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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마 27: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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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마 27:27-34)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는 라틴어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고 불리는 길이 있습니다. 여기서 ‘비아’라는 말은 ‘길’이라는 뜻이고, ‘돌로로사’라는 말은 ‘슬픔’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슬픔의 길’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이 길은 그 옛날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아 십자가형을 선고 받았던 곳에서부터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던 곳까지 이어져있습니다. 그 길이가 약 800미터 정도가 되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이 길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길을 라틴어로 ‘비아 크루시스’(Via Crucis) 즉 ‘십자가의 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현재 이 십자가의 길에는 성경 말씀 속에서 찾아낸 의미 있는 지점 14곳이 표시되어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언도 받으신 곳, 로마 병사들에게 희롱을 당하신 곳,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쓰러지신 곳, 구레네 시몬을 만나신 곳,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곳 등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고난에 담긴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 저도 우리교회 성지순례 팀과 함께 이 길을 걸은 바가 있습니다. 이른 새벽 아직 상점이 문을 열기 전 사람들의 인적이 없는 시간에 이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14 지점을 하나씩 지나면서, 우리 주님의 그 고난의 의미를 깊이 느끼며 많은 은혜를 받은 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며 겪으신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십자가의 길을 시작하실 때의 일로부터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의 일까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본문 속에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길에서 당하신 고난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죄인 취급을 받으셨습니다.

27:11-12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 하시는지라.” 예수님께서 체포되셨고,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27:26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재판 결과 예수님을 유죄 판정하고, 십자가 처형토록 최종 판결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십자가의 길 14 지점 중 첫 번째 지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출발하면서, 우선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 취급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편에서 생각을 해보면,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분이 죄인처럼 체포되어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분이 죄인 취급 받는 것도 억울한데, 그것도 사형 판결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게 되신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힌 일입니까? 예수님의 고난은 이 억울함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배리 깁스라는 우편배달부가 경찰의 누명으로 19년이나 옥살이를 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1988년 매춘부 살해 죄목으로 징역 20년 형을 받고, 19년을 복역한 끝에 출소하게 됐습니다. 

너무도 억울해서 출소한 뒤에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재조사 끝에 마피아와 내통한 경찰관으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썼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뉴욕시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 사람에게 무려 990만 불이라는 천문학적인 위로금을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죄인취급을 당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바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아무런 죄가 없는 분이시지만 죄인 취급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형 판결까지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토록 억울한 일을 묵묵히 감당해 내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주님의 고난의 깊이가 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예수님이야 말로 진정한 심판주시라는 점입니다. 요 5:2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 마지막 최후의 심판을 거행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심판주가 심판을 받아야 할 인간들에게 심판을 받으신 것입니다. 죄 때문에 심판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자들이 진정한 심판주를 재판하여 사형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가 막히셨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묵묵히 저들의 재판에 몸을 맡기셨습니다. 여기에 주님의 고난의 깊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셨을까요? 그 답을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가 사 53:4-9에서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이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주님의 고난을 이해하고 그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내 대신 죄인 취급을 받으신다는 점을 깨닫고 송구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주 앞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죄 없으신 분으로서 나를 대신해서 죄인 취급을 받으셨다는 점을 진심으로 “아멘!”으로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본문 27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 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빌라도가 십자가 처형을 명하자 수하의 군병들이 십자가 처형을 시작하며, 먼저 예수님을 희롱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십자가의 길 두 번째 지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정말 큰 수치를 당하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예수님께는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저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혔습니다. 이 때 저들은 먼저 예수님의 옷을 벗겼습니다. 겉옷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다 벗겼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든 군병들이 보는 앞에서 겉옷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다 벗긴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 제 10지점에 와 보면 군병들이 희롱하기 위해 입혔던 홍포마저 다 벗겼습니다. 이곳에는 군병들은 물론이고 구경나온 예루살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개된 만인 앞에서 옷을 다 벗기는 끔찍한 수치를 당하신 것입니다.

중세시대에 한 교회에서 유명화가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그려달라고 청을 했답니다. 이 화가가 성경을 세밀하게 읽고 연구를 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 작품을 완성하여 가져갔습니다. 

교회 관계자들이 그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그 그림을 교회에 걸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가에게 물었습니다. 왜 예수님을 나체로 그렸습니까? 화가가 대답했습니다. “성경대로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많은 성서신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나체로 십자가에 달리셨을 수도 있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기심을 당하신 것입니다.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를 당하신 것입니다.

