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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 만남의 기쁨(요 20: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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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만남의 기쁨(요 20:16-18)

저는 “인생은 만남과 나눔과 기쁨이란” 말을 자주 합니다.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제가 몇 달 전에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쓴 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나는 “인생은 만남과 나눔과 기쁨” 이란 말을 자주 하는데, 12월 17일부터 1월 9일까지 3주 동안의 미국 방문이야말로 만남과 나눔과 기쁨의 방문이었다. 우선 “작은 교회들 방문 약속을 취소하고 빨리 비행기 타고 미국으로 오라”고 조르던 두 손자들과의 만남과 나눔의 시간들은 참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센스와 미모를 갖춘” 딸과 “못하는 것이 없는” 사위와의 만남과 나눔의 시간들도 물론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3주 동안 L.A. 지역의 여섯 교회들을 방문하며 9번 설교를 했는데 그 교회들의 목회자들 및 성도들과의 만남과 나눔의 시간들도 반가움과 기쁨이 넘치는 은혜로운 시간들이었다. “눈물겨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큰 사랑과 격려를 받아 고맙습니다” “목사님이 주신 다섯 마디 말씀을 교회의 표어로 삼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목회자들도 있었다. 모두가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강변교회 출신 박혜준, 김홍영, 박정희, 신명주 집사 등은 “꿈만 같습니다” “너무 반갑습니다” “강변교회에서 배우고 받은 신앙 훈련 때문에 여기서도 주일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김홍영 집사는 나를 오랫동안 껴안고 놓아주지 않으려고 했다. 정성껏 마련한 식사 대접을 받으며 나는 진한 사랑을 느꼈다. 박혜준 집사는 감사와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기 미국에서, 그리고 저의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아직도 꿈을 꾸었었나 생각이 들어요.”

『합신 제자들 부부 30여명과의 만남과 나눔의 시간도 반가움과 즐거움이 가득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음식을 함께 나누면서도, 세배 돈(?) 10불씩을 받아 들고서도, 그리고 볼링을 함께 치면서도, 모두 기뻐하며 즐거워했다. 내가 너무너무 사랑하며 존경하던 고 박윤선 목사님의 아들들인 박성은 박사 부부와 박성진 박사 부부와의 식사를 겸한 만남과 대화는 진솔하고 진한 반가움과 즐거움의 시간이었고, 훌러 신학교 한국 학부 원장 박기호 목사님과 부원장 이광길 목사님과의 식사를 겸한 만남과 대화는 마음과 뜻이 통하는 알차고 유익한 만남과 대화였으며, 미주 복음방송에서 한 시간 동안의 대담 후 박신우 목사님과 이종용 목사님과의 식사를 겸한 만남도 매우 즐겁고 유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L.A.에 3주 머무는 동안이 마침 손자들의 방학 기간이어서 거의 매일 함께 이곳 저곳으로 놀러 다니고, 9번 예배에도 모두 함께 참석하했는데, 손자들은 너무 너무 좋아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국에 가지 말고 함께 살자고 했다. 두 손자는 자기들의 방과 침대를 우리에게 내어주고 엄마 아빠 방 바닥에서 함께 잠을 잤는데 자기들 방과 침대를 우리에게 아주 내어 주어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들이 떠날 시간이 가까워지자 어떻게 3주가 그렇게 빨리 지나 갔느냐고 말하면서 우리들이 떠나기 전날 밤에는 떠나지 못하게 동혁이는 할아버지의 안경을 감추고 수혁이는 할머니의 가방을 감추기도 했다. “떠나면 가만히 안 두겠다”는 협박까지 했다(2012년 1월 11일)』 이것이 제가 쓴 기행문의 일부입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강변교회 출신인 박혜준이 저의 홈 페이지 방명록에 올린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박혜준은 배순자 권사님의 딸이고 박혜승의 언니이고 박성광의 누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너무나 큰 선물을 주신 것 같아요. 목사님, 사모님 혜원 언니 가족 모두 제가 주일날 뵌 것 맞지요? 강변교회를 떠나 미국으로 온지 10년이 되었어요. 목사님 은퇴하신 후 매주 전국, 세계방방 곡곡으로 다니신다고 하셔서 한국가도 만나 뵙기 어렵겠구나 생각했는데 저는 주일날 교회에서 주보 보고 정말 깜짝 놀랬어요. 여기 미국에서, 그리고 저의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10년 동안 잊고 살아왔던 저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준 말씀들, 저희 가정에 너무나 필요한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꿈을 꾸었었나 생각이 들어요. ^*^ 그리고 한번이 아닌 1월 5일 날도 목사님 설교를 또 들을 수 있다니 2012년도 선물도 벌써 받은 것 맞지요? 시간이 멈추었었나 싶을 정도로 그대로 이신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이렇게 기쁜 만남을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혜준 올림』 

