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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건강한 가정의 비밀 (엡 5: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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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정의 비밀 (엡 5:31-33)

사람은 태어나면 관계를 맺습니다. 태어나면서 제일먼저 맺는 관계는 부모와 자녀 관계지요? 태어나서 다른 형제들을 만나게 되면 형제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학교를 다니게 되면 급우 관계가 이루어지고요, 또 사회로 나가게 되면 동료 관계가 직장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게 되면 연인관계로 발전이 되고 결국은 부부관계가 됩니다. 태어나서 부부관계가 될 때까지 사람은 많은 관계를 경험합니다. 이제 부부가 되면 자기가 부모와 맺었던 관계를 또 다시 맺게 되지요? 자식을 낳아 또 다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사람은 이런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가정이라고 하는 곳에는 얼마나 많은 관계가 있나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형제간의 관계 부부간의 관계 또 친 인척 간의 관계 동기들과의 관계! 이 많은 관계 중에서 어떤 관계가 중요할까요?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중요시 여겨 왔습니다. 그래서 연로하신 부모님을 자녀들이 모시고 사는 것!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세상의 그 어느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피로 이루어졌습니다. 살로 이루어졌습니다. 형제간의 관계도 피와 살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가족 중에 피가 아닌 것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부관계입니다. 부부지간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녀, 형제간의 관계가 물보다 진한 피로 이루어진 관계라고 한다면, 부부간의 관계는 약속으로 이루어진 관계입니다. 

어떤 것이 쉬울까요? 어떤 것이 어려울까요? 피로 이루어진 관계는 이것은 너무너무 자연스럽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지요?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로 이루어진 관계는 자연스럽고 노력하지 않아도 왠지 당기는, 왠지 가까워질 수 있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부부간의 관계는 피로 이루어지지 않고 순수하게 약속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더 많은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한 가정을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또 관계는 뭘까요? 오늘 저는 어버이주일을 맞아서 여러분과 함께 부모님께 효도해야 된다고 하는 말보다 그것은 너무너무 당연한 것이고 그 보다 더 중요한 행복한 부부,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도바울이 창세기 2:24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다시 기록한 내용입니다. 창세기 2장의 내용은 여러분이 아시는 데로,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갈비뼈를 뜯어 여자, 하와를 만드시고 난 다음에 이 여자와 남자를 하나로 묶어 남자는 남편으로, 여자는 아내로 삼아 부부가 되게 하셨고 그 결혼식 주례사를 한 내용! 하나님께서 하신 최초의 주례사, 창세기 2:24에 있는 내용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내용을 가지고 신약시대에 다시 하나님께서 얼마나 건강한 가정을 원하시는가? 그리고 건강한 가정이 무엇인가를 오늘 말씀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시는 왼쪽에 우리교회가 잘 쓰는 ‘행복한 가정-건강한 교회’라고 하는 배너를 여러분이 보십니다. 교회는 건강해야 합니다. 사람의 몸이 건강할 때, 오래 오래 살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듯이 교회가 건강해야 하나님이 맡겨주신 귀한 사역들을 오래 오래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건강한 교회는 무엇인가가 밑받침이 될 때 가능합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교인들의 가정이 행복할 때, 행복한 가정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어질 때 그 교회는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크고 사람이 많고 프로그램이 좋아야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분,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사람인데요, 바로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이 건강하고 그가 이루는 가정이 행복할 때 비로소 그들이 모여 드리는 예배 공동체인 교회가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건강한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우리들의 가정이 행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비결은 뭘까요? 오늘 읽은 본문을 근거로 해서 몇 가지 중요한 내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가정에서 제일 중요한 공동체가 바로 부부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면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첫 번째 일은 부부는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부모의 곁을 떠나야합니다. 이 말에 대해서 혹 여러분 가운데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아니,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자식을 부모를 떠나라” 이게 무슨 말이냐? 또 여러분 가운데 결혼한 자녀와 한 집에서 살고 있는 그런 부모님들의 입장에서는 “아니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부모를 떠나라니! 그러면 자식과 함께 살지 말라는 건가?” 아니면, 부모를 떠나라는 말은 부모를 내 팽개치라는 말이냐? 부모를 돌보지 말라는 얘기냐? 부모에게 관심을 보이지 말라는 이야기냐? 이렇게 오해 할 수 있습니다. 전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게 결혼한 부부에게 주시는 첫 번째 메시지는, 결혼한 부부는 반드시 부모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에게 관심을 갖지 않거나, 부모님을 모시지 않거나, 아니면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지 않거나, 부모님을 그냥 내버려 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물리적인 것들을 그만 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오히려 얼마나 많이 네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 효도하라. 사랑하라. 얼마나 많이 합니까? 

