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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 신앙을 소유한 자 (요 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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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을 소유한 자 (요 20:19-23)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부활의 권능과 소망이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빼놓고서는 사실 기독교가 존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도의 선교사인 스탠리 존슨이 전도를 하고 있을 때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있소!” “그것이 무엇입니까?” “메디나 성지에 가면 마호메트 시신이 들어있는 관이 있어서 역사적 증거가 되고 있소. 그러나 당신네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에 가면 빈 무덤 밖에 없지 않소, 그러니 무슨 역사적 증거가 됩니까?” 

그때 스텐리 존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빈 무덤은 죽은 자가 부활하였다는 것이요, 부활은 생명을 의미한답니다.” 그렇습니다. 시신이 있고 아직도 관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무덤이 비어있고 시신이 없다는 것은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요,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생명과 승리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며 자신이 전한 복음이 헛것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고 부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은 가장 지혜로운 자요, 가장 행복한 자가 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행복의 근거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믿었던 스승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난 후에 두려움과 절망에 빠진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주신 복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통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1. 부활의 주님께서 평강의 복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첫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9절과 21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거듭 축복하셨습니다. 이 말은 유대인들의 일상적인 인사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하신 인사는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19절 앞부분에 보면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을 닫았더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예수님처럼 자기들도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이 잡히실 때 다 배반하고 부인하며 도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시면 스승을 부인하거나 배반하고 떠났던 제자들은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지만, 한편으로는 배신의 죄책감과 수치심, 그리고 주님으로 부터 받을 질책 때문에 결코 마음이 편한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제자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시는 주님께서 먼저 평안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이 마음의 죄책과 수치심을 갖지 않도록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연속 2번이나 평강을 선언하신 것은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분명히 두려움과 죄책감을 없애 주시겠다는 약속이요, 강조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평안이 넘쳤습니다. 이것은 20절에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하신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매우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제는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절망가운데 빠진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신 것은 절망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다시 희망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생명의 위대한 승리를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패배가 아니라 승리를,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느끼는 가장 강력한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많은 일로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질병의 고통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절망과 좌절을 통해 소망을 잃어버리고 사는 불행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의 병을 고쳐 주시면서 질병의 고통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 오셔서 실패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또한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야이로의 딸과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려 주심으로 죽음의 공포와 슬픔을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가장 어려운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모시고, 우리 삶에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세상의 모든 두려움과 절망을 극복하며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예수 믿으면서도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 그리고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마음에 진정한 평안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 부활의 주님께서 사명의 복을 주셨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강을 기원하신 주님은 부활하신 것을 증명해 보이시기 위해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쁨과 흥분에 들떠 있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파송하신 것처럼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며 하나님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일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부활절을 통해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은 ‘사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마 24:14절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셨고, 막 16:15절에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세주이시며, 그가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고,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그를 믿기만 하면 구원과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부탁하실 때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부활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못자국난 손과 창자국난 옆구리를 보이시며 다시 사신 자신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에 대한 신앙은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을 두려움 없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부활의 증인이 되셔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를 외쳐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처럼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게 부활의 주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 땅에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소식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만큼 더 큰 소식은 없습니다. 좋은 소식은 빠르게 전달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들이 이 소식을 전달할 메신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부활의 주님께서 성령 충만의 복을 주셨습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까? 주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면서 다시 사셨음을 보여 주셨지만, 이 부활의 사실을 보고서도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전해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나 뵈었지만 그것은 잠깐뿐이었습니다. 요 21:1절 이하를 보면 부활을 목격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받은 제자들은 그 이후에 다 고향으로 흩어지고 다시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여러분, 부활의 신앙은 성령의 감동과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힘과 능력은 오직 성령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모여서 성령을 기다리라고 부탁 하셨습니다. 

그 후에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씩 따라다니면서 교육을 받고, 듣고, 보고, 느끼기는 했어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세상적인 권력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주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모두가 떠나고 배신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만은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한 베드로마저도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날 때 문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위협 앞에는 움츠렸고, 죽음 앞에서는 주님을 부인까지 했던 베드로가 성령 충만함을 받고나서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데 죽음이나 고통이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회 앞에서 담대히 증거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니까 능력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성령이 충만히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절은 단순히 삶은 계란을 주고받는 날이 아닙니다. 이번 부활절을 통하여 부활의 주님을 믿는 반석 같은 믿음,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하심을 받았다는 확신, 하나님과의 화해와 평강,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역사, 성령 충만함과 천하 만민을 향한 복음전파의 사명 등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 놀라운 선물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순종과 충성으로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닌 평강과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온 세상에 나가서 주의 죽으심과 부활과 다시 오심을 증거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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