그렇습니다. 행복한 인생은 만남과 나눔과 기쁨입니다. 한 마디 더 보태면 행복한 인생은 보고 싶음입니다. 친밀한 만남과 나눔과 보고 싶음이 없는 인생은 쓸쓸함의 인생이고 불행한 인생입니다. 친밀한 만남과 나눔과 보고 싶음이 있는 인생은 기쁨의 인생이고 행복한 인생입니다.

사실 성경은 만남의 기쁨과 즐거움을 예찬합니다. 하나님 만남과 성도들 만남의 기쁨을 예찬합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시100:2). 다윗은 하나님 만남과 성도들 만남의 기쁨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16:3). 사도 바울도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성도들의 사랑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빌4:1,4,10).

오늘은 부활 주일이기 때문에 성도들 만남의 기쁨 보다는 주님 만남의 기쁨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님 때문에 기뻐하라고 분부하셨고 그리고 저들에게 기쁨을 채워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1). 우리 죄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나는 일보다 더 귀중하고 더 보배롭고 더 기쁘고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나므로 놀라운 기쁨을 누렸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났던 주님의 제자들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가장 먼저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난 가장 기쁘고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안식 후 첫 날인 주일 날 이른 새벽 아직 어두울 때에 누구보다 먼저 무덤을 찾아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있었습니다(요20:11). 보고 싶음이 극에 달할 때 달려가서 울게 됩니다. 바로 그 때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마리아야” 라고 부르실 때 마리아는 “랍오니여” (“선생님이여”) 라고 대답하면서 너무너무 놀라고 너무너무 기뻐서 예수님을 왈칵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야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요20:17). 막달라 마리아는 가장 기쁘고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가장 먼저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났고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증언하는 최초의 증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로 막달라 마리와 함께 무덤에 왔던 다른 여인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다른 여인들도 막달라 마리아처럼 십자가의 주님을 찾아서 인식 후 첫날인 주일 날 이른 새벽 무덤으로 달려왔습니다. 천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하라”(마28:5-7). 

천사의 말을 듣고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 때에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마28:9). 여인들은 너무 기뻐서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세 번째로 사도 베드로에게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눅24:33,34).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배신자 베드로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 보이신 사실은 참으로 의미 깊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에게 한가지 귀한 점이 있었다면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회개였다고 생각합니다.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눅22:62). 통곡하며 회개하는 제자 베드로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께서 세 번째로 나타나서 그에게 믿음과 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그 다음 네 번째로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오후 의심과 슬픔에 쌓여 고향 엠마오로 돌아가던 이름 없는 두 제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눅24:15,16). 결국 예수님께서 저들의 마음과 눈을 열어주셔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하여주셨고 마음을 뜨겁게 해 주셔서 부활의 주님을 믿게 하여 주셨습니다. 저들은 너무너무 기뻐서 오던 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주님의 제자들과 함께 부활의 기쁨을 만끽했을 것입니다(눅24:32-35).

그 다음 다섯 번째로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저녁 두려워서 문들을 닫아 걸고 숨어있던 10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평강을 기원하셨고 저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세상에 내 보내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자 저들은 너무너무 놀라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요20:19-21). 자격이 없는 겁쟁이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저들은 너무너무 기뻐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겁쟁이 제자들에게 기쁨을 주셨을 뿐 아니라 증인의 사명을 주셨고, 성령을 받게 하셨고, 죄 사함의 특권까지 부여하셨습니다.

