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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상 최고의 선물 (민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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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고의 선물 (민 21:4-9)


<인간의 원망, 하나님의 실망>

오늘은 사순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주어진 성서정과 중에 먼저 민 21: 4-9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출애굽 2세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애굽을 탈출한 뒤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다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앞에 두고 일어난 사건입니다. 광야 생활 막바지에 일어난 해프닝이지요. 하루라도 빨리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에돔을 가로질러 가면 제일 좋은데 에돔 족속들이 길을 터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쉬운 길을 포기하고 힘들고 어려운 길을 빙글빙글 돌아서 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이 다시 폭발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합니다. 5절을 봅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민수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9번에 걸친 원망 중에서 마지막에 해당되는 원망입니다. 하지만 원망의 정도는 가장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원망은 주로 모세나 아론과 같은 지도자에 대한 원망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겨냥해서 원망을 쏟아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이렇게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을 쏟아 붓고 있을까요? 4절을 봅니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지름길을 가려다가 좌절됐기 때문에 원망합니다. 어서 빨리 서둘러 가지 못하고 우회해서 길을 가게 되었을 때 화가 났다는 말이지요. 

우리 역시 지름길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 너무 쉽게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디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이 없나 하고 지름길을 찾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목적을 성취하는 것보다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조금 늦게 가고 가는 길에 장애물도 만나고 여러 가지 고생을 많이 해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지름길로 가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을 택하십시오! 

<불뱀과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

또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며 음식 타박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실망하셨습니다. 그래서 6절에 보니까 불뱀을 풀어서 백성들을 물어죽게 만들었습니다. 여기 불뱀은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반점이 있는 독사입니다.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한 번 물면 죽는데, 이런 불뱀들이 사방에서 나와 사람들을 물자 죽어 넘어지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잠자는 천막에도, 빵 굽는 화덕에도, 빵바구니와 솥에도 불뱀들이 득실거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포에 떨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다 죽게 되자 사람들이 모세에게 몰려와 중보기도를 부탁합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했기 때문에 죄를 지었고 그 죄의 결과로 불뱀을 만나게 되었다고 시인합니다. 그러면서 모세에게 뱀들이 물러가도록 중보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렇게 해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부르짖자 하나님의 처방전이 나왔습니다. 구리로 불뱀 형상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 달아 놓은 뒤 불뱀에 물린 사람마다 그 불뱀 형상을 쳐다보면 낫게 된다는 처방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 형상을 쳐다보는 순간 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땅과 하늘을 잠시 대조해봅시다. 땅에서는 사람들이 죄를 저질렀습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에게 원망을 퍼부은 죄이지요. 이 죄로 인해 하나님은 불뱀을 풀어놓으셨고, 땅 위에는 불뱀에 물려 죽어 넘어지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위에는 언제나 인간의 죄악이 넘쳐납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하여 원망을 쏟아 붓습니다. 이러한 죄악으로 인해 우리를 물어 죽이는 불뱀들이 도처에 득실거립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 그 죄의 댓가로 불뱀에 물려 죽어갑니다. 이와 같이 땅을 보면 불뱀에 물려 죽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봐야 합니다.

하늘 공중에는 구리로 만든 불뱀 형상이 장대 위에 높이 달려 있습니다. 땅위의 불뱀은 인간의 죄악과 죽음과 멸망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하늘위의 놋뱀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상징합니다. 생명과 구원을 상징합니다. 불뱀은 죄악의 독으로 땅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지만, 하늘 높이 달린 놋뱀은 보는 이들마다 살아나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장대 위에 놋뱀을 매단 것만 가지고서는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저절로 살지 않습니다. 반드시 믿음을 가지고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봐야 합니다. 쳐다봐야 산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지요. 그냥 장대 위에 놋뱀이 달려 있기 때문에 저절로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눈을 들어 하늘 높이 달린 놋뱀을 쳐다보는 사람만이 살 수 있습니다. 

