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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마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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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마 18:1-4)

마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마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신약성경에는 모두 네 권의 복음서가 있습니다. 그 중 첫 권인 마태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주제별로 잘 정리를 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다섯 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습니다. 

첫째, 5장~7장에 산상수훈이 나옵니다. 둘째, 10장에 제자의 길이 등장합니다. 셋째, 13장에는 천국의 비유들이 나타납니다. 넷째, 18장에는 천국 시민의 자세가 정리되었습니다. 다섯째, 24장~25장에는 감람 산 강화, 곧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교훈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을 담고 있는 마태복음 18장은 마태복음에서 네 번째로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집약된 곳입니다. 주제는 천국 시민의 자세입니다. 천국 시민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우선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의 시민이 되었더라도, 계속해서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어린 아이를 대하듯 서로 영접하고, 서로 보살피며, 잘못하면 징계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이러한 내용들을 차례대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8장에서 말씀하신 가르치심의 핵심은 한 가지입니다. 천국의 시민은, 곧 구원을 받은 성도는 언제나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에 되새기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제자들이 질문한 의도는 무엇입니까?(1절) 

마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신 후, 가버나움으로 옮겨서 사셨습니다. 그 이후로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본 동네라고 불리었습니다. 

가버나움에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집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계실 때에는, 아마도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에서 머무르셨을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있는 어떤 집에 계실 때였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그들은 이 문제를 놓고서, 서로 간에 끈질기게 다투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하나의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막9:33~34 말씀을 보면, 이 사실이 잘 나타납니다.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다투는 자리에 없으셨어도,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스스로 시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들이 잠잠하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그들은 침묵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예수님이 모든 것을 알고 물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자기들이 서로 누가 크냐 하는 문제로 다투었다고 솔직히 말씀드리기가 쑥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꼼수를 써서 예수님에게 이와 같이 물었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그들은 예수님에게 자기들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지를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의 문제를 풀어주시기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곧 이 땅에 자신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그 때에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이것이 그들 사이에 있었던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말할 때는, 언제나 베드로가 그들을 대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에게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무서운 질책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 틈을 타서 마20:20~21 말씀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형제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들은 어머니까지 모시고 와서, 자신들이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기를 바랐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서, 다른 열 제자들이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겼습니다. 그들 모두가 똑같이 더 높은 자리에 앉고 싶었던 것입니다. 단지 그들에게는 자기들의 어머니가 가까이 계시지 않아서, 그런 부탁을 예수님에게 드리지 못했을 따름이었습니다. 

눅22:24 말씀을 보면,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은 심지어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도 또다시 일어났습니다. 그 때문에 유월절 만찬을 앞에 두고, 아무도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리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모두 씻어 주셨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은 여러 차례 자신이 고난을 받으시며 죽임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을 뒤따르는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들은 구원받은 성도로서 결코 다투어서는 안 될 문제, 곧 서로 누가 크냐 하는 문제로 끊임없이 다투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그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예수님에게 질문한 의도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경쟁심에 불타서, 예수님이 자기들의 서열을 정해주실 것을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질문은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그들은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제대로 몰랐습니다. 천국은 서로 누가 크냐 하며 경쟁하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천국은 스스로 높일 이유가 전연 없는 곳입니다. 천국은 사랑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따라서 서로 누가 크냐 하며 다투지 맙시다. 천국의 시민답게,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누가 천국에 들어갑니까?(2~3절) 

마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예수님은 한 어린 아이를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의 잘못된 자세를 고쳐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때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집에 계셨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 어린 아이는 베드로의 아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병으로 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베드로에게 장모가 있었다는 것은 그가 결혼을 했다는 뜻입니다. 또한 베드로가 결혼을 했다면, 그에게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한 어린 아이를 불러서 제자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곧이어 예수님은 그 아이를 팔로 안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는 두어 살 정도였을 것입니다. 자기 발로 서기도 하고, 예수님의 팔에 안기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 아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예수님의 팔에 안겨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아이는 샛별 같은 두 눈을 빤짝이면서, 평온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이는 불편한 심기로 서로 누가 크냐 하며 다투었던 제자들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마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자신의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제자들이 그들의 자세를 고치지 아니하면, 문제가 아주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계속해서 서로 경쟁하며, 이기적인 다툼을 멈추지 아니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이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들은 아예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셨습니다. 첫째, 그들은 돌이켜야 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먼저 그들은 돌이켜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망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얼른 뒤돌아서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방향을 바꾸어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올바른 길로 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누가 크냐 하며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높이며, 스스로 영광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천국 시민으로서 전혀 합당하지 않은 자세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단호하게 자신들의 잘못을 돌이켜야만 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팔에는 두어 살 정도 되는 어린 아이가 안겨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린 아이가 자기를 높이려 하거나, 스스로 영광을 얻으려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두어 살 되는 어린 아이가 스스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아이가 행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 아이는 예수님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고, 예수님의 팔에 평안히 안겨 있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자신의 의로는 천국에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사64:6 말씀과 같이,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의롭게 생각하며, 스스로 높이려 해서는 안 됩니다.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팔에 안긴 어린 아이처럼, 예수님에게 자신을 온전하게 맡겨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도 바울을 한번 생각해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스스로 자기를 의롭게 여겼습니다. 그는 자신을 한껏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천국의 시민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사람이라고 강하게 자부했습니다. 

