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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와 시험 (삼상 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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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시험 (삼상 30:1-10)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2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3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4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5(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6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7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8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9이에 다윗과 또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게 했으되 10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삼상30:1-10) 
 
성경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사탄도 확실히 있습니다. 즉 이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영적인 것이 있으며, 사실은 영적인 것이 본질입니다. 그러면 영의 세계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은 ‘은혜’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떤 존재일까요? 사탄은 시험하는 자입니다. 항상 우리를 시험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세상만이 전부인 것처럼 알게 하는 것이 사탄의 일입니다.   오늘 성경은 사탄의 시험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잘 알려주고 있는 본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적을 알면 적을 이길 수 있지 않습니까? 사탄이 언제 우리 성도들을 시험할까요? 

첫째는, 우리가 가장 약할 때, 가장 낙심되어 있을 때, 물질의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가 가장 힘들 때 입니다.  우리가 연약해져 있는 그때를 마귀는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때를 골라 시험을 걸어오면 저항도 해 보지 못하고 그냥 넘어집니다. 마치 사람이 아주 치쳐서 힘없어 걸어가고 있을 때 조그마한 돌에 걸려도 푹 쓰러지게 되듯이 우리가 지쳐 있을 때 마귀가 살짝 다리를 걸면 그냥 넘어지는 것입니다. 

두 번 째는, 마귀가 우리에게 시험을 잘 걸어 올 때가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후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기뻐서 할렐루야 하고 찬송을 하는 그 순간에 마귀가 여지없이 시험해 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는 것을 시기와 질투 때문에 참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하면 그 은혜를 간직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마귀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은혜를 쏟아 버리도록 온갓 방법을 동원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탄도 사랑하시지만 그는 등을 돌리고서 사랑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해 하는 것을 참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아와를 만드시고 사랑하셨습니다. 함께 동산을 거닐며 대화도 하며, 모든 만물을 인간들에게 맡깁니다. 마귀는 시기가 나서 이것을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는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 놓으려는 계획을 세웠고, 그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촌이 논을 사는데 왜 내 배가 아플까요?  왜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축하하고 축복하는 것이 어려울까요? 시기와 질투는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특별히 사탄이 잘 쓰는 방법이 분노(忿怒)입니다. 은혜 받은 자의 마음을 화(火)나는 마음으로 만듭니다. 은혜의 불 위에 분노라는 찬물을 끼얹는 것입니다.  화를 내도록 하는 환경, 다른 사람과 다툴 일이 생기는 것, 가족들과 사이가 나쁘도록 환경을 만듭니다. 그러면 은혜는 금방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되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합니다. 환경이 화를 내도록 유도한다 해도 거기에 말려들면 안 됩니다. 그래야 받은 은혜를 쏟지 버리지 않고,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경험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언제 시험이 잘 찾아오던가요?  힘들고 피곤하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은혜 받았다고 ‘할렐루야’ 할 때가 아닙니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다윗을 통해 이 두 가지의 경우를 다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아마 다윗의 생애중에서 가장 어두운 시절의 모습일 것입니다. 사울왕의 손에서 쫒기고 쫒기다가 마침내 블레셋지방으로 몸을 피합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을 죽이고서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던 다윗이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으로 몸을 피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한 형편입니까?  아무리 어려워도 해서는 안 될 선택을 다윗이 한 것입니다. 

(삼상27;1,2)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2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살기위해서 다윗은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갑니다. 본문의 바로 앞장 29장을 보면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합니다. 이스라엘의 영웅이요, 왕이 될 다윗이 블레셋의 왕 아기스의 신하가 되고 그의 보호아래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거짓말도 하게 됩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삼상 27;8)  

그러나 아기스에게는 말을 다르게 하였습니다.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 ... 12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그는 영원히 내 부하가 되리라고 생각하니라”(삼상27;10,12) 

