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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처음부터 믿음의 용사인 사람은 없다 (시 3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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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믿음의 용사인 사람은 없다 (시 34:1-22)

더치 쉬츠가 쓴 소망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1965년 미국 플로리다 어느 집에 제일 어른되는 고즈 부인이라는 할머니께서 새벽 2시에 모든 가족을 다 깨우셨습니다. 빈 콜라 병과 코르크와 메모지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할머니에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지시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며느리는 메모지를 가져오고 가족들은 콜라 병을 모아 왔습니다. 할머니는 메모지에 성경 구절을 써서 콜라병에 넣게 하고 코르크로 막았는데 밤새 작업을 하여 200개도 넘는 콜라 병이 쌓였습니다. 날이 밝아 그것을 해변에 가서 파도 위에 던졌습니다. 

그 후 놀랍게도 좋은 성경 말씀을 들려줘서 감사하다는 편지가 몇 해 동안 계속 왔습니다. 할머니는 1974년 11월에 돌아가셨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달에도 감사 편지가 왔습니다. 이 편지의 주인공은 오하리오에 사는 한 부인인데, 남편이 농장 일을 하다가 트랙터 전복 사고를 죽고 열한 명의 아이를 기르다가 결국 먹을 것 하나 없는 처지로 몰려 죽을 결심을 하였는데, 강에 얼음이 얼어 그 얼음을 깨는데, 갑자기 콜라 병이 쑥 물에서 올라 왔는데 그 속에 무엇인가 적어놓은 종이가 보이기에 자신도 모르게 꺼내어 읽었는데, 놀랍게도 소망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전 9:4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이 말씀을 읽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깨닫고 죽을 생각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식들과 어떻게 해서든지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하니 기도해 달라는 편지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중에도 이 말씀을 듣게 하시기 위하여 여기에 오게 하신 이가 있을 줄 믿습니다.

시편 34편에서 다윗은 충만합니다. 입에서 저절로 찬양이 흘러 나옵니다.

1절 내가 주님을 늘 찬양할 것이니, 주님을 찬양하는 노랫소리, 내 입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기도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4절 내가 주님을 간절히 찾았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져내셨다. 

기도 응답을 받아본 사람 만은 그 감동을 알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나를 아시고 내 기도를 들으시는구나!” 그러면 만나는 사람 마다 붙잡고 하나님을 믿으라, 제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보라고 전하게 됩니다.

8절 너희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깨달아라.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큰 복을 받는다.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간절히 말해 주고 싶습니다.

11절 젊은이들아, 와서 내 말을 들어라. 주님을 경외하는 길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겠다. 

여러분은 전도자의 이 심정을 아십니까?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심정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망하는 것이 뻔한 길을 가는 것을 볼 때, 잘 되는 길, 성공할 수 있는 길, 복받는 길이 분명한데, 싫어하고 외면하고 믿지 못할 때, 그 심정을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으세요, 하나님이 보고 계시단 말입니다!”

19절 의로운 사람에게는 고난이 많지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져 주신다. 
한 마디로 다윗은 지금 성령 충만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편을 읽으면서 더 낙심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난 아닌데!” 하고 소리지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은 정말 우리 기도에 다 응답하십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정말 복을 받습니까?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습니까?”
이 자리에도 ‘나는 그렇지 않던데.’ 할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난 하나님이 버린 사람이라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시며 원치 않는 고난이 계속되는 것입니까?” 눈물흘릴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의인인데 고난을 당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자가 죽을 위기를 당할 수 있습니다. 다윗도 이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19절의 고백은 다윗이 실제 겪은 일입니다. 
19절 의로운 사람에게는 고난이 많지만 ...

