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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손을 씻지 말고 마음을 씻으라 (시 73:12-13, 마 27: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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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씻지 말고 마음을 씻으라 (시 73:12-13, 마 27:22-24)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이며, 고난주간의 시작입니다. 이 한 주간의 역사가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가장 긴 역사입니다. 복음서 전체의 4분의 1이 한 주간의 역사입니다. 한 주간의 역사를 이렇게 길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이 한 주간이 공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기적이 십자가와 부활이 없으면 아무 가치가 없다는 뜻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에 예수님의 주위의 등장인물들이 있습니다. 대제사장, 유대인들, 로마군인, 빌라도, 바라바 등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사도신경에 이름을 올린 위인은 빌라도입니다. 빌라도는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예수님을 못 박게 내어 주었습니다. 또 그는 부인의 말을 안 듣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예수님께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빌라도는 유대인에게 예수님을 내어주었습니다. 오래 전 그리스정교회는 이런 빌라도의 부인을 성인으로 추대하였습니다. 대신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원흉으로 지목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원흉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 대제사장 보다 더 나쁜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놓아줄 수 있는 자신의 권리도 포기하고 자기면피하려고 손을 씻고 바라바를 대신 놓아주었습니다. 자기는 손을 씻고 면피하는 구실을 삼았지만 역사는 그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했다고 합니다. 
  
시편 26:6에는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라고 합니다. 손을 씻는다는 것은 무죄하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무죄하기 때문에 주의 제단에 다닐 권리도 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인 총독이었기에 성경대로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유대인의 관습을 알았을 것이고 당시의 두루 알려진 관습이었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정의보다 군중의 눈치를 보며 재판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악덕 재판관입니다. 성경은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눅 23:23)고 합니다. 유대인의 큰 소리 때문에 예수님을 못 박고 바라바를 놓아 주었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합니다. 이 말에 “나는 무죄하니”라는 말은 책임회피입니다. “너희가 당하라”는 말은 책임전가입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는 그 자체가 죄입니다. 아담이 범죄 후에 하와에게, 하와가 뱀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책임전가는 죄인의 전형적 모습입니다. 
  
빌라도의 말은 자신은 이편저편도 아닌 객관적 중립적으로 결백한 사람이라는 제스처입니다. 그러나 그가 손을 씻음으로 예수님의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그는 물에 손을 씻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에 손을 담근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빌라도는 비굴한 사람이었고, 책임회피의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손만 깨끗이 씻어도 각종 질병 70까지나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손을 씻으면 병균이 없어지고, 깨끗하게 될지 모르지만 마음은 못 씻습니다. 손은 깨끗하게 하기 위해 자주 손을 씻습니다. 그러나 손을 아무리 씻어도 죄를 없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 아래에 있었던 백부장과 함께 예수를 지키는 자들은 마태복음 27:54에는 “이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후회와 회복이 마음을 씻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양쪽에는 강도들이 함께 못 박혔는데 한 편의 강도는 누가복음 23:42에는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참 회개가 마음을 씻고 구원을 얻게 합니다. 손을 씻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고난주간의 시작입니다. 빌라도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자신을 무장하는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손을 씻어도 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7:24에는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합니다. 무죄의 표시로 손을 씻는 행위는 철저히 유대적인 것입니다. 손을 씻는 것은 여러 해 동안 유대를 통치한 빌라도에게 익숙한 풍습이었을 것입니다. 
  
신명기 21:6에는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우리의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 하였나이다”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피살되었을 때 손을 씻는 예식은 그 범죄와 무관하다는 증명입니다. 
  
무죄를 표현할 때 손을 씻는 것은 유대인뿐 아니라 당시 지중해 연안의 로마제국 식민지역에 익숙한 관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자신의 책임전가와 흠이 없음을 전신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유대인의 대제사장이나 공회 누구도 최종 판결자가 아닙니다.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가 최종 판단을 내릴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결정권자입니다. 
  