<새로운 장대,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신 새로운 놋뱀, 예수 그리스도>

이제 우리는 민수기에 있는 놋뱀 사건을 요 3: 14-21절의 말씀과 연결시켜 생각해봅시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유대인의 지도자 중에 한 사람인 니고데모에게 한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먼저 14-16절 말씀을 봅시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당신의 구원 사역을 민수기의 놋뱀 사건과 연결시킵니다. 땅위에 있는 사람들이 죄를 지어 불뱀에 물려 죽습니다. 이 땅위의 죄와 죽음의 문제는 하늘 공중에 놋뱀을 매달아 그것을 보는 것을 통해서 해결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온 인류가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내신 종들에게 원망을 쏟아 부음으로써 죄를 지었습니다. 인류의 죄악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불뱀에 물려 죽어갑니다. 

이제 땅위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 옛날 불뱀에 물려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을 쳐다보는 즉시 사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처럼, 이제 새로운 장대, 즉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신 새로운 놋뱀이신 예수님을 쳐다보는 사람마다 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람들을 살리는 놋뱀이 장대 위에 높이 달린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셔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땅위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하늘 위의 새로운 장대, 즉 십자가 위에 달리신 새로운 놋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결해주시는데, 사람들이 그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믿음으로 쳐다봐야만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장대 위에 놋뱀이 달렸기 때문에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저절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서 눈을 들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 본 사람만이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놋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장대인 십자가 위에 달리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저절로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오직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만이 구원과 영생을 얻습니다! 

여기 장대 위에 달린 놋뱀과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다시 한 번 비교해봅시다. 놋뱀이 불뱀의 형상이었으나 독성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죄인의 형상이었으나 죄는 없으셨습니다. 사람을 물어 죽인 불뱀은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수가 많았겠지요. 그러므로 장대 위의 놋뱀 역시 그 불뱀 수에 비례해서 수없이 많아야하겠지요. 하지만 놋뱀은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놋뱀 하나가 수많은 불뱀들의 치명적인 독성을 일시에 해결합니다. 마찬가지로 온 인류가 온갖 다양한 죄악을 저질러 온갖 다양한 불뱀에 물려 죽어가지만 오직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마다 구원과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그날 장대 위에 달린 불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서 다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역시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뛰어넘어 다함께 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상 최고의 선물, 영생>

15절 말씀에 보면 새로운 장대인 십자가 위에 새로운 놋뱀으로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영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영생은 그냥 끝이 없이 지속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끝이 없이 함께 하시는 삶을 말하기 위하여 영생이라는 개념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이미 이 순간에 영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제 참으로 중요한 사실은 영생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지상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엡 2: 8-9절을 봅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그 순간, 이 세상에서 비길 데 없는 지상 최고의 선물인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받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선물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쓴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의하여 주어진 선물입니다! 

이제 땅위에 사는 우리는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해 온갖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가련한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중독증을 치유하기 위한 첫 걸음은 자신이 구제불능의 죄인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단지 술을 많이 마시는 습관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자신의 고질적인 인격의 결함부터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술만 생각하거나 보기만 해도 꼼짝을 못하고 넘어가는 자신의 무기력함을 시인해야지만 치유가 일어납니다. 죄책감이나 스트레스나 염려 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술을 마시는 자신의 구제불능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알코올 중독증을 비롯한 모든 중독증을 고치는 첫 걸음은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단지 술 마시는 습관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인생의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해나갈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인격을 창조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역시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얻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철두철미 구제불능의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죄를 저질렀음을 시인해야 합니다. 이러한 죄악으로 인해 온갖 불뱀들의 공격을 받아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 옛날 불뱀에 물려죽어가던 사람들은 자신의 죄로 인해 불뱀에 물려 죽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살기 위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서는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아 살아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이 죄로 인해 불뱀에 물려 죽어간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사람만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쳐다볼 수 있습니다. 너무나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쳐다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시 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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