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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증인이라 (눅 24: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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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증인이라 (눅 24:36-49)

우리가 행사를 잘 치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행사를 치른 후에 그 행사가 의도하던 목적을 제대로 이루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시간과 비용을 많이 들여 행사를 치렀어도 낭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사건 지상 최대의 사건입니다. 

그분이 3년 동안 공생애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그분이 가지신 능력으로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와 부활을 거쳐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일들이 아무리 크고 놀라워도 승천하심으로 끝이라면 팔레스타인에서 2000년 전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의 하나로 기록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명 운동은 일회성이 아니라 오늘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부활절 예배를 잘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활절 이후 우리의 삶이 더욱 중요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될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오십니다. 그들을 향한 특별한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회복시켜 믿음을 가지게 하고, 기쁨을 가지게 하고, 소망을 가지게 한 후 사명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 결과 주님은 승천하셨지만 사명을 받은 제자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택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성령의 기름을 부으시고 주님의 증인으로 사용하십니다. 주님이 그들을 어떻게 부활의 증인으로 부르시는지 살펴보면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들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증인들로 사역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십니다(36-43)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감격 속에 다른 제자들이 남아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셨어. 우리 두 눈으로 직접 보았어. 신이 나서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은 여전히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이때 예수님이 그들 중에 나타나셨습니다. 요 20:19에 의하면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을 닫아 두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방안에 들어오셨다고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육신이 아닌 신비한 모습으로 변화된 것을 보여줍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면서 두려워 떨던 제자들에게 평강을 선포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안부를 묻는 일상적인 인사가 아닙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단절되었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의미하는 구원의 선포이며 주님만이 주시는 축복과 위로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너무 놀라서 두려움에 떱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눈으로 보지만 그분이 살아서 그들 앞에서 서 계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가 유령을 본 것은 아닐까? 하며 벌벌 떠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십니다. 자신이 참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그 예수이며, 영이 아니라 육신을 가진 완전한 사람임을 보여주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못자국난 손과 발을 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육신을 직접 만져 보라고 하십니다. 과거명령형으로 되어 있으니 ‘지금 당장 보라’, ‘지금 당장 만져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당신의 부활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영체는 살과 뼈가 없지만 자신의 몸은 그들이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것처럼 살과 뼈를 가지고 있다고 하십니다. 아직 의심의 그림자가 제대로 걷히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님은 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기 위하여 먹을 것을 있는지 물어보십니다. 

대부분의 유대 전승을 보면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는 지상의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영적인 존재이지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이는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잡수십니다. 자신의 몸은 유령체가 아니라 제자들이 만질 수 있는 실재하는 육체임을 입증해 보이십니다. 제자들은 더 이상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지셨던 몸은 우리의 육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스럽지만 여전히 물리적 특성을 보유합니다. 그렇다면 쌍까풀 수술을 한 것, 코를 높인 것은 부활 후에 어떻게 바뀔까요? 우리 몸이 부활체로 바뀐다고 과거에 가졌던 손상된 육체의 흔적을 부활 이후에도 계속 가질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다만 그 부활체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하늘의 질서에 속한 몸이라고만 말합니다. 육체를 가지고는 있지만 성령에 의해 생명을 얻고 활력을 공급받는 영의 몸으로 시간적 공간적 장벽을 뛰어넘는 존재입니다. 즉 부활은 완전히 새롭고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기 알맞도록 변화된 몸입니다. 궁극적으로 저와 여러분들이 그 영화로운 몸을 가지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임재와 말씀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는 ‘평강’을, 의심하는 제자들에게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몸의 부활에 대한 ‘소망’까지 갖게 하셨습니다. 부활 신앙은 과거의 실패에 얽매이지 않게 하고, 현재가 전부인 듯이 살려는 탐욕을 버리게 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두려움을 떨치고 도전하게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가득합니까? 평안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고 두려움은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오셔서 평강을 선포하십니다. 불안하고 낙심해 마음이 눌릴 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이 사명을 주십니다(44-49)

제자들은 빈 무덤과 여인들의 증언, 부활하신 예수님의 등장을 보고도 부활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당혹스러워하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주시며 마음을 뜨겁게 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나머지 제자들에게도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흔들리는 믿음을 말씀 위에 세우시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은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 가운데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메시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고난을 받으신 것과 제 삼일에 다시 사신 구원의 소식, 즉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모든 족속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은 어떤 성입니까? 역사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인 성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까지 십자가에서 죽도록 한 유대인들이 사는 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죄악과 반역의 도성에서부터 생명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택하신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할 증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라가시기 전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것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그들을 예수님의 증인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경력이나 믿음이 아니라 그들에게 능력을 부어 줄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구약성경을 통하여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욜 2:28,29). 

이 약속은 오순절에 실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후로 계속 믿는 자들 가운데 이루지고 있습니다.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고난과 죽음의 장소인 예루살렘을 생명과 구원의 도성으로 바꾸어 놓았고 의심하며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주님의 증인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하는 주의 복음은 예루살렘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족속에게까지 전파될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는데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구원의 첫 단계가 회개. 회개는 metanoia라는 헬라 말을 번역한 것인데 그 의미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회개는 죄로부터 자신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하여 가는 인생이 이제는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는 지은 죄를 주님 앞에 낱낱이 고백하고 뉘우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회개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분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십자가와 부활은 객관적, 역사적 사건인데 그것을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구원이 주관적으로 내게 효력을 발생함으로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의 죄 때문이었고 나를 죄에서 살리시기 위한 사랑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오늘 나의 승리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소망의 메시지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하는데 바로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의 증인으로서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증인’은 법정 용어로 자기가 보고 듣고 아는 것을 있는 그대로 증언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증인이 헬라말로 martus. 여기에서 martyr라는 영어단어가 나왔습니다.

