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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하나님만 (시 6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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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만 (시 62:1-8)          

오늘 함께 읽은 시는 다윗의 시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이 시를 지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전 979년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쫓겨나 어려움을 겪을 때 지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 시는 적들로 인해 공격을 받으면서 어려운 상황에서 지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면서 두려움이나 불안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담대함과 평안함과 확신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함께 나눔으로써 우리에게도 이런 복이 임하길 원합니다. 

이 시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크>라는 단어로서 모두 여섯 번 등장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이 단어들이 뚜렷하게 번역되고 있지는 않지만, 충분히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먼저 2절을 보실까요?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는 <오직 그만>이라고 번역되고 있습니다. <아크>라는 단어는 단 한 가지만 지칭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1절을 보십시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아멘. 여기서는 <하나님만!>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확신은 한 번 더 반복됩니다. 5-6절을 다같이 읽읍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1절이 고백이라면, 5절은 자신에 대한 충고입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도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란 다윗의 신앙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만!>이라는 표현에서 무엇을 감지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 외의 다른 존재에 대한 실망감입니다. 다윗은 누군가에게 무척 실망한 게 틀림없습니다. 많은 것을 믿었고, 믿은 만큼 많이 실망했습니다. 이 숱한 믿음과 숱한 실망이 반복된 끝에 도출된 결론이 <오직 하나님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다윗을 그렇게 실망하게 만든 이들은 누구였을까요? 우선 그의 가족들이었을 것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다윗은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입니다. 귀여움은 받았는지 모르지만, 신뢰를 받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저 철부지 막내로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당대 최고의 지도자인 사무엘이 와서 이새에게 <아들들을 모두 데려오라>고 했지만, 이새는 다윗은 아예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도록 준비시킨 후에도 가족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블레셋과 전쟁이 벌어져 그의 형님들이 전쟁터에 나갔을 때, 다윗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형님들을 만나러 갑니다. 거기서 그는 골리앗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모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다윗의 가슴이 뜨거워졌고 아무도 골리앗과 싸우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이 나가서 싸우고자 했습니다. 그 때 형님들의 태도는 곱지 않았습니다. 특히 맏형님이었던 엘리압은 다윗을 도가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꾸짖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영이 강력하게 자신을 떠미시는 것을 느꼈고, 형님들의 꾸중에도 불구하고 물맷돌을 들고 골리앗 앞으로 나갔습니다. 아직 완전한 성년이 못된 그가 당대 최고의 장수 골리앗을 상대로 다가서는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위태롭기 짝이 없는 순간입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다윗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고독한 단독자였습니다. 형님들도 아무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된 형들이라면 <내가 싸울 테니, 어린 너는 여기 있어라>, 아니면 <같이 싸우자>라고 말하면서 나서야 할 텐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에 아버지 이새도 없었습니다. 이새는 베들레헴에 있었습니다. 사람이란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할 때는 그 자리에 없을 때가 많습니다. 더구나 이새가 곁에 있었다 할지라도 다윗을 도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란 곁에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뿐이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밖에 없음을 깨닫는 힘든 훈련>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습니다. 사울 왕을 위해 전쟁에 나갈 때마다 그러하였습니다. 시편 18편 28-29절을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아멘. 적진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용기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부터 왔습니다.  
  
다윗은 자식들에게도 실망을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식을 믿고 의지합니다. <믿어도 소용없다>고 말들은 하지만, 자식 자랑에 열을 올리는 우리 모습을 보면 마음 한 구석에 자식을 믿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제일 먼저 다윗을 실망시킨 아들은 암논이었습니다.  암논은 이복누이를 겁탈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후 압살롬이 아버지를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특히 압살롬은 다윗의 여러 아들들 중 으뜸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잘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에 압살롬만한 인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사람을 끄는 힘을 가진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를 가장 사랑했고,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겁탈당한 누이의 복수를 위해 암논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자 압살롬은 아예 왕이 되기 위해 아버지 다윗을 몰아내기로 작정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칼을 빼들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통해 <자식 믿을 게 못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만!>이란 그의 신앙은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란 신앙은 다윗 자신에 대한 포기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1절의 <잠잠히>란 단어는 <뚜미야>란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조용하게 있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 속에는 <포기, 체념>이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란다>는 것은 자신의 화려한 경력과 능력을 믿는 마음,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사울에게 쫓겨 블레셋에 피했을 때 사람들은 대뜸 <골리앗을 죽인 영웅>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윗을 볼 때마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영웅>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치 김연아 선수가 평생 <올림픽을 제패했던 선수>라는 명예를 안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어려움을 만나자 과거의 경력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과거의 영광일 뿐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상황을 극복할 힘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고 했습니다. 이 대목을 새번역성경에서는 <기울어 가는 담과도 같고 무너지는 돌담과도 같은 사람을, 너희가 죽이려고 다 함께 공격하니, 너희가 언제까지 그리하겠느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리가 아프면 담장에 기댑니다. 그러나 기울어진 담장에 기대다가는 큰 일 납니다. 위기를 만난 다윗은 거의 기울어가는 담장 신세였습니다. 경력도, 능력도, 왕이라는 지위도 무력한 상황에서 그는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다윗은 골리앗을 이겼고, 갈라진 이스라엘을 하나로 모아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변 나라들을 복속시켜 강대한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도우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다윗은 과거의 경력과 경험도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과거의 영광에 기대지 마십시오. 그거 믿지 마십시오. 또 지금 살아 있다고 큰소리칠 거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별 문제 없이 잘 살고 있어도 언젠가는 <오직 하나님만!>의 신앙이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 올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되는 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여러분, 다음 내용을 들어보십시오. 

