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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이 능력이다 (빌 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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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능력이다 (빌 4:11-13) 


생명을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중의 하나는 에너지입니다. 생명을 위한 에너지 중에 하나는 음식입니다.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 식물들은 생존을 위하여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을 위하여 생의 대부분을 할애합니다. 

우리 사람에게도 ‘먹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일입니다. 사람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동, 식물과 달리 먹는 것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인간답게 생존하기 위하여 사람에게는 먹는 것 외에도 더 복잡하고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에너지는 다른 말로 하면 ‘힘’입니다.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힘과 능력 중에 하나는 ‘앎’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다른 동물들에게도 아는 것이 힘이 됩니다. 그러나 동물들의 앎은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저들은 앎보다는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는 본능의 힘만으로 대부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배워야만 합니다. 말도 배워야하고, 수학도배워야 하고, 영어도 배워야 하고, 그 밖에 엄청난 것들을 배워야만 합니다. 사람들의 삶의 품질은 대개 앎의 수준과 품질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돈도 힘입니다. 아주 중요한 에너지입니다. 돈의 힘은 참 막강합니다. 오죽하면 돈이 많은 사람을 잘 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까? 돈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하리만큼 현실적이고 구체적입니다. 아주 특별한 사람의 경우 돈의 힘으로부터 자유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먹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보다 더 많이 신경을 쓰면서 살고 있는 것이 돈입니다. 경제입니다.

자리와 그 자리가 주는 권력도 엄청난 에너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승진하려고 하고 출세하려고 하고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 힘을 갖게 되면 확실히 삶이 달라지고 변하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도 힘입니다. 자기가 힘이 없으면 힘 있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힘을 자기 힘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에게 아부하고 뇌물을 주면서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관계가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꼭 그렇게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잘 맺는다면 사람들은 자기의 힘 뿐 아니라 네트워크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데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막강한 힘이 됩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힘은 사람입니다. 저는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좋은 친구’, ‘좋은 스승’, ‘좋은 배필’을 만나는 복을 달라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힘을 넘어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물론 돈도 권력도 다 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는 복은 그것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하여튼 사람과의 좋은 관계는 아주 좋은 그리고 막강한 에너지입니다. 파워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힘만으로는 정말 사람답게 살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와의 바른 관계가 생명입니다.

그런데 인간 외에 다른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본능적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단절하는 피조물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만 예외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다른 피조물과 달리 우리 인간에게만 허락하여 주신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하나님을 부인하고 거절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에게는 그 원죄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려는 면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에너지와 힘을 가지고 세상을 호령하며 살지만 평균적으로 다른 피조물처럼 행복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자살을 하리만큼 자신의 삶을 고통스러워 하는 존재는 사람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처럼 자신의 삶과 살아가는 세상을 엉망으로 만드는 존재는 세상에 없습니다.

최근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실패하였습니다. 약 1조 원의 돈이 들어간 프로잭트랍니다. 그 돈이면 북한 전 주민들을 굶주리지 않게 할 수 있는 돈이라고 합니다. 북한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은 그래야만 자신들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미국이 당장 원조하기로 얼마 전 약속하였던 식량원조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1조원이나 들어가는 미사일 실험을 자기 백성들 다 먹여 살리고 남는 돈으로 한다면 모를까 백성들은 먹지 못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그것은 미국보러 달라고 하고 자기들은 그 돈으로 미국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미국이 북한에 식량지원을 할리는 당연히 없다고 보여집니다.

우리 인간하고는 능력이 비교도 되지 않는 다른 피조물들은 스스로 자멸하는 경우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다른 피조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대부분 쓸데없는 짓을 하여 스스로 자멸하는 짓을 잘하고 많이 합니다. 그런 쓸데없고 어리석은 짓은 사실 북한 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따지고 보면 미국도 마찬가지고,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고, 세계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는 고사하고 미국이 국방비를 위하여 사용하는 예산만 절약하여도 세계 빈곤의 문제를 다 퇴치하고도 남을 겁니다. 자국민을 굶기느냐 굶기지 않느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따지고 보면 미국도 북한과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래 전 중국의 만리장성을 보면서 저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평지도 아닌 산 등성을 따라 그 엄청난 성을 쌓기 위하여 동원되었던 백성들의 고생과 희생이 느껴져서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착취를 당했겠습니까? 만리장성의 목적은 백성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을 잘 살게 한다고 한 일이 현실적으로는 백성을 죽이고 못살게 하는 가장 큰 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 인간들의 보편적인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편 39편 5절에 보면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 뿐이니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정말 그 말씀이 맞습니다. 사람들은 허사 즉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다가 죽고 망하는 세상의 유일한 피조물입니다. 쓸데없는 짓거리를 넘어 스스로 죽고 망하는 짓거리를 하는 세상의 유일한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생존능력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회복입니다. 신학적으로 설명할 때 우리는 사망을 하나님과의 관계단절로 설명하고, 구원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회복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생명의 능력이시고 에너지이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람 외에 다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 없이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사람 외의 다른 피조물들은 본능적으로 다 알고 본능적으로 다 순종합니다. 세상에 그 가장 중요한 사실을 모르는 것은 우리 인간들 뿐입니다.

