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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민 1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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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민 14:6-10)


음식에 궁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돼지 고기와 새우젓은 궁합이 잘 맞는 음식입니다. 소고기와 상추도 궁합입니다. 야채와 올리브 기름도 잘 맞는 음식입니다. 이렇게 잘 맞으면 영양가가 더 효과를 냅니다.

그런데 믿음과 행함이 합하면 영적인 궁합니다.
믿음은 정적인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행함은 동적인 움직입니다. 믿음이 행함과 궁합이 맞아서 같이 움직이면 놀라운 효과를 냅니다.
그래서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말씀을 풀어 가겠습니다.
내가 집회를 인도하면서 잊을 수 없는 집사님이 한분 계십니다. 모 교회 변 집사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딸만 셋을 낳았습니다. 그만 낳으려고 하였는 데 부모님들 극성에 하나를 더 낳기로 하였습니다. 네 번째는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네 번째 아이를 낳는 날 산부인과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들이다!”
이런 소리를 듣고 뛰어 들어갔습니다. 아들인 데 고추가 쏙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들인데 병신인가 보다.”
그리고 실망하여 있는 데 의사가 말했습니다.
“이런 아이가 가끔 있을 수 있습니다. 수술하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립니다. 3살이나 4살되면 데리고 오십시오. 약간 수술하면 됩니다.”

안심하고 길렀습니다. 4살이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가서 물어보니 100만원 정도 수술비가 들겠다고 하였습니다. 100만원을 꾸었습니다. 그 때 막 부흥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00만원을 장롱속에 넣어 두고 부흥회 마치면 수술하러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설교를 들으며 갑자기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돈을 병원에 갖다 주지 말고 하나님께 헌금하면 하나님이 더 완벽하게 고쳐 주실 것이다.”

그래서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예배시간 마다 안수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흥회에 고침을 받지 못 하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돌아 왔습니다.
“변집사님! 지금까지 고침받지 못 하였지 앞으로도 고침받지 못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새벽기도 계속하면서 기도하세요.”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제가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한 달 이자를 주었어요. 나는 새벽기도를 모르는 집사였어요. 그러나 부흥회 마치고 아들 고추 문제로 매일 새벽기도를 한번도 안 빠졌어요. 매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와서 이불을 들추고 팬티를 내리고 고추가 나왔나 안 나왔나 점검해 봐요. 그런데 한 달 되어도 안 나와요.”
그리고 하소연하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변 집사님! 지금까지 안 나왔다는 것이지 내일도 안 나온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기다려요.”

내 이야기를 듣고 변 집사가 말했습니다.
“알았어요. 가난한 살림에 돈을 또 100만원 꿀 수가 없어요. 기도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전화를 끊으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외쳤습니다.
“<변 집사님! 전화 끊지 말아요.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어요.”
“무엇인 데요?”
“변집사님. 농부가 씨를 심어 놓고는 싹이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 조바심이 나서 매일 아침마다 흙을 파보면 싹이 나지 않아요.”

변 집사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알았어요. 목사님! 그렇게 하겠어요.”
그리고 3달이 지났습니다. 전화가 울렸습니다. 받았습니다. 변집사였습니다.

“목사님! 나왔어요. 3달 만에 하나님이 응답하여 주셨어요. 나는 목사님이 부흥회때 기도할 적에 왜 응답 못 받았는 지 알았어요. 그 때 고침을 받았으면 나는 새벽기도 성도가 되지 못 하였을 거예요. 만일 한 달만에 나왔으면 나는 새벽기도 하다가 중단하였을 거예요. 3달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 하고 나니 이제 나는 완전히 새벽기도 집사가 되었어요. 이제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목사님! 선물 하나 보냈습니다. 받으세요.”

