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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가정의 우상을 버리라 (창 35:1-5,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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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우상을 버리라 (창 35:1-5, 에베소서 6:1-4)

지난 주일에는 시편 128편 말씀을 중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의 가장이 누리는 복이 무엇인지 말씀드렸습니다.가장의 복이 곧 가정의 행복인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의 삶이 가족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만드시고 가정의 질서와 행복을 위해 남편과 아버지를 책임자로 세우셨습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고 남편이 아내보다 더 존귀하다는 차별을 두신 것이 아닙니다.  가정의 질서와 책임의 우선 순위를 남편들에게 두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만드실 때 당신의 형상을 따라 남여를 동등한 인격체로 만드셨습니다.  먼저 남자를 만들고 다음에 그 남자를 통해 여자를 만드셨다는 순서상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와는 아담의 돕는 배필로 지음을 받아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이 되게 하심으로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서로 협력하여 수행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범죄한 그들에게 찾아오셨을 때 선악과를 먼저 먹은 하와를 부르시지 않고 아담을 찾으셨습니다.아담은 하와의 보호자였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일차 책임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원리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 즉 가정을 책임진 남자들이 받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 수고하는 성도 여러분, 특히 가장 여러분,  이 말씀을 따라 지난 한 주간 행복한 가정 만들기 위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말씀의 길로 열심히 걸으셨습니까?가정의 달 5월만 아니라 1년 열두 달 항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한 복 누리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가정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오늘은 ‘가정의 우상을 버리라’는 말씀을 드립니다.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의미가 아직 잘 정리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공경한다는 말이며,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그 앞에 두지 않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가정의 우상 버리기입니다.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 먼저 버려야 할 우상이란 무엇일까요?  

창세기 35장의 말씀에서 야곱의 가정이 버렸던 우상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봅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20년간 머슴처럼 일하며 가정을 이루었고 그 가정을 지키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물론 그의 첫 아내 레아가 야곱의 눈물겨운 성공담의 산 증인들입니다.  야곱은 외삼촌과 사촌들의 질투와 속임수를 견뎌가며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일하여 재산을 모았습니다.  외삼촌 집에 처음 올 때는 빈손이었지만 그 사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재산도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말그대로 맨 몸으로 뛰어들어 자수성가한 억척배기였습니다.  그리고 20년 만에 온 가족을 이끌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집으로 가던 길에 세겜 성에 잠시 머물러 지내던 중 딸 디나가 그 성의 추장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분노한 디나의 오라비들이 그 성의 남자들을 몰살하는 복수극을 펼쳤고, 아버지 야곱은 이 기막힌 문제를 어찌 해결해야 할지 두려움에 떨며 근심하였습니다.  눈물겹게 쌓았던 지난 날의 공력이 아들들의 살인행위 때문에 하루 아침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너는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네가 20년 전 네 형의 칼을 피해 도망할 때 너에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셨습니다.

내 가정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기막힌 위기의 순간에 야곱은 하나님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분은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시며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고 야곱의 지나온 수많은 환난의 날에 그의 기도를 응답하시며 그가 가는 길에 항상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오직 하나님만이 이 환난으로부터 건지시는 분이라 믿은 야곱은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해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안의 모든 식솔들을 모아 ‘너희 중에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며 의복을 바꾸라’합니다.  그때 사람들이 자기 손에 있는 이방 신상과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었고 야곱은 그것들을 나무 아래 묻었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은 친정 집을 떠나올 때 그 집의 수호신으로 섬기던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쳐 말 안장 밑에 숨겼습니다.  라헬은 남편이 어떻게 수고하여 이 가정을 이루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이제 내가 남편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친정 아버지가 신으로 받드는 드라빔을 가지고 가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수호신만 있으면 고향과 친정을 떠나 어딜 가든지 내 가정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친정 아버지와 오라비들을 속이고 배신하였습니다.  

라헬만 그런 우상을 가지고 있었을까요?밧단아람에 살던 야곱의 다른 식구들과 종들도 거기서 섬기던 우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야곱은 그런 것들이 헛된 것임을 알지만 그 지방 풍습과 개인의 신앙으로 여겨 묵인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만 우리를 지키시는 분임을 다시 확인하였을 때 야곱은 집안의 모든 우상들을 버리기로 작정했습니다.

우상 뿐 아니라 우상숭배와 관련된 귀고리들도 빼버렸고 의복을 바꾸었습니다.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는 말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세탁했거나 아니면 우상숭배 문화에 젖은 옷들을 버렸다는 뜻이니 마음과 몸을 아울러 새롭게 바꾸고 돌이켜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심한 행동입니다.야곱의 가정에 자리하고 있던 우상들은 이런 식으로 버려졌습니다.  