빌3:5~6에서, 그는 과거에 높이던 자신의 모습을 이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그의 방향을 완전히 돌이켰습니다. 빌3:7 말씀과 같이, 그는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여기던 모든 것들을 다 해로 여겼습니다. 그런 것들은 자기를 사망으로, 지옥으로 이끌고 갈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바울은 자신을 높이려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낮추면서, 예수님만을 힘있게 의지했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을 온전히 얻기 위해 힘썼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의를 가진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전15:10에서 그는 이와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습니다. 

제자들도 이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했습니다. 물론 그 동안 그들은 놀라운 권능들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더러운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병든 자들을 고쳤습니다. 또한 죽은 자들도 살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자신들을 높여서는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도 바울처럼 고백해야 옳았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을 낮추고, 오직 예수님만을 높여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나를 의롭게 여기며, 나를 높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돌이켜야 합니다.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며,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 주여!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마5:3 말씀처럼,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것입니다. 날마다 어린 아이와 같이 가난한 심령이 되어서, 천국을 풍성하게 소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어떤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입니까?(4절) 

마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그러므로.” 이제 오늘 본문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 하고 다투었습니다. 그들은 경쟁심에 불타서, 예수님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그러나 그들은 어리석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두 가지 면으로 어리석었습니다. 먼저 그들은 자기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그들은 천국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천국에도 무슨 서열이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천국에서 큰 자로, 또 어떤 사람은 천국에서 작은 자로 영원히 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천국에 대하여 잘못 생각한 것을 고쳐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여기서 이 어린 아이는 예수님의 팔에 안겨 있는 어린 아이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팔에 안겨 있는 두어 살 정도 되는 어린 아이의 특징은 무엇이었습니까? 자기를 낮추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린 아이는 자기를 높이는 일과는 전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 어린 아이는 예수님의 팔에 안겨서, 예수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있었을 뿐입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자기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 자기를 낮추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천국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큰 자라는 말씀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들어간 것은 이미 그 사람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는 큰 자입니다. 따라서 어떤 결론이 납니까?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고 천국에 들어갔으니,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눅7:28에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세례 요한은 역사상 가장 큰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큽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천국에서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똑같이 가장 큰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천국에서 큰 자의 개념은 결코 상대적이질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에서는 누가 더 크고 덜 크고 하는 일이 전연 없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의 개념은 절대적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최고로 가장 큰 자일뿐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의, 우리의 공로를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를 보십니다. 따라서 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장 큰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가 나옵니다.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을 불러서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한 시간만 일한 사람이나, 여러 시간 일한 사람이나, 온 종일 일한 사람이나 똑같은 품삯을 주었습니다. 

품꾼들이 부름을 받은 것도, 또한 적은 시간 일을 한 품꾼이 많은 시간 일을 한 품꾼과 똑같은 품삯을 받은 것도 다 주인이 그들에게 베푼 은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고, 영생을 얻는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자기가 큰 자라고, 서로 자기가 첫째라고 다툴 이유가 전연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서 우리 모두는 똑같이 크게 되고, 똑같이 첫째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긴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천국 시민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예수님의 팔에 안긴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팔에 안겨야 합니다. 

찬송가 405장 1절 가사입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어린 아이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팔에 안깁시다. 

그리하면 우리의 마음은 평안하며, 우리의 삶은 항상 기쁘고 복이 될 것입니다. 그리해서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천국처럼, 주 안에서 하나되고 평안하며 따뜻하고 사랑으로 가득해서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아름다운 모습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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