음 25장 21절,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말씀합니다. 남을 위해 작은 것을 하게 될 때 하나님은 그 작은 일 하는 것을 보시고 큰일을 맡기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곤고하고 어려운 일들이 닥칩니까? 봉사의 삶을 사십시오. 그것이 요셉이 자신의 삶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었고, 주님이 회복시키시는 통로였습니다. 영국의 작가 존 번연이 복음을 증거 하다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감옥에 들어간 첫날밤 그는 기도드렸습니다. “저를 감옥에 들어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 감옥에서의 시간을 결코 낭비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를 이곳에 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이튿날부터 감옥의 한 구석에서 한편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설이 바로 유명한 ‘천로역정’입니다. 지구상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책입니다. 감옥은 존 번연을 가두어 두는 곳이 아니라 위대한 창조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요셉이 만일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이야기 할 것입니다. “나는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반드시 승리케 하신다는 믿음의 반석 위에 날마다 나를 세워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맞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계속해서 난관이 이어집니다.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닌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은 환란과 어려움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어려움을 이기라고 권면합니다. 계속되는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요셉의 승리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십시오. 그리고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회복할 때가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마지막으로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일, 남을 섬기고 사랑하는 일을 바로 지금부터 시작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삶을 열어 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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