그 다음 여섯 번째로 부활 주일 다음 주일 저녁 안 믿겠다고 고집하던 의심 쟁이 도마와 열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에 부활의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의심쟁이 도마에게 주님의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만져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도마는 너무 놀라고 너무 황송하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을 것입니다. 결국 도마는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도마는 한 평생 그 때의 놀라움과 황송함과 기쁨을 가슴과 몸에 지니고 살다가 순교의 현장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만나므로 우리의 인생이 바꾸어지고 우리의 운명이 바꾸어집니다. 일곱 번째로 여덟 번째로 아홉 번째로 열 번째로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 보이신 이야기는 시간상 관계로 생략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이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는 여섯 번 모두 주일에 나타나 보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주일 새벽에, 주일 아침에, 주일 오후에, 주일 저녁에 나타나 보이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주일 저녁에 함께 모여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활의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나려면 주일 하루를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주일 하루 종일 정성껏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특히 주일 저녁 예배를 정성껏 드리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일 저녁 모임을 통해서 제자들이 두 번씩이나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속화와 인간화로 치닫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주일성수를 소홀히 하고 “잘 살아보세” 라는 성공주의와 세속주의를 따라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신학자중의 한 사람이었던 찰스 하지 박사는 주일성수를 소홀히 할 때 가정이 타락하고 사회가 타락한다고 지적한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주일 저녁예배를 중단하고 있는데 주님 만날 기회를 그만큼 포기하는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지일 목사님은 이와 같은 현상을 기가 막힌 현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길선주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등은 주일성수를 철저히 했고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나곤 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나는 일보다 더 귀중하고 더 보배롭고 더 기쁘고 더 행복한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부족하고 부끄러운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났을 때 저들의 인생이 바뀌어졌습니다. 저들은 모두 놀라움과 기쁨에 사로잡혔고 저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삶이 변화되었고 결국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주님의 증인들로 살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값지고 기쁘고 행복한 인생은 주님 만남에서 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나므로 모든 것이 바뀌어지고 모든 것이 주어집니다. 놀라움도 기쁨도 회개도 눈물도 믿음도 사랑도 소망도 헌신도 모두 주님을 만나고 또 만나므로 주어집니다.

둘째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났던 교회사에 나타난 믿음의 선배들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어거스틴이 32살 때 무화과 나무 아래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나므로 회개와 기쁨의 눈물을 강물 같이 흘렸고 그래서 그의 운명과 삶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31살 때 비텐베르그의 어거스틴 수도원 탑 속에서 십자가의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나므로 하늘이 열리는 기쁨을 체험했고 그래서 그의 운명과 삶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길선주 도사가 29살 때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길선주 도사는 마음에 번민을 가지고 깊은 밤 이른 새벽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존하신 하나님이시여, 저는 지금 심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신봉하던 선도는 정말 섬길만한 도인지 의심스럽고, 예수교에는 과연 영생의 진리가 있는지 알 수 없어 마음이 몹시 괴롭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사 이 마음을 가라앉아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수삼일간 계속했습니다. 밤이 깊어 새벽 한 시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정말 예수가 인류의 구세주인지 알려 주옵소서” 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안에서 청아한 피리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탕탕 하는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깜짝 놀라는 순간 하늘에서 “길선주야, 길선주야, 길선주야!” 하고 세 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길선주는 너무도 무서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엎드린 채 “아버지여,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저를 살려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며 울부짖었을 때 그의 몸은 불덩어리가 된 듯이 뜨거웠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길선주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결국 길선주 도사는 한국교회의 아버지가 되었고 평생토록 참회의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친밀하게 만나며 섬기는 주님의 신실한 종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 다음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를 통한 하나님 만남의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기도와 말씀과 성령의 사람이었고 하나님 만남의 사람이었습니다. 부산 초량교회에 있을 때는 부산 구덕산에 올라가 밤새 기도했고, 마산 문창교회에 있을 때는 마산 무학산에 올라가 밤새 기도했으며, 평양 산정현교회에 있을 때는 모란봉이나 묘향산에 올라가 기도하곤 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주일 성수와 함께 새벽기도를 항상 강조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새벽 시간은 은혜가 많은 시간입니다” 라고 자주 말하면서 자신은 한 번도 새벽기도를 빠진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신사 참배의 강요가 심해지자 1938년 6월 주기철 목사님은 김화식 목사님 이유택 목사님과 함께 묘향산에 들어가 10일간 기도했는데 5일간은 금식했습니다. 주 목사님은 다 넘어진 조선 교회를 홀로 버티어 세우기 위해 죽음의 준비를 하면서 비장한 각오를 다짐했습니다. 피와 땀나는 기도로 밤을 새우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산에서 기도에 열중하는 가운데 무아지경에 들어가서 불 솟듯이 때로는 마음속에서 기도가 강물처럼 흘러나옴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감격에 휩싸여서 30분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다른 말은 없이 ‘아버지여! 아버지여!’ 라는 말만 되풀이해서 부를 때도 있었습니다. 성신이 마음속에서 무한한 탄식으로 대신 기도하는 시간인 줄을 알게 되면서부터 확실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기도와 말씀을 통해 그리고 일사각오의 순교적 신앙을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만남과 교제를 이어간 가장 신실하고 충성된 주님의 제자였습니다.

