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믿음의 능력 (막 9:17-29)

첨부 1


믿음의 능력 (막 9:17-29) 

  
살다보면 어려운 문제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사람들은 2가지로 반응한다. ①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고 도전한다. 그래서 역경을 극복하기도 한다. 이런 자세는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불가능한 문제도 있다. 

② 조그만 어려운 일이 생겨도,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가, 사정을 아뢰고, 해결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그들 앞에서 예수님은,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형되셨다. 

그때 산 아래에는, 아홉 명의 제자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예수님 일행이 내려와서 보니, 큰 무리가 제자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곳에는 악한 생각을 가지고 왔던, 서기관들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책잡기 바랐지만, 예수님이 그 곳에 계시지 않자, 제자들과 변론하고 있었다. 

나머지 제자들이 어려움을 당한 이유는,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와,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고 물었다. 꼭 기억할 사실은,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다 보고 계시며, 어려움 당할 때 찾아와, 말씀하는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이처럼 나의 문제를 주님께 말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믿고 맡길 때, 얼마든지 불가능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문제가 나타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예수님께 문제를 가지고 와야 한다(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왔지만, 구원자 예수님께 데려오지 않고, 선생님께 데리고 왔다. 선생님은 영혼의 문제, 귀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여기서 강조된 단어는 ‘믿음이 없는 세대여’와 ‘내게로 데려오라’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못해서 고통당하는 안타까운 자들을, 예수님께 나와야 한다.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자가 되어야, 진정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주님 앞에 나와도, 인간으로만 안 다면, 주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가는 모습이 된다. 주님 앞에 나와야만, 진정한 믿음이 있는 자이다. 교회에 아무리 다녀도, 믿음이 없는 자가 있다. 그 이유는 사람을 보고 나오기 때문이다. 
교회에 나와서 사람이나 만나고, 찬양감상이나 하고, 기도와 설교를 평가하고, 교회 분위기나 파악하려는 사람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 기도와 말씀과 봉사를 통해,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만나면, 반드시 이적의 역사가 일어난다. 

사람들 앞에서, 풀려고 하지 말고, 모든 문제를 오직, 예수님께 가지고 나가야 한다. 예수님만이, 그 문제를 해결하실 분이라는 사실을, 믿기 바란다. 그러면 역사가 일어난다. 병들었을 때, 실패와 좌절에 빠졌을 때, 예수님께 나와야 한다. 인생의 문제도, 예수님께 가져와야 한다.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려와야 한다. 감당하지 못할 문제에 봉착했어도, 예수님께 나아오면, 반드시 도와주신다. 죄악을 용서해 주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신다. 우리는 종종 주변에, 어려움에 빠진 사람에게, ‘교회 나오면 해결된다.’고 말할 때가 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교회에 나온다. 
그들이 교회에 나온 것은, 참 잘한 일이지만, 교회에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만나야, 그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예수님께 나오자, 오히려 문제가 생겼다. 

(20-22)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눅9:42) 말씀처럼, 오는 중에 귀신은, 그 아이를 거꾸러뜨렸다. 귀신은 그 아이가 예수님에게 가지 못하도록 막으려했다. 귀신이 예수님을 보는 순간, 귀신은 그 아이를 다시금 사로잡았다. 그 결과 그 아이는, 심한 경련을 일으키더니, 땅에 엎드러져 뒹굴었다. 그 아이의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왔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예수님은 아이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예수님은 다 아시는 분인데, 왜 질문하는가? 예수님은 그 사람이, 자신의 입으로, 고통을 예수님께 고하기를 원하셨다.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기도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신다. 

따라서 고통을 예수님에게 아뢰면, 예수님은 불쌍히 여겨, 긍휼을 베푸신다. 이미 모든 것을 아는 주님이지만,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의 질문에, 어릴 때부터라고 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또 고통스러운 사실을, 한 가지 덧붙였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귀신은 그 아이를, 모닥불, 샘이나 연못으로 끌고 가, 강제로 그 속에 집어던졌다. 자주 그렇게 했다. 귀신은 그 아이를 죽이려 했으니, 몸에는 불에 덴 화상과, 상처들도 많아서, 고통스러웠다. 또한 지켜봐야 하는 아버지도, 정말 고통스러웠다. 

악한 귀신들은 우리를, 예수님께 나가지 못하게, 쓰러뜨리고 넘어뜨리고, 죽이려고 함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형편을 넘어서, 예수님께 데리고 왔기에, 고침을 받을 수 있었다. 예수님은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아이를, 외면하지 않고 고쳐주셨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이적을 기대하며, 주님께 나아가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마귀는 우리가 가는 길을 방해한다. 따라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마귀의 저지선을 뛰어넘어서,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가 되기 바란다. 