독일 나찌 정권시절 유대인을 보호해 주다 함께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코리템 붐 여사가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을 썼습니다. 자기가 포로수용소에서 겪었던 고난과 그 속에서 받은 주님의 은혜를 진솔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 책을 보면 목욕하기 위해 옷을 다 벗긴 채로 샤워실로 끌려갔답니다. 남자 병사가 샤워실 앞에서 자기의 알몸을 쳐다보며 희롱을 하곤 했답니다. 이 때 그 수치심이 죽는 것보다 힘이 들었답니다. 그러면서 그 때마다 벌거벗긴 채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생각하며 그 수치를 견뎌냈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때로 수치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죽고 싶다고 생각일 들 때도 있습니다. 이 때 주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수치를 당하신 주님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수치를 당하신 것이 바로 나 때문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습니다. 그 죄가 낱낱이 드러나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가 당해야 할 그 부끄러움 그 수치를 대신 다 당해 주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벌거벗겨야 할 텐데, 주님께서 대신 벌거벗기시면서 그 옷으로 우리를 가려주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낱낱이 드러나 망신을 당해야 할 텐데, 주님께서 대신 당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덮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옷을 벗기신 주님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릴 때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육체적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26절을 보면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채찍질한 뒤 십자가형을 선고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첫 번째 지점과 두 번째 지점에 이 사건을 기념하여 ‘선고교회’와 ‘채찍질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채찍질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당시 로마 군병들이 사용하던 채찍은 정말 끔찍합니다. 서너 개의 가죽 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각 가죽 끈 끝에는 납이나 쇠 조각을 달았습니다. 이 채찍으로 맞으면 살가죽에 박히게 되고, 채찍을 잡아채면 살점이 찢겨 나오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몇 차례 이 채찍에 맞으면 온 몸은 이내 피 범벅이 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채찍에 맞으며 끔찍한 온 몸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주님께서 끔찍한 고통을 겪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고통을 묵상하면서 마음 깊이 그 고통을 느낄 수 있을 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십자가의 길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쓰러지셨던 자리를 기념하는 자리들이 있습니다. 세 곳입니다. 세 번째 지점과 일곱 번째 지점과 그리고 아홉 번째 지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 선고를 받으신 뒤 십자가의 길을 걸으실 때, 주님이 달리셔야 할 십자가를 직접 지고 가셔야만 했습니다. 대체로 그 무게가 약 40키로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주님은 밤이 맞도록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끌려 다니며 심문을 받으시고, 다시 빌라도에게 끌려가셔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채찍에 맞아 온 몸이 상처투성이입니다. 이미 온 몸이 지칠 대로 지치셨고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한 상태에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르시다 여러 차례 넘어지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쓰러지신 모습을 묵상하면서 오늘 영적으로 쓰러지고 넘어지는 우리를 보게 됩니다. 영적으로 연약하고 부족하여 조그만 시험에도 넘어지는 우리들을 보게 됩니다. 지치고 곤고하여 조그만 어려움에도 쓰러지는 우리들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세우시기 위하여 넘어지시고 쓰러지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미 우리의 무거운 짐을 지시고 쓰러지고 넘어지시면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35절을 보면,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입니다.

몇 해 전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고고학적으로 분석해 보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일이 있습니다. 성서고고학자 조나단 리드 박사가 실험에 나섰습니다. 
연구 결과 리드 박사는 기존의 견해에 약간의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대체로 십자가에 손이 묶여있었고, 몸이 늘어진 채 매달린 상태로 숨쉬기가 어려워 질식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십자가형은 로마시민에게는 시행하지 않았고 노예나 반란자들에게만 가했던 극형중의 극형이었기 때문에, 고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처형을 진행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양 손바닥에 못을 박았고, 그리고 발에도 긴 못을 박았을 뿐 아니라 자칫 못이 빠질 것을 대비해서 못이 빠지지 않도록 못에 납작한 링까지 채웠을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될 때 사형수들은 극심한 고통을 견디지 못해 쇼크로 죽거나 심장마비로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죽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찔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토록 참혹한 십자가형을 당하셨습니다. 인간이 더 이상 겪기 힘든 고통을 온몸으로 다 당하시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밑에서 주님께서 당하신 그 끔찍한 고통을 깊이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의 손과 발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주님의 고통을 깊이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감사하시고, 새로운 삶을 결단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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