아기스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서 이렇게 이중적인 생활을 하면서 1년 4개월을  지냅니다.   이제 더 어려운 일이 일어납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납니다.  아기스왕이 자기와 같이 싸우러 나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싸울 수 있습니까? 없지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입니다. 나중에 왕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쟁터에 같이 나가자고 하는 말을 거역할 수도 없습니다. 다윗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큰 위기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사탄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기적이 일어납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 하겠나이까”(삼상 29;2, 4) 

하나님의 은혜로, 블레셋 사람들이 스스로 반대해서 다윗은 동족과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정말 감사하고 찬송할 일입니다.  블레셋사람들이 ‘그러면 다윗을 제일 앞에 세웁시다’ 하면 끝장입니다. 부인과 자녀들, 모든 재산도 다 블레셋 땅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600명의 부하들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얼마나 찬송을 하였겠습니까!!  

그런데 사탄의 큰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은혜 뒤에 그 은혜를 쏟아버리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살던 마을로 돌아와 보니 집들이 모두 불 타버렸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은 모두 포로로 잡혀가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아말렉 사람의 짓입니다.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의 땅에 들어가 그들을 죽이고, 노략물도 많이 뺏아 왔습니다. 

그러나 아말렉 사람들은 다윗을 정면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늘 다윗을 공격할 틈을 보고 있었는데,  다윗이 아기스왕과 전쟁터로 나가려고 마을을 비우는 그 틈을 뚫고 들어온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사람은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다 아말렉 군사들에게 잡혀 갔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떨어지는 소리가 막 들립니다.  사람들은 슬퍼서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더 이상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세타령을 했습니다. 어쩌다 저런 지도자를 만나 이런 일을 당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습니다. 

이제껏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입을 모아 감사하던 다윗의 군사들입니다. 좋은 지도자 다윗을 만난 것이 얼마나 축복 받은 일인지 모른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부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금방 그들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감사와 축복의 말이 나오던 입에서 이제 저주의 말이 막 쏟아져 나옵니다. 다윗을 죽이자고 외칩니다.  

사실 다 같이 불행을 당한 것입니다. 다윗 혼자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자기들도 다윗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큰 불행 앞에서 자기반성을 하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무조건 지도자인 다윗의 탓으로 돌립니다.   다윗이 잘못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그를 당장 죽이자는 것입니다.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일단은 죽이자는 것입니다.  다윗은 졸지에 부하들에 의해 죽게 되는 상황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은혜 뒤에는 사탄의 시험도 온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 뒤에 오는 사탄의 시험을 조심해야 합니다. 마귀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마음에 간직하고 사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 은혜를 빨리 바닥에 쏟아 놓고 은혜 없이 살기를 마귀는 원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늘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잘 간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정신을 바싹 차리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가족은 다 사라져 버렸고, 잠잘 집도 다 타버렸고, 먹을 양식도 다 사라져 버렸고, 남은 것은 잿더미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할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가 다윗의 마음에 생겼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 오라고 했습니다. 에봇은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물을 때 입는 옷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지금 내가 그들을 쫒아간다면 그들을 잡을 수 있을까요?’ 그러자 다윗에게 하나님은 ‘좆아가라. 그러면 반드시 그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며 모든 것을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특별한 점입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갑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울 기력도 없는 상태가 되어 원망과 불평을 하며 다윗을 죽이려는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때로는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들을 추격하여 가족들과 빼앗겼던 모든 물건을 찾아왔습니다. 심지어 아말렉 군사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까지도 다 빼았아 왔습니다.  

신약에서 바울사도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행15;9)“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성령께서 환상을 통해 마게도냐로 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즉각 순종했습니다.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 성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두아디라시에서 자색옷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라는 여인이 결신합니다.  

(행15;14)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첫 열매를 얻었고, 머물고 예배드릴 장소도 얻었습니다. 계속 전도하다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만나 귀신을 쫒아내 주었습니다. 귀신에게 시달리는 한 영혼을 구원한 것이지요.    