성경은 이 시편의 배경이 사무엘상 21장과 22장에 걸쳐 나오는 사건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울 왕이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다윗을 죽이려고 하니 다윗은 당황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합니다, 갈데가 없습니다. 다윗을 만나기만 해도 사울 왕이 다 죽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너무 다급하니까 블레셋 지경으로 도망하였습니다. 그런데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라는 것이 드러나 아기스 왕 앞에서 죽게 될 절대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다윗은 미친 체하며 궁궐 대문짝에 아무렇게나 낙서를 하며 침을 수염에 질질 흘렸습니다. 그렇게 용맹스럽다던 다윗이 실제는 미치광이에 불과하다고 여긴 아기스 왕은 그를 궁궐에서 쫓아내 버렸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빠져 나온 후에 이 시편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다윗에게는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지 간증할 일이 아닙니다. 골리앗을 이길 때의 다윗 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은 무슨 대단한 체험을 한 듯이 너무나 행복해 하고 간증하고 찬송합니다.
1절 내가 주님을 늘 찬양할 것이니, 주님을 찬양하는 노랫소리, 내 입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당시의 다윗의 믿음이었습니다. 당시의 다윗의 믿음으로는 사울 왕의 질투와 위협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다급해도 블레셋 지경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별할 수도 없었습니다. 미친 짓을 하면서 위기를 모면해야 할 정도로 다윗은 약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좌충우돌, 실수 투성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기스 왕의 눈에 다윗이 불쌍하고 초라하여 조금도 위협적인 존재라고 느껴지지 않게 하심으로 다윗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믿음의 용사인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이 정도만 해도 당시 다윗에게는 너무나 놀라운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지난 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던 일들을 여기저기서 간증도 하고 글도 썼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것들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울기도 하고 감격하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그렇게 울고 그렇게 좋아했던 것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과정을 통하여 믿음이 세워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간 큐티 본문이었던 출애굽기 13장 1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출 13: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왜 해변 길을 피하여 돌아가게 하였을까요? 하나님은 능히 블레셋 족속을 이길 수 있으신데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강하셔도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이 작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전쟁을 만나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싸울 믿음이 없었습니다. 애급으로 도망갈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믿음도 처음에는 이런 정도였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21장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다윗이 블레셋 아기스 왕 앞에 끌려 갈 때 정말 간절히 기도했고, 너무나 두려웠다고 했습니다.

4절 내가 주님을 간절히 찾았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져내셨다. 
그런데 살아났습니다. 정말 죽다가 살아난 것입니다.

6절 이 비천한 몸도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들으시고, 온갖 재난에서 구원해 주셨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다윗의 믿음이 자란 것입니다.
10절 젊은 사자들은 먹이를 잃고 굶주릴 수 있으나, 주님을 찾는 사람은 복이 있어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믿음으로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믿음의 용사가 될 수 없습니다.
다윗의 시편들은 어떤 책을 보고 베낀 것이 아닙니다. 읽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려고 쓴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고백한 것입니다. 학문적으로 하나님을 배우고 안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고 체험한 고백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형들이 핀잔을 하고 사울 왕이 미더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4-37절에 보니 그 때 다윗은 당당하게 말합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야훼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체험을 통하여 알고 믿었습니다.

우리 믿음도 하나님을 체험한 만큼 믿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긴가민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잔치에서 처음으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장면을 제자들이 목격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비로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요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래서 다윗은 고생을 해도 바보 취급을 당해도 의롭게 살라, 악한 말을 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선한 일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12-14절 인생을 즐겁게 지내고자 하는 사람, ...좋은 일을 보면서 오래 살고 싶은 사람, ... 네 혀로 악한 말을 하지 말며, 네 입술로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악한 일은 피하고, 선한 일만 하여라. 평화를 찾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한 사람이 바다에 가 보았습니다. 너무나 넓고 멋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바닷가에 들어가 수영을 해 보았습니다. 또 한 사람은 스킨 스쿠버 장비를 갖고 바다 속 깊이 들어가서 온갖 아름다운 물고기들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큰 배를 타고 대양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같은 바다를 보았지만 그 경험은 다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어도 실제는 다 다르게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한평생 살아보아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기도와 응답도 지나고 나야 진정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갈 때, 다윗의 이 찬송을 부르지 않을 사람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해 안된다 믿어지지 않는다 할 사람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인생을 다 살고 난 다음에야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성령충만하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1887년에 태어난 윌리엄 보든(William Borden)은‘억만장자’의 아들이었습니다. 윌리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그의 부모는 그에게 세계 여행을 다녀오게 했습니다. 그는 아시아, 중동을 여행하던 중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보고 충격을 받고 예수님을 위한 선교에 자신의 모든 것과 자신의 삶을 바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 날 자신의 성경책에 문장 하나를 썼습니다.“남김없이 다 드립니다.”(No Reserves!)