 순교자. 초대교회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크리스천들 중에 자기들이 믿고 경험한 예수님의 신실한 증인이 되어 믿음을 지키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골방에 숨어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이 승천하신 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었고, 도마는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 그는 죽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복음을 전하다 로마에서 목이 잘려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사도들을 통하여 오늘날 교회에 계승되었고 하나님은 증인으로 부름 받은 믿는 자들을 통하여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예수님의 사건을 그대로 세상에 증언해야 할 책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나의 죄 때문이었다고 이 세상을 죽음에서 살리시려고 당하신 고난이었다고 증언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주를 믿는 자들에게는 죄와 사망과 사탄의 세력에서 자유하는 권세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선포해야 합니다. 부활의 소망, 영생하는 복을 전해야 합니다.  

증인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1)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회복시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복음을 전할 예수님의 증인들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의심, 불신앙, 불안과 염려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예수님이 아무리 귀한 복음의 메시지를 주어도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아직 치유되지 않은 옛사람의 잔재들이 우리에게 남아 있으면 주의 일을 하면서도 그 잔재들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나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 집사, 목자, 찬양리더, 교사 어느 누구도 예외가 아닙니다.

어떤 리더십 세미나에서 자신에게 내적치유가 필요한 신호가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남을 자연스럽게 칭찬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는가?
표정 속에 기쁨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교회나 다른 사람을 은근하게 비판하지는 않는가?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요령껏 피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사람들이 나를 부담스럽게 여기지는 않는가?
남들과의 대화단절을 경험하지는 않는가?

어디에 해당됩니까? 회복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까? 나부터 회복이 되어야 다른 사람을 회복시키며 주님이 원하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에 대한 확신과 간증에도 불구하고 막상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자 두려움과 의심으로 휩싸였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배반과 불신의 죄를 범했던 제자들에게 평안의 주님으로 다가오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의심과 두려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이 확신 있는 증인이 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사랑의 책망을 통해서 믿음을 일깨워 주셨으며 직접 손과 발을 만지게 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을 견고한 확신으로 이끌어주시기 위해 음식을 잡수시는 모습까지 보여주셨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서 주님의 지상 명령을 성취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토대가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바울은 고전 15장을 통하여 만일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했을 것이요(13),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요(14), 사도들의 증언도 헛것이요(15),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17),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들이 될 것이라(19)고 증거합니다.  


2) 말씀의 토대위에 서야 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선물은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견고한 부활의 확신 위에서 말씀에 대한 계속되는 체험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다시험을 앞두고 총정리 하듯이 모세 오경부터 시작하여 선지서, 시편에 이르기까지 메시아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자신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을 차례대로 설명하십니다. 제자들은 구약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의 시각에서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구약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니고 복음서는 단순히 예수님의 전기가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요,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책. 그래서 구약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에 관하여 쓴 책이요, 신약은 이미 오신 메시야에 관하여 쓴 책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이십니다(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정말 인간이었고 실제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분을 God-man이라 부릅니다. 즉 전적으로 하나님이시며 전적으로 인간이시라는 뜻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예수님은 듣고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만질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있는 분이요 아버지와 함께 계시던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배우고 나눌 때, 악하고 험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합니다. 

힘은 크기도 중요하지만 방향이 중요합니다. LA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는 바람을 안고 가기에 13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인천공항에서 LA로 오는 비행기는 바람을 등지고 가기에 11시간 정도밖에 안 걸립니다. 기름도 적게 들고 비행기에도 무리가 덜 갑니다. 성령이 헬라어로 pneuma 인데 성령, 호흡의 뜻이 있지만  바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영성이 깊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 힘을 빼고 하나님의 힘이 들어와 역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때 인간적인 계산으로 힘들고 여겨지고 심지어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것도 가능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예루살렘으로부터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는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부활의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지상명령에 헌신하려는 제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제 누구를 보내고 무엇을 전해야 하며 어디로 가야하는지 성령께서 세우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성령과 교회를 통해 땅 끝까지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진행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려면 그들의 경력이나 믿음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어질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는 제자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열방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인한 큰 기쁨과 예수님을 향한 성령과 진리 안에서 그리는 예배, 하나님을 향한 찬양, 그리고 마음을 다하는 기도로 성령을 기다릴 때 성령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 즉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일 때 성령의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와 그 성령의 힘을 입어 우리의 능력이상으로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성령의 능력을 덧입지 않으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 뿐 아니라 예수님의 증인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봅시다. 비겁하게 스승을 배반하던 그들이 언제 그렇게 변화되었습니까? 언제부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습니까? 성령 충만을 받은 후입니다. 연약하고 무지하던 제자들은 성령 충만해진 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의 활약상을 사도행전을 통하여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부름 받았음을 깨달았다면 이제 성령께서 권능 주실 것을 사모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 성령에 충만할 때 말씀을 제대로 깨닫고 전합니다. 낙심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주님의 일을 감당합니다. 삶에 열매가 나타나고, 주님께 헌신하게 됩니다.  

선교는 하나님과 성도들의 연합사역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선교하는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의의 병기가 되어 기쁨으로 이 사역에 동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로 죄씻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부활할 소망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 믿음 이 소망을 가지고 흔들리지 말고 굳게 서며 더욱 열심을 내어 주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충성스런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무리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마음으로 전혀 기도에 힘씀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시작된 교회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간증에는 힘이 있었고, 그들의 사역에는 풍성한 열매가 있었습니다. 불과 바람으로 임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가 저희 팔로마 한인 교회에도 임하기를 원합니다. 교우들의 가정, 사업, 사역 위에 주님의 기름 부으심이 충만하게 임하여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평안과 회복을 경험하며 주님의 증인으로 사명을 온전하게 감당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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