셋째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사람인 저의 주님 만남의 은혜와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한 평생 주님 만남의 은혜와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귀한 믿음의 스승들의 가르침으로 주님 만남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간단하게 합니다.

초등학생 때는 평양에서 주일 성수와 새벽기도를 통해 주님 만남의 은혜와 축복을 누렸고, 중학생 시절에는 대구에서 한국의 무디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자주 참석하여 회개와 은혜 사모의 설교를 들으므로 기도와 말씀과 회개를 통한 주님 만남의 체험을 거듭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 때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기도와 말씀을 사모하면서 주님 만나기를 사모했습니다. 토요일 새벽마다 이성봉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으며 헌신을 다짐하곤 했는데 얼마나 기쁘고 축복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는 한국의 예레미아 김치선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창동교회에 다니면서 주일 아침 저녁 예배와 수요일 저녁 예배는 물론 새벽기도회 때마다 김치선 목사님의 회개와 은혜 사모의 설교를 들으면서 기도와 말씀과 회개를 통한 주님 만남의 체험을 거듭하곤 했습니다. 삼각산과 관악산은 물론 대구 주암산까지 김치선 목사님을 따라 부흥회에 참석하면서 기도와 말씀과 회개를 통한 주님 만남의 체험을 거듭하곤 했습니다.

저는 나중에 기도와 말씀의 사람 박윤선 목사님을 만나고 가까이 교제하면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눈으로 보고 삶으로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총신 때도 합신 때도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기도와 말씀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이른 새벽마다 택시를 타고 오셔서 총신 뒷산에 올라가서 몇 시간씩 기도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목격하며 저도 새벽마다 총신 뒷산에 올라가서 박 목사님 근처에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박 목사님은 어디를 가실 때나 심지어 대화하실 때에도 “주여, 주여” 라는 말을 자주 하시곤 했습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만남과 교제가 어떤 것인지를 저에게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계시던 마지막 한 주간 동안 저는 거의 매일 세브란스 병원에 계시던 박윤선 목사님을 찾아가서 만나 뵙곤 했는데 그 때야 말로 회개의 기도와 중보의 기도로 일관하신 기간이었습니다. 주님 만남은 학교나 도서관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인격적으로 물려 받아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또한 어린 아들 철원이를 통해서 회개하면서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주님과 천국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철원이는 머리 뼈가 벌어지는 극심한 아픔을 경험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기도하며 주님과 천국을 바라보았습니다. 철원이는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아빠는 기도를 잘 해서 최고야!” “아빠, 예수님은 나보다 더 아프셨지. 머리에 가시관 쓰시고 손과 발에 못 박히여 피 흘리셨지.” “아빠, 나 천국 가고 싶어. 엄마 아빠 누나 다 같이 천국 가고 싶어. 천국 가면 구주 예수님이 나 아픈 것 다 고쳐주시지!” “아빠, 하늘이 보여, 아빠, 예수님이 오셨어!” 저는 철원이 때문에 주님과 천국을 더 사모하게 되었고 기도를 더 힘쓰게 되었습니다. 철원이가 죽은 다음 철원이가 누어 있던 자리에 앉아서 몇 달 동안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슬픔과 아픔과 고통이 주님을 사모하고 만나게 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한 1983년 7월 암스텔담에서 열린 빌리 그레함 국제전도대회에 참석해서 빌리 그레함 목사님 등 귀한 하나님의 종들의 자기 성찰과 재 헌신과 도전의 메시지들을 들으면서 너무너무 깊은 감동을 받고 의자에 앉아서 말씀을 들을 수가 없어서 마루 바닥에 주저앉아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 재 헌신을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부족하고 부족한 저에게 하나님의 귀한 종들을 통해서 주님 만남의 기쁨과 감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주님 만남의 체험은 학교나 도서관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또한 강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나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독실한 불교 신자들과 철저한 무신론자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와 완전히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목격하고 또 목격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체험하고 또 체험했습니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조춘국씨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완전히 변화된 새로운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을 바라보면서, 회장 보살 박달안씨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완전히 변화된 새로운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그 후 여러 사람들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완전히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체험하고 또 체험했습니다.