야곱의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것이 드라빔이나 또 다른 우상 신상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고향을 떠나 외삼촌 집을 향해 갈 때 벧엘에서 꿈에 나타나 약속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야곱의 가정을 지키고 인도하시는 분이셨습니다.야곱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때 비로소 가정의 평안과 행복이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돌아가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버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해야 할 일은 지금 우리가 끌어안고 있는 우상을 버리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우상이란 무엇일까요?야곱의 가족들이 가졌던 돌이나 나무나 금으로 조각된 신상들입니까?그런 것을 가진 가정도 있을 겁니다.  한국에 있을 때 어느 가정의 부적 단지를 수거했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제가 담당하던 교구의 어떤 교우가 출가한 누님의 가정을 전도하던 중 그 누님이 교회의 목사를 가정으로 초청하였습니다.가정예배를 드린 후 그분이 부탁하는 말이 자기 집에 있는 모든 부적들과 장롱 속에 모셔 둔 항아리 등을 치워야겠는데 무서워 못하겠으니 대신 해달라는 겁니다.종교를 바꾸면 혹시라도 전에 섬기던 귀신이 노하여 해코지 할까 두렵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우상은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어떤 물질이나 형상들입니다.그런 것이 내 가정을 재난으로부터 지켜주고 행복을 가져다 준다 믿고 거기 매여 사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도 우상이지만 보이지 않는 우상들 또 얼마나 많습니까?그 우상들이 나와 내 가정을 다스리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 막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에베소서 6장의 말씀을 봅시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말씀은 가정의 질서와 행복을 약속하신 대표적인 구절입니다.여기서 가정 행복의 원리가 되는 키워드가 무엇입니까?‘주 안에서’ ‘약속 있는 첫 계명’ ‘주의 교양과 훈계’이며 그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건강하게 세우고 이끌어가는 중심은 하나님의 언약, 곧 말씀입니다.하나님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불신하는 사람들이야 그 말씀과 상관이 없이 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그 말씀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언약은 에덴의 첫번째 가정에서부터 거부되었고 질서가 깨지고 말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자녀들이 그 약속을 의지하고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율법과 계명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말씀을 봅시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10:12, 13)

하나님의 법은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억압하며 구속하기 위한 족쇄가 아닙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 있을 때 자유로운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법 테두리 안에 살 때 참 자유를 누리며 참 행복자가 됩니다.그런데 사람들이 이 말씀을 외면하고 다른 데서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광야를 여행하던 이스라엘은 안정과 행복을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모압의 신들을 찾았습니다.사람들은 지금도 하나님과 그 말씀을 제쳐두고 눈에 보이는 우상, 보이지 않는 우상들을 한 없이 찾고 또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화평한 가정 만들기>라는 책에 가정을 싸움터로 만드는 우상에 관한 내용이 있어 소개합니다.부부싸움의 대부분은 자녀양육과 연관이 있습니다.  서로 자기 방식대로 아이들을 양육하려고 하거나 아예 무관심할 때 다툼이 발생합니다.  이 다툼의 배경에는 부부가 각자 가진 우상의 힘이 작용합니다.  이때 말하는 우상이란 가정의 행복을 위해 내가 가장 신뢰하고 자신하며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어떤 가치관이나 방법론입니다.

남편은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쉴틈 없이 일하며 최선을 다한다는 자부심으로 직장과 일을 가장 소중히 여깁니다.아내 역시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며 바쁜 하루를 보냅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남편이 아이들의 교육과 집안 일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아이들이 엄마의 바램에 따라주길 원합니다.  이때 내 마음에 있는 그 원함이 충족되면 행복하고 충족되지 못하면 인생이 불행하다 여깁니다.  직장이나 사업이 잘 진행되고 가정경제에 궁핍이 없으며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고 부모의 기대와 요구에 잘 따라주면 행복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불행한 가정이라 느낍니다.나는 불행하다고 느낄수록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의 요구사항을 더 강력히 주장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툼이 발생합니다.

