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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떨어지지 않는 사랑 (고전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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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지 않는 사랑 (고전 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13:8) 

Ⅰ. 본문해설 

그치고 폐하는 은사와는 달리 사랑은 떨어지지 않고, 영적인 은사가 눈에 띄는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만은 못하다고 오늘 사도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Ⅱ. 본문의 정확한 의미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여기서 ‘떨어지다’란 단어는 문자적으로 ‘떨어지다, 넘어지다. 박살이 나다. 붕괴되다.’ 라는 뜻이며 상징적으로는 어떤 것이 멸망하거나 없어지거나 사라지다라는 의미이다. 특별히 고전 희랍어에서는 무대에서 연기하던 배우가 무대 아래로 끌려 내려오는 것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사랑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은 사랑은 없어지지 아니하며 혹은 실패하지 아니하며 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우리말 성경에서 ‘언제까지나(우데포테)’는 시간적으로 언제까지나 라는 길이라기보다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무엇 무엇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혹은 없어지지 않는다. 혹은 망하지 않는다. 끌어내려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끝으로 우리말 성경에서는 ‘사랑은’이라고 번역했지만 희랍어 성경에는 정관사 ‘헤’가 붙어있으므로 ‘그 아가페는’, ‘그 사랑은’이라는 의미로 13장 8절의 전반부를 이렇게 번역을 하면 가장 은혜로울 것이다. “그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실패하지 아니하고 혹은 그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사라지지 아니하고…”라고 말이다.


Ⅲ. 떨어지지 않는 사랑 

Α. 떨어지는 은사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8下) 

하나님이 교회에 주시는 신령한 은사는 불완전함과 관련 있다. 사랑과 대조하고 있는 예언, 방언, 지식의 은사는 아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우리의 아는 것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이 아는 것의 한계는 이중적인데 하나는 아직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완전한 표준인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주신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성경이 완성된 후에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이 모든 우리의 아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한계를 보충시켜주실 목적으로 이 은사들을 맨 처음 주어질 때와는 좀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같은 은사로서 우리에게 남겨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한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우선은 우리 영혼의 어두움이다. 죄는 우리의 영혼을 어둡게 만들어 마땅히 사랑해야할 것 대신 사랑하지 말아야할 것을 사랑하게 함으로서 사물과 가치의 질서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서 당신을 알도록 계시의 말씀을 주셨지만 이 계시를 온전히 아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아는 것이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을 주셨지만 성경을 모두 아는 것도 아니요. 자연 속에서 주님을 알 수 있는 흔적을 주셨지만 주님이 알라고 주신 것조차 알지 못하는 지성의 눈멂 때문에 우리의 아는 것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존재와 아름다움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온 후로 이 모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본래의 하나님을 보여주는 찬란한 빛을 상실하였다. 

인간이 아는 것은 하나님이 아는 것처럼 무한하고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인간에게 알라고 주신 그 한계조차도 이런 영혼의 어두움과 지성의 눈멂 때문에 올바로 알 수 없는 비참한 인간이 되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조차도 불신자보다는 낫지만 이런 여전한 어두움과 약함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언, 방언, 지식과 같은 은사를 주셔서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알게 하셨다. 이 모든 은사는 그러므로 구원과 이 모든 구원의 완성 사이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Β. 떨어지지 않는 사랑 

이에 반해 사랑은 완전함과 관련이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까리따스 사랑은 하나님의 아가페로부터 와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하시고 마지막으로 그 사랑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 결국에는 하나님은 이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시지만 당신 자신이 이 모든 피조물들을 통하여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사랑을 받으시는 사랑의 회귀 속에 우리 인간과 이 모든 세계를 두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고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 모든 인간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은 하나님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은 시간 속에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체들, 불쌍한 영혼들, 도덕적인 가치들 이 모든 것들이 시간 속에 있다. 그러나 시간 속에 사랑의 대상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이 세상에 붙잡혀 매여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대상이 있어야 가능하고 그 사랑은 성향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사람에게로 한 사람의 사랑이 흘러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사랑의 대상이 사라져버리고 그 사랑만 남을 때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 존재 전체를 뒤흔들어 놓는다. 왜냐하면 사랑은 의존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간 속에도 사랑의 대상이 있지만 까리따스는 시간을 초월한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사랑이 우리를 감화시켜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게 할 때에는 그 사랑의 근거가 하나님이 되게 함으로서 실망하지도 않고 실패하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는 사랑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구원과 완성사이에서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구원이 완성된 후에도 끝까지 유용한 사랑이 되어서 영원이 지속되는 사랑인 것이다. 

