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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자녀를 볼 때 예수님을 바라보라 (엡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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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볼 때 예수님을 바라보라 (엡 6:4)

5월 한달은 가정에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전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순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기념일 순서대로 오늘은 자녀 양육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저런 말씀을 준비하다 보니 원고가 한 20페이지가 되었습니다.

성도의 자녀 양육에 대하여 드릴 말씀은 많지만 설교가 세미나는 아니라,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볼 때, 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것이 자녀 양육에 대한 완벽한 답이었습니다.

요즘 성도들 사이에 자녀 양육의 고민 중 하나가 자녀들에게 매를 대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50대 이상 세대 부모와 40대 이하 세대 부모들들 사이에 입장이 뚜렷이 갈라집니다.
50대 이상 세대들의 부모는 일반적으로 자녀들을 바로 가르치려면 엄히 매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에 근거한 생각입니다.

잠 13: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그러나 40대 이하 세대 부모들 중에는 자녀들에게 매를 대는 것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맞고 자라서 그런 지도 모릅니다. 최대한 자녀들이 원하는대로 길러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역시 성경에 근거한 생각입니다.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이런 갈등은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도 영향을 미칩니다. 교회 서점에서도 갈등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매를 들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것은 핵심을 잘못 짚은 것입니다.

한동안 자녀들에게 엄히 매를 드는 것이 좋은 부모라는 생각이 사회를 지배하기도 했습니다. 소위 뼈대있는 집안에서는 대부분 자녀들을 혹독하고 엄격하게 다루었습니다. ‘아이들은 항상 입을 꽉 다물고 무조건 부모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은 질문조차 던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심겨졌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자녀들에게 잘해주는 것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의 호의에 대하여 개와 고양이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개는 주인의 호의에 대해 "사람들은 날 먹여주고 날 재워준다. 그리고 날 사랑해준다. 아마 그들은 신일거야"라고 주인을 신격화했지만, 고양이는 다릅니다. "사람들은 날 먹여주고 날 재워준다. 그리고 날 사랑해준다. 아마도 난 신일 거야.”
여러분의 아이는 개같나요 고양이 같나요?

무조건 받아주기만 하면 아이들은 버릇이 나빠지고 이기적이게 되고 부모의존적인 연약한 아이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가 하나님을 대신한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입니다.

매를 들어야 한다면 하나님이 때리시는 것이고 받아준다면 역시 하나님이 받아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러면 부모는 언제나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 생각과 판단과 감정으로 매를 들면 그 매는 자녀들에게 무서운 상처를 남기게 되고 부모가 자기 생각으로 자녀를 받아주기만 하면 자녀들을 타락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부모는 자녀를 기를 때 분명히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하신 곳이 결혼식장이었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시지만 더욱 가정을 변화시키시고, 우리 자녀들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오직 예수님과 하나 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아이들을 기르시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 입장에서 자녀를 가르치는 일로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자녀들은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배우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보면서 그대로 배웁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들이 살았으면 하는 그 삶을 자신이 살면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바로 살지 않으면서 자녀들에게는 바로 살라고 말로 가르치면 자녀들에게 혼란만 주고 분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왜 화가 납니까?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까?
부모들이 자기가 하는 말대로 스스로 살지 않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의 불만, 분노를 가만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말하는 것과 실제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배운다고 합니다. 부모의 뒷모습이 자기를 가르치는 것과 일치할 때에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인식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행동을 삼가게 됩니다. 

그러나 뒤에서 보는 부모의 행동이 앞에서 자기를 가르치는 말과 일치하지 않을 때 부모에게 드는 반발심은 거센 폭풍우와도 같이 걷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게 됩니다. 그 아이에게 선악의 개념들이 흔들리게 됩니다. 
부모에게 매를 한 대 맞은 것은 금방 잊어버릴 수 있지만, 부모가 자기를 가르치는 것과 상반되게 행동하는 것은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그 상처는 아이가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녀들에게 본이 되도록 살 수 있습니까?
이것이 부모에게 곤혹스런 일이지만,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주님을 바라보면 부모가 바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를 기르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엄청난 기회임을 알게 됩니다.
부모는 자녀들과 예수님 사이의 연결 통로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자녀를 보는 눈 자체가 달라집니다. 
  
학교 성적이 항상 꼴찌인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술학교에 세 번 지원했다가 낙방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탄식을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우리 집에 이런 바보가 태어났을까?” 
이 소년이 바로 세계 최고의 조각가 로댕입니다.