“무슨 선물인데..”
나는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받아 보시면 알 것입니다.”
선물을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선물이 왔습니다. 그는 표주박에 그림을 그리는 이였습니다. 표주박에 예수님이 양 떼를 몰고 가는 그림을 그리고 그 밑에 이렇게 썼습니다.
“아들 고추를 고쳐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지금도 변 집사 사건을 잊지 못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오늘 본문 이야기로 들어 갑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12 지파인데 한 지파에서 한 명씩 정탐군을 불렀습니다. 12명이 40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야 할 가나안 땅을 세밀하게 정탐하고 돌아 왔습니다. 10명은 가서보니 성은 든든하고 군사들은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가면 우리 모두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을 보니 우리는 메뚜기같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정탐군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에 행함을 더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1. 믿음으로 바라보라.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생각이 아니나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믿어야 합니다. 믿으면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나 10명 정탄군은 머믈자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바라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만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두 명은 “오직 가나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부터는 오직 가나안만 바라 보았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장에서 믿음을 확실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5)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과 믿음없이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믿음없이 바라보면 큰 성이 가로막혀 있으면 “못 갑니다” 라고 말합니다. 잘 훈련받은 상대방을 믿음이 없이 바라보면 “우리는 안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상대방이 무기가 많은 것을 보면 믿음이 없이 바라보기에 겁에 질립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바라보면 다릅니다.
무기를 보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면 됩니다.
성이 견고하게 보여도 하나님이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순식간입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똑같이 바라 보아도 믿음없이 바라 보는 것과 믿음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똑같이 울어도 정말 슬퍼서 우는 것과 가식으로 슬퍼서 우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조선 연산군 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디. 김해 마을에 부임한 원님 집 옆에서 어느 날 곡소리가 났습니다. 갑자기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렇게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죽었음을 이상히 여긴 원님은 그 시체를 가지고 오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무리 조사하여 조아도 죽을 리가 없는 데 죽은 것입니다. 도무지 원인을 못 찾자 부인이 울면서 말했습니다.

“왜 나를 의심하십니까? 저희 부부가 금실이 좋았던 것은 이웃들이 다 아는 바입니다”
의기 양양하게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원님은 뱃장이 좋은 신하에게 시체를 반듯하게 눕게 하고 배와 가슴을 누르게 하였습니다. 갑자기 배꼽에서 쇠꼬창이가 올라 왔습니다. 아내가 시퍼렇게 질리는 것이었습니다.

면밀한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죄가 들통이 났습니다. 그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와 짜고 자기 남편을 죽인 것이었습니다. 자고 있을 때 쥐도 새도 모르게 쇠꼬챙이를 뱃꼽에 박아 죽인 것이었습니다.
원님은 아내인 여자가 곡을 하는 데 곡소리는 있어도 슬픔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시키고 끝까지 밝히고 만 것입니다. 물론 간통한 남자까지 잡혀 사형당하고 말았습니다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을 바라보았습니다.
꿈을 바라 보십시오.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2. 믿음으로 말하라.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생각이 아니나 움직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제부터 믿음의 말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부정적인 말만 하였습니다.
“장관을 세워 지도자로 삼자.”
“모세를 따르지 말자.”
“애급으로 돌아가자.” 그러나 두 명은 항상 믿음의 말만 입에서 불처럼 품어 나왔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13;30)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4;7-9)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항상 입으로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말만 합니다. 항상 소망적인 말만 합니다.

지난 249기 성막 쎄미나에 봉천동 풍성한 교회에서 목회하시는 설 진일 목사님이 오셔서 공부하셨습니다.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난 주간 사모님과 둘이 식사 한번 하고 싶다고 하여서 같이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하면서 설 목사님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낳기만 하면 100일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습니다. 세 아들이 똑같았습니다. 네 번째 낳은 아들이 100일 되어가는 데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 때 한 분이 아버지에게 전도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런 저주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난감할 때라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갑시다.” 아내와 지금까지 독실한 불교인이었습니다. 아내는 펄쩍 뛰면서 말했습니다.
“이혼 해요.”
그리고 그 날 밤 자는 데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앞마당에서 회오리 바람이 세 번 불더니 밖으로 날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습니다. 아침에 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세 번 날라간 것은 세 아들이 죽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교회 다니면 날라가 버렸으니 재앙이 끝나는 것같다고 해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네 번째 아들이 고침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아들 셋, 딸 하나를 더 낳았습니다. 4 아들이 모두 목사가 되었습니다. 둘은 서울에서, 하나는 인천에서, 하나는 일본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식구들이 예수님을 잘 섬기고 있습니다. 가문에 흐르는 모든 재앙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축복하고 있다는 말만 기쁨으로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입에서는 항상 긍정적인 말만 배출됩니다.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으로 바라 보고 믿음으로 말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후 항상 가나안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갈 수 있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3. 믿음으로 점령하라.

