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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 부활사건의 의미 (행 26: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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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부활사건의 의미 (행 26:14-18)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길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 26:14-18) 

Ⅰ. 본문의 배경 

사도 바울이 죄인의 몸으로 재판정에서 신문을 받을 때에 나온 자기 고백이요, 복음의 변호이다. 사도바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아니라 부활의 사건이며 그 빛으로 십자가 사건을 재해석함으로써 우리가 아는 사도바울이 나온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사도바울의 회심사건이라고 한다. 

Ⅱ. 사도바울의 회심 

Α. 그의 두 가지 확신 

회심하기 전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는 두 가지 확신을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 첫째는 심리적 편견, 즉 선민사상으로 이스라엘 이외의 모든 민족들을 하찮게 여기는 인종우월주의에 빠져있었다. 두 번째로는 신학적인 편견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편견인데 예수는 결코 그리스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민사상과 함께 메시야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메시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오셔서 대속의 죽음을 죽는 것이 아니라 초인적인 존재로 하나님의 특별한 기름부음을 받고 나타나 로마의 압제로 부터 이스라엘을 구하고 이스라엘의 가장 영광스러웠던 다윗시대와 같은 왕성한 대국을 이룰 지도자였다. 

이것은 모두 유대주의의 소산으로 이와 같은 사상을 사도 바울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의 마음에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예수님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극복할 수 없는 두 가지 명제를 만나게 된다. 

Β. 극복할 수 없는 두 명제 

첫 번째 사건은 이미 일어난 사건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죽은 사건이다. 여기에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거대한 음모가 숨겨져 있다.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죽이기를 원했다. 이는 그가 죽은 이후에 그의 죽음을 재해석할 여지가 없이 하나님이 저주하신 자라는(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 신21:23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진 종교적 확신 때문이다. 이와 같은 평균적인 인식을 사울도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 사건은 자신이 맞닥트린 사건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구약 속에 죽음을 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에녹, 모세, 엘리야 이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넘어선 사람으로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께 특별히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이는 사울에게 혼란을 더 하는 모순된 명제였다. 예수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죽었다. 그런데 다시 살아나셨다 하면 하나님이 사랑하셨고 또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것인데 살리실 것이라면 죽이지 말아야 했고, 저주를 받아 죽었다면 다시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모순된 사건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즉각적으로 그의 마음속에 들어온 해석이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재해석이었다. 만약에 자기의 죄 때문이라면 두 명제는 성립되지 않으나 자신의 죄가 아니라 모든 하나님 앞에 구원받을 자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라면 이 두 명제는 병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사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의 위대한 아가페의 사랑에 눈뜨게 되고 이는 아가페 사랑에 반응하는 또 다른 사랑을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것은 아가페의 사랑과 일치하는 반응으로서의 사랑이다. 

이것을 통해 그가 가지고 있던 심리적 편견과 신학적 편견이 산산이 부서지게 되면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찬란한 진리의 빛이 들어오게 된다. 


Ⅲ. 새롭게 발견한 소명 

사울에서 바울로 회심하게 된다. 그 순간 그의 마음에는 놀라운 인식이 생겨나게 된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식이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구원받을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지게 하시고 그를 형벌하시며 까지 우리를 구원하심은 유대인들을 향한 독점적 사랑이 아니라 당신의 형상을 닮은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가슴 저미는 사랑임을 알게 된다. 

그의 마음에 까리따스의 사랑이 넘치면서 구원받지 못한 인간을 향한 치밀어 오르는 연민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사도의 소명을 느끼게 된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온전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될 열망과 강한 충격에 사로잡히게 된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하면서 세우려고 했던 궁극적인 왕국이 다윗 왕국의 회복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좌정하사 당신의 통치를 행사하시는 위대한 영적 왕국의 도래임을 깨닫게 된다. 

세 번째는 일평생 두 가지를 힘써 전하는 사람이 된다. 즉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의 전파이다. 네 번째는 이 복음의 가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드리는 삶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기 때문이다. 


Ⅳ. 결론 

바울을 바꾸어 놓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가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새로운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첫 째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영적인 방식으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현재적으로 끊임없이 재현되어야하는데 이는 날마다 그리스도와 죽고 날마다 그리스도와 사는 것이다.(갈2:20) 이것이 사도 바울이 가진 비전이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그리스도와 죽어 그리스도와 두 번째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 우리의 소명에 눈을 뜨는 것이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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