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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증인이 필요합니다 (눅 24: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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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이 필요합니다 (눅 24:44-49)

부활의 은총과 기쁨이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 그리고 우리나라에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미국의 어느 할머니가 위암으로 병원에 들어가기 전 복권을 샀습니다. 

원래 신앙이 있는 할머니였기에 그런 것 안 사는데 우연히 사게 되었고 그 복권을 자식들에게 주고 입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입원해 계시는 중에 그 복권이 당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할머니에게 알리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할머니가 그 소식을 듣고 놀라 더 빨리 돌아가실까봐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할머니의 담당의사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할머니에게 알리겠다고 했습니다. 

“할머니 제가 드리는 말씀을 듣고 놀라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의사선생님, 저는 죽을 준비를 하고 들어왔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할머니 제가 드리는 말씀은 좋은 내용입니다. 병원에 들어오시기 전 복권을 사신 것이 있지요? 그 당첨이 되셔서 수백만 불을 타시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그리 놀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래요. 이렇게 당첨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저를 이렇게 잘 보살펴 주시고 애쓰시니 그 당첨금의 절반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의사가 너무나 놀라서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외칩니다. 
“돈이 최고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 그러나 틀린 말입니다. 

“학력이 최고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도 틀린 말입니다. 요즘 대형 교회들이 목사님이 은퇴하고 후임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제시하는 자격조건에 “박사학위 소지자” 를 찾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 “권력이 최고다. 힘이 있어야 된다.” 이것도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국회의원 후보들 보세요. 권력을 갖고 싶어서 난리를 치고 서로를 비방하고 공격하고 온갖 수단방법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고.... 제가 조금 열을 받게 하는 후보가 있습니다. 기독교를 범죄집단이라면서 척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나라의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출마하니...안타깝습니다. 그런 사람을 공천하는 당도 문제지요.   

성도 여러분! 속지 마세요. 
사단은 돈이 최고다. 학벌이 최고다. 권력이 최고다 속입니다. 속지 마세요.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생명을 걸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죄인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 사흘 만에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장차 우리를 심판하러 오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요즘 왜 바쁩니까? 무엇을 위해 바쁩니까? 여러분이 바쁘게 사는 그 일에 생명을 걸만큼 의미 있는 일입니까? 그 일이 그만한 가치 있는 일입니까? 

우리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 주님이 승천하시기전에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오늘 봉독한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승천하시기 전에 남긴 메시지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증인이 되어줄 사람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면 우리 주님은 증인을 찾고 계십니다. 어떤 일에 증인이 필요하실까요? 살펴보며 함께 은혜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1. 구약에 예언된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 어딜 다녀오는데 길가에 “목격자를 찾습니다” 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목격자의 증언이 필요한 것입니다. 증인이 있어야 누가 가해자인지 누가 피해자인지 알겠는데 증인(證人)이 없는 것입니다. 

‘증인’은 본 대로 말해야 하고 사실대로 말해야 합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면 사기입니다. ‘직무유기(職務遺棄)’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맡은 일을 안 하고 감당치 못하는 것이 직무유기입니다. 보았는데, 알고 있는데 말하지 않는다면 사실을 전하지 않으면 그게 직무유기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를 하는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시간차이로 보면 약 1600년의 시차를 두고 기록되었습니다.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 오경은 주전 약 1500년경에 기록된 것이고 마지막 성경인 요한 계시록은 주후 약 100년경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엄청난 시차가 있는데 놀라운 것은 초점이 하나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도 예수, 신약도 예수님이 초점입니다. 

문제는 구약성경인데, 구약성경 그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없으나 구약 전체에 예수님이 가득합니다. 창세기에 천지 창조부터 모세오경, 역사서, 선지서 등 모든 성경이 예수님을 노래하고 있고 그분이 오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가 어디서 탄생할 것인지, 어떻게 오실 것인지, 더 나아가서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만 살펴볼까요?   

미가서5장2절을 보세요.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사야 7장14절 하반절을 보세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예언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사야 53장에는 그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4절 이하를 보세요.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성경을 읽다보면 마치 예수님의 고난당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기록한 것 같이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사야 성경은 예수님이 오시기전 700년 전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성경 곳곳에서 부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25:8절에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또 이사야26:19절에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십자가 구속사역과 부활은 구약에 가득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눈을 열어 이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44절 이하를 보세요.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 그리고 시편에 주님에 대한 기록들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제자들의 눈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증인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성령의 감동으로 눈을 열어 성경을 깨달아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구속의 은총, 주님의 부활 사건이 어쩌다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 속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진 사건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된다고 믿지 않습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믿은 자로서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온 세상에 전할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독교 5대 신비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과학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하나님이 행하신 5대 신비의 기적이 있습니다. 

1)첫째는 천지창조입니다. 6일 만에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2)둘째는 성육신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3)셋째가 십자가 대속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을 통해 믿는 사람들의 죄를 사하셨다는 것입니다. 

4)넷째가 부활 사건입니다. 부활하셔서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고 영생이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5)다섯 번째는 재림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 5대 신비 사건은 전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미친 사람들의 소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5대 신비를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5가지가 믿어집니까? 어떻게요? 하나님이 눈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믿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증인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교통사고가 나도 증인의 증언이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하물며 영원히 멸망할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증인은 절대적인 역할을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의 공생애의 중심 사역은 무엇이었습니까? 

