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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은 해석이 중요합니다 (창 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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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해석이 중요합니다 (창 45:4-8)

남미(南美)에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국경(國境)을 맞대고 있는 나라입니다. 

양국(兩國)은 안데스라는 산맥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오랫동안 서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04년 약간의 국경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쟁이 평화롭게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것을 기념하여 양국 국경에 해발 3832m의 우스파야타 산언덕에 예수 그리스도의 동상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 동상으로 인하여 오히려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뻔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예수님 동상이 칠레에는 등을 돌리고 있고 아르헨티나를 바라보고 팔을 벌리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칠레 국민들의 감정은 상해 있었습니다. “왜 우리나라에 등을 돌리고 있게 만든 거냐? 왜 아르헨티나만 축복하라는 거냐?” 하면서 난리가 났습니다. 양국의 평화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동상인데 오히려 그 동상 때문에 전쟁이 벌어질 위태로운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 때 칠레의 한 신문사 기자가 신문에 이런 글을 실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아르헨티나를 향하여 서 계시는 이유는 아르헨티나가 칠레보다 더 예수님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칠레인의 고조된 감정을 가라앉힐 만큼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 그래? 그렇다면...” 하고 감정이 가라앉은 것입니다. 신문 기자의 말 한마디로 인하여 양국 사이에 갈등도 사라졌습니다. 동상의 모양이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동상에 대한 보는 시각과 해석이 달라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에게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 일들을 어떻게 해석하며 살아가십니까? 

어떤 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정말 어이없어하고 힘들어 할때 도 있습니다. 

“왜 내가 이런 못된 병에 걸려야 해?” 
“왜 나만 이렇게 고생해야 해?”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해?” 이런 생각에 힘들어 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여러분은 지난 총선에서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왜 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되지 않았나?” 하고 속상해 하지는 않으셨나요?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하지 않으신가요? 사실 이 좁은 땅에서 같이 살아가는 백성들의 생각이 왜 이토록 다른 것일까요?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보고 손바닥만하다 합니다. 그런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것도 모자라 동쪽과 서쪽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거기다가 이번 선거를 보니 도시와 시골 사람들의 생각이 다른 것을 봅니다. 

왜죠? 이유는 하나입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고 그 문제를 해석하는 견해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더 들어봅니다. 

한 달 사이에 아들과 딸을 결혼을 시킨 어느 부인 집에 어느 날 친구들이 놀러 왔습니다. 둘 다 보내서 시원하겠다며 “사위는 어떤 사람이냐? 딸에게 잘해주느냐?”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부인이 대답합니다. 

“나는 정말 사위하나는 잘 두었어. 내 사위는 딸이 늦게까지 잠을 자라고 할 뿐만 아니라 날마다 미장원엘 보낸다지 뭐니, 그리고 저녁마다 외식을 시켜 준대”

그러면서 사위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친구들이 “그럼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는 어떤 여자냐?”물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이 부인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말합니다. 

말도 마라, 게는 정말로 게을러, 아침이면 항상 늦게 일어나고 미장원을 거르는 날이 없어 그뿐인 줄 아니? 집에서 밥도 안하고 매일 저녁마다 나가서 외식을 하니 우리 아들 고생이 뻔하다 하며 속상해 하더랍니다. 

여러분! 딸과 며느리가 똑같은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어찌 이렇게 다를 수 있나요? 무엇을 말하나요? 똑같은 상황을 놓고 우리들이 이렇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각과 해석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 그리고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들의 미래가 決定되어지고 幸福이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데는 “사관”(史觀/Historical View)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관을 갖느냐에 따라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해석이 달라집니다. 

아마도 제 나이 또래, 또는 저보다 연배 되신 분들, 초등,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국사를 배우면서 느낀 것은 조선은 당파 싸움을 하다 망한 나라라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구한 날 노론(老論) 소론(小論), 북인 남인 파벌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도자들 이름 외우느라 얼마나 골머리 아팠습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일제가 가르쳐준 조선의 역사입니다. 이른바 식민사관(植民史觀)의 결과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일제가 우리 민족사를 해석하면서 처음부터 끝가지 이렇게 政爭 싸움하다 망한 나라로 인식하게 하기 위해 그런 역사관을 주입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그것인 진짜 조선역사의 전부인 줄 알고 배웠습니다. 그러니 조선이 일제에 망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족사관(民族史觀)”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의 역사는 가장 오래된 민주적인 왕권(王權)국가라는 것입니다. 왕국이었기에 비록 정당의 이름은 없었으나 서로가 경쟁하고 견제하면서 왕을 잘 보필하면서 500년이라는 역사를 이어온 세계 유래 없는 민주 정치제도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관점이 바뀌면 해석이 바뀌고 해석이 바뀌면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관점이 바뀌면 /해석이 바뀌고/ 해석이 바뀌면/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더욱이 그렇습니다. 

어떤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보느냐가 인생을 새롭게 하고 복을 누리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세상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적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나오는 해석으로 인생을 살아가면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에 인생사에서 해석의 중요성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또 따라서 합시다. /인생사에 / 가장 중요한 것은 /해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시각과 해석을 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 성도에게는 만사를 대할 때 믿음의 시각과 믿음의 해석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영적 시각과 영적 해석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습니다. 

영적인 시각과 해석을 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이 그 문제에 해답을 줍니다. 