Ⅳ. 천국 - 사랑의 나라 

Α. 사랑 : 관계의 성향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사랑으로 엮어진 나라이다. 그래서 이렇게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며 또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받고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그 하나님의 사랑이 전체 하나님의 성도를 휘돌아 하나님 자신이 당신 자신에게 사랑을 받으시는 사랑이 되는 것이다. 

사랑은 형이상학적으로 관계의 성향이다. 이 관계는 어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있는 위치 그리고r의미를 뜻한다. 완전한 선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는데 베푸시는 그 선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에게 또 이웃에게 선을 행한다. 그들은 우리를 통해 사랑을 받지만 그 사랑은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흘러 온 사랑이고 흘러가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이타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이 사랑 안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사랑은 거미줄처럼 엮여져있어서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받고 지체들에게로 이 사랑을 흘려보내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고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도 또한 우리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통하는 사람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사랑을 받음으로서 그 사랑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받기도하고 우리를 사랑하기도하고 우리에게 사랑을 덧입기도 하고 우리에게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덧입혀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가 천국이고 그 안에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이 아가페의 거미줄 같은 연결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 전체가 흘러들어오고 흘러들어가는 통로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천국은 사랑의 나라이고 이 사랑은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다. 

Β. 교회 : 그 나라의 모형 

하나님이 이 세상에 주신 교회는 그 나라의 모형이다. 하늘나라에서나 이루어질 완전한 사랑의 관계를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있도록 하신 선취적 모형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천국에서와는 달리 이 세상에서는 끊임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유지되고 증진되는 사랑이다. 

이 세상의 교회는 천국의 맛보기이다. 이 교회에서 성도들이 함께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슴처럼 기대며 사는 것, 세상은 춥고 눈보라쳐도 교회에서 성도들이 서로 기대어 체온을 나누며 사랑하게 하시는 것은 이 맛보기를 보고 천국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 있다 사라질 세상을 사랑하는 대신 천국을 사랑하고 잠시 있다 사라질 세상의 가치를 사랑하지 말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가치를 따라 살라고 가르쳐주시려고 교회를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성도들에게는 천국의 맛보기이고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맛보기이다. 그러나 교회가 천국의 맛보기인 것은 틀림없지만 제대로 된 맛보기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하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입술로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감화가 계속 지속될 때에만 이 사랑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에 있어서 이 은혜의 전적인 의존을 배우게 된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교만하여 자랑할 수 있지만 은혜를 받은 사람을 그것이 불가능하다. 은혜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건물과 같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의 아름다움은 관계의 아름다움이다. 


Ⅴ. 결론 : 은혜를 사모하라 

비교적 은혜 안에 있을 때라도 불쑥 불쑥 솟구치는 이기심,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짓밟고라도 행복하고자 하는 나 자신의 욕망과 이욕들, 하나님보다 나 자신에게 나의 사랑을 더 받으려고 하는 정욕 같은 것들이 매우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매일 그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생각하고 나의 더러움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발견하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피 발라 주신 우리의 심장을 그리스도의 보혈에 깊이 담궈 주님밖에 영원히 사랑할 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없이는 누구도 이 교회의 지체로서 하늘나라의 맛보기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떨어지는 은사보다 떨어지지 않는 사랑을 하나님 앞에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하고 이것 없이는 일반 섭리 안에서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 사랑은 은혜의 결과이기에 이 사랑을 원하는 사람마다 어린아이 같이 타는 목마름으로 주께 이 은혜를 구하고 사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교회는 사랑의 교회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물처럼 교회를 덮고 있어서 가장 짐승 같은 사람도 교회에서 그 사랑의 물에 녹아져서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교회, 언제나 하나님이 목회를 통하여 그 은혜를 거두지 않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을 예수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초월적인 은혜가 언제나 깃들여 있는 교회, 그래서 성도들이 이 죄악 된 세상을 살면서 서로 사랑의 관계로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교회이다. 

이것은 사람이 가진 무엇으로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을 열고 열린 하늘을 통해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 이기게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 같이 주님의 은혜에 목말라 하며 이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든 신령한 은사도 사라지지만 사랑은 영원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실패하지 않으니 이 사랑의 사람이 되어서 숨 쉬는 날 동안 주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티끌만큼이라도 더 빛나도록 그래서 주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보석과 같은 성도가 되길 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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