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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으니 (행 10:23-48)

첨부 1


이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으니 (행 10:23-48)


원로목사님께서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목사가 되신 후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셨는데 그 중에는 물론 많은 일가친척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 끝까지 전도하기 참 어려운 사람이 한 분 계셨는데 바로 저의 큰외삼촌이셨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는 이 분을 전도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시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포기하시면서 "지옥은 바로 당신 같은 사람을 위해 준비되어 있소."라고 마지막으로 한마디하고 돌아서셨다고 합니다.
  
원로목사님께서 보시기에는 이제 큰외삼촌은 예수님을 믿을 가망이 전혀 없어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 서울에 이 경향교회를 세우시려고 올라오셨을 때, 전혀 뜻밖에도 바로 그 큰외삼촌께서 개척교회에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한번쯤 인사하러 오셨나 했더니 그게 아니고 매주일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소천하실 때까지 정말 진실하고 열심 있는 신앙을 생활하셨고, 그 자녀들 즉 저의 외사촌들 역시 대부분 다 신실한 신자들이 된 것입니다.
참으로 성령께서 택자를 부르시는 길은 신기하고도 완벽합니다.
도저히 예수 믿을 것처럼 보이지 않던 사람이 어느 순간 아주 쉽고도 확실하게 예수 신자로 바뀌는 일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유대인 기독신자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이방인들이 바로 그처럼 '도저히 예수님을 믿을 것처럼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네들은 이미 구약 시절부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선민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에 비하여 이방인들은 오랫동안 온갖 우상숭배에 젖어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자기네들은 구약의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오시리라 예언된 메시아를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이방인들은 그런 성경의 지식이나 메시아 약속에 대한 소망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화육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이든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구세주로 오셨다는 내용 등을 말해 주더라도, 그 이방인들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길도 없고 믿을 리도 없다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넬료의 사건'이 바로 그와 같은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려 주시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고넬료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신자가 된 순간 그 자리에 베드로와 같이 있던 유대인 신자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역시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라고 자신으로서는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하여 놀랐습니다.
그들로서는 '결코 예수님을 믿을 것처럼 보이지 않던 이방인'까지도 예수님을 영접하게 만드시는 실로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보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그처럼 신기한 성령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고넬료에게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비단 고넬료뿐 아니라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택자들을 부르실 때마다 어김없이 똑같이 일어나는 성령님의 역사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성령께서는 택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경청하게 합니다.

본문 23절 하반절로부터 29절에 기록하기를 "23b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새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 24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 것을 보고 28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라고 했습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의 청을 받고 베드로는 그 다음날 "욥바 두어 형제" 즉 욥바교회의 신자들 몇 명과 함께 고넬료의 집으로 갔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올만한 때에 이미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베드로를 통해서 전해 듣게 될 말씀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벌써부터 자각하고 있다는 증거가 여기서부터 나타납니다.
베드로가 그 집에 들어갈 때에 고넬료가 그를 맞으면서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한" 것도, 베드로를 숭배한 것이 결코 아니라, 그가 전해 줄 말씀을 그만큼 사모하고 귀히 여기고 있었음을 반영해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극진한 환영을 받으면서 베드로는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 지시를 받고 이 집에 찾아 왔음을 먼저 밝혔습니다.
원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자기 환상'을 통하여 자기의 그런 마음의 장벽을 깨뜨려 주셔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솔직히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왜 고넬료가 자기를 불렀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30절부터 33절 말씀에 "30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하시기로 33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고넬료의 대답은 바로 10장 전반부에 나타나 있는 사건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고넬료가 가장 강조하는 바는 제일 끝에 있습니다.
바로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는 말입니다.
천사가 고넬료더러 베드로를 청해 오라고 지시했을 때, 고넬료는 그것이 바로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는 뜻인 줄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베드로를 어떤 평범한 교사나 학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는 대언자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고넬료는 "이제 우리는...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즉 자기가 지금 베드로를 통하여 말씀 듣는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존전'에 앉아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심령이 아니겠습니까?
고넬료는 자기 혼자 듣기에는 너무나도 아깝고 귀중한 말씀을 이제 곧 받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가까운 일가친척은 물론 자기와 사귀고 있는 친구들까지도 몽땅 불러 모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위치에 있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한갓 피정복지의 어부 출신에 불과한 베드로를 대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는 베드로를 곧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에게 전해 주는 대언자라고 하여 그처럼 높이 존중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지금 그 촌부의 입을 통해 말씀 듣는 자리가 바로 하나님 앞에 있는 자리라고까지 생각하는, 실로 경외심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경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심령의 소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자기만 듣고 만족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녀를 주일학교에 하루도 빠지지 않게 하며, 자기 친구들을 어찌하든지 주일예배에 초대하려 하고, 전도가 잘 되지 않는 이웃들에게 전도지나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라도 전해 주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정말로 깨닫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결코 자기 혼자만 듣고 끝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심령의 소유자는 또한 목사님들을 대할 때에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라는 이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들을 지극히 존경할 줄 압니다.
그리고 그 전도자의 입을 통해 말씀을 듣게 되는 자리를 바로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의 육성을 친히 듣는 곳처럼 여기면서 실로 옷깃을 여미고 경청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택자의 마음을 하나님 말씀 앞에서 낮추시고 떨게 하시고 또한 기대감에 설레게 하시고 심령의 귀를 기울여 듣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늘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령께서는 택자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하게 합니다.

