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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인생의 자리에 남는 것은 (딤후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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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자리에 남는 것은 (딤후 4:6-8)

장거리를 운전하다 보면 휴게소를 들를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고속도로 어느 휴게소 화장실을 들렀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 화장실에 적힌 글 귀중에 “당신이 머문 자리는 아름답습니다.” 라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볼일을 보면서 그 글귀를 곱씹게 되더라고요. ‘그래, 내가 머물다가 간 자리는 아름다워야 된다. 그래야 그 다음의 사람도 그 다음의 사람도...’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머물다가 간 자리가 아름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따뜻한 봄이 되었습니다. 계절적으로 이제 본격적인 야외놀이 철이 되었습니다만 저마다 돗자리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드는 공공장소에서 각자가 머물다간 자리가 깨끗해야 되는데 가끔씩은 아름답지 못한 흔적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쓰레기며 음식찌꺼기며 지저분한 자취를 남기는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에 오는 사람들에게 냄새만 남깁니다. 그러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은 한 없이 욕을 먹게 됩니다.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잠시잠깐 머물다간 자리라 할지라도 그 흔적은 아름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사무실에 있는데 학생들이 대여섯 명 교회 마당으로 들어오더라고요. 그러더니 예배당 벽에다가 소변을 보는 겁니다. 후미진 모퉁이가 아니라 훤히 보이는 곳에서 말입니다. 얼른 뛰어나가서 호통을 쳤더니 볼일을 보다말고 옷도 못 추스르고 냅다 도망을 치더라고요. 물을 떠다가 씻어냈습니다만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이런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그건 동물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생의 자리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무엇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시작보다는 끝이 좋아야 합니다. 어떤 이는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인생을 시작했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시작할 때는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기쁨을 안겨주며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마무리를 잘 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삶의 마지막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이 인생 최후의 성공자입니다. 

우리 주변에 가장 가까운 산에 오르려면 아차 산과 망우 산과 용마산이 만나는 곳입니다. 
구리 시민과 서울시민이 같이 오를 수 있는 곳인데 거기에는 유명한 [망우리 공동묘지] 가 있습니다. 그곳을 가보면 숱한 묘지들이 즐비한데 저는 꼭 습관적으로 그 묘지 앞에 세워진 묘비 문을 읽어 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것을 읽어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의 발자취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묘비에는 그 사람이 길게 살았는지, 짧게 살았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머물다 간 인생흔적을 알게 되기 때문에 그 묘비를 읽어보곤 합니다. 어떤 이의 묘비에는 인생의 아무런 자취도 없이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다는 것만 적힌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묘비에는 그가 평생 나라를 위해 살다가 나라에 목숨을 바쳤다는 애국적인 묘비문도 있습니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마지막까지 “어린이를 남겨 두고 가니 잘 부탁하네.” 라고 친구들에게 유언을 하면서까지 평생 어린이를 위하여 살았던 [소파 방정환] 선생의 묘지도 망우리에 있습니다. 갈 때 기회가 되면 쭉 읽어보십시오. 그 묘비에 적힌 내용만으로도 그의 삶의 발자취를 알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 중에 하나 기억나는 묘비가 있습니다. 이름을 남길만한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우리같이 일상적인 삶을 살았던 분이겠습니다만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가 믿음의 길을 달려가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마침내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노라.” 내려오면서 그 묘비 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외워지는 겁니다. 이것 보다 더 아름다운 삶의 내용이 또 있겠습니까? 신앙인이 머물다 간 인생의 자리에는 이렇게 누가 보더라도 숙연해지고 존경스러운 신앙의 흔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이 남기고 간 인생의 발자취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세상에는 죄의 발자취만 남기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평생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사람들입니다. [가인] 과 같은 사람입니다. 동생 아벨을 돌로 죽인 살인적인 일 외에 그의 삶의 아름다운 모습은 성경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또한 [가룟 유다]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먹고 남은 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자살로 끝나 버리는 그 인생에 무슨 아름다운 발자취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죄의 흔적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는 무의미한 발자취를 남기고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삶의 목표도, 삶의 의미도, 성취감도 없이 살았습니다. 있는 듯 없는듯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입니다. 만약에 인생의 내용이 고작 <왔으니 할 수 없이 사는 것뿐이요, 마땅히 이룰 것도 없음이요, 살만큼 살았으니 갈 뿐이라> 는 것이라면 얼마나 무의한 인생이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가장 오래 살았던 인물로 [므두셀라] 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무려 969세를 살았습니다. 그 정도의 인생을 살았다면 마땅히 남겨 놓은 업적이나 아름다운 일들이 많을 것으로 여겨집니다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마땅한 삶의 내용은 없습니다. 그의 인생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창세기5:25-27을 보면 몇 백 년 동안 아이만 낳다가 죽었다는 것이 그의 인생흔적의 전부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인생을 얼마나 오래 사느냐> 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입니다. 