1. 모든 인생사를 하나님 언약에 근거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서 있을 때 형들이 곡식을 사러 애굽에 왔다가 요셉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요셉을 보면서 우리는 인생사에서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애굽에 끌려 왔습니다. 

그 요셉은 애굽의 임금 바로왕의 경호대장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자그마치 10년이 넘도록 갖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집에 총무가 되어 있다가 어느 날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거기서도 적어도 2년 이상 무진 고생을 하며 죄인생활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굽의 왕이 꿈을 꾸었는데 그 해석을 요셉이 하게 되고 그 결과 하루아침에 요셉은 대 애굽 제국의 총리로 세워집니다. 그러고 나서 7년 풍년과 흉년 2년, 약 9년쯤 되었을 때 형들이 애굽 땅에 양식을 사러 왔습니다. 노예와 죄수로 13년, 총리로 9년, 약 22년의 긴 세월동안 그는 힘들고 어려웠던 고난을 잘 견디어 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가 어떻게 그렇게 오랜 세월을 인내하며 살아왔을까요? 

인간의 혈기로나 감정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했다면 요셉은 형들을 만나자 마자 곧바로 복수를 했어야 합니다. 아니 총리가 되자마자 가나안땅을 찾아가 형들을 잡아 복수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고나서 9년 동안 참고 기다렸습니다. 왜지요? 그에게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시각이 있었고 해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어릴 적 하나님이 그에게 주셨던 꿈을 통한 게시 덕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언약이었습니다. 요셉은 그 언약이 이루어 질 것을 믿었습니다. 창37:6절 이하를 보세요.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9절도 보세요.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요셉은 형들에게 이 꿈 이야기를 했다가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부친에게 도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리고는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꿈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내려온 언약, 그 약속을 철저히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주신 언약도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믿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을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과거 요셉시대에는 성경이 없었기에 꿈으로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언약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성경의 약속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질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 약속이 내 삶속에서 그대로 성취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인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실수함이 없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내 문제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놀라운 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2. 나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바라볼 때 자기중심의 시각으로 보고 자기 중심의 해석을 합니다. 우리나라가 보수와 진보가 다른 이유는 그런 차이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12명의 가나안 정탐꾼의 報告를 보세요. 

똑같이 12명이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왔는데 왜 10명과 2명의 보고가 정반대로 다른 意見을 내어 놓았을까요? 이유는 가나안 땅을 보는 시각의 차이입니다. 

10명은 백성의 시각에서 가나안땅을 보았고 그에 따라 그땅은 정복하기 어렵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2명,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보는 시각이 달랐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홍해를 건넌 과정,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보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이기에 능히 그 땅을 차지 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시각이 달랐고 그러기에 해석도 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보시는 시각으로 문제를 보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그 뜻을 올바로 해석하길 원하십니다. 

요셉은 자기 개인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형들이 자기를 노예로 팔고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13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고 억울한 누명으로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원한으로 품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는 것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5절을 다 같이 봅시다.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당신들이 나를 팔았다고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얼마나 억울했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 중심의 시각으로 보니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만사를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영적 사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내 생명과 내 인생을 주관하신다.” 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요셉에게 있었기에 요셉은 과거를 잊을 수 있었고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힘들고 억을 했던 과거가 있습니까? 도저히 용서 못할 과거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중심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은 그리하셨을까? 왜 하나님은 나를 그렇게 힘들게 놔두셨을까? 

가족 중에 먼저 떠난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해가 안되지요?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 사건을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용서할 수 있고 그러면 내가 자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하고 여기서 살게 두셨을까요? 

하나님 입장으로 생각을 해보면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예수 믿게 하는 도구가 되게 하셨고 그 일로 나를 오늘의 나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우연처럼 보인 사건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신 일들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룻기를 보세요.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와 베들레헴에 머물게 됩니다. 

거기서 시어미를 봉양하느라 보리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를 만납니다. 그 사건이 인연이 되어 그들이 결혼을 하게 되고 그 둘 사이 후손으로 다윗이 誕生한 사건을 어찌 우연이라 할 것입니까? 세밀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된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는 매사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아야 하고 그 사건을 해석해야 합니다. 

  
3. 구속사적인 시각에서 매사를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역에 저와 여러분을 참여시켰고 그 일을 우리는 지금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시나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위해 일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 우리가 믿음생활을 잘 해야 할 이유는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 그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나라 백성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 안에 저와 여러분을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영혼구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일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자기를 애굽에 보내신 이유를 알았습니다. 
7절~8절을 보세요.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큰 구원을 위해, 생명을 보존하려고,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요셉의 고백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하시려고 먼저 요셉을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요셉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세워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고 요셉에게 그 나라를 다스릴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형들의 투기 질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요셉이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이 시기 질투해서 못 박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건을 영적 시각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 실상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 하신 구속사역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 하나하나를 하나님 나라와 구원 역사로 보면 은혜가 됨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왜 우리가 전도해야 하나요? 왜 선교에 목숨 걸어야 하나요?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면 해석이 달라지고 해석이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성도가 이런 영적 시각과 해석을 가지면 어떤 결과가 찾아올까요? 

1) 우리가 겪는 고난의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2)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니 3)하나님이 쓰시는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해석입니다. 믿음의 시각으로 여러분의 문제를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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