병 고치는 것이었습니까? 이적을 행하는 것이었습니까? 군중을 잘 모으는 것이었습니까? 검소하게 사는 삶 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핵심 사역은 마가복음 1장 38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예수님의 핵심적인 가치는 전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즉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그 일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왜죠? 그것이 증인이 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에 부인 집사님이 남편이 대학교 교수님이신분이 있었습니다. 

대학교수 정도 되면 배운 것도 많고,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위치에 있잖습니까? 그러므로 나름대로 자존심이란 게 있습니다. 그분은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사람이며,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싸여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내가 예수를 믿는데 아무리 믿자고 해도 남편이 말을 안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부인 집사님은 고민 끝에 목사님에게 찾아가서 남편을 좀 전도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시간을 내서 그 남편이 일하는 대학에 교수실을 찾아가 전도하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예수를 안 믿으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러자 그 교수가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뭔가 자기가 부족하고 모자라니까 그것을 채우려고 예수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없으니까 매달리는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구차하게 그렇게 매달리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라며 했습니다. 참 교만하지요? 목사님이 어쩌구니가 없어서 더 이상 말도 못하고 기도만 해주고 나왔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서 그 교수가 감기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금방 낫지 않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도 바이러스 감기 정도로 진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는 목사님이 병원에 심방을 가서 만났습니다. 

‘교수님, 이렇게 병상에 누워있어도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못 느끼세요?’ 

‘무슨 말씀이세요? 감기는 누구나 걸리는 건데요, 그걸 가지고 제가 약하다고 느끼다니요?’ 

그래서 그 시간에도 전도를 못하고 그냥 기도해 주고 돌아왔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갑자기 부인으로부터 아주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감기인줄알고 치료를 했는데 안 나으니 정밀검사를 한 결과 감기가 아니고 폐암이라는 것입니다. 그 교수는 너무나 충격을 받아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찾아가서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교수님, 지금도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못 느끼세요?’

그러자 꺼져가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제 와서 보니 나는 참 바보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부끄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드디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마음 문이 열린 것입니다. 결국 목사님이 진지하게 복음을 전했고 그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은 후에 세상을 떠났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사람에게 가장 기쁜 소식이 무엇일까요? 

암 선고를 받고 소망 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가장 기쁜 소식이 무엇일까요? 자식이 일류대학에 합격했다는 것일까요? 

큰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는 소식일까? 
학위 논문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일까요? 
주식에 투자한 것이 갑자기 뛰어서 거금을 손에 쥐게 되었다는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암이 치료되었다는 것일까요? 그러면 얼마 후에 늙어 또 죽을 텐데요. 
모든 사람은 누구나가 다 조금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야 합니다. 문제는 의인으로 서느냐, 죄인으로 서느냐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자기의 죄를 해결 받고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설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실 때 기쁜 소식, 이것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먼저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홀로 구원받고 홀로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먼저 구원하신 것은 우리의 증언을 통해 다른 사람도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46절 이하를 보세요.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누가 증인인가요? “너희는”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정말 구원받았다면, 정말 천국을 믿고 구원을 믿는다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그 거룩한 구원역사에 우리가 증인으로 나서주시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3. 증인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왜 주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셨나요? 그 선택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막3:14절 이하를 보세요.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목적이 뭐지요?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서 전도도 하게 하시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 

제가 깊이 이 본문을 묵상했습니다. 왜 주님은 함께 있고 싶어 하셨을까? 
깨달은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불덩어리’입니다. 우리는 ‘숯덩어리’입니다. ‘숯덩어리’는 불이 옆에 있어야 불덩어리가 됩니다. 

그러기에 숯 덩어리닌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덩어리가 됩니다. 그 방법이 뭡니까?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9절을 보세요.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증인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실제 오순절 날 제자들은 불같은 성령을 체험합니다. 능력을 덧입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놀라운 능력이 체험하게 됩니다.   

어떤 능력일까요? 성령은 사람을 변화하게 합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주님을 모르다고 3번 부인하며 죽음을 두려워했던 베드로를 보세요. 그가 성령을 받은 후 딴 사람이 됩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핍박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멘?   

또 하나 사울이라는 청년을 보세요. 

그는 살기등등하여 예수 믿는 자들 잡아 죽이던 사람입니다. 예수쟁이가 다메섹에 많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로 가다가 주님을 만납니다. 그때 성령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완전히 변화됩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증인이 됩니다. 성령이 사악하던 핍박 자를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성령은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교회사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변화되어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을 보세요. 주기철 목사님을 보세요. 다 주님의 성령으로 변화되어 한국교회 위대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믿습니다. 아멘? 부활의 주님은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사신 분임을 믿습니다. 아멘? 

그렇다면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성령이 부여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행1:8절을 다 아시지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권능(權能) 권세와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이것이 있을 때 우리가 증인의 사명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능력은 학력이나 지식이나 명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임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능력을 받으면 힘이 솟습니다. 그 능력을 받으면 기쁨과 감사가 넘쳐납니다. 그 능력을 입으면 주님을 섬기는 맛이 달라집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찬송소리가 달라집니다. 기도시간이 달라집니다. 
더 나아가서 교회 나오는 발걸음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나요? 그 능력의 원천인 성령(聖靈)충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야 받습니까? 

그것은 내가 노력해서 되기보다는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간절히 사모하시고 그리고 기도하세요.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말씀의 깊은 맛을 보셔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증인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그 증인이 되시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증인이란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는 자가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압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증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증언할 사람은 예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불덩어리가 되셔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당당하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 주님은 당신의 부활을 전할 주인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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