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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런 하나님을 믿으라 (신 1: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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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하나님을 믿으라 (신 1:28-33)  

광야를 걷는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을 향해 믿음으로 걸었다.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땅이기에 희망을 안고 걸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으므로 기대감으로 걸었다. 

오늘 본문은 민수기 13장에 기록된 가나안 땅 정탐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믿음으로 나아갔으면 얻게 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불신앙의 태도 때문에 못 들어가게 된 이야기이다. 모세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준다. 열 두 지파를 대표하는 불신의 정탐꾼들은 가나안을 둘러보았을 때 그 땅을 하나님의 약속의 땅, 능히 들어가서 취하는 땅으로 보지 않았다. 

신1:21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이미 과거 완료형으로 땅을 주셨다는 선언이다. 올라가서 차지하는 일만 남았다. 실천만하면 된다는 것이다. 땅은 이미 주어졌다. 그런데 백성들은 올라가지 않았다. 

주어진 그 땅에 대한 민13:31~35에 기록된 보고의 결론은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므로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백성을 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시기로 약속했으면 하나님이 가나안 사람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믿고 명령에 “아멘”해야 하는데 불순종하였다. 불신앙으로 무장하였다. 

① 불신앙은 원망을 낳았다. (민14: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 말 한마디에 백성들은 밤새도록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② 불신앙은 후회를 낳았다. (민14: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③ 불신앙은 반역을 낳았다. (민14:4)
백성들은 서로 말하였다.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하였다.

④ 불신앙은 갈등과 대결을 낳았다. (민14: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였다.  

이것을 보게 된 하나님은 노하셨다. 신2:34~35을 보면 하나님은 이들을 악한 세대라고 불렀다. 민14:11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멸시로 보셨다. 민14:33은 “반역한 죄”라고 하시고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고 하셨다. 불신앙은 결국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불신앙의 종국은 두려움과 혼란을 뛰어넘어 광야에서의 방황과 죽음을 가져왔다.  

우리는 광야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어떤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어떤 사람들의 말을 듣더라고 불신앙에 감염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적이 강하고 그들의 성읍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세워져 있더라도 틀렸다고 움츠러들어서도 안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사람답게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환경을 보지 말고 약속을 믿어야 한다. 크냐 작으냐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들어간다고 했으니 가기만 하면 된다.

오늘 모세의 권고의 말을 보라.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가나안 주민들이 크다고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성이 높고 굳건해 보인다고 무서워 할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약속의 땅이기에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밟는 것이 길이 되고 실천하는 것이 열매가 된다.  

어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

1. 나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신1:30)

신1: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보았다. 회상을 해보니 하나님이 먼저 가셔서 모든 일을 행하셨다. 바로의 완악함을 어떻게 이겨내고 광야로 나올 수 있는가?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출애굽이 성공한 것은 하나님이 먼저 가셔서 일을 다 해놓으셨기 때문이다. 

유월절 사건은 바로 이스라엘을 바로의 사슬에서 구원하는 사건이다. 홍해 바다가 열리는 사건도 바로의 군대를 물 속에 수장시키고 구원하는 사건이다. 백성들의 목전에서 행하신 이 모든 구원 사건은 하나님이 먼저 가셔서 다 행하신 일이다. 그 하나님이 어찌 지금에 이르러 나보다 먼저 가시지 않겠는가? 세대라 바뀌었어도 하나님은 내가 가야 하는 길을 위해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시다. 

왜 먼저 가시는가? 신1: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 광야에서 쉴 수 있는 장막터를 찾기 위해 먼저 가신 것이다. 나를 위해서 앞장 서 가신 것이다. 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다. 매사에 하나님은 먼저 앞장 서 가시고 나의 필요한 의식주의 문제를 준비해 놓으신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2. 나를 위하여 싸워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신1:30)

신1:30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과거에만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 바로 오늘을 사는 현재의 순간에도 나를 위하여 싸워 주신다. 하나님이 싸워 주시면 누가 하나님 앞에 당할 것인가? 시편 76편을 보라. 하나님이 꾸짖으시면 병거와 말이 다 깊은 잠에 든다.(시76:6)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 주의 목전에 설 자가 없다.(시76:7) 하나님과 같이 큰 신(神)이 없고(시77:13)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한다고 하였다.

