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시온의 딸이 부를 노래 (습 3:14-18)

첨부 1


시온의 딸이 부를 노래 (습 3:14-18)

스바냐라고 하는 선지자는 유다의 역사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종교 개혁을 했던 요시야 시대에 활동을 했습니다. 요시야 왕은 8살 때 왕이 되어 20살 때부터 종교 개혁을 하고 31년을 치리하다가 39살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했던 중요한 원인은 스바냐 선지자의 메시지였습니다. 

스바냐서는 비록 짧은 책이고 그는 소선지자라 불리는 사람입니다만 그 메시지는 시대적으로 볼 때 굉장히 포괄성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만 예언한 것이 아니라 신약시대, 시대 종말까지 다 포함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의 비중도 굉장히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스바냐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세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첫째로 멸망의 예언, 두 번째로 남은 자의 예언, 세 번째는 남은 자들이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스바냐 선지자가 세장에 걸쳐서 예언하고 있는 것은 여호와의 날이 오면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세계 열방이 다 심판받고 멸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호와의 날은 유다백성에게는 바벨론이 침공해서 멸망하는 것을 일차적으로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은 일차적인 의미로 끝나지 않습니다. 

스바냐서 2장을 보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유다를 둘러싸고 있는 열방들도 다 심판받고 멸망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 왕국의 동서남북에 위치하고 있는 다섯 나라, 즉 서쪽으로는 블레셋, 동쪽으로는 모압과 암몬, 남쪽으로는 구스, 북쪽으로는 앗수르 이 다섯 나라들이 다 여호와의 날에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유다 입장으로 보면 이 다섯 나라는 동서남북 사방에 있는 모든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날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열방의 모든 백성들이 심판 받고 멸망 받는 인류 최후의 심판의 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망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아무리 개선한다고 해도 결국은 망한다고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오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열방이 멸망한다는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여호와의 날에 멸망하는 가운데서도 여호와께 숨김을 받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 축복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이들을 가리켜 남은 자라고 했습니다. 남은 자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도 있을 것이고 이방인들 가운데에도 있을 것입니다. “그 지경은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갈지라” (습  3:7). 

유다 족속의 남은 자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습 3:13). 

이스라엘의 남은 자입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에만 남은 자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이방인 중에도 남은 자가 있습니다.“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습 2:11). “그 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 그들로 다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섬기게 하리니” (습 3:9).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의 무서운 불심판이 올지라도 유대인 가운데 남은 자, 이방인 가운데 남은 자들은 숨김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이들을 가리켜서 시온의 딸 혹은 예루살렘의 딸이라고 불렀습니다. 
 
딸이라고 하는 것은 그 거민들을 가리키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시온의 거민, 예루살렘의 거민인 이들은 영적인 예루살렘, 영적인 이스라엘 즉, 교회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이 무너지고 영적인 이스라엘이 회복된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이 무너지는데 그 자리에서 육적인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날 것을 예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구약성경은 한 민족의 예언서에 불과할 것입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이 심판받아 멸망을 해도 그 자리에서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메시야의 시대 즉 교회의 시대를 예언하는 것입니다. 교회 시대에 영적인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남은 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구원받은 영적인 이스라엘이 감당해야 될 부담이 있고, 누릴 축복이 있고, 또 보여야 할 용기가 있습니다. B로 시작되는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부담(Burden)이 있고, 둘째로는 축복들(Blessings)이 있고, 셋째로는 보여주어야 할 용기(Bravery)가 있다는 것입니다. 

Ⅰ. 시온의 딸이 감당해야 할 부담(Burden) 

먼저 시온의 딸, 하나님의 교회는 감당해야할 부담이 있습니다.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습3:18).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남은 자들은 마음에 근심이 있고 무거운 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치욕과 죄악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과 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의 죄악과 치욕은 무엇입니까?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습3:2). 

간단한 말씀 같아도 네 가지 죄악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셔도 듣지 않고, 하나님께서 교훈하셔도 배우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도 않았습니다. 이 네 가지가 예루살렘의 수치인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그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 그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습3:3-4). 

다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오직 의로운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분뿐입니다. “그 중에 거하신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간단없이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습3:5). 하나님의 백성들은 교회가 타락하고 부패한 것에 대해 마땅히 근심하고 그 치욕을 마음에 짐과 부담으로 생각 해야 됩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진리를 공부하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없고 기도도 하지 아니하는 것들을 근심하고 마음에 부담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교회의 타락과 부패에 대해 ‘내가 기도할 문제다’라는 부담이 있으십니까? 
 
침례 교단이 낳은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 목사는 1887년 10월 30일에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 했습니다. '이 시대를 향한 설교'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던 말씀입니다. 스펄전 목사가 '하강논쟁'으로 인해서 영국 침례교 연맹을 탈퇴한지 이틀 뒤에 행한 설교입니다. 이 '하강논쟁'은 1887년 3월부터 발표된 일련의 논문으로 인해서 일어난 논쟁입니다. 

이 논문은 스펄전의 친구인 쉰들러라고 하는 목사가 썼습니다. 영국 침례교 안에 자유주의 신학이 들어왔고 교회가 세속화 되었기 때문에 교회가 영적으로 하강되고 있고 그 숫자가 떨어지고 있는 것을 염려해서 썼던 논문이었습니다. 이 쉰들러 목사의 논문에 스펄전 목사는 절대 동조를 했습니다. 그리고 스펄전 목사는 영국 침례교 안에 자유주의 신학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교단 총무였던 사무엘 부스라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정확한 정보를 받고 논문들을 발표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도 87년 8월에 자신이 직접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부스는 자기가 자료를 다 제공하고서도 나중에는 스펄전이 아무런 근거없이 교단을 공격한다고 도리어 스펄전을 반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펄전은 영국 침례교 연맹이 이런 자유주의 신학을 막아줄 수 있는 신앙 고백서를 발표했으면 좋겠다고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영국 침례교 연맹은 이것을 거절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옹호해 주었습니다. 침례교단은 물속에 들어가는 침수례만 받으면 됐지 신학이 일치될 필요는 없다고 하며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사람들도 다 포괄하고, 예수 안 믿어도 지옥가지 않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도 다 포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스펄전 목사는 1887년 10월 28일에 침례교 연맹에 탈퇴를 선언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에 오늘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스펄전은 마음에 큰 부담과 짐을 가지고 그 당시 영국 교회의 교리적인 타락과 윤리적인 부패에 대항해 동조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외롭게 싸웠습니다. 
 