그러면 오늘 여기서 말하는 결혼한 부부는 부모의 곁을 떠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세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결혼한 부부는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재정적으로 독립을 해야 합니다. 이 말은 결혼을 하게 되면, 이제 성인이 돼서 한 가정을 이루는 가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내가 결혼을 했으면 나는 부모님에게서 더 이상은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돈을 많이 빌려보세요. 돈을 많이 빌린다면 빌려준 사람에게 어떤 모양으로든지 간에 여러분이 그 분의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뇌물을 왜 주나요? 뇌물을 받으면, 뇌물을 준 사람의 요구를 듣지 않을 레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 뇌물은 아니지요? 

그러나 부모가 자식에게 자꾸만 돈을 주고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으로 뒷받침을 하게 되면, 이 자식은 자기의 의지와 노력으로 눈물로 땀으로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책임의식이 점점 희박해지고 결국은 부모에게 의존적인 자녀가 되게 됩니다. 부모에게 의존적인 자녀는 부모가 힘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더 이상 도와주지 못할 때에는 그 때는 자식은 부모를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식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경제적인 혜택이라든가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의 앞날을 망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식은 결혼을 하게 되면, 부모로부터 떠나야 되는데 그 떠남의 첫 번째 원리는 경제적으로 더 이상 도움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감정적인 것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합니다. 감정적인 독립은 정신적인 독립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예를 들어, 결혼한 젊은 두 내외가 다투었습니다. 부부싸움을 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부부싸움을 한 다음에 부인이 친정에 갑니다. 가서 막 웁니다. 울면서 이야기 합니다. 남편이 어떻고 저렇고 못살겠어요. 나 안 갈 거예요. 계속 그래보세요! 이 자식은 위로받으려고 부모님에게 갔지만, 시집을 보낸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옥이야 금이야 귀하게 길러서 시집을 보냈더니 가서 잘 사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매일 사내 안 사내 떠들고 친정에 와서 울고 도와달라고.

부모님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아직도 정신적으로 독립을 못한 거지요. 아직도 감정적으로 독립을 못한 것입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독립을 해서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위로와 격려를 받을 일이 있더라도 자기 집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아야, 그래야 시집장가 보낸 부모님을 걱정 시키지 않을 수 있는데, 아직도 정신적으로 부모님에게 매달려 있어, 육체적으로 매달려 있어, 정서적으로 매달려 있어서 조금만 힘들면 부모님에게 찾아가 울고불고 도와달라고 하면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것이지요.


세 번째, 육체적으로도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갈 곳 없다고 부모님 집으로 짐 싸들고 들어간다거나 도와 달라고 한다거나, 이런 정서적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재정적 이런 모든 것으로부터 부모님을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한 집에 부모님을 모시고 같이 산다 할지라도 이 결혼한 내외는 모든 면에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집에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면, 부모님을 공경하고 존경하고 사랑하고 힘든 거 다 도와드리지요? 그러나 그것과 이 결혼한 자녀가 부모님으로부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 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이 아담스라고 하는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부모와 자녀를 한 에덴동산에 같이 두지 않았다. 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남편과 아내로 만들어서 관계를 맺게 하셨는데 이 관계는 부모와 자녀와의 혈연관계, 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닌 약속으로 이루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중간에 개입을 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결혼한 남녀보고 부모의 곁을 떠나라고 했냐하면, 부모와 단절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재정적으로 독립을 해서 하나의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자식이 결혼해서 삽니다. 그런데 딸이 친정 부모님에게 전화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못살겠어요. 도대체 이 남자는 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안 하겠어요. 성격차이도 많고요.” 여러분이 그런 전화를 받았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부모님인 여러분은 어떻게 딸에게 반응할겁니까? 