이토록 크신 하나님이 왜 나를 위하여 오늘도 싸워주시는가? 참으로 이것을 믿으면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싸워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이다. 

신1:31을 보라.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처럼 대하신다. 아버지가 피곤하고 힘들어 하는 아들을 보면 안아주시고 업어주심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도 우리를 안아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표현된 안아주심은 앉아서 안아주는 것이 아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번쩍 들어 안아주신다는 뜻이다. 얼마나 확실하고 안전한 돌봄인가? 아버지 하나님은 따뜻한 사랑의 품이시다. 그래서 나를 공격하는 자들이 손을 대지 못한다. 

아브람을 보라.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싸워주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멋지게 싸워주신다. 나를 품으시려 나를 돕는 자들을 도와주시고 나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는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나의 아버지가 되어 철저하게 나를 지켜주시려고 싸워주시는 하나님이다.

내가 중학교 시절, 시험을 치르는데 두리번거리다가 커닝을 한 학생으로 불려갔다. 억울하기도 하지만 두리번거리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아시고 그 길로 선생님의 집으로 나를 데리고 달려가는데 담배를 한 보루 사가지고 가셨다. 선생님 집에는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고는 자신을 잘 부탁한다고 하시는데 오해도 풀리고 누명도 벗었다. 나를 위해 달음박질하고 돈도 쓰시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싸워주시는 어머니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처럼, 아버지처럼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어 나를 위해 싸워주신다고 하니 두려울 것이 없다. 하나님이 싸워주셔서 나는 오늘 목사가 되었다. 곤고한 날에 나를 품어주시고 안아주셨다. 이런 사랑의 터치가 또 어디 있겠는가?
  

3. 갈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신1:33)

신1:33下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우리 인생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살며 길을 찾아 헤맨다. 광야의 특징은 길이 없다는 것이며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광야의 기온은 급격한 차이가 있어 낮에 더위와 밤에 추위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도하신다. 낮에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시려고 구름을 보내시고 밤엔 추위를 막아주시려고 불을 보내신다. 자연적인 재해와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돌봄의 방법으로 인도하셔서 갈 길을 가게 하신다. 

하나님은 내가 갈 길을 가지 못하게 있는 길을 없애고 막으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 앞길을 깜깜하고 길이 보이지 않아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밟는 곳이 길이 되게 하시고 길을 만들어 걸어가게 해주신다. 광야의 끝이 보이지 않아도 낙심할 것도 없고 당황할 것도 없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내 인생 길에 최고의 인도자이셨다. 나의 여건 상 만사의 길이 막혔는데 그때마다 길을 여셨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문을 열고 대학교로 가는 문을 열고 목사가 되는 문을 열고 오목천교회로 목회하는 문을 열고 필요 없는 문을 닫으셔서 구체적으로 계속해서 지시하신 분이셨다. 교회를 짓고 땅을 사서 옮기고 또 다시 새 예배당을 짓고 세계 선교를 감당코자 할 때 정말 구름과 불로 지시하시는 인도자셨다. 이 하나님을 우리 성도들이 믿어야 한다. 

약속의 땅을 향할 때 먼저 가시는 하나님, 이제 싸우시는 하나님, 갈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쫓아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와, 우리 교회와 함께 여행하신다. 함께 야영하시고 하나님이 먼저 나를 지키려고 하신다. 이 하나님을 믿으면 담대함을 준다. 그리고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 장대한 거인, 아낙 자손이 두렵지 않다. 그들은 오히려 “믿는 자의 밥이다.”(민14:9) 라고 외치게 된다. 믿음의 사람은 완전히 다른 복을 누린다. 불신의 정탐꾼과 달리 믿음으로 헌신을 다짐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광야에서 생을 끝내지 않는다.   

믿으라. 우리의 계획이 무산되고 해결을 위한 마땅한 실마리가 없을 때 하나님을 믿으라. 모든 좌절과 삶의 스트레스가 두통처럼 내리누를 때 하나님을 더욱 믿으라. 하나님은 길 없는 곳을 밟는 나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계속해서 인도해 가신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길이 보이게 하시고 약속을 취하게 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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