손을 씻는다는 것은 자신은 이 일에 대하여 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무죄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손을 씻는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형식에 불과합니다. 마음의 회개 없이 손을 씻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의 몸 안에 병을 잔뜩 두고 목욕만 한다고 병이 나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내면의 죄를 그대로 두고 손을 씻고 죄가 없다고 한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 신앙, 외형적 신앙은 바리새인들의 특허품입니다. 바리새인 곁에 살다가 빌라도가 형식적 신앙의 짝퉁을 개발한 모양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외형적 신앙은 누구보다 철저하였습니다. 이런 외형적이며 형식적인 그들의 신앙을 예수님은 책망하셨습니다. 마음에 없는 형식을 주님께서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어기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율법을 문자적으로만 지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율법을 사랑과 은혜로 완성하러 오신 주님께 그들의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신앙은 항상 거슬렸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왔던 젊은 관원이 한 말을 들어보세요.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 아들의 말을 들어보세요.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의 말을 들어보세요.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의 형식은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모두 형식과 외식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꼬박꼬박 십일조를 드렸고, 이레에 한 번씩 금식했습니다. 이런 그들의 신앙생활을 자랑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율법적으로 완벽한 바리새인은 마음을 씻은 세리보다 못한 추한 자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5:2에는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 하나이다”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바리새인들은 비난했습니다. 오랜 장로의 전통과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율법에 대한 형식이 전혀 없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는 것은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형식이 아니라 내면을 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5:8에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책망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입술과 형식만 발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8세기 영국은 방탕하고 술을 좋아하고 성경이나 교회 일에는 무관심하였습니다. 상류층은 자신의 도덕적 수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은 천한 사람들이나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1729년 신성클럽(Holy club)이 조직되었습니다. 

유명한 설교가인 조지 휫필드와 존 웨슬리와 그의 형제 찰스 웨슬리 등이 모여 새로운 영적 삶의 분위기를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여 성경벌레(Bible Moths)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경건훈련과 까다로운 신앙의 수칙, 상호감시 등을 통하여 높은 영성적 형식을 구한다고 하여 ‘형식주의자들’(Methodists)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말에서 요즘 ‘감리교회’(Methodist Church)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형식이 필요하지만 형식만 추구하면 바리새인으로 전락합니다. 형식만을 취하는 것은 빌라도도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다, 봉헌하는 것이나, 지은 죄를 고백하는 것이 마음에 없는 형식으로 만족하고 스스로 마음에 자위한다면 손만 씻은 빌라도가 됩니다. 손을 씻고 죄가 없다고 믿는 얄팍한 형식적 신앙을 배격해야 합니다. 

  
둘째, 마음을 씻어야 죄가 없어집니다. 

시편 73:13에는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고 합니다. 빌라도가 손을 씻고 무죄하다고 한 것이 실제로 헛된 일입니다. “나는 손을 씻었으므로 내 책임은 없어”, “나는 너희들과 달라”라는 따위의 마음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 없이 손을 씻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죄의 용서는 마음의 변화에서 비롯됩니다. 손을 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씻어야 비로소 죄를 용서받습니다. 죄의 용서는 형식적 고백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라는 말씀대로 마음이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마음을 씻어야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죄 사함 선포하셨습니다. 언제 죄 사함을 선포하십니까? 마음의 변화가 일어날 때입니다. 
  
미국 뉴욕의 어느 뒷골목에 잘 생기고 준수한 남자가 항상 술에 취한 모습으로 구걸하고, 마약에 취해 있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며 살았습니다. 어느 회사 사장이 이 사람을 보고 한 눈에 회사에 쓸 만한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 술주정뱅이를 데려다가 이발을 시키고, 목욕을 시키고, 멋있는 제복을 입혔습니다. 그는 완전 미남이었고, 회사의 격을 높여줄 인물로 보였습니다. 사장은 그 사람을 회사에 취직시켜주기로 하고 다음날 출근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술주정뱅이 노숙자가 큰 회사에 출근한다는 말을 떠들썩하게 광고하였습니다. 그 길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유명 노숙인이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기자들과 사원들이 모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주 멋있는 드라마 같은 아침을 완전히 망친 것입니다. 사장은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밤새 술을 마시고 다시 옛날 그 자리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술병을 든 채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외모의 변화만을 가지고 마음을 닦기 전에는 전혀 사람이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형식을 깨끗하게 한다고 하더라고 마음이 달라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 손이 아니라 목욕을 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손을 씻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누구나 마음의 세탁이 필요합니다. 
  