그렇게 성령님의 지시대로 마게도냐에 왔고, 루디아의 온 집이 세례를 받고, 또 그 집에서 지속적으로 머물면서 전도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점치는 귀신을 쫒아내는 기적도 일어나는 등, 빌립보에서의 전도가 순조롭게 되어갑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바로 감옥에 갇힙니다.  점치는 귀신으로 돈을 벌던 주인이 돈을 못 벌게 되자 고발을 한 것입니다. 

(행15;22-23)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생각하지도 못한 시련 아닙니까?  다윗은 블레셋으로 도망을 가서 위기를 자초했지만, 바울과 실라가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전도한 일 뿐인데 왜 이렇게 매를 맞고, 또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됩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런 일이 생깁니다.  이런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복음이 전파되는데 사탄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온 당에 예수 복음이 가득할텐데 어찌 사탄이 잠자고 있겠습니까!!   

(고후11;23-27)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성도여러분, 바울과 실라가 지하 감옥에서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들은 찬송을 하였습니다.  찬송할 때 옥터가 흔들리고 사람들의 모든 묶인 것이 풀어졌습니다. 간수장의 가족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고난이 그들의 전도를 막지 못했습니다. 온 유럽과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이 다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벧전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고난은 무조건 저주가 아닙니다. 바울과 실라의 고난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고난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철을 언제 망치로 두들깁니까? 철이 달아올라 뜨거울 때입니다. 은혜를 받은 것은 철이 달아올랐다는 말이요, 시험은 철을 때리는 망치입니다.  사탄의 시험도 하나님의 계획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시험은 없습니다. 망치가 세게 내려칠수록 더 강한 절이 되고, 더 온전한 모양이 됩니다.  이것이 시험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그러니 어떤 절망 속에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그분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끝이야’ 하는 말은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블레셋으로 도망을 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블레셋이 나의 피난차가 될 것이라고 믿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만이 나의 피난처 이십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시는 분으로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어려울 때 원칙을 지키고, 어려울 때 더욱 말씀의 약속을 붙들면 그 약속하신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후에는 반드시 마귀가 시험하여 은혜를 떨어뜨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시길 바랍니다.  자기 민족과 싸우지 않게 되어서 너무 기뻐하고 있을 그 때에,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가족도 살 곳도 적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다윗과 부하들에게 엄청난 어려움이 오자 부하들은 다윗에게 등을 돌리고 죽이겠다고 달려듭니다. 다윗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용기도 생겼습니다. 용기를 얻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이 앞길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것을 다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다윗과 같이 기가 막힌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여전히 함께하시는 것을, 모든 것을 다 회복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누리며,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 저는 한 말씀을 더 드리려고 합니다. 사탄의 시험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큰 은혜를 받아도, 아무리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을 받아도 여기에 걸리면 다 소용없는 그런 것인데요, 그것은 ‘잊어버리는 것’ 입니다. 

(약1;22-24)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은혜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울을 본 사람이 자기 얼굴에 무엇이 이상한지를 보고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잊어버리고 그냥 생활하듯이, 은혜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좋은 말씀이야. 정말 은혜 받았어’ 하면서 교회 문을 나서면서 다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교회 문을 들어오면서부터 듣고 순종할 마음을 가지고 오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들으러 오는 것이지, 행할 마음은 처음부터 없는 것이지요.   

성도여러분, ‘듣고 잊어버리는 것’ 은 사탄의 어떤 시험보다도 강력합니다.  아니 사탄이 신자들을 시험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은혜를 다 잊어버리니 사탄이 할 일도 없습니다.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죽은 사람에게는 시험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죽었으니까요. 시험은 산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나 바울이 큰 시험을 받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힘있게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에게 시험이 없는 것이 우리가 죽어가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냥 둬도 죽어가는데 굳이 사탄이 시험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는 산 사람이어야 합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 은혜 받아서 힘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승리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시험을 받아도 이기면서 살아야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 

우리 빛이 사람들에게 비치게 하여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항상 은혜와 사랑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언제나 넉넉한 웃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듬뿍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베풀고, 사랑을 나누어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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