저는 강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특히 은퇴를 바라보면서 내가 죄인 중의 괴수임을 절감하며 처절한 회개의 고백을 하고 또 하면서 주님을 친밀하게 만난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2006년 9월 14일 강변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면서 사도 바울의 처절한 죄 고백에 너무 감격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주님 만남은 처절한 죄 고백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 새벽기도회 시간에 성도들과 함께 사도 바울의 처절한 죄 고백의 탄식을 읽으면서 가슴과 눈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오늘 아침 차를 타고 교회로 오는 시간에도 그 눈물은 계속해서 내 가슴과 눈에서 흐르고 있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What a wretched man I am!” 자기 자신을 가리켜 ‘저주 받은’ 사람이라고 처절한 죄 고백을 한 사람이 정말 사도 바울 자신이었을까? 

나는 오늘 새벽 사도 바울의 처절한 죄 고백의 탄식을 한 마디 한 마디 읽으면서 ‘어쩌면! 어쩌면!’ 하면서 나 자신도 감동에 떨며 탄식하고 있었다. 삼층 천에 올라갈 정도로 가장 큰 은혜를 체험한 사도가! 그의 손 수건이 닿기만 해도 불치의 병들이 물러갔던 가장 큰 능력을 지녔던 사도가! 어떻게? 어떻게? 그런 처절한 죄 고백의 탄식을 할 수가 있었다는 말인가! 나는 가슴과 목이 메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이것이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1,24). 

기독교는 값싼 은혜를 파는 종교가 아니다. 만사형통을 빌어주는 종교도 아니다. 그럴듯한 선으로 포장해주는 종교도 아니다. 기독교는 자신의 부끄러운 수치와 절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들어내는 종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저주스러운 모습을 하나님께 진솔하게 고백하는 종교이다. 지금 우리는 처절한 죄 고백의 탄식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모두 너무 의인들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 다른 사람들의 잘못만 크게 보는 너무 밝은 눈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 자신을 미워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분노하는 이상한 가슴을 지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메마른 나의 가슴에 사도 바울이 가슴에 지녔던 처절한 죄 고백과 탄식의 몇 백분의 일이라도 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길선주 이성봉 김치선 목사님들이 지니
셨던 처절한 죄 고백과 탄식을 나도 가슴에 지니면서 남은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소원한다.(2006.9.14)』 

사실 처절한 죄 고백은 주님 만남으로 인도하는 관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날마다 백여 번 이상 다음과 같이 중얼거립니다. 때로는 자면서도 중얼거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은퇴 후에도 부족한 죄인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나타내 보여주셔서 하나님 만남의 기쁨을 계속해서 누리고 있습니다. 바로 두 달 전에도 부족한 죄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대구 평안교회에서 부족한 저의 간증 설교를 축복하셔서 많은 성도들이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 만남의 체험을 하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300여 명의 신자들을 가진 아담한 교회인데 주님과 은혜를 사모하는 모습이 너무너무 귀하고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3일 동안 9번 설교를 했는데 마지막 날 저녁 예배가 끝난 후 교인들이 나와서 가족 단위로 안수 기도를 받기 시작했는데 한 시간 동안 안수 기도가 계속 되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안수 기도를 받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구 평안교회의 박치영 목사님이 은혜 받은 일을 감사하며 이런 글을 저의 방명록에 올렸습니다. 『대구평안교회 박치영목사입니다. 담임목회 초년병인 저에게 앞으로 어떻게 목회해야 할지 반듯한 이정표를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귀하고 귀한 우리 목사님! 한국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들을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주님 사랑, 교회 사랑, 이웃 사랑, 원수 사랑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말로 하는 설교자가 아니라, 삶으로 설교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신 말씀 마음 판에 깊이 새기고 일평생 목회의 지침으로 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과 한 하늘 아래 신앙 생활 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게 축복이고, 목사님의 말씀을 직접 3일 동안 마음껏 들을 수 있어서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대구평안교회 어린 목사 박치영 올림』

