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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을 위한 떠남 (창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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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위한 떠남 (창 12:1-9)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의 조상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아브라함을 꼽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세계인구의 70%가 아브라함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인, 카톨릭교인, 이슬람교인입니다. 물론 이슬람교인은 예수님이나 성경을 믿지 않지만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의 이름이 341번이나 소개됨은 물론이고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받고, 복의 통로가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된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와 같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창11:27절에 보면 데라에게는 아브람, 나홀, 하란등 세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첫째 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제조업을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아브라함은 무당이나 점쟁이의 아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래와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었습니다. 당시 결혼이 종족보존의 중요한 기능을 가졌음을 볼때 자식이 없다는 것은 꽤 많은 고민의 사람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이 만인의 존경을 받는 믿음의 사람, 축복의 사람이 어떻게 될 수 있었겠습니까? 어느 날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1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이 사건이 아브라함의 생애를 180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이루실 일들을 약속하셨습니다. 
2-3절“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 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복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권력자들은 필요할 때는 불러서 사용하고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내동댕이쳐 버립니다. 그것을 ‘토사구팽’이라고 합니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4가지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1)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비록 지금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지만 이렇게 놀라운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이루어졌습니다. 육신적인 후손은 유대인들이요 영적인 후손은 모든 믿는 자입니다. 어떤 권사님을 심방했더니 처음 시집 올 때 시집에 믿는 사람이 자기 외에는 없었지만 지금 3대가 지난 후에 보니 60여명이 예수를 믿는 다고 간증했습니다.

2)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갈대아 우르의 이름없던 한 사람 아브라함은 그 이름이 창대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높이시고, 유명하게 하셨습니다. 불신자들도 길에서 만나 물어보면 상식적으로 아브라함을 압니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을 가리켜 ‘열국의 아비’ ‘선지자’ ‘하나님의 방백’ ‘여호와의 종’ ‘하나님의 벗’이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처럼 여러분의 이름도 존귀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복이 되리라(복의 근원이 되리라)
이는 복의 샘터가 된다는 뜻이요 복을 나누어주는 통로가 될것 임을 의미합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3절후반절)

4) 보호의 복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3절 전반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보호를 약속해주셨습니다. 오늘 부르심 받은 모든 자들에게는 보호의 복이 따라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라 ....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라”(시127:7-8)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롬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러면 아브라함은 약속된 축복을 받기 위하여 어떻게 하였습니까?

1.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갔습니다. 

4절“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75세였더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은 그의 비전이요 꿈이 되었습니다.

히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

히11:8“믿음으로 아브람은 부르심을 받았을때에 순종하여 장래기업으로 받을 땅에 갈바를 알지못하고 나갔으며”

아브라함은 안전한 보금자리요 익숙한 장소인 고향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당시 갈대아 우르는 25만의 인구가 거주하는 꽤나 큰 도시였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결단은 과거와의 단절이요 기득권의 포기이며 우상과의 단절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결단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다는 것은 꼭 지리적인 의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구습과 나쁜 습관, 옛사람의 언어와 행동, 불의 , 세상의 욕심에서 떠나는 영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하여 그보다 못한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2.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4절)

약속된 축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시119:105절“주의 말씀은 내발에 등이요 내길에 빛이니이다”

수1:8절“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데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성경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으로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말씀들을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 말씀들을 잘 준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완전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갈 때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 설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생후 1년이 되기 전에 기어 다니다가 조금씩 벽을 잡고 일어서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또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수도 없이 거듭하면서 걸음마를 배워갑니다. 처음에는 뒤뚱거리지만 곧 중심을 잡고 잘 걷게 됩니다. 나중에는 달리기도 합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수많은 실험 끝에 전구를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만든 전구는 너무나 빛이 약해서 촛불을 켜고 볼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전구의 첫 걸음입니다. 라이트 형제가 처음 만든 비행기는 공중에 불과 12초 동안 머물다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비행기는 한번 이륙하여 14시간 이상 전 세계를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최초의 스팀 배는 뉴욕에서 알바니까지 항해를 했는데 지금 같으면 30분에 갈 거리를 30시간 소요하였다고 합니다. 최초의 자동차는 한 시간에 3.2km를 갈수 있었습니다. 마차와 함께 출발했는데 오히려 마차가 먼저 도착했다고 합니다. 마부들은 굼지렁대는 자동차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3주전 초청주일부터 처음 교회에 나오시고 등록하신 VIP들은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 적응해 가시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불완전하지만 우리의 믿음의 첫걸음, 헌신의 첫걸음, 봉사의 첫걸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감리교에서 목회하시다가 은퇴하신 박로수 목사님이 계십니다. 성경번역에 일생을 바치고 계신 훌륭한 목사님이십니다. 박수기 장로님 초청으로 박로수목사님과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처음 집안에서 예수 믿게 된 간증을 해주셨는데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누님이 87세이신데 현재 살아계십니다. 그 누님이 태어났을 때 미숙아였습니다. 당시에는 지켜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답니다. 아이가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애기를 끌어 업고 무당에게 갔습니다. 무당은 자신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혹시 교회에 나가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다급한 어머니는 애기를 끌어 업고 몇 십리길을 걸어 시골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전도사님이 목회를 하고 계셨는데 자초지종을 듣더니 아기에게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등에서 내려 보았더니 살아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어머니의 표현을 빌면 기름이 떨어진 등잔의 불이 가물 가물 꺼져가는데 거기에 기름을 부으면 불길이 확 살아나듯이 아이가 생기가 돌아오더라는 것입니다. 그길로 어머니는 돌아가서 모든 부적을 떼어버리고 우상단지를 깨트렸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태어난 아이가 박로수 목사님이 된 것입니다. 믿음의 첫걸음은 시련도 있지만 늘 우리에게 결과적으로 축복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7-8절“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재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브라함의 삶은 장막과 제단의 삶입니다. 유목민들은 목초지를 따라서 이동해야 했기에 장막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예배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예배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찬양과 감사를 올려드리지만 동시에 예배를 통해 우리는 힘을 얻습니다. 은혜를 받습니다. 병도 고침 받고, 비전을 가지게 되며, 응답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기도 합니다. 

여러분 예배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어떤 훌륭한 봉사도 예배를 통한 재충전이 없다면 곧 지치고 말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기쁨을 얻지 못하면 신앙의 삶은 삭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에 집중하십시오. 먼저 예배 15분전에 나오셔서 기도로 준비하십시오.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와 주실 말씀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가능하면 앞자리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찬양과 기도에 동참하시고 오직 말씀에만 집중하십시오.

아브라함의 삶은 축복을 위한 떠남이었습니다. 더 좋은 약속을 위해 갈대아 우르를 떠나고 말씀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주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십시오. 그리고 아브라함과 같은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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