두 종류입니다. 어떤 부모님은 일반적으로 “얘, 그래도 살아야지, 결혼 생활은 다 그런 거야. 그렇게 싸움도 하고 의견차이도 있고, 감정이 상하기도 하지. 그렇지만 이해하고 용서하고 참고 사는 거야. 그러다보면, 또 다 살게 되어 있고 네가 인생을 많이 못살아 그런데 결혼은 원래 그런 거란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지.” 이렇게 이야기 해 주는 부모님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부모님은 정 반대입니다. “뭐라고? 김서방이 그런 말을 해? 이 나쁜 놈. 자기가 뭐 해준 게 있는데. 너 집에 와. 내가 네 딸들 아들들 다 먹여 살릴 테니까 짐 싸들고 와 그런 놈하고 뭐 하러 사냐?” 이런 부모님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도 이런 문제 때문에 교인하고 상담을 한 적이 있어요.  

부모가 개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이 딸이 아 우리 부모님이 그러네? 정말 그래야지. 그래서 갈라섰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문제를 놓고 시댁에서는 어떻게 반응을 했을까요? 자 그렇게 해서 갈라지자고 이야기 해 놓고 여자가 나가자 시댁에서는 뭐라고 반응을 하나요? “아니, 딸이 아무리 그런다 해도 부모님이 딸을 잘 구슬리고 위로하고 격려해서 살도록 해야지. 그렇다고 내 아들 잘 낫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갈라놓으면 되냐?” 결국 나중에 사돈끼리 싸움이 벌어집니다. 

왜 하나님께서 결혼한 사람보고 부모를 떠나라고 했냐하면, 부모님이 개입하게 되면 두 가지 사건이 벌어집니다. 하나는 부부끼리 대화가 없어집니다. 툭하면, 무슨 일이 생기면 부모님께 쫒아가서 도움을 요청하고 정신적으로 매달리고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부부가 문제를 해결해서 아름다운 결론을 돌출해 내야 하는데 자기들이 정서적으로 부모님한테 이미 예속이 되어 있으니까 결국은 부모님이야기를 합니다. 결국 사돈끼리 싸우게 됩니다. 부부끼리 싸웁니다. 서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화가 없어집니다. 

그런 자녀 만들고 싶으십니까? 어떤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너무 의존합니다. 경제적으로 의존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의존합니다. 그런데 자녀의 입장에서는 모든 면에서 가능하다면 부모님에게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데 부모님이 자꾸만 개입을 한다거나, 이렇게 간섭을 하게 되면, 결국은 자녀들의 앞날을 망치는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자녀들끼리 서로 화합하고 이해하고 이야기하고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지요. 

예를 들어서요. 결혼하기 전에는 부모님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것은 최고 경영자, CEO와 같은 역할입니다. 결혼하기 전의 자녀들의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합니다. 방향제시하고 사람 만나게 하고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다 공급합니다. 마치 한 회사의 사장이 사원들의 모든 것들을 다 공급해 주듯이. 부모님은 결혼하기 전에 이런 최고 경영자 CEO의 역할을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난 후에는 역할이 바뀌어야 합니다. 

최고 경영자에서 이제는 컨설턴트로 바뀌어야 합니다. 컨설턴트는 상담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고 가지고 오게 되면, 부모님의 경험을 이야기 해 줄 수는 있으나 찾아가서 간섭하거나 끼어들거나 하지 않습니다. 끼어들게 되고 간섭하게 되면, 자식들끼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없어지게 되고 결국은 거기에 목을 매게 되어 부부간의 대화나 화합이나 일체나 노력은 없어지게 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혼수 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꽤 오랜 동안 이런 문제를 다루었고 많은 일간 매체들이 이런 문제들을 다룹니다. 얼마 전에 제가 아는 목사님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들만 셋을 두고 계신 분인데, 큰 아들이 장가들게 되어서 사돈댁 어른 내외와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단 문제가 오고 가게 되었는데 이 목사님 내외분이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일반적으로 하는 대로 이야기는 했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큰 며느리가 시집 올 때 예단을 많이 준비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가만히 보니까 그래도 내가 목사고 사회 지도층인데 살다가 보니 이렇게 예단을 많이 해 오는 것이 별로 바람직하지 않아서 둘째 아들이 장가들 때는 상견례 석상에서 목사님 내외분이 사돈댁에게 예단은 별로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다 알아서 자기들끼리 살 물건만 해도 될 거 같으니까 아무것도 해 보내지 마세요. 