그는 예일 대학에 들어가 한 친구와 함께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윌리엄이 4학년이 되자 그런 모임이 1,000개에 달했습니다. 당시 그는 일기장에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라고 썼습니다. (say‘NO’to self, and say‘YES’to JESUS everytime.) 
그가 예일 대학 재학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는데 예일 대학 졸업 후 그는 수 백만 달러의 유산을 포기하고 중국에 있는 이슬람 교도의 땅으로 떠나면서 성경책 뒷면에 다시 한 문장을 썼습니다. 
“결코 돌아가지 않으리라”(No Retreats!)

그런데 아랍어를 배우고 이슬람 지역 선교를 준비하기 위해 이집트에 갔다가 척수막염에 걸려 한 달 뒤 스물다섯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윌리엄 보든의 삶을 보면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인지 회의가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가족과 재산, 미래까지 다 버렸지만 결국 선교지는 구경도 못하고 죽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윌리엄 보든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성경책 안에서 세 개의 문장이 발견되었습니다.“남김없이 다 드립니다”(No Reserves!)“결코 후퇴하지 않을 것입니다”(No Retreats!) 그리고 또 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No Regrets!) 

윌리엄 보든이 죽기 전에 고열에 시달리면서 시편 34편이 아멘이 되었겠습니까?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겠습니까?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쓴 것입니다.
윌리엄 보든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예일 대학에 영적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윌리엄 보든을 대신하여 선교사로 헌신하였습니다. 윌리엄 보든으로 인하여 선교사가 된 사람이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윌리엄 보든은 춤을 추며 찬양할 것입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믿음의 용사인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믿음이 약하다고 부끄러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문제는 믿음이 약한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윗처럼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처럼 작은 믿음이라도 그 믿음에 반응하여야 합니다.
기도 밖에 할 수 없으면 기도라도 신실하게 하면 됩니다. 
죽을 것 같아도 하나님이 하라고 말씀하신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믿음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믿음의 눈이 뜨이게 됩니다. 믿음이 용사가 됩니다.

고난을 당할 때, 시험을 주는 사람이 있을 때, 감사합시다. 믿음이 자라는 순간입니다.

세상 방식으로 영업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업하는 장로님이 계십니다. 지금 사업이 많이 어렵습니다. 건강도 어렵습니다. 

그가 지난 주 교회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봄이 아주 어렵사리 왔습니다. 그것도 한껏 변덕이 심합니다. 온도계처럼 반응하는 내 몸의 상태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 또 갑니다. 그러나 주님께 나의 마음을 정한 이상 말씀 그대로 살아나갑니다. 지금 형편으로는 눈에 눈물이 강같이 흐르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고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고 보이는 현상 너머에서 여상히 역사하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오랫만에 현장을 둘러 봅니다. 언제나 처럼 체질에 딱 맞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처음 영업을 배우고 현장을 스케치하며 손으로 그리고 밤을 새워 설계하던 팀원 간의 따뜻함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고 아내와 몇날 밤을 새며 설계하던 일들이 어제인듯 싶습니다. 어려운 때를 많이 지났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굴곡이야 늘 있는 것이지만, 아주 혹독한 훈련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이 어려운 형편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움에 서있어 보지 않고야 어떻게 고난 가운데 회사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분명 세상 속에서 살아 가지만, 소금이면 짜야하고, 빛이면 드러내어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중간 지대에서 좋은 것만 바라고 취한다면,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무엇이 다를까요? 다름을 선포하고 조금은 힘든 길을 택합니다. 남이 가지 않는 길 고난이 예상되는 길이지만, 고난도 은혜입니다.“ 
이런 사람이 믿음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 시험거리를 만나면 예수님 안에서 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보아야 합니다. 기도자리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생기면 두려워 말고 기록하십시오! 간증이 시작되는 것이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어떻게 해야 할지만 물으십시오!

“나는 죽었습니다.” 

고백하고 마음에 깨달아지는 것에 순종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시편 34편을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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