이런 인터넷 글도 있었습니다. <13년간 병상에서 투병생활을 했던 교민 최옥선 여사(52)가 지난 5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습니다. 7일 오클랜드 주님의 교회 이달견 부목사의 집도하에 노스쇼어 메모리얼 파크에서 엄숙히 진행된 장례 및 하관예배식장에는 평소 고인 및 고인의 유가족과 친분이 깊은 2백여 명의 교민들이 참가하여 소천한 고 최옥선 여사가 떠나는 하늘나라 길을 환송했습니다. 남편 김운성씨와 지우, 지선 남매를 포함한 유가족과 친지들의 애통한 흐느낌을 뒤로한 채 고인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노스쇼어 장지에 모셔졌습니다....> 김운성 이란 이의 아내가 죽어 장례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제 아내가 먼저 부르심을 받는다면 이렇게 되겠지요. 

성도 여러분, 이게 다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그 순간에는 아무도 우리를 도울 수 없습니다. 그 순간엔 하나님밖엔 없습니다. 교회 식구들도, 가족들도, 친구도 도울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이 위기로 점철된 인생을 승리로 끌고 갈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비상행동강령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위기를 만날 때마다 비상행동강령을 따랐습니다. 그 비상행동강령은 <오직 하나님만!>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보내오는 전기를 사용하는 공장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정전이 되면 빨리 <비상발전기>를 가동해야 합니다. 그 비상발전기와 같은 분, 언제나 우리의 어두운 인생에 불을 켤 수 있는 전원이 되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게 바로 <인생의 휴식>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잠잠히, 뚜미야>란 단어는 <휴식>이란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극심한 위기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오히려 휴식의 시간이 됩니다. 지금까지는 스스로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했습니다. 휴식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쉴 때가 왔습니다. 애써도 안 되니 쉴 뿐입니다. 내가 휴식을 취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포기할 때, 하나님은 <희망선언문>을 발표하시고, <우리 인생 재건 작업>에 착수하십니다. 

이 시대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도 다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내면의 평안과 평온함에 대한 아름다운 글들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 에러 때문에 그 글이 날아가 버리면, 나의 내적 평안과 평온함은 컴퓨터 모니터 상의 전자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사라져버린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차가 고장이 났다면, 나의 두뇌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오직 그 문제만을 생각한다. 식사 전에 서둘러 드리는 기도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우주의 본질과 내 삶의 중심점을 잊어버린 것인가? 그렇다.> 

이 글은 유명한 기독교 저술가인 <필립 얀시>의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 중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제목이 암시하는 바가 크지요? 우리 안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즉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그 모든 평안이 순간적으로 날아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의 신앙을 훈련해야 합니다. 철저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참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시가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길 때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그 때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군에게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궁궐을 뺏긴 채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 때 그의 모습을 사무엘하 15장 33절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이 상황에서 다윗을 두렵게 한 것은 압살롬을 돕고 있는 아히도벨이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당대에 제갈공명과 같은 지략가였습니다. 사무엘상 15장 31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은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아히도벨을 막아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아히도벨을 막아 다윗을 도우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초라하게 도망하는 다윗에게 후새를 보내주셨습니다. 

사무엘상 15장 32절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히도벨을 막아 달라고 기도하자마자 하나님께서 후새를 보내신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돕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후새를 데리고 가는 대신에 오히려 그를 압살롬에게 보내 거짓 투항하게 했습니다. 압살롬은 아히도벨 못지않은 지략가로 알려진 후새를 환영했고, 후새는 다윗을 돕게 됩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나요? 압살롬의 진영의 의견이 갈라졌습니다. 아히도벨은 즉시 다윗을 추격하자고 했습니다. 후새는 다윗이 피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천천히 추격하자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지금 다윗이 쫓기는 신세이지만, 역전의 용사이므로 섣불리 추격하면 낭패를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때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무엘하 17장 14절을 보면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그 때 아히도벨의 의견대로 즉시 추격했다면 다윗은 시내를 건너지 못하고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후새의 의견을 따른 덕분에 시간을 벌고 전열을 정비하여 반란군을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그 상황에서 아히도벨의 계략이 채택되지 못했을까요? 성경은 계속 말씀합니다. 14절 후반부를 보면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이요, 구원이요, 요새이십니다. 그 분께만 기도하십시오. 그 분께만 부르짖으십시오. 

성경은 우리를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암몬과 모압의 연합군과 싸우러 나가는 여호사밧에게 주신 말씀을 보십시오.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역대하 20장 15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에게도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이란 신앙을 백성들에게도 권하고 있습니다. 본문 8절을 다같이 읽읍시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할렐루야! 여기 <시시로>라고 번역된 것은 <모든 때에>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어찌 위기 상황에서만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까?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쉬운 일이나 어려운 일이나, 편할 때나 힘들 때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붙드시길 바랍니다. 그 앞에 우리의 마음을 토하길 원합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란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져갈 수 있는 문제라면 무엇이든 다룰 수 있는 분이시다. 무수한 행성을 창조하는 일도 하나님한테는 문제가 아니었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일도 그랬다. 하나님이 다루지 못할 만큼 어려운 일은 세상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를 기다리신다.>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만 붙들고 부르짖으십시오. 우리의 바쁜 생각과 지각을 휴식하게 하십시오. 그 대신 하나님께서 일하게 하십시오. 우리 모두 하나님의 품을 피난처로 삼고 그 평안 가운데 살게 되길 기원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오늘 기억하실 말씀의 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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