이렇게 해서 둘째 며느리가 시집 올 때는 아무것도 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막내 셋째 아들을 장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상견례 자리에서 “예단은 아무 것도 해오지 마세요.”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셋째 며느리는 많은 것을 해 가지고 왔습니다. 

자 몇 년이 지났습니다. 목사님 내외분이 스스로 생각할 때, 가만히 살다가 보니 둘째 며느리가 괘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자기네 입으로 아무것도 해 오지 말라고 해서 둘째 며느리가 아무것도 안 해왔는데, “아니 재내는 보는 것도 없나? 해 오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해갖고 와!” 목사님 사모님이 그런 것을 느꼈답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후회했다고 합니다. 

저는 딸만 셋입니다. 딸이건 아들이건 관계없이 예단을 해 가야 하나요? 그런데 있어야 합니까? 요즘에 우리 젊은이들이 자꾸만 결혼을 미룹니다. 부담이 되어 아이들이 직장 제대로 잡지 못하는데, 결혼할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에 자꾸만 결혼이 늦어집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이 경험한 이야기를 할까요? 강남에 있는 친구를 오랜 만에 만나러 갔는데요. 강남이니까 얼마나 부자들이 삽니까? 그런데 날씨도 춥고 새벽기도 갈 때 입고 가려고 밍크코트를 하나 사게 됐는데요, 이것은 며느리와 관계없이 아들 장가보내고 난 다음에 그냥 본인이 입으려고 사려고 했더니 너무 비싸서 돈이 없어 가짜 밍크, 짝퉁 밍크를 30만원인가 주고 사서 입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입고 새벽기도도 오고 어느 날 강남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 그 옷을 입고 갔더니 친구들 얘기가 “어머, 너 이거 네 아들 장가보내면서 며느리가 해 가지고 온 거야?” 묻더랍니다. 그래서 “아니야.” 그랬더니, “뭐 아니야? 요즘에 아들 장가보내면서 밍크코트 하나는 받아야지.”

여러분, 교회 안에서 절대 밍크코트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식을 결혼시키려고 하는 부모님, 교회 안에서 자꾸만 이런 이야기가 오고가게 되면, 우리교회 이야기가 아니고, 자식을 장가보내면서 이런 면에 의존을 하게 되면, 자식들은 부담이 됩니다.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런 혼수 문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결혼 전에 문제가 생기고 결국은 결혼해서도 혼수 문제 때문에 나중에 양가가 싸워서 이혼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부모님이 개입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개입하지 않으면, 두 젊은 내외끼리는 아무 문제없이 잘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식은 결혼하면, 부모를 떠나라고 하는 이야기가 그겁니다. 자식들끼리 잘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님이지, 부모가 개입해서 해 가지고 와라. 해 오지 말라. 간섭입니다. 참견이지요? 이것은 자녀들의 앞날을 막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건강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자녀들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도록 해야지, 문제가 있다고 쪼로로 친정이나 시댁에 가지고 와서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자식을 보내야 합니다. 자식들 스스로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관계 중에서 배우자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배우자가, 즉 부부가 건강하게 되면, 그 가정은 절대로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아무리 결속이 되고 사랑하는 관계여도 시댁 식구가 아니면 처가 식구가 중간에 개입을 하게 되면, 다 난장판이 되고 맙니다.

며칠 전에 우리교회 교인하고 상담 했는데요. 교인 어떤 분이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여자 분이 친정에 갔습니다. 그런데 남자 식구 쪽에서 보면, 뭐 친정에 갈 수 있지요? 그런데 들리는 소리가 “너 가지 마라. 우리가 네 아이들 다 책임 질 테니까.” 지금 여자네 집 쪽에서 이혼하라고 종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게 부모입니까? 개입과 간섭은 자식들의 앞날을 망치고 가정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건강한 가정을 이루려면, 부부는 각자의 배우자와만 합해야 합니다.

