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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성경대로의 복음 (고전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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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의 복음 (고전 15:1-8)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오늘은 부활의 날입니다. 지금부터 2천여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을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날입니다. 이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해가 떠올랐던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이 경험한 일 중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죽음의 권세가 이날 처음으로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AD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세계 교회는 매년 춘분 후 만월 다음에 오는 주일을 부활주일로 결의했고, 이후 전세계 교회가 이날을 부활주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신학자 칼바르트는 부활절과 성탄절의 설교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했는데,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류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사망 권세 아래 복종하던 인류가 이제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무덤에 뉘인 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주님이 그토록 모진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것도 결국 무위(無爲)로 끝났을 것이고, 우리의 믿음도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그분의 무덤은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인류의 영원한 소망이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는 사도 바울은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언급하다가 15장에 와서는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주제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본서를 기록할 당시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가운데 일부가 부활에 대하여 회의적(懷疑的)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서 13장이 ‘사랑장’ 으로 불려지는 것처럼 15장은 ‘부활장’ 이라 불립니다.

1절에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라고 했습니다. 사도는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의 핵심 진리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확고히 심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의 핵심 진리는 무엇입니까?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였던 것입니까?  

그것은 3, 4절에 나와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즉,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 이것이 바로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 진리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바울 사도가 전하고자 했던 복음의 진리를 좀더 깊이 살펴보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부활주일에 부활의 확신과 소망이 성도 여러분에게 넘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심 

3절= “···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그 중에 먼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본절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대속적 죽음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죽음이 예수님 자신의 결정이나 돌발적 사고에 의하여 되어진 것이 아님을 ‘성경대로’ 란 표현으로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은 오래 전부터 성경에 예언된 사건이며 준비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구약 성경 곳곳에서 예언된 사건이었습니다. 실로 구속사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은 구약 성경에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창 22장, 출 12장, 시 22편, 사 53장, 단 9:26, 슥 12:10).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자원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천 년 전 나사렛에서 살았던 목수의 아들 예수라는 청년이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고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 당시 십자가 형은 확고한 사형 집행 방법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산 사람이 있다는 말은 역사적으로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당국자들에게 잡혀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전과정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受難)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난 한 주간 고난 주간을 지키면서 예수님의 마지막 일정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첫날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둘째 날인 월요일에는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화요일은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 저주 사건, 수요일은 베다니에서 휴식, 목요일은 최후의 만찬과 겟세마네의 기도, 그리고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신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와 헤롯왕과 빌라도의 법정에서 밤새 매를 맞고 침뱉음을 당했으며, 구둣발로 채이고 채찍에 맞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기진맥진한 예수님은 손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까지 끌려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6시간의 피흘리는 고통이 이어졌는데, 이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 달린 채 운명이 확인되었는데도, 믿지 못한 로마 군인이 예수님의 심장부에 창을 찌르는 잔인한 검증을 다했습니다. 

요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그날 밤 예수님의 시신은 세마포에 싸여져서 아리마대 요셉의 굴에 매장되었고, 그 무덤은 여러 사람이라야 움직일 수 있는 무거운 돌문으로 굳게 닫혀지고 인봉된 후, 그것도 부족해서 여러 명의 군사로 굴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마 27: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철저하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신 사건은 많은 사람들이 목격한 역사적 사건이고, 이것은 불신 세상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골고다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2. 성경대로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부활하심  

4절=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으며, 성경대로 무덤에 묻히셨다가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복음의 엑기스입니다.

여기서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에타페)’ 와 ‘다시 살아나사(에게게르타이)’ 란 두 동사는 모두 수동태로 쓰였으나 그 시제가 다릅니다.  

먼저 전자(에타페)는 부정 과거형인데, 이것은 여러 과정을 거친 일이 드디어 목적에 도달하였음을 나타내는 절정적 부정 과거(Culminative Indefinite Past)입니다. 예수님의 장사되심은 비하(卑下) 신분의 마지막 단계인 바, 이 시제는 성육신(成肉身)하심으로 시작된 낮아지심의 단계가 드디어 장사되심의 단계까지 이르렀음을 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반면 후자(에게게르타이)는 완료형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과거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전자와 다르게 완료형을 사용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단순히 역사적 사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효력이 계속됨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미래에도 변함없이 살아계실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의 핵심인 예수님의 부활과 그 역사적 확실성을 논증하는 가운데,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수많은 증인이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5-8절).