그런가하면 이 세상에는 실로 신앙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기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끝까지 달려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갈 길을 알지 못한 채로 순종하며 달려 나가 마지막까지 그 순종의 믿음을 보였던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애굽의 노예가 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허덕이는 자기 백성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수 없이 망설였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출발하여 시시때때로 자기를 떠나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다가 비록 자신은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만 마침내 비스가 산에 올라 하나님께서 자기백성들에게 주시겠다던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했던 [모세]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자신의 달려 온 생을 돌아보며 후회 없는 삶의 흔적을 자랑스러워하며 신앙인이 머물다가 간 자리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한 사람, 사도 [바울] 을 만납니다. 

오늘 본문 딤후4:6-8을 보게 되면 사도 바울은 이제 임박한 자신의 순교를 예언하면서, 자신이 지나 온 생애가 믿음 안에서 최선을 다했고, 승리로 가득 차 있음을 고백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자신을 위해 예비 된 영광의 상급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 인생의 마지막 길에 선 사도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먼저는 그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 고 고백합니다. 이 <선한 싸움> 이라는 말에는 생명을 걸어야 했던 일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이기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절대 위기의 순간들이 인생에 몇 고비 있었다는 것이고 그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싸웠다고 고백합니다. 

그 다음 바울의 고백은 “달려 갈 길을 마쳤다.” 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말하면 달리기 시합에서 목표지점 즉, 결승점에 도달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후회 없다는 자기 만족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 온 바울의 전 생애가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경주에서는 우승이나 1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달리는 완주가 중요합니다. 믿음의 경주는 끝까지 달려서 마지막까지 마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마지막까지 이 믿음을 지키지 못하여 실패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곧이어 10절에서 말하지 않습니까? 바울과 믿음을 버리고 세상을 향하여 떠나버렸던 [데마] 같은 사람이 있다고...그리고 딤전1:19-20절에 보면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착한양심을 버리고 믿음에 대해서 파선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42.195km를 끝까지 달리는 마라톤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모릅니다. [한국 체육 과학 연구원]이 마라톤 선수들을 연구했는데 그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마라토너들은 달리기 도중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지면으로부터 받는 충격이 몸무게의 2.72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한 선수가 42.195km 풀코스를 완주하는데 평균 3만보를 뛰는데,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마라톤 우승자인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 를 예로 들면, 몸무게 55kg×2.72배×30,000보 하면 무려4,488톤의 충격을 받게 됩니다. 더 체감 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3분 1라운드 권투 경기로 치면 [알리]의 1톤짜리 무쇠주먹을 1초마다 한대씩 무려 24라운드 2분, 총 74분 동안 4,488대를 얻어맞는 것이 됩니다. 수치상으로 보면 거의 살아남기 힘들 정도입니다. 42.195km 달리는 마라톤을 완주하는데 이토록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아픔을 감수하면서 마지막까지 달리는 사람들이 진정한 마라토너입니다. 

아마도 인생을 완주하는 데는 이보다 더한 정신적인 충격이나 곤란들이 있을 것입니다. 육체적인 충격도 힘들겠지만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인 충격입니다. 그러니 오늘 바울이 달려갈 길을 마친 데는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았겠습니까? 믿음을 지켜 내는 것이 이런 각오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이 고백하는 백미는 “믿음을 지켰다.” 는 고백입니다. 인생의 경주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이 머물다 간 자리에 무엇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까? 신앙인이 머문 자리는 아름다워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이 머문 자리에는 끝까지 버리지 않고 굳게 붙잡은 믿음의 자취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내 인생이 머물다 간 자리에 무엇이 남아 있을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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