“~그의 아내와 합하여~”(31절 중)

아내와 합한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하고만 합해야. 이 말은 배우자에게 성실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배우자에게만 성실하면 됩니다. 부모님에게 성실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건강한 부부가 되려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부모에게는 효도하는데, 남편에게 아내에게 성실하지 않고 충실하지 않으면, 그 가정은 깨집니다. 

결혼해서 살 때, 내가 내 아내와 남편과 살아야지. 결혼은 했는데 맨 날 본가에 가서 살고, 처가에 가서 산다고 한다면, 결혼을 부모님하고 한 것입니까? 본문은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은 부부가 서로 합하라. 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성실해지라는 의미지요? 남편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새벽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옵니다. 회사일 때문에요. 그런데 주말만 되면 TV하고 살고 다음날 다시 출근을 합니다. 다시 주말이 되어 골프 치러 간다. 등산 간다. 낚시하러 간다. 무슨 경마하러 간다. 놀러간다. 이 사람은 누구에게 충실한 건가요? 일에, 자기 취미에, 공부에, 세상 재미에 충실하지요? 그렇지만 배우자에게는 충실하지 않습니다. 배우자에게 충실한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취미를 가져도 아내와 남편이 같이 취미를 가질 때 그 내외가 건강해 질 수 있지요. 하나님은 분명히 이야기 하십니다.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라고요.
 
두 번째는, 이것은 성적으로 아내와 남편과만 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자가 아내를 놔두고 외간 여자와 정을 통한다. 몸을 섞는다. 아내가 남편 말고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다. 이것은 다 부정과 외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은 겉으로는 괜찮은 것 같지만, 언젠가는 곪아 터져서 갈라서게 되고 가정이 파괴되는 원인이 됩니다. 우리나라 이혼사유의 첫 번째는 성격차이고요. 두 번째가 배우자의 부정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떠나고 난 다음에는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성실하라. 합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부부는 서로의 육체에 대하여 소중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고, 순결하게 해야 될 책임이 있고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고 배우자의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서 배우자에게만 성실하고 충실해야 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 이지만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지, 동성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며칠 전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11월에 있을 대선을 겨냥해서 미국에 있는 450만 명의 동성연애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려고, 분명히 연방 헌법에 위배되는 말을 했지요! 자기는 동성연애자와 동성 결혼을 지지한다고 했습니다. 표를 의식해서요. 1.7%밖에 되지 않지만 450만 명의 이 동성연애자, 동성부부들은 미국의 백인 지식층인 들입니다. 돈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숫자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표를 의식해서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연방헌법은 부부는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의 여섯 개 주는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남자가 결혼해서 부부가 된다. 주가 합법화 시켰다는 말은 건강보험 모든 세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동성 간에 결혼하게 되면 자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생산을 하지 않게 되면, 인구가 줄게 되어 결국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남자와 남자가 결혼해서 아이 둘을 입양할 수는 있겠지요? 그래서 아이들을 기릅니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뭐가 될까요? 그 아이들도 또 다시 동성연애자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부부로 만들어 주셨지요. 그러면서 서로의 육체에 대하여 깨끗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부는 한 몸, 한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31절 하반절)

둘이 한 육체가 된다는 말은 한 마음 한 영혼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편에게 아내가 완전히 복종해서 없어지고, 아내에게 남편이 들어가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검정색 페인트에 흰색 페인트를 섞어 회색 페인트를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부가 하나가 되고 한 마음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남편과 아내가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대화를 통해 서로 의견의 합의를 거쳐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위아래 똑같은 색의 옷을 입어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위의 옷과 밑의 옷이 조화를 이루면, 어느 한 쪽의 인격이 다른 한 쪽의 인격 속에 완전히 매입되라는 뜻이 아니고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정이 있지만, 이것을 나누어서 조화를 시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친구가 되어야 되고, 동무가 되어야 되고 영혼의 생각의 반려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가정이 행복한 가정 건강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은 너무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러나 부부는 약속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기는 그 어떤 관계보다도 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도와야 합니다. 부모가 돕는 것은 자녀들의 삶을 자기들끼리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간섭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부부가 건강해질 때, 하나님의 교회도 건강해지고 사회도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서 여러분의 가정이 이런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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