한 소년은 다섯 살에 겨우 말을 하였습니다. 
글을 읽지 못해‘멍청한 아이’로 불렸고, 산수는 항상 낙제점이었습니다. 
담임 선생으로부터‘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저능아’란 평가를 받고 퇴학을 당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세계적인 석학 아인슈타인 박사입니다. 
한 소년은“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왜 둘이어야만 하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어떤 날은 새끼를 낳겠다며 온 종일 오리알을 품기도 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그를‘문제아’로 낙인 찍고, 열세살 때 퇴학을 당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입니다.      

자녀가 다른 아이만 못하여 속상하십니까? 예수님의 눈으로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고전 1: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부모가 예배드리라, 기도해라, 성경읽어라, 공부해라, 인사해라, 방 치워라, 하는 것이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춘기의 딸을 둔 엄마의 고민을 가진 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집사님의 딸은 성격이 까다롭고 고집도 세서 키우기 힘든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땐 항상 잔소리와 야단으로 보냈습니다.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반항은 부쩍 심해졌습니다. 딸을 다루는 일이 너무 힘들어 기도하는데, 이 집사님에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왜 나를 믿지 않느냐?’너무 놀랐습니다. 그래 야단치고 싸우고 걱정하고 좌절하는 것이 믿음은 아니구나!

그래서 정말 딸을 키우는데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께 순종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처음엔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과연 예수님께서 역사해 주실까?’의심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자기 힘으로는 딸을 가르치기 힘들어 예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마음으로 딸을 보니 딸의 성품과 기질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자기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는 늘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살았지만 딸은 누가 시키는 것을 하는 것은 싫고 자기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에는 열정을 갖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딸의 기질이고 장점이구나,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이래라 저래라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기도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학원이나 학습 방법을 선택하는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먼저 지시하지 않고, 주님께서 가연이에게 응답하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섣불리 야단치지 않고 더욱 주님의 마음을 품고, 격려했습니다. 그러자 서서히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학교 성적도 70점에서 75점으로, 다시 80점으로 성적도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중3 여름방학 때, 딸이 1주일간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턱없는 소리라고 일축해버렸겠지만 집사님의 마음에 주님이 딸의 소원을 들어주라는 것 같아서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답니다. 한 주간 엄마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방에서 뒹굴고, 늦잠 자고, 음악 듣고, 친구 만나고, 컴퓨터 게임 하고…. 야단이 목에 까지 찾으나 꾹 참았답니다. 닷새째는 아이가 눈에 거슬려 폭발할 지경이었는데, 하루 금식을 다 하였답니다.

집사님 눈에 딸의 한 주간은 무의미하게 허비해버린 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괜히 아이한테 자유시간을 허락했나 후회도 했습니다. 드디어 1주일이 되던 날, 딸이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예쁜 티셔츠 하나를 사와서 선물이라고 주더랍니다. 그러면서“엄마, 엄마는 날 세 번 놀라게 했어. 내가 1주일간 내 맘대로 하고 싶다고 했을 때 허락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허락해줘서 놀랐어. 사흘도 안 돼 엄마가 화를 내고 잔소리를 퍼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또 놀랐어. 1주일간 공부 얘길 한번도 하지 않은 것도 놀랐어. 그래서 너무 좋았고.”

1주일 딸이 엄마를 시험한 것입니다. 한편으론 당황스러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너무나 다행이더랍니다.“엄마. 난 엄마가 너무 고마워, 날 믿어줘서. 그리고 엄마가 너무 좋아. 1주일간 신나게 놀았으니까 이제 열공 모드로 바꿀 거야.”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렸더라면 결코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부모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가정에서 흐르는 저주같은 쓴 뿌리가 끊어집니다.

부부애가 각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은 결혼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사랑을 표현할 줄 압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손을 잡거나 안아주거나 살을 비비는 스킨십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서로 돕는다고 해서 자존심이 다치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성장하면서 익숙하게 보아온 사랑의 행위가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가 결혼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응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싸우고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사람은 대개 자신도 싸우고 폭력을 사용하게 됩니다. 부모로부터 주먹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 쓴 뿌리가 끊어집니다.