베드로후서 2:22에는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라고 합니다. 돼지는 돼지의 본성을 버리지 못합니다. 요즘에는 돼지도 애완동물로 집에서 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돼지는 아무래도 좀 아닌 것 같네요. 돼지가 집에서 애완동물로 취급받는다고 하더라도 아무데나 뒹구는 그 습성이 어딜 갈까요? 
  
성경에는 마음을 기경하고,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마음을 곧게 하고,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달라집니다. 변화합니다. 신명기 10:16에는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마음의 할례가 없으면 육신의 할례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손가락을 자르고도 다시 화투장을 쥐고 노름판에 뛰어든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손을 씻고, 손가락을 잘라도 항상 그 자리에서 맴돕니다. 
  
신학자 딘 잉게는 ‘사람이 매일 약 16시간을 깨어 있는데 그 중 15시간 50분만 세상 물질적인 것 다루는데 시간 보내고, 단 10분 만이라도 영적인 것을 다루는데 보낸다면 그 물질 백배나 좋아질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영적 마음으로 물질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요?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마음의 변화는 비로소 세상을 아름답게 보게 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이 “형제들아 어찌할꼬”하며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섭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의 감옥에 갇혀 있다가 옥 터가 흔들려 도망간 줄로 알았던 간수가 바울에게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묻습니다. 손을 씻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마음의 자세가 용서받을 수 있는 자세입니다. 
  
욥기 9:30에는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라고 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인간의 노력과 수고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새 마음을 주셔야 마음의 세탁도 가능합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듯이 믿는 자에게 주시는 새 마음도 선물입니다. 발을 씻는 마음으로 매일 마음을 씻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매일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에스겔 36:26에는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합니다.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 씻은 마음이 청결한 마음이 됩니다. 성경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씻고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어느 집사님이 보라고 보내온 ‘유투브’의 영상에서 ‘Most, the Bridge’라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체코의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가난했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다리 조종사였습니다. 어느 날 다리 옆 강가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놀고 있다가 기차가 올 시간이 되자 아버지는 다리 위로 올라갑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낚시를 하고 다른 데로 가지 말고 30분만 기다리고 당부하고 조종실로 올라갑니다. 조종실에 전화가 와서 지금 배가 지나가니 다리를 올려달라고 하였습니다. 다리를 올려 배가 지나가게 한 다음 빨리 다리를 내려야 기차가 지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기차가 예상보다 빨리 오고 있습니다. 기관사는 빨간 불을 보지 못하고 속력을 내어 달려오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조종실 안쪽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달려오는 기차를 보지 못합니다. 아들은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 “아빠!”를 외칩니다. 그러나 기계소리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아들은 아버지 대신 조종실 쪽으로 올라와 다리를 내리려다 아래로 떨어져 다리 밑에 끼었습니다. 아버지는 뒤늦게 기차가 오는 것을 보았고, 다리 밑에 낀 아들을 발견하였습니다. 다리를 내리면 아들이 그 밑에 끼어 죽게 되고, 다리를 내리지 않으면 기차에 탄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다리를 내리기로 결심하고 다리를 내려 기차에 탄 사람들을 살립니다. 아들은 다리에 끼어 죽었고 대신 기차의 승객들은 살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부짖으며 영상은 조용히 끝맺습니다. 
  
십자가는 아들을 죽게 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악이 가득한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손을 씻은 빌라도는 다른 사람을 또 죽게 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빌라도는 지금까지 예배시간마다 예배자의 입을 통하여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손을 씻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그런 빌라도가 아닙니까? 책임을 전가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형식적인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다시 못 박는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빌라도와 같은 마음을 씻지 못하고 손을 씻을 것으로 마치 죄가 없는 양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명 얻은 구원을 감사하며, 십자가를 증거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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