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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능히 도우시는 주님 (히 2: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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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히 도우시는 주님 (히 2:17-18)
 
<히 2:17-18> 불의의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잃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날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세상 살기 싫다고 소리치며 가족들도 그 누구도 만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 성난 소년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내가 잘 아는 아주 훌륭한 목사님을 모셔올테니, 만나보지 않겠니?” 라고 말했지만 단호히 거절하여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목사님을 모셔왔습니다. 방으로 들어오시는 목사님을 본 소년은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두 팔이 모두 없이 빈 소매만 펄럭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그 소년에게 조용히 다가왔습니다. “얘야 나도 어릴 때 사고로 두 팔을 모두 잃어버렸단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그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지. 내가 그런 고통을 겪었기에 주님께 도우심을 구하게 되었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 고통을 겪는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이해 할 수가 있게 되었단다.” 하고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그 소년은 자기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기에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결국 그 소년은 목사님을 따라 교회에 나가 훗날 전도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도 우릴 능히 도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보다 먼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 오셔서 몸소 고난을 겪으신 이유는, 우리 받는 시험과 환난을 모두 이해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도움을 요청할 유일한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위해 몸소 고난당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여수애양원에서 사역할 당시, 한센환자들이 ‘당신이 우리 고통을 아느냐?’고 항의 할 때, 그들을 이해한다는 뜻으로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주고, 차라리 당신들처럼 한센병에 걸려 당신들을 돕겠다고 했을 때, 비로소 그 환자들이 마음을 열었다고 합니다.

오늘 종려주일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사람들은 유대를 독립시킬 세상 대통령쯤으로 알고 종려가지 흔들며 환영했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의 짐을 대신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목적이 우릴 위한 것이라고 미리 예언했던 선지자가 있었는데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그는 이사야 53:4-5에 예언하길, 그가 우리의 질고를 지셨다고 하셨고, 그가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대신하여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그 어떤 잘못도 없습니다. 실정법을 위반한 일도 없고, 도덕률을 깬 일도 없고, 파렴치한 일을 저지른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십자가에 죽어야 했습니다. 그 이유를 본문 4, 5절은 "우리" 때문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3:6을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인간이 지은 죄를 사함 받으려면 어린양을 잡아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요1:29을 보면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그 어린양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릴 도우실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시험을 받아 고난을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우리의 고난을 대신 경험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떤 모양의 고난이든지 예수님은 다 경험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고난을 다 아시기 때문에 다 도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미 먼저 모든 고난을 겪으셨기에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능히 도우실 것입니다(행1:24).

예수님의 생애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상처받는 생애였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고, 자기 백성들로부터 상처받고, 제자들로부터 상처받고, 마지막 하나님으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는 상처를 온 몸에 지니고 죽는 상처의 인생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러한 상처를 원망하지 않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상처를 홀로 체험하셨기에 우리가 고난 받는 것을 능히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6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시험이나 고통을 당할 때마다 주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고난을 이기기 위해서는 주님의 도우심을 믿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역경과 시련의 때에 우리를 위하여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얻기 위하여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과 육신이 아플 때마다. 심한 역경을 당할 때 마다. “능히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만을 전폭적으로 신뢰 하신다면, 모든 고난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특히 오늘 이 시간에는 나 위해 십자가 지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성찬식을 행하려고 합니다. 고난의 목적이 나의 고난을 해결해 주시기 위함임을 믿고 감사함으로 성찬식에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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