하지만 폭력을 쓰지 않는 부모 아래서 성장한 사람이 갈등 없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는 다릅니다. 폭력을 상속받은 사람이 아무 갈등 없이 폭력성을 잠재울 길은 없습니다. 자아가 죽어지는 십자가를 통과하는 영적 싸움을 겪습니다. 그리고서야 폭력이 마음에서 사라집니다,

자기 대에서 좋은 전통을 만들어가는 사람과 좋은 유산을 물려받은 차이는 엄청납니다. 전자는 아주 작은 사랑의 행위도 십자가를 통과한 결단이 필요하고 매 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이 필요하지만 후자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전자는 날마다 분노의 감정이나 폭력적인 성향이 죽어지는 경험을 해야 하지만, 후자는 노력하지 않아도 분노의 감정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 수 잇지만 자녀들에게 엄청난 유산을 물려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자녀들은 좋은 유산을 물려받아서 자연스럽게 아름답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 나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가정 사역을 하는 목사님의 결혼생활은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다고 했습니다. 위기의 순간들도 많았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쓴 뿌리 때문임을 알고 자녀들에게 좋은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발버둥을 쳤답니다. 폭력성과 무관심 같은 쓴뿌리를 억제하고 사랑하고 하나되려 할 때마다 분노의 감정이 몰아치고,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본성의 욕구를 극복할 수 없으루것 같은 좌절에 빠지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는 자식들에게는 더 이상 우리가 겪은 고통과 갈등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었습니다. 

굳은 인상을 펴고, 아내와 아이들을 안아 주는 일, 손을 잡고 걷는 일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고, 딴 살림을 차리고도 위세가 당당하던 아버지라는 교과서가 아니라 가정 내에서 평등과 사랑과 화목이라는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부담스러웠고. 자기 중심적인 욕구와 폭력을 쓰고 싶은 욕구,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을 통제하는 일은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이 이루셨다고 했습니다.
그  덕분에 딸 아이들이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인 줄로 생각한답니다. 

가정의 저주, 대를 이어내려오는 쓴 뿌리, 끊어지는 역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임합니다. 부부 싸움 아닙니다. 노력, 열심도 아닙니다. 예수님입니다.

부모가 예수님을 바라보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생을 자녀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엄마라면 다 그렇듯이 자녀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한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기도하는 중에 주님이 물으시더랍니다.‘네 아이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느냐? 지금 당장 죽으면 네 아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이 질문 앞에 집사님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자녀의 대학 입시와 유학, 직장, 결혼에 대해서는 엄청난 관심을 쏟아부었지만, 그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심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성적과 공부하는 것에 관해서는 발벗고 나서서 정보를 모으고 계획을 세우며 꼼꼼히 챙겼지만, 자녀가 하나님을 믿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하였는지, 성령을 체험했는지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한 자기 모습을 본 겁니다. 그 날 이 집사님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자신의 우선순위가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주님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빛과소금 5월호에 실린 빛과소금 편집장 이정호 목사의 글입니다.

1990년대 중반 평양에서 순교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양에서 재단사로 일을 하였지만 대를 이어 신앙을 지켜온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의 신앙을 따라 가족들 모두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탈북한 그의 딸의 증언입니다. 

“토요일 저녁마다 모였어요. 작은 아파트의 뒤쪽 방에서 가족들이 모였죠. 아주 조용해야 했어요. 기도하고 찬양하거나 성경을 읽을 때 속삭였죠. 소리를 죽이기 위해서 이불로 머리를 덮기도 했어요.”

모임은 가족에서 친구로, 이웃으로 커져갔고 끝내 낌새를 챈 당국의 급습으로 아버지와 삼촌이 체포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급히 산으로 도망했고, 국경선을 통과해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겨우 탈북하게 되었습니다.

딸은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학교에 가기 전 항상 그랬듯이 아버지가 절 안아주시며 조심
하라고 말씀하셨죠. 아버지는 매일 아침 식사 때마다 언젠가는 정부가 알아내고 체포될 거라고 하셨어요. 언젠가 우리가 치러야 할 신앙의 대가에 대해 경고하셨어요. 죽음이 닥쳐도 예수님을 따를 거라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기독교 박해 지수 단연 세계 제1위의 북한, 그 심장부에서 살면서 어떻게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저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땅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다른 이야기를 해주셨죠. 예수님을 사랑하셨고 그분을 위해 돌아가셨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아, 가정이 교회구나!’라고 생각하였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진짜 교회일까 가장 아름다운 교회는 가정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목사가 되셨습니다. 자녀들에게 영적 지도자가 되셨습니까? 여러분이 항상 바라보고 사는 예수님을 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자녀 교육으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부모를 구원하는 복음입니다. 
부모로 인하여 상처받은 많안 다른 아이들에게도 부모 역할을 해 주어야 합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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