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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옛 언약과 새 언약 (렘 31: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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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언약과 새 언약 (렘 31:31-34)


선지자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당시 남왕국 유다는 국가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요시아 왕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개혁 운동은 수포로 돌아갔고 국력도 급격히 약해졌습니다. 결국 주전 587년 바벨론의 공격을 받고 유다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가 어려우면 말들이 많아지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그 때에도 많은 선지자들이 나서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예레미야와 전혀 다른 예언을 한 선지자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하나냐입니다. 예레미야 28장을 보면 그가 예언한 것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렘 28:2~4)

하나냐의 말을 들은 예레미야가 성전에 서 있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이루어졌으면 정말 좋겠지만 그러나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되리라.”(렘 28:9) 그리고 이어서 분명히 말했습니다. “선지자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렘 28:15~16) 과연 그 해 일곱째 달에 하나냐가 죽었더라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결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예언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볼 때에 유다는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그 이유를 단순히 정치적인 차원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면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 관계가 잘못되어 있으면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 바로 언약입니다. 언약은 쌍방이 다 지켜야 그 효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그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2 하반절) 때문에 유다는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라가 망하는 것으로 유다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주 끝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렘 31:31) 하나님께서 유다와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 언약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먼저 옛 언약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옛 언약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먼저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이 있습니다. 또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시내 산에서 맺으신 언약도 있습니다.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옛 언약이 가리키는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유다가 망하게 된 까닭도 바로 옛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다는 왜 하나님과 더불어 맺은 언약을 잘 지키지 않았습니까?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으면 큰 복을 받았을 텐데...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율법을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이라고 가정해 봅니다. 여러분은 도로교통법을 늘 잘 지키고 있습니까? 요즘 국회의원 선거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서로 상대방을 고발하는 일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선거법이 분명히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무도 선거법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법과 제도만 가지고서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옛 언약인 율법을 지키지 못한 이유는 그들에게 믿음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천성적으로 부도덕하기 때문에 그랬던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결국 옛 언약을 포기하시게 되었습니다. 옛 언약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새 언약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옛 언약은 양의 가죽에 기록되었지만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됩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그렇다면 새 언약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굳센 믿음입니까? 온전한 순종입니까? 예레미야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새 언약은 옛 언약과 전혀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레미야는 본문 34절 말씀을 통해서 새 언약의 특징을 두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새 언약의 세계에서는 애써 하나님을 알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렘 31:34 상반절)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알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말은 실제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하나님을 알고 또 믿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사실이 아주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사에 의한 바벨론 제국의 붕괴가 그 좋은 예입니다. 세계를 지배하던 막강한 바벨론 제국이 바사에 의해서 무너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막강한 권력의 붕괴는 그 권력을 초월하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뚜렷한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새 언약은 이처럼 역사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둘째, 새 언약의 세계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악행을 사하시고 그 죄를 기억하시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4 하반절) 옛 언약에 따르면 악행은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고 죄는 기억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옛 언약에 의해서 유다가 망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옛 언약에서 정의가 구현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의 세계에서는 그런 것들이 다 무효가 됩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오늘 우리도 안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범한 죄에 따라 그대로 벌을 받아야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이런 방식으로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예레미야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악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꿰뚫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일찍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롬 3:10)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망하도록 그냥 방치하실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새로운 차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거기서 구원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과연 그가 전한 새 언약이 바로 예수님에 의해서 성취되지 않았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도 이 사실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5)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역사의 신비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은 사순절 절기의 마지막 주일로서 종려 주일/수난 주일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은 부활절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들과 초대 교회 성도들은 처음에는 그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주님 스스로도 받아들이시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인류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악행이 사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이제 우리의 죄는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참으로 역설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스스로는 불가능했습니다. 우리로서는 결코 영생에 이를 도리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친히 구원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친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그 주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의 성취인 것입니다. 오직 그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믿고 받은 바 그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늘 기쁘고 즐겁게 이 구원의 소식을 널리 전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충성스러운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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