34절 이하 43절의 말씀에 기록하기를 "34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43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넬료의 말을 들은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 집에 보내신 이유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고넬료와 그 집안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줌으로써 구원 신앙을 얻도록 하기 위함인 것을 즉각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베드로가 선포한 첫마디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라는 말은 '하나님께서는 아무 차별이 없으시고'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는 대상은 결코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와 백성들을 대상으로 공평하게 열려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 전까지는 베드로 역시 대부분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들을 전도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 조금 앞의 '보자기 환상'과 지금 고넬료가 자기를 초청한 이유를 듣게 된 후에야 이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라는 베드로의 말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즉 이 말은 '아무 신이나 믿고 의롭게 살면 하나님께서 다 구원해 주신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어떤 나라와 민족이든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공통적으로 있는데 그 가운데서 택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바른 신앙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베드로는 이어서 고넬료에게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선포된 "화평의 복음"을 전해 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화평"이란 말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장벽을 깨뜨리는 화평'이란 뜻으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의의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복음이 전해져야만 하나님께서 죄인을 '받아 주실' 길이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막연히 신의 이름을 부르고 의롭게 산다고 다 구원해 주는 것이라면, 이미 그렇게 살고 있던 고넬료 같은 이에게는 더 이상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줄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 복음이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즉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 자손이 되는 택자'들, 유대인 이방인 가릴 것 없이 모든 나라와 민족에 속한 택자들에게 똑같이 전해져야 할 말씀이라는 사실을 베드로는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갖추어서 전했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전하려 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고넬료가 지금까지 구약을 통해서만 알고 믿고 있던 하나님과 그대로 직결되는 분이심을 밝혀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복음을 생전에 갈릴리와 온 유대를 다니시면서 전파하셨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성령의 기적적인 능력이 얼마나 충만히 역사했는지를 또한 증거했습니다.
또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다"고 증거했는데, 이 '착한 일'이란 단어는 군주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좋은 정치를 베풀어 주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천국에 속한 백성을 영육 간에 구원해 주셨음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과 승리의 부활을 특별히 강조해서 증거했습니다.
자기를 위시한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음식을 먹으면서" 바로 그 부활 사건을 증거하기 위한 증인으로 임명받았다고 밝혔던 것입니다.
끝으로 베드로는 이 모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이 바로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대로 이루어졌으며 "저를 믿는 자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즉 지금까지 고넬료에게 전해 주었던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어야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된다고 '복음에로 초청'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초청의 결과는 곧 나타났습니다.
44절부터 48절의 말씀에 "44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46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48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베드로가 그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 순간에 고넬료를 위시한 그의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이 다 그 복음의 말씀을 믿게 되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은 "베드로"와 또한 그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 즉 유대인 신자들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성경도 메시아 약속도 모르던 이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자마자 곧바로 믿고 영접한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전혀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놀라운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이제 자기네들이 해야 할 것을 모를 만큼 미련하거나 완고한 베드로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라고 하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즉시 고넬료와 그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세례식을 거행했던 것입니다.
즉 이방인들을 정식으로 교회의 한 일원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처럼 베드로조차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던 큰 일을 바로 성령께서 감화감동하시는 사람들의 심령 속에서 이루고야 말았습니다.