그 요구사항이 선한 것이든 나쁜 것이든 원함이 강해질수록 그 욕구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게 되며 이것이 나의 행복을 위한 우상이 되고 맙니다.  쉽게 말해 우상이란 나의 행복과 안정감을 위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것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도 우상의 문제로 힘들어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긴다고 말하지만 많은 경우에 다른 영향들이 나를 다스리게 합니다.악한 의도에서 나오는 욕구 뿐 아니라 때로는 선한 욕구들조차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을 원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에 너무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 능력이 있든 아니든 나도 남들이 들고 다니는 프라다 핸드백을 가져야만 행복하다고 느끼고 거기 집착한다면 프라다 백이 나의 우상이 되어버립니다.  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주었으면 하는 부모의 바램이나 은행통장에 생활비가 넉넉하게 저축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어찌 나쁜 욕심일까요?그런데 이런 욕구들이 만족스럽고 풍족한 삶을 위한 절대적인 요구사항으로 변하여 그것들이 충족되지 않을 때는 쓴 뿌리가 나오고 후회와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면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고 맙니다.  

아이들이 예의 바르고 엄마의 말에 순종하며 친구들에게도 친절하여 칭찬 받는 아이로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이 엄마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살아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고 훈계합니다.그런데 아이가 엄마의 가르침대로 따르지 않고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분노하고 좌절하며 원망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화가 나고 감정이 폭발할 때 의로운 분노와 이기적인 감정 중 어느쪽이 엄마의 감정을 다스리고 있는지 질문해야 합니다.아이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착하게 자라가길 바라는 엄마의 의로운 분노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엄마에게 마음 편하고 순탄한 하루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이기적인 분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 엄마의 반응은 하나님의 훈계에 촛점이 맞춰져야 옳습니다.하나님은 자비롭고 오래 참으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엄마의 훈계가 분명하고 확고해야 하지만 동시에 아이를 사랑과 오래 참음과 친절함으로 대해야 옳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나 성냄이 앙금처럼 남아 있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엄마의 안락함과 편함을 원하는 것이 마음의 우상이 되면 자녀를 대하는 엄마의 반응은 달라집니다.  아이가 엄마의 요구를 만족시켜주지 않으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거나 사람들 앞에서 얼굴이 서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집안 일 돌보느라 지쳐 쉬고 싶은 엄마의 안락함과 편함을 빼앗겼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한 엄마는 불필요한 심한 말들이나 행동으로 훈계하려 합니다.  훈계한 후에도 계속 차갑게 대하고 다시는 엄마의 요구를 거역하는 일이 없도록 경고합니다.  

만일 이러한 반응이 반복적으로 자주 나타난다면 아이들을 경건한 자녀로 양육하고 싶다는 엄마의 원함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이기적인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우상으로 변질되었다는 신호입니다.물론 아이들도 자기 의견이 있고 원함이 있어 부모의 강요에 대항하고 거절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일은 이렇게 발생합니다.자녀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사항을 끝없이 반복하여 내놓습니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꿈이라는 우상들이 내 가정을 다스리게 하여 자녀들을 힘들게 합니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우상, 내가 하나님처럼 받들고 있는 나의 우상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면 다툼이 일어납니다.  아내든 남편이든 심지어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행복을 위한 나의 신념, 나의 우상을 무시하고 거부하면 분노하고 싸우며 정죄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상대방을 정죄하고 벌을 내립니다.  칼로 찌르는 것보다 더 잔인하고 날카로운 혀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줍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상대방을 나의 우상 앞에 굴복시키고 버릇을 고쳐놓겠다 작정하며 응징합니다.  집안 분위기를 싸늘하고 공포 분위기로 몰아갑니다.하나님이 내 가정의 주인이 아니라 나의 욕구가 나의 우상이 주인노릇하고 있는 결과입니다.행복을 위한다고 한 것이 도리어 다툼과 깨어짐을 가져오게 됩니다.

절간에 들어가 불상을 깨뜨리고 코란을 불태우는 것이 우상을 무너뜨리는 행동이라 굳게 믿고  용감무식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치기어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우상을 깨뜨리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이것이 자칭 신앙 좋다는 사람들이 벌이는 웃지 못할 코미디입니다.  생명이 없는 우상 앞에 절하고 복을 비는 것은 부질없는 행동임을 깨닫고 지난 날 헛되고 어리석었던 삶을 정리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 더 옳은 우상 무너뜨리기가 아닐까요?

복된 가정을 원하십니까?내 안에 있는 우상을 먼저 무너뜨립시다.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법에 눈을 맞추고 그 말씀을 따라 주 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하며 공경하고,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합시다.  주님과 교회의 관계처럼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서로 사랑하고 복종하며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어갈 때 가정의 행복은 주 안에서 선물로 주어집니다.  한 주간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하여 내가 버려야 할 내 안에 있는 우상이 무엇인가 살펴봅시다.  내 마음 이 구석 저 구석에 모셔놓은 우상을 찾아 깨끗하게 버리며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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