대구평안교회 성도 한 분이 보낸 글도 거의 그대로 소개합니다. 『존경하는 김명혁 목사님.. 안녕하세요.. 이번 부흥회에서 목사님의 귀한 은혜의 말씀을 들은 평안교회 성도입니다.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제 맘속에서 절로 흘러 나오는 ‘존경하는’ 이라는 표현을 쓰는거 같습니다.^^ 먼저, 저희 대구 평안교회에 3일간 오셔서 귀한 말씀 나눠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돌이켜보면 너무 부끄럽지만 전 사실 저희 교회에서 말씀 대부흥회를 한다고 했을 때 오실 강사 목사님을 보고 살짝 실망을 했었습니다. 목사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이 많으신 원로목사님이 오시면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맘에서요..^^ 하지만 왠걸요.. 주일 아침 11시 반 두 번째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전 알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목사님 말씀에 대한 저의 사모함이 매시간 목사님 말씀을 기다리게 되고 은혜 받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깨닫고.. 그렇게 3일을 보낸 거 같습니다. 정말 집에 와서도 드는 생각이 그냥 하루 종일 목사님 살아오신 얘기, 신앙얘기만 들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생각해봐도 정답은 하나인 거 같습니다. 목사님이 화려하게 설교해서도 아니고 억지로 은혜 받게 할려고도 아니고 그냥 목사님 추구하는 삶이, 목사님 신앙의 가치관이, 성품이 그 말씀 속에 묻어 나와 제 맘을 감동시키고 정말 정말 될 수도 없고 어렵지만 조금이나마 나도 목사님처럼, 또한 목사님이 그렇게 존경하시는 손양원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길선주 목사님 등이 살아간 신앙의 삶을 정말 1%라도 따라 살아가고 싶다는 맘이 들었는거 같습니다. 

오늘 금요 기도회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번 부흥회를 통해 받은 신앙의 본질에 관한 감동이 또 훈련되지 못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갈 수도 있다는 거 알지만, 이 지면을 통해서 약속 드리고 싶습니다. 목사님이 제 가슴에 남겨 주신 말씀대로 부족하나마 겸손히, 착하게, 약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제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며 사는 제가 되겠습니다. 목사님이 사랑하는 동물들, 자연들을 얘기하시며 어린 아이보다 더 순수하고 해맑으셨던 목사님 표정들, 아이들 편지를 읽어주시면서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들, 하지만 신앙의 본질에 대해선 명확하게 현 세태를 꼬집어 주시고 짚어 주시던 단호한 모습들..오래 오래 기억될 꺼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목사님..건강하세요..』 주님 만남은 다른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통해서도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두 주 전에도 광주 호산나교회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3일 동안 집회를 했는데 마지막 날 저녁 집회를 마친 후 김규현 담임 목사님이 “이번 집회를 통해 제일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은 저 자신과 장로님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감사를 표하고 또 표했습니다. 광주 호산나교회의 김영선 장로님 내외분은 집회 때마다 제일 앞 자리에 앉아서 눈물로 말씀을 들으면서 눈물로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저는 저 같은 죄인을 은혜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또 체험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망극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기독교는 교육의 종교도 행사의 종교도 프로그램의 종교도 시끄러운 음악의 종교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나는 만남의 종교입니다. 기도와 말씀과 회개를 통해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나고 또 만나는 만남과 기쁨의 종교입니다. 수가성 여인도 세리도 강도도 어거스틴도 루터도 길선주 도사도 이기풍 깡패도 주기철 목사님도 손양원 목사님도 모두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또 만나므로 저들의 운명과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세상의 유행을 너무 따르며 세속화와 인간화의 길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세상의 지혜나 웅변술 등 모든 유익한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세상에 대해서는 바보가 되는 길이 더 안전하고 더 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와 말씀과 회개를 통해 주님 만남의 기쁨을 누리며 사시는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의인이 되지 마시고 차라리 죄인인 세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칭 의인 시몬이 되지 마시고 차라리 죄인인 한 여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눈물로 만나시고 또 만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적으로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오히려 남편 여럿을 두었던 수가성 여인이나 인간 쓰레기 같은 막달라 마리아나 세리장 삭개오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행복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사랑을 날마다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처럼 이성봉 목사님처럼 김치선 목사님처럼 한경직 목사님처럼 날마다 울면서 주님을 친밀하고 생생하게 만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 만남의 기쁨을 누리시다가 하늘에서 주님의 얼굴을 기쁨으로 만나 뵈옵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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