사실 고넬료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베드로로서는 말씀을 받아들일 마음자세가 이보다 더 완벽하게 준비된 청중을 만났던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를 극진히 영접했고 온 집안 식구와 친구들까지 한 자리에 다 모아 두었으며, 무엇보다도 지금 그 자리를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리로 여기는 경건한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청중이 완벽하다고 해서 절로 다 잘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들을 준비가 잘된 심령이라 해도 엉뚱한 말이 전해지면 아무 것도 안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바른 복음만이 한 영혼을 완벽하게 구원해 내는 그 중차대하고도 위대한 역사를 완성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통하여 그 '바른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전해졌을 때 성령의 역사는 실로 크게 일어나고야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성령께서 사람의 심령 속에서 역사하셔서 믿게 만드시는 복음의 내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결코 바뀔 수 없고 조금이라도 변조시켜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선포하시고 완성하신 천당영생의 구원과 그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행하신 일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십자가의 죽으심과 사단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 사건 – 이런 것들은 지극히 간단명료하면서도 결코 변할 수 없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은 바로 이 '예수 복음'만 그대로 정확하게 전파하면 일견 도저히 예수님을 믿을 것처럼 보이지 않던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 예나 지금이나 행하고 계시는 최고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할 때에 오직 이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되어 있는 선지와 사도의 정확무오한 성경 말씀을 가지고서 '저를 믿는 사람들마다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라고 전파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선택해 놓으신 자들은 반드시 '아멘'하고 믿음으로 응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믿을 수 없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믿게 되나 하고 불신자들은 아주 이상하게 여기겠지만, 신자들에게는 도무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은 바로 이것이 성령께서 택자들의 심령 속에서 친히 행하고 계시는 최고의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하시는 가장 큰 일은 결코 무슨 신유나 방언이 아니라 바로 죄인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열리게 하고 그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게 만드는 회심과 중생의 역사임을 확실히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곧 이어서 '성령 시대'가 열리게 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이제는 바로 '우리 속에 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보혜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 것都求�.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중에서 첫 기독신자로 하필이면 고넬료를 선택하셨습니다.
기왕이면 유대인을 아주 괴롭히는 못된 백부장이나 기독교를 심히 박해하는 관리 같은 사람을 단번에 개종시켜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실 수도 있으셨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심이 깊고 경건생활에도 열심이었으며 모범적인 가장인데다가 군 장교이면서도 백성들에게 그지없이 친절해서 사비를 털어 구제까지 많이 하는 그런 사람을 이방인 첫 개종자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참 이상하게 보이는 일입니다.
언뜻 보면 굳이 개종시킬 필요도 없어 보이는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굳이 베드로 사도까지 특별히 파송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처럼 완벽한 종교인처럼 보였던 고넬료에게도 결정적으로 필요했던 한 가지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고넬료가 아무리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로운 생활을 했다 해도 그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약속한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믿고 영접해야만 구원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하여 고넬료에서 예수 이름을 전해 주게 하셨고 그가 그 복음을 듣는 순간 '성령이 임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이전에는 구약의 '성부 하나님'만 알고 있던 고넬료는 바로 그와 같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 '성자 하나님'까지 믿고 영접하게 됨으로써 진정 '구원받은 참된 기독신자'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최고 역사는 택자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예수님을 믿을 가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 최고로 고집 세고 교만한 사람, 교회 가자는 소리만 들어도 펄쩍 뛰는 사람, 기독교에 대하여 내놓고 욕하는 사람 - 바로 이런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놓으신 '이스라엘 백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택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오면 복음의 말씀 앞에 그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는 순간 바로 그 이름이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대속주의 이름이라고, 바로 그 이름이 나를 구원해 주시는 메시아의 이름이라고, 바로 그 이름이 나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자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택자를 부르시고 구원하시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고넬료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그 성령께서 바로 우리의 가족들과 친구들과 이웃들 중에 남아 있는 택자에게 오늘도 똑같이 역사하실 것을 확신하는 가운데, 이 십자가에 달리신 대속의 구세주와 부활승천하신 승리의 주님을 더욱 힘써 전파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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