우리는 다행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사실을 다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긍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정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긍정한다는 말과 부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만 전적으로 긍정하고 믿고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독일 뤼벡교회의 낡은 벽에 붙어 있는 돌 판에는 ‘주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라는 시가 새겨져 있답니다. 

‘너희는 나를 주라 부르면서 따르지 않고, 너희는 나를 빛이라 부르면서 우러러보지 않고, 너희는 나를 길이라 부르면서 따라 걷지 않고, 너희는 나를 삶이라 부르면서 의지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존귀하다 하면서 섬기지 않고, 너희는 나를 강하다 하면서 존경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의롭다 하면서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런즉 너희를 꾸짖을 때에 나를 탓하지 말라.’

믿음은 입으로 주여, 주여를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기막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 있으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게 된다면,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같이 된다면 그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이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변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는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영접하면 우리는 그 분의 자녀가 됩니다. 그 분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습니다. 자녀의 권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아버지의 것이 내 것이 되는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능력입니다. 주여, 주여 부르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이 능력입니다. 믿음은 생명의 능력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해 주는 플러그와 같은 것입니다.

플러그를 통하여 한전과 연결이 되면 한전이 생산하는 전기를 받아 쓸 수 있습니다. 그 전기의 힘으로 어둠을 밝힐 수도 있고, 에어컨을 돌릴 수도 있고, 냉장고를 돌릴 수도 있고, 공장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기를 전력이라고 부릅니다. 전기의 힘도 엄청납니다. 그 전기의 힘으로 우리는 오늘 우리들의 문명사회를 건설하였습니다.

믿음의 플러그를 통하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연결이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힘과 능력과 지혜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으면 우리는 우리의 힘을 할 수 없어서 평시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에 도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월드컵과 같은 경기가 시작되면 도박사들이 어느 나라가 우승할 것인가를 놓고 도박판을 벌립니다. 도박사들은 먼저 우승 확률이 어느 나라가 높은 가를 발표합니다. 그 순위에 따라 배당이 달라집니다. 

당연히 우승확률이 높은 나라에 배팅을 하여 맞추었을 때는 배당금이 적고, 우승 확률이 낮은 나라에 배팅을 하였는데 그 나라가 우승을 하였다면 배당금이 많습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배당금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도 도전하기 때문에 얻는 유익이 적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일에 도전을 하여 성공한다면 그것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성공과 유익은 아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저는 믿음이 그와 같은 일을 가능케 한다고 믿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고 인정하지 않으면 도저히 승부를 걸 수 없는 일에 승부를 걸 수 있게 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는 안 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믿고 의지하여 그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만 될 수 있는 일에 우리의 인생을 배팅한다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누리지 못하는 딴 세상의 삶을 이 세상에서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딴 세상이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4년 전에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가 세운 재단을 통하여 탈북자들을 위한 공장을 세웠습니다. 그 일은 성공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사업을 모르는 목사가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라나 남한의 자본주의를 전혀 알지 못하는 탈북자 23명을 데리고 한 달에 124만 원 월급을 주고 그것도 주 5일 근무를 하겠다며 공장을 시작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동키호테처럼 보일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고, 미션 임파서블한 짓이었습니다.

그 일에 도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 일을 시작할 때 몇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은 누군가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일에 도전해 주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으로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이 미션 임파서블한 일도 성공할 수 있다.”

그것은 작았지만 우리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우리의 생각과 결단과 행동을 믿음으로 받아 주시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은 결국 플러그가 되어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켰고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미션 임파서블하게 보였던 그 사역은 결국 파서블한 미션으로 결론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십니다. 우리 생명과 구원의 능력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그 하나님의 능력과 연결이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능력입니다. 믿음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정말 능력이 있습니다. 그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행할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일들에 도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확률이 없는 일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믿음 없는 세상 사람들이 받지 못하는 엄청난 배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그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하고 주를 따르며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능력으로,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연결 될 우리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바울처럼 모든 것을 다 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행 16:31)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자를 오늘 택하라.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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