5-6절=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8절=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바울은 부활의 첫 번째 증인으로 베드로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베드로는 가장 신임 받는 주님의 일꾼이었습니다. 이어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실제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와 무덤을 찾은 여인들,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신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생략하고 베드로에 이어 열두 제자를 부활의 증인으로 언급한 것은 초대교회 당시 예수 부활의 핵심적인 증인이 바로 이 예수님 제자들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한 번에 현현하셨는데, 바울이 본서를 기록할 당시(A.D. 54~55년) 이들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목격자가 살아있었고,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계속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주님은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고, 우리 부활의 확실한 소망이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3. 부활하신 예수님은 따르는 무리들을 변화시키심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놀랍게 변화시켜 부활의 증인으로 서게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담대하게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급속한 성장은 이들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경험한 것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증거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약속대로 성령님을 보내셔서 제자들을 능력있는 증인으로 변모시키신 것입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삶의 방향이 바뀌었고, 이것은 주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더욱 확인시켜줍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십자가 사건 때까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변화되어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후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기꺼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또 어떻습니까? 그는 스스로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8절)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그토록 박해했던 그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온전히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헌신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일등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다 준 역사적인 사건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르치는 수많은 교회당이 건립되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과 그를 믿는 성도들이 장차 예수 재림 때 부활하리라는 예언을 담대하게 증거하고 있는 성경은 지상에서 가장 많은 방언으로 인쇄되어 전세계에 반포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을 거룩한 성일(聖日)로 지키는 세계적인 의식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변화는 또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분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미래를 꿈꾸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는 그리스도를 죽인 포악한 군중 앞에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용사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두려워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세계를 뒤엎는 복음의 증인들이 되었고, 순교의 제단에 피뿌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지난번 프라하에 들렀을 때 종교개혁의 선구자인 얀 후스(Jan Hus)의 동상 앞에서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는 1415년 7월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자로 낙인찍혀 화형당한 체코인입니다.

얀 후스는 1370년 남보헤미안 후시네크 지방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프라하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 당시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였던 존 위클리프(1330∼1384)가 성경에 입각해 기존 교회 질서에 준열한 비판을 가하고 철저한 교회개혁을 부르짖음을 듣고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얀 후스는 영국 유학에서 돌아와 1398년부터 프라하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1402년부터는 3천 명 가량 모였던 프라하 베들레헴 교회에서 설교자로 활동했고 1409년에 프라하 대학 총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체코어와 라틴어로 수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그는 설교만 3,000편이 넘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복음에 입각한 교회 개혁에 관한 것이었고, 평민들로부터 왕족과 귀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들으며 열광했습니다. 그는 부활의 생명으로 충만한 설교자였습니다.

그가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자 교황, 왕, 귀족, 교회지도자 등 기득권층이 그를 강력하게 견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후스는 프라하에서 모든 교회 활동을 금지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패한 교회의 기득권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남뵈멘지역으로 가서 들판과 광장에서 민중을 향해 진리를 설교했고, 로마교회의 잘못을 지적한 라틴어로 쓴 명저 '‘교회론(De ecclesia)을 출판했습니다. 

교황청은 콘스탄츠에서 개최된 공의회에서 그가 이단자로 처형된 위클리프의 사상과 동일한 사상을 가졌다며 이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후스를 소환했습니다.

후스의 친구들은 이 소환에는 교황청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간파하고 그에게 콘스탄츠로 가지 못하게 말렸지만, 그는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밝히기 위해 콘스탄츠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도착하자마자 교황청은 그를 감옥에 가두고 그가 행한 교회비판을 무조건 철회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후스는 이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대한 순종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후스는 변론할 기회나 대화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이단자로 판결 받아 1415년 7월6일 이단자의 누명을 쓴 채 화형대에 묶였습니다. 그때 다시 한 번 더 철회를 요구받았지만 그는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부활의 소망으로 가득찬 후스는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나에게는 순간의 형벌을 피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좋은 일이며, 영원한 수치를 당하는 것 보다 불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 더 유익하다. 그런 일들은 바로 나를 부활하신 주님의 팔에 던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기도했습니다. 

“살아계신 주님! 나의 대적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은 저들이 나를 대적하여 행하는 잘못된 증언과 그릇된 기소를 알고 계십니다. 주님의 무한한 자비로 저들을 용서하여주옵소서”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고난을 받으시고 성경대로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찔리시고 상하셔서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대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성경대로 징계를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셔서 우리에게 평화와 치유를 선사하십니다.

주님은 성경대로 부활하셔서 우리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고, 우리의 영원한 의(義)가 되셨습니다. 부활의 능력은 우리에게 역사해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십니다. 그 능력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도록 하십니다. 우리의 거듭난 영혼은 지금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과 능력으로 살고 있습니다!

폴 투르니에는 스위스의 의사이자 학자요, 유명한 저술가입니다. 그가 쓴 신앙 간증집「듣는 귀」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투르니에와 그의 아내는 금실 좋은 남편과 아내로 소문났는데, 한번은 그리스에 휴가를 갔다가 아내가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죽기 직전에 아내는 평화로운 미소를 띠고 남편을 쳐다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보, 오늘 천국에 도착하면 먼저 가 계신 시부모님을 만나 정말 즐거울 것 같아요.” 

그 말에 남편인 투르니에 박사는 굉장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아내가 죽음을 마치 기차를 타고 제네바에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재회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새롭게 체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내를 떠나 보낸 후에 그의 믿음은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에 대한 믿음이 강해질수록 그는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되는 놀라운 자유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내와 육체적으로만 결혼한 부부였던 것이 아니라 아내의 소망과 믿음 속에 한 몸이 되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성도 여러분!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주님을 따르는 자들을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삼으십니다. 여러분 모두 주님이 크게 쓰시는 부활의 증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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