그 후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에 들어 왔습니다. 안 된다고 하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갈 수 없다는 사람들은 갈 수 없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늙어서 죽기까지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데 공헌하였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는 후계자가 되어 죽기까지 가나안 땅 정복에 앞장 섰습니다.
갈렙도 그렇습니다.

갈렙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살 때였습니다. 애급에서 400년간의 종살이를 끝내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하루 하루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목표는 가나안이었습니다. 그 때 정탐군으로 40일간 가나안을 다녀 왔습니다.

이 때 갈렙의 나이는 40이었습니다. 그 후 45년이 지났습니다. 85세되었을 때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에 갈렙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40년 광야 생활후에 모세가 죽었습니다. 두 정탐군 가운데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후 계속 전쟁을 치루면서 땅을 점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45여년을 침묵으로 있던 갈렙이 드디어 침묵을 깨는 이야기가 민수기 15장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갈렙이 침묵을 깨뜨리고 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민 15;10-12)

갈렙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40세 때보다 85세인 지금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건강을 주신 이유를 갈렙은 깨닫고 있습니다. 나에게 40세 건강이나 85세 건강이나 같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뜻은 헤브론 아낙 자손을 물리치라고 하나님이 그렇게 건강을 주신 것이라고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죽기까지 가나안을 점령하다가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85세에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사람을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아마도 세계 역사상 최고령 군인이었을 것입니다.
장군은 전쟁터에서 죽습니다. 믿음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에 신약학 교수 이야기입니다. 그는 채플 시간에 전혀 찬송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음치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그 교수의 별명을 '찬송 음치'라고 붙여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교수가 어찌된 일인지 채플시간에 찬송을 힘차게 부르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놀랐습니다. 음정도 틀리고 박자도 틀렸습니다. 그러나 힘차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지난 날과 전혀 다른 자세였습니다. 그래서 강의 시간에 교수님에게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교수님! 왠 일이십니까? 찬송을 다 부르시고?" 
교수님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백을 했습니다. 
전날 밤 꿈을 꾸었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이르러 노크를 했더니 베드로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래서 자신을 어릴 적부터 신자요 지금은 신학대학 교수라고 소개를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책을 들쳐 보면서 말했습니다.

“공부는 많이 해서 아는 것은 많은 데, 찬미의 제사를 올린 기록이 없군요. 천국은 지식이 많은 신학 박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 사람을 원합니다. 가서 찬송을 많이 부르다가 오시오!" 
그리고 천국 문이 닫혀 버렸습니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음치지만 크게 찬송가를 부르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믿음은 바라보게 합니다.
믿음은 말하게 합니다.
믿음은 점령하게 합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크래크 힐이 쓴 <그리스도인의 재정 원칙>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크래크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상담소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떤 청년이 상담하러 상담소를 찾았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났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청년이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헌금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헌금하라고 하십니다.”
그 청년이 말했습니다.
“나는 돈이 없는 데요.”
지갑을 열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500원짜리 한 장이 있었습니다.
“왜 거짓말하나요? 이 돈을 헌금하라고 하십니다.> 청년이 놀라서 말했습니다.”
“우리 집이 여기에서 5십리입니다. 지금 폭설이 내리고 있습니다. 집까지 갈 버스표 살 돈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오늘은 걸어 갈 수도 없습니다.”

크래크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참새 믿음을 가지고 바치세요.”
그는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투덜대면서 정거장으로 갔습니다. 물론 근심걱정에 쌓여서 갔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버스 정거장 전보대 밑에 500원짜리 한 장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야! 재수가 좋다.”
그리고 그 돈으로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편지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누가 5,000원을 보내주었습니다. 10배의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 후 그는 참새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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