한국 교회가 타락하고 부패했다고 한다면 우리가 그것에 욕설을 퍼붓고 저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마음에 그것을 부담으로 안고 한국 교회가 타락했다면 내가 타락한 것이다, 한국교회가 부족하다면 나도 부족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먼저 회개하고 기도하고 거룩해지도록 몸부림을 쳐야할 것입니다. 시온의 딸들은 이처럼 마음에 부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에 부담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복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Ⅱ. 시온의 딸들이 누리는 축복들(Blessings) 

교회의 타락과 부패를 근심하고 마음에 부담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바로 남은 자들입니다. 엘리야 시대에도 하나님은 남은 자 7,000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주전 605년에 여호야김왕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다니엘과 세 친구와 같이 신앙의 지조를 지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젊고 나이가 어리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는 신앙이 확실했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신앙이 확실한 게 아닙니다. 젊고 어려도 신앙이 확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남은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뭐가 뭔지 모르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하는 사람들은 남은 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BC 598년 여호야김왕때에 일만 명의 기술자들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에도 에스겔과 같은 남은 자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겔9:4). 살육하는 기계를 가지고 예루살렘 거민을 죽이는 여섯 천사들에게 그 타락을 인해서 우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하고 죽이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남은 자들이죠. 하나님은 교회가 교리적으로 타락하고 배교하고 세상과 영합하여 갈 때에도 마음에 부담을 가진 남은 자들에게 심판 중에라도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여섯 가지의 복입니다. 

첫째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라고 하는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 가운데 언약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셔서 구원을 주시기로 언약한 백성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의 언약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남은 자들은 약해도 하나님으로 인해 능력자가 되고, 남은 자들은 가난해도 하나님으로 인해 만유를 소유한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의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다는 것이 첫번째 복입니다. 
 
둘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 가운데 거하시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 가운데 계십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계신 것입니다. 또 요한계시록을 보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도 주님께서 교회 안에 거하시며 두루 보살피시고 잘한 것은 칭찬하시고 잘못한 것은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복을 주십니다. 
 
세 번째, 남은 자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의 결과로부터 구원하시고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구원하시고 결국은 죄의 존재로부터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며, 칭의 구원, 성화 구원, 영화 구원을 능히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백성들을 향하여 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헵시바입니다. 헵시바는 ‘내 기쁨이 네게 있도다’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가 있더라도 하나님의 기쁨은 교회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잠잠히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잠잠히 사랑하는 사람은 은근과 끈기가 있어서 오래갑니다. 하나님은 오늘 교회를 바라보며 잠잠히 사랑하시고 흐뭇해하시는 줄로 믿으십시오. 
 
여섯 번째는 하나님께서 교회로 인하여 즐거이 노래를 부르시며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이 너무나 커서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노래에 화답해서 시온의 딸들은 감사의 노래, 기쁨의 노래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부족하고 연약해도 이 여섯 가지 복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과 부족으로 인한 짐도 있으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복들로 인해 거룩한 부담과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Ⅲ. 시온의 딸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용기(Bravery) 

 하나님께서 시온의 딸들에게 요구하시는 용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 세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습3:14-16). 

첫째로는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고 죄악과 허물과 수치가 있어도 기뻐해야 합니다. 왜 기뻐합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받을 형벌을 대신 다 받아주셔서 그 형벌이 면제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의 원수인 마귀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땅에 있는 교회는 전투적 교회이고 하늘에 있는 교회는 승리적 교회입니다. 마귀는 이미 패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벌을 면제해주시고 우리의 원수를 쫓아내주심으로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움이 찾아오면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마음에서 두려움은 떠나갈지어다'라고 명령을 하십시오. 두려움이 있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두려움에 자리를 내어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낙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습 3:16). 손을 늘어뜨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낙심하는 것입니다. 어깨가 축 쳐지고 손이 늘어뜨려지고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인데 왜 낙심을 하느냐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뻐하고, 두려워하지 말며 낙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론 

 제가 오늘 여러분을 향해서 예언을 하겠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사랑하는 내 백성들아! 너희가 부족하고 연약하고 허물이 큼으로 인해서 마음에 고통과 부담이 있구나. 그러나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 내가 너희를 잠잠히 사랑하고 있다. 너희는 나의 기쁨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구원하는 하나님이다. 마음에 있는 두려움을 내어버려라. 낙심하지 말라. 그리고 기쁨의 노래를 불러라. 마귀가 너희를 공격해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는 내 백성들아 너희는 칭찬과 명성을 듣는 교회가 될 것이다.” 그러면 질문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목사님, 어떻게 그런 예언을 하십니까? 문장으로 보셨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1인칭으로 바꿔 이야기한 것입니다. 점쟁이한테 예언 받으러 다니지 마십시오. 성경이 예언입니다. 3인칭을 1인칭으로 바꾸면 그것이 예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고 칭찬과 명성을 주실 것입니다.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습3:20). 우리는 명성을 얻을 존재입니다. 칭찬을 얻을 존재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참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여러분께서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시고, 예수의 이름으로 날마다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