2.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18下).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22下)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얼마나 믿음이 없는 태도인가? 
예수님이 듣고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의 대답은, 믿으면 불가능이 없다고 뜻이다. 그러자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막1:40)에서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이렇게 간구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그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예수님의 고쳐주시려는지 의사만을 물었을 뿐이다. 이에 비해,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믿음 없는 태도를 보였다. 
예수님이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고 말씀하자 ‘믿음이 없는 자신에게, 도움을 달라.’ 간구했다. 예수님이 아들을 데려오라고 명령했기에, 예수님의 의도를 알았기에, 데리고 왔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이, 능히 하지 못했기에, 예수님도 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고 여기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이는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말이었다. 믿음이 없는 간구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고 나무라며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 질러 대답했다. “내가 믿나이다.” 지금 그 아이는 심하게 경련하며, 땅에 엎드려 뒹굴며, 거품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그는 예수님을, 예수님의 능력을,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솔직한 심정으로 예수님께 간구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내가 믿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의심하는 생각이 있으니, 내게서 의심을 떨쳐주옵소서.’ 이런 뜻이다. 
우리의 믿음도 온전하지 못해서, 때때로 의심하니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하며 구해야 한다. (25-27)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곧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말씀하셨다.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그 더러운 귀신 때문에, 아이가 말을 못하며, 듣지를 못했다.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그래서 아이는 귀신이 주는 고통에서, 완전히 놓임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귀신이 나갈 때 소리치며,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나갔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기가 싫었지만, 예수님이 명령하시니까, 귀신은 어쩔 수 없이, 그 아이에게서 나가야 했다. 귀신은 끝까지, 그 아이를 심하게 괴롭혔다. 이렇듯 귀신의 본질은 악하다. 그 아이는 심한 경련으로 인해서, 죽은 것 같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아이가 죽었다고 말했다. 
귀신은 그 아이를 죽이려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쓰러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아이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셔야 했기에, 죽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자, 그 아이가 일어섰다. 그 아이는 혼자서도 서있을 수 있었다. 참 인자하신 예수님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죽은 것 같은, 아이의 손을 잡아 주듯, 우리의 손도 기꺼이 잡아주신다. 예수님이 일으켜주시기에, 우리는 넘어졌어도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셨다. 이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자. 또한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음을 알자. 

3. 믿음을 위해 기도하라(28-29).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다. 예수님은 무리를 벗어나, 제자들과만 함께 있게 되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조용히 물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에 대해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이런 종류’는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한, 귀신을 가리킨다. (막6: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이미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다. (막6:13上)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했다. 그들은 이미 많은 귀신을 쫓아냈다. 
그러면 이번에, 왜 귀신을 내쫓지 못했나? 이미 예수님은 그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셨다.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귀신을 내쫓았다. 이번에도 당연히, 귀신을 내쫓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쫓아내지 못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1) 기도가 없었기 때문이라 했다(29). 

초대교회의 능력은 기도에서 나왔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가, 굉장히 이상적인 교회라고 해서 현대교회보다 문제가 없는, 우수한 교회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문제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당대를 흔들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원인은 기도에 있었다. 초대교회는 회의보다도, 기도를 더 많이 했다. 신앙의 실패는 기도의 부족에서 온다. 기도 시간이 줄어듦이, 신앙은 위기임을 깨달아야 한다. 기도는 닫힌 문을 열게 만든다. 능히 하지 못함이 없도록 만들어 준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하실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의 능력과 말씀, 예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말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에게, 어떤 권능이 있는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함께 하심을 믿고 기도하자,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 
(약5:16)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는 자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2) 믿음이 없거나 적기 때문이다(마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왜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했는가? 믿음이 작은 까닭이었다. 그들은 얼마든지 자기들 선에서, 쉽게 처리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기도하지도 않았고,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또 제자들은 귀신을 내쫓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그에게서 나가라.”하며 여러 차례 시도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귀신이 나가지 않자, 그만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고 약속했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줄을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에는,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자, 그러한 믿음이 사라지고 말았다. 쉽게 포기하면, 믿음이 적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었음을 지적하셨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쉽게 낙심하지 않는가? 
그러면 예수님은 이렇게 책망하실 것이다. “믿음이 없는 자여. 내가 얼마나 너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에게 참으리요.”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변함없이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굳게 서기를 바란다. 

결론이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우리 인생의 문제를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오기 바란다. 가지고 나오되, 주님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오시기 바란다. 믿음이 부족하면, 예수님